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모토라드가 공개한 S1000R은 S1000RR과 이름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원래 슈퍼바이크로 태어난 S1000RR을 기본으로 높은 핸들을 장착한 버전이다. 그러면서 고속에 대응하는 앞 페어링 대신 헤드라이트 역할만 할 수 있는 비키니 카울을 장착한 것이 전부다. 얼핏 봐서는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 단순한 변화다. 하지만 이 작은 변화가 주는 라이딩의 세계는 꽤 많이 달라진다.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말을 모터사이클의 한 종류처럼 인식하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슈퍼스포츠’, ‘네이키드 바이크’, ‘스쿠터’처럼 원초적으로 모터사이클을 분류하는 기준이었던 구분자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금에서야 슈퍼바이크가 가진 고성능을 일반 도로에서도 편안한 라이딩 포지션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사실 스트리트 파이터라 불리는 형태의 바이크들이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 이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슈퍼바이크는 보기에도 멋지고 성능도 억대의 슈퍼카 못지않을 정도로 남다르지만, 이륜의 특성상 전도 사고 시 파손되는 부품이 참 많기도 하다. 충격을 받으면 가장 겉에 노출된 페어링들이 손상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부 부품들도 멀쩡할 리 없지만, 특히 아무리 작은 충격이 가해지더라도 슈퍼바이크에게 있어서 피부와 같은 페어링이 무사할 리 만무하다. 그리고 손상된 페어링을 매번 수리하거나 신품으로 교체하기 부담스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긁히고 깨어진 플라스틱 조각이 드러난 흉측한 몰골로 거리를 달리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서 손상된 페어링을 하나씩 떼고, 덩그러니 남은 헤드라이트 대신 손바닥 만한 비키니 카울을 씌워보니 나름대로 터프한 이미지가 살아나 분위기가 나쁘지 않더란 것이다. 그리고 전도로 휘어 밸런스를 잃은 세퍼레이트 핸들 대신 구하기 쉬운 모토크로스용 파이프 핸들을 끼우고 굴러다니던 사이드 미러를 핸들 바에 달았다. 자연히 라이딩 포지션은 편해졌고 운전하기도 수월해진데다 왠지 남들과 다른 독창성도 느껴졌다. 배기 파이프는 짧고 날카로운 스타일로 잘라냈고, 소음기가 짧아진 머플러는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이런 스타일은 4기통 일제 엔진과 맞물려 높은 파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스턴트 라이더들에게도 인기였다. 주로 영국 라이더들에게서 시작된 이런 문화는 일반인들에게 ‘훌리건 문화’로 인식됐다고 한다. 사실은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무리들의 독특한 개조 방식을 지칭해서 영국의 한 모터사이클 매거진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다. 아무튼 현재 우리가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독특한 스트리트 파이터 스타일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조금씩 완성되어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BMW가 내놓은 S1000R을 조명해 보면, 여러 의미로 ‘스트리트 파이터’의 원초적 의미에 가장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S1000RR의 첫 공개 시 많은 사람들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만들다 만 것 같다’던지, ‘사고 난 슈퍼바이크 같다’는 등 혹평 일색이다. 뭐든 그렇지만 뒷이야기를 알면 다르게 보인다. 주관적으로 평가하기 쉬운 디자인 완성도를 떠나 본래의 취지에 걸 맞는 뉴 모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른 메이커가 그동안 만들어온 같은 형태, 같은 성격의 모터사이클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각 브랜드가 해석한 스트리트 파이터의 매력을 하나씩 들춰보자.
가와사키 Z1000
가와사키는 원래 스탠다드 모터사이클로 불리던 네이키드 바이크 형태의 Z시리즈를 스포츠 네이키드 바이크로 재해석한 Z1000, Z750을 만들어왔다. 최근에는 Z800이 새로 등장하고 Z1000은 리터클래스 배기량을 넘어가면서 나란히 한 클래스 위의 출력을 넘보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신형 Z1000은 그간 이어온 사이버틱 디자인의 극치를 달린다.
맹수의 눈과 같은 헤드라이트는 기존보다 더욱 날카롭게 바뀌었고 타사 경쟁기종에 비해서도 디자인 완성도가 상당한 수준이다. 파워는 142마력을 가졌고 무게는 차량중량 기준 220킬로그램이다. 배기량은 1,043cc으로 병렬 4기통 엔진의 부드러운 필링과 함께 가와사키 특유의 기계음이 특징이다. 타 경쟁 모델대비 무거운 무게가 흠이긴 하지만 마치 로봇 애니메이션에서도 튀어나온 듯한 확실한 캐릭터 때문에라도 많은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KTM 1290 슈퍼 듀크 R
1,301cc V트윈 엔진을 가진 이 오렌지색의 터프한 바이크는 누구나 주목하게 만드는 강렬한 색채가 매력이다. 언뜻 디자인만 독특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내포된 성능은 더욱 혀를 차게 만든다. 무려 180마력을 자랑하며 무게는 건조중량 기준 189킬로그램에 그쳐 파워풀한 라이딩을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기존에 슈퍼듀크라는 이름을 쓰던 990 시리즈의 엔진과 비교하면 기계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룬 셈이다.
KTM은 이 바이크를 두고 '짐승'이라 일컬으며 거친 매력을 홍보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건 허풍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외신들이 테스트 라이딩하기로 '거칠지만 예측할 수 있는 움직임, 뛰어난 밸런스'를 언급하며 한 입 모아 칭찬하고 있다. 게다가 트랙션 컨트롤 등 전자 장비를 투입한 것은 거친 특성을 오너 나름대로 조련할 수 있게 만든 배려다. 2014년을 장식하는 가장 화끈한 바이크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프릴리아 투오노 V4 R
아프릴리아의 V4엔진을 얹은 투오노는 '천둥'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원래 V형 60도 2기통 엔진으로 유명했던 아프릴리아가 RSV4를 개발하면서 밸런스 높은 V4엔진을 투오노에 적용하게 된 것이다. 투오노 V4 R은 슈퍼바이크 RSV4의 스트리트 파이터 버전으로 보면 쉽다. 다른 스트리트 파이터와 비교해 조금 더 신경을 쓴 부분이라면 텐덤 시트를 조금 안락하게 손본 정도다. 사실은 그래봐야 슈퍼바이크보다 조금 낫다는 소리다.
엔진은 999cc V4 엔진이며 슈퍼바이크 RSV4의 엔진을 조금 디튠한 정도다. 최고출력을 낮추되 실용 토크를 쓸 수 있는 회전역을 낮추는 세팅은 여느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특징이다. 건조중량은 183킬로그램으로 매우 가벼운 수준이며 출력은 170마력으로 마력 대 중량비가 거의 1:1에 가깝다. 다만 현지에서도 판매가가 높게 설정되어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는 평이다. 국내에서는 물론 접근성 자체가 없는 현실이다.
트라이엄프 스피드 트리플
트라이엄프 하면 3기통 엔진을 떠올리듯 스피드 트리플도 1,050cc 3기통 엔진을 얹었다. 이 바이크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형태를 갖추기는 했지만 사실 원초적으로 슈퍼바이크를 개조한 버전은 아니다. 스피드 트리플 고유의 색채를 오랜 기간 가져왔으며 역으로 트라이엄프의 이미지를 대변하기도 한다. 곤충 이미지를 닮은 듀얼 헤드라이트가 그 독창성을 잘 드러낸다.
차량중량 214킬로그램에 135마력을 발휘하며 타 브랜드 스트리트 파이터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파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온 모델이며 정통성이 깊어 획기적인 스타일 변화를 할 가능성도 적다. 유사한 스타일로 미들 클래스의 스트리트 트리플이라는 모델이 있으며 3기통 특유의 엔진 필링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으로 어필되고 있다. 이 모델 역시 정식 수입사가 없는 관계로 우리나라에서 보기는 어렵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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