지난 8월 8일부터 14일까지 태국에서 아시아 크로스컨트리 랠리 2015가 열렸다. KMF(대한모터사이클연맹)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약 2,000킬로미터의 험로를 달리는 이 행사에 참석하는 선수들을 위해 출정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랠리에 참가한 선수는 총 6명. 그 중 다년간의 랠리 경험을 가진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레이서 류명걸 선수가 7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다이어리를 공개했다. 

 

 

 

어제 밤 치앙마이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는 먼저 도착한 선수들도 있었다. 이번 랠리는 일본 16명, 스웨덴 6명, 한국6명, 캄보디아2명, 태국7명, 캐나다1명, 인도네시아1명 등 총 42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각 팀별 컨테이너가 도착하고, 검차 준비를 위한 테스트와 마무리 작업이 진행됐다. 경기 참가 신청서 작성 후 공식 스폰서 스티커를 받아 지정된 위치에 부착했다. 검차는 신청서에 작성한 차대와 엔진번호가 동일한지 확인하고, 경기 중 머신이나 주요 부품이 교체되는 것을 알기 위해 각 부위에 페인트를 마킹하는 작업이다. 주의할 것은 스페어 휠 세트도 사전 신고 해 페인트 마킹을 받아야 한다. 마킹이 없는 제품 사용 시 패널티를 받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정은 검차와 시내퍼레이드다. 매일 경기가 끝나면 저녁식사시간에 브리핑을 진행한다. 변경사항이나 내용은 HQ(헤드쿼터) 게시판에 공지한다. 공지 후 15분 이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후에는 받아주지 않으므로 수시로 게시판을 확인해야 한다. 1, 2일차 경기코스인 매홍손은 노면이 매우 미끄러워 전구간이 위험하다. 코너도 많아 이번 대회의 승패를 좌우 할 수 있는 구간이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저녁 7시쯤 경기복을 입고 대회를 알리는 퍼레이드와 기념촬영 후 복귀를 했다. 그리고 HQ에서 경기전날 로드맵과 변경된 내용을 통보받았다. 로드맵의 주유소까지 거리, 개수, 서비스포인트 등 주요내용을 숙지하고 로드맵홀더장치에 로드맵을 설치한다. 아침에는 시간이 촉박해 저녁에 미리 해놓는 것이 좋다. 

 

 

 

 

 

총 380킬로미터 구간의 매홍순 산길을 달렸다. 정말 미끄러운 코스의 연속이다. 코스를 이탈하거나, 넘어지는 선수가 많았다. 조심스러운 경기운영으로 첫날 3:26:24로 3위를 기록했다. 1위는 3:23:32초, 2위는 3:24:41초다. 참고로 2위를 기록한 선수가 2014년 이 대회의 챔피언이다. 

 

 

 

 

2일차 경기 코스도 첫날과 비슷해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특히 RS4구간은 첫날에 비해 정말 길었다. 앞서 가던 한명의 선수를 추월했는데 결과를 보니 2시간 33분 47초로 내가 선두였다. 2위는 2시간 37분 16초였다. 오늘부터 구간의 1위부터 3위까지 시상을 하는데 기분 좋게 첫 우승을 기록했다. 일본의 매거진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어제보다 오늘 성적이 좋은 비결을 물었다. 두 번이나 넘어졌고 잘 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페이스를 올리며 적응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어제 종합 1위를 기록해 첫 번째로 출발했다. 엔듀로에 비해 랠리는 첫 번째로 달리는 것이 부담이다. 정글에서 길을 찾아 선두로 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나와 함께 4명의 선수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3일차 순위 변동이 가장 많았다. 선두로 출발해서 달리다보니 로드맵이 맞지 않았다. 분명 주위 환경과 동일하지만 코스가 달랐다. 1시간가량을 헤매고 결국 자동차가 지나가면 코스를 확인했다. 1위는 3시간 37분 04초로 태국 선수가 차지했다. 4시간 41분 53초로 12위를 기록한 나와 1시간이 넘는 차이였다. 4위는 이케마치 선수다. 3일차 종합 기록에서 난 4위로 밀렸고, 꾸준한 페이스의 이케마치 선수가 1위로 올라선다. 그와 기록차이는 36분이였다. 이 밖에 한국 팀의 최중근 선수는 무릎부상, 정진호 선수는 갈비뼈 골절, 김명락 선수는 RS구간 체인트러블로 SS3 스테이지를 포기하면서 고전했다. 허문범 선수와 조정훈 선수는 페이스를 조절하며 무사히 완주했다. 4일차 코스도 미끄러운 구간이라 준비했던 타이어로 교체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실수 없이 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집중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이 생겼고 속도도 높아졌다. 선두권 유지를 위해서는 기록을 줄여야 했다. 그러나 페이스를 올리다 빅 크래쉬가 발생했다. 프론트디스크가 휘고 헤드라이트가 깨졌다. 다행히 코스로 복귀했지만 프론트브레이크를 포기하고 달려야 했다. 덕분에 기록이 좋지 못했다. RS이동구간사이 서비스 에어리어에서 디스크교환과 핸들정열, 루트맵 교체작업을 했다. 후반부는 실수 없이 완주했다. 그렇게 4일차는 7위를 기록했다. 

결과를 확인해보니 변수가 생겼다. 나는 3시간 41분 44초를 주행했고 최중근선수도 페이스를 올리면서 3시간 41분 52초를 기록했다. 이케마치 선수는 4시간 20분 37초를 기록하면서 순위에서 완전히 밀리는 상황이었다. 도강코스가 침수되면서 1시간 이상 시간이 허비되고 이후부터 코스를 차단해 우회시키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로써 4일차에 종합순위가 완전히 바뀌었다. 1위가 일본, 2위가 태국, 3위가 스웨덴이다. 

 

 

 

 

오늘은 SS 구간이 상당히 길다. 그러나 어제 브리핑시간에 폭우가 예상 돼 오전코스를 취소하고 오후코스만 타는 것으로 공지됐다. 실제 많은 비가 내렸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페이스조절과 바이크트러블에 대응력이 필요한 시기다. 1위~3위의 기록이 10분 미만이라 한 번의 실수로 순위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아쉽게도 5일차에 7위를 기록하며 종합순위 2위를 유지했다. 관록의 이케마치 선수와 태국 부동의 챔프 Manoch 선수가 우승후보로 거론됐다. 지난해 챔프인 케이스케 마에다 선수도 만만치 않았다. 선두그룹이 초반 전도와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아 변수가 속출했다. 4일차는 이케마치 선수가 종합 1위를 차지, 종합 2위를 기록한 나와의 시간차는 2분 47초였다. 4일과 5일 경기는 무엇보다 아쉬움이 많았다. 한국 팀 최중근 선수는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올리면서 탑5 진입이 가능해 보였다. 김명락 선수는 매일 1가지씩 트러블이 발생해 완주조차 어려웠다. 정진호 선수도 부상으로 인해 완주가 어려웠다. 조정훈 선수와 허문범 선수는 큰 부상 없이 완주했다.

 

 

 

마지막 경기 출발은 5일간의 종합 순위에 의해 결정한다고 공지가 올라왔다. 중간 그룹에서 최고 기록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선두그룹과의 기록단축에 유리한 상황이다. 나와 선두의 시간차는 약 2분. 선두는 길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빨리 달리기 불리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무리 없이 달리면 2위는 확정이다. 미끄럽고 난해한 코스는 없었다. 얼마나 완벽한 라이딩을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공도와 만나는 25킬로미터 지점에서 길을 잘못 판독해 결국 실수를 했다. 이케마치 선수는 44분 51초를 기록했다. RS 구간을 이동해 치앙마이 시내 퍼레이드를 하고 행사는 마무리됐다. 총 2,400킬로미터를 달렸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KTM 450EXC의 트러블은 없었다. 한 번의 전도가 4일차 저조한 기록의 원인이었다. 태국과 일본의 우승후보들 속에서 한국 팀은 선전했고 나는 개인종합 2위를 기록했다. 종합우승한 이케마치 선수는 경기운영능력이 좋았다. 태국현지챔프와 스웨덴의 다크호스는 마지막 날 3위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경기 1달 전부터 경기 참가기종인 450EXC로 비오는 치앙마이코스를 상상하며 적응훈련을 했던 덕이다. 실제 비가 오는 날 미끄러운 임도코스 1,500킬로미터를 주행하고 태국랠리에 참가했다. 이 밖에도 태국 2011치앙마이 2DAYS 엔듀로 경기에서 우승했던 경험을 비롯해, 태국 2012, 몽골2013, 2014 랠리참가를 통해 충분히 루트맵 판독법을 습득한 것도 구간우승을 할 수 있었던 요소였다고 생각된다. 

 

 

4일차 빅 크래쉬가 있어 프론트디스크가 초반에 휘었고, 오전 120킬로미터 가량을 프론트브레이크 없이 달려야 했기에 당시 기록이 가장 아쉽다. 다행히 서포터차량이 서비스 에어리어에 도착해 있어 프론트디스크를 교환했기 때문에 오후경기는 완주 할 수 있었다. 결국 랠리는 완벽한 머신과 루트맵판독과 같은 테크닉, 트러블튜닝을 해결할 서포터가 뒷받침돼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랠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정비 일을 하면서 트러블튜닝이 가능했고, 엔듀로＆모터크로스를 타면서 훈련이 됐고, 태국랠리와 몽골랠리를 통해 루트맵 판독법과 GPS사용법을 습득하게 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랠리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카르랠리를 위해 준비해 온 것이 아니라 준비를 하다 보니 다카르랠리를 생각하게 됐다. 

 

 

다카르랠리는 라이더의 꿈이다. 그리고 나에게 랠리는 이제 현실이다. 랠리 4번째 도전 만에 2위 기록. 이번 경기를 통해 한국의 실력을 보여준 것 같아 좋았다. 전체적인 한국선수에 대한 수준과 이미지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이 글이 랠리에 도전할 랠리스트에게 길잡이가 되길 바라며, 그들이 꼭 랠리에 도전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