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모터사이클이 있다. 작은 배기량으로도 즐거운 라이딩 재미를 선사하는 스포츠바이크, 혹은 적당한 배기량으로 다양한 영역을 누빌 수 있는 스트리트바이크, 혹은 자동차에 비해도 작지 않은 넉넉한 배기량으로 여유 있게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크루저. 이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모터사이클이 있지만 ‘기왕이면 큰 것’을 선호하는 사람의 심리는 조금 더 가치를 지불하고서라도 넉넉한 배기량의 모터사이클을 찾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스포츠 라이딩을 즐기는 마니아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다. 작은 배기량을 가진 엔진을 품으면 자연스레 차체도 작아지고, 운동성능도 민첩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겉치레’에 치중한 삶을 살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화려함 혹은 큰 배기량, 큰 차체를 가진 모델에 눈이 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는 모터사이클 중 가장 큰 배기량을 가진 모터사이클을 모아봤다. 아래 소개되는 모터사이클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구입이 가능한 판매모델이다. 눈을 세계 시장으로 돌리면 더 많은 대배기량 모델이 추가될 수 있지만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기에 제외했다. 특히 ‘보스호스’나 ‘건버스’와 같은 커스텀 혹은 주문제작 생산 모델도 제외했다. 오로지 대량 양산되는 모델만 다뤘으니 찬찬히 살펴보며 맘에 쏙 드는 모델이 있다면 마음속의 위시리스트에 넣어보는 것도 좋겠다.
Victory – 1,731cc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식 크루저의 대명사가 할리데이비슨이라면, 현대적인 감각의 미국식 크루저를 꼽자면 빅토리를 떠올릴 수 있다. 빅토리 모터사이클에 실린 엔진은 'Freedom' 엔진이다. 이 엔진은 1,731cc 배기량을 자랑하며 세련되고 깔끔한 감각의 고동감을 무기로 한다.
저회전부터 충분한 토크를 내지만 무척 부드러우면서도 파워풀한 맛이 특징이다. 배기량 크기로만 봐도 세계적인 대배기량 크루저들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 '아메리칸 크루저'로는 오직 할리데이비슨만 기억하는 국내 라이더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며 젊은 감각의 크루저로써 호평을 받았다.
Suzuki M1800/C1800 – 1,783cc
스즈키는 일본제 모터사이클 브랜드로써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대부분 스포츠 성격을 가진 모터사이클이 많다. 특히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이나 슈퍼바이크가 명성을 떨쳐왔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스즈키만의 남자다운 크루저 '인트루더'를 언급하기도 한다.
마치 투구를 쓴 듯한 헤드마스크와 거대한 차체, 그리고 스즈키 특유의 엔진 직결감 등 색깔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크루저 형태인 원형 헤드라이트의 C버전과 비키니 카울을 덮은 M버전이 있으며 엔진은 1,783cc다. 수냉 2기통 엔진이며 일제 엔진답게 리드미컬한 고동감보다는 정형화되고 일정한 박자의 엔진음이 함께한다. 무엇보다도 박력있는 듀얼 머플러와 당당한 차체가 스즈키 크루저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이다.
Honda VTX1800 – 1,795cc
혼다는 모터사이클 기업 규모로는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한다. 이른 바 '빅 브라더'로도 불리는 혼다는 없는 라인업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모터사이클을 생산한다. 그렇다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평을 듣는 모델도 많다. 그런 혼다가 가장 고전했던 분야는 미국식 크루저다. 골드윙이라는 대륙횡단용 럭셔리 크루저가 있긴 하지만, 미국식 크루저가 가진 자유로움과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기는 여러 면에서 코드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혼다가 야심 차게 내놓은 모델이 바로 VTX1800이다.
크게 보면 전통적인 미국식 크루저와 유사하지만 디테일을 살펴보면 혼다 엔지니어링 특유의 섬세함이 잔뜩 묻어나 있다. 빈틈없이 도는 1,795cc 엔진은 '역시 혼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드럽고 매끄럽다. 초 대배기량이지만 부담 없이 다룰만한 유일한 엔진이다. 박력보다는 부드러움을 추구했으며 남성스럽다기보다는 여성성이 가미됐다. 기계적 성능도 신뢰가 높아 여러모로 가치가 충분하지만 여러 면에서 미국식 크루저 특유의 거친 감성을 자극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신차는 수입되지 않지만 신차와 같은 중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Harley-Davidson CVO - 1,802cc
할리데이비슨은 크루저로 따지면 타 메이커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별화된 정통성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식 크루저를 선택할 때 할리데이비슨 말고는 대안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오리지널'이미지가 깊다. 기계적 우수성을 떠나서 마케팅의 힘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전 세계적으로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는 그 어떤 모터사이클보다도 독보적인 색채를 가졌다.
그 중에서도 CVO 모델은 할리데이비슨이 자랑하는 값비싼 라인업이다. 트윈캠110 엔진은 110 큐빅인치 1,802cc 배기량을 자랑한다. 할리데이비슨 중에서도 가장 큰 배기량이며 무척 호화롭다. 커스터마이징된 것 같은 디테일도 타 모델대비 압도적이다. 할리데이비슨을 꿈의 바이크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CVO는 시선을 사로잡을 모델인 것이 분명하다.
Indian Chief – 1,811cc
인디언 모터사이클도 전통을 내세우면 할 말이 많다. 이들이 만든 크루저는 장르를 떠나 모터사이클의 원형에 가깝다. 모든 부분이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인디언 모터사이클 특유의 '구수한 멋'이 충분히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치프 시리즈는 인디언 향기가 가장 짙다. 길게 뒤로 뻗은 휀더의 조형미, 말 안장을 연상케 하는 시트와 거대한 보석 같은 물방울 모양의 헤드라이트가 눈에 띈다. 썬더 스트로크 111 모터로 불리는 엔진은 111 큐빅인치, 즉 1,811cc의 배기량이다. 하지만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면 숫자는 자연스레 잊히는 마초 감성에 젖게 된다.
Honda Goldwing – 1,832cc
골드윙은 이 리스트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이유가 있다. 유일한 6기통 엔진이기 때문이다. 수평대향 6기통엔진은 골드윙의 성격을 잘 설명해준다. 실크와 같이 부드럽고, 한없이 강인하며, 편안한 승차감을 동반한다. 좌석에 앉으면 오디오, MP3, 내비게이션, 열선으로 작동되는 다양한 편의장치들, 에어백 등 이게 진정한 모터사이클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회장님'대우를 받게 된다. 동승석도 마찬가지로 무척 호화롭다. ‘사모님’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유롭게 달릴 수 있지만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야성미를 드러내 꽤 높은 속도로 먼 거리를 달리기에도 좋다. 여러 면에서 대륙횡단 투어러라는 이름이 손색없다. 배기량은 실린더 6개를 합쳐 총 1,832cc다. 할리데이비슨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아저씨들의 로망이 되어 온 바로 그 모델이다. 부담스러운 차체와 무기를 가졌지만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날카로운 운동성을 뽐낸다. 자고로 교통체증이 없는 나라에 잘 어울리는 바이크다.
Yamaha XV1900 – 1,854cc
공랭 1,854cc 엔진을 가진 XV1900 로드라이너는 큰 배기량은 물론 길고 낮은 차체에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하기 충분하다. 주축이 되는 'LOW & LONG'콘셉트에 충실하면서도 보이는 면에 치중하지 않고 엔진 자체의 감성적인 면을 극도로 연출한 티가 난다. '할리보다 더 할리답다'고 표현할 정도로 공랭 빅 트윈 엔진의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다는 평을 들어왔다.
또 로드라이너는 체구가 큰 서양인에게 오히려 잘 어울릴 정도로 넉넉한 포지션을 자랑한다. 각 파츠의 품질감 또한 일제다운 치밀함을 가져 기계적 완성도도 높다. 무엇보다 차체 구성에 비해 거품 없는 가격도 매력적이다.
Kawasaki VN2000 – 2,053cc
유일하게 2,000cc를 넘는 모델로 이 리스트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모델은 일본제 크루저인 가와사키 VN2000이다. '발칸'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이 크루저의 계보는 전 세계에 퍼포먼스 크루저 혹은 일본식 크루저의 대명사로 인지할 만큼 존재감이 적지 않았다. 100마력이 넘는 성능을 뒷받침한 수냉 V트윈 엔진은 무려 2,053cc에 달한다.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최대배기량 모델만큼 거리에서 찾아보기도 쉽지 않지만, 그만큼 희소성이 높기 때문에 나쁠 것은 없다. 그 대신 보이는 면 외에 크루저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은 거의 찾기 힘든 것이 단점이다. 최대 배기량 모터사이클이라는 이름표와 즉각적으로 시원스레 달릴 수 있는 파워가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외에도 더 큰 배기량으로는 트라이엄프의 로켓 III라는 무시무시한 퍼포먼스 크루저가 있지만 국내 수입될 여지가 전혀 없기에 안타깝게도 생략했다. 참고로 로켓 III는 수랭 인라인 3기통 2,294cc 엔진을 가졌으며 출력은 150마력에 이를 정도로 고출력이다.
2,000cc 내외의 모터사이클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던 독자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동차 배기량은 점점 효율을 위해 배기량을 낮추는 마당에 중형 승용차 뺨치는 배기량을 가진 모터사이클이 무슨 사치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런 모터사이클을 일상 통근용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말 그대로 레저용이자 사치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배기량의 크기로 모터사이클의 가치, 혹은 그 모터사이클을 타는 운전자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아 수준의 논리를 가진 독자는 없으리라 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만 하는 것은, 타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기만족을 위한 레저 생활이라면 그것이 혹 억대 명품 모터사이클로 세계 일주를 하는 사치스러운 모습이라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가치를 섣불리 일반화해 자칭 ‘라이더’라 불리는 이들의 자아 추구를 놓고 삿대질 할 이유는 없다. 모두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넓은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볼 때, 더욱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스스로에게 올 인할 수 있지 않을까?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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