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특유의 즐거움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자동차와 다른 개방감, 온 몸을 사용해야 하는 조종하는 즐거움, 폭발적인 가속감이 선사하는 짜릿함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과거에는 그런 원초적인 즐거움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모터사이클을 접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안전 운전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전자장비가 양산형 모터사이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안전 운전을 도와주는 목적이 아니라 초를 다투는 슈퍼바이크 경주에서 조금이라도 랩 타임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장치들이 대부분이다. 트랙션 컨트롤, 윌리 컨트롤, 라이딩 모드 셀렉터, 퀵 쉬프터, 레이스 ABS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첨단 장비들이 고스란히 일반 도로에서 즐기는 양산형 모터사이클에도 적용되어 몸값을 불려놨다.
그런 장비들이 라이딩의 즐거움을 전부 빼앗아 간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도로에서 라이딩을 즐기다가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위험요소들에 모터사이클 스스로 알아서 대응해 주기 때문이다. 그럼 라이더는 달리는 일 자체만 고즈넉이 즐길 수 있게 된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젖은 낙엽들 위에서 스로틀을 힘차게 감아도 트랙션 컨트롤이 적절히 개입해서 미끄러지지 않게 가속해 주고, 파워가 넘치는 걸 세밀히 컨트롤 하지 못해도 앞바퀴가 들리는 일이 없도록 제어 해준다. 비가 오면 버튼을 눌러 레인 모드에 맞춰놓으면 안전하고, 심지어 매뉴얼 바이크라도 변속은 클러치 없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첨단 장비들이 아무렇지 않게 패키지로 적용된 모터사이클을 도로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스즈키는 그러한 현대 세상에서 모터사이클을 왜 타는지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내놓은 콘셉트 모델이 콤팩트 로드스터인 Recursion이다. 이 스포츠 바이크는 전통적인 모터사이클의 형태를 기본으로 디자인됐다. ‘레트로’가 떠오르는 복고풍 디자인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미래지향적인 요소가 가미됐다. 과거 유럽에서 유행했던 레이싱 머신을 연상케 하는 하프 카울링, 그리고 유선형의 연료탱크 라인과 시트를 감싸는 뒤 페어링의 라인이 마치 물방울 같은 타원형을 이루는 콘셉트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디자인 콘셉트 뿐 아니라 메커니즘은 더욱 아름답다. 대형 모터사이클의 파워풀한 주행성능과 미들 클래스의 다루기 쉬운 조종성을 양립하기 위한 대안으로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바로 인터쿨러 터보를 장착한 모터사이클 전용 엔진이다. 세계적인 다운사이징 트렌드는 모터사이클 시장보다 훨씬 큰 자동차 시장에서 먼저 시작됐다. 흐름에 따라서 작은 배기량과 터보 시스템을 결합한 패키징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된지 오래다. 이제는 모터사이클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됐다.
스즈키는 Recursion의 콤팩트한 차체에 새롭게 개발한 588cc 수랭 직렬 2기통 인터쿨러 터보 엔진을 얹었다. 모터사이클에 터보 엔진을 얹은 이 바이크는 비록 콘셉트 모델이지만 양산 가능성이 농후한 설정이다. 무엇보다 양산차 메이커로써 터보 엔진 모델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스즈키는 Recursion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도심에서는 경제적인 바이크로, 와인딩에서는 두터운 토크를 이용한 폭발적인 주행감을 실현하는 데 목표를 뒀다고 설명한다.
Recursion의 사전적 의미는 ‘회귀’ 혹은 ‘재귀’로 풀이된다. 크고 무거운 모터사이클은 다루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무게와 덩치를 줄여야만 했다는 이론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해법은 메인 부품인 엔진 사이즈를 줄이는 일. 배기량을 줄이는 대신 터보 인터쿨러 시스템을 접목해 파워는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스즈키는 이런 논리를 현실화 하는 과정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인 ‘달리는 즐거움'을 최고 가치로 세웠다고 밝혔다.
Recursion의 작은 엔진 덕분에 섀시 등 모든 부분이 자연스레 작고 가볍게 설계됐다. 차체 사이즈는 2,100x770x1,100mm으로 현재 출시되는 미들급 스포츠 바이크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한다. 터보 인터쿨러 시스템 덕에 최대출력은 100마력, 최대토크는 10.2kgm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파워가 4,500rpm 이하에서 거의 발휘된다는 점이다. 저회전부터 파워풀한 토크를 발휘하는 터보 인터쿨러 엔진의 강점이 가벼운 모터사이클과 맞물리게 된다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후련한 주행성을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료 효율 또한 같은 출력의 리터급 모터사이클에 비해 두 배 이상 개선됐다. 이로써 일반 도심에서는 무척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뻥 뚫린 와인딩에서는 폭발적인 토크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바람을 만든다’는 콘셉트로 그간 모터사이클과는 별 인연이 없던 터보 인터쿨러 시스템을 접목한 Recursion은, 배기가스를 순환하여 터빈을 고속 회전시킴으로써 압축된 공기를 엔진으로 전달해 배기량 이상의 고성능을 발휘한다. 또 배기가스의 재활용으로 연비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대기 환경에도 공헌하게 된다.
언급했다시피 자동차로는 다운사이징의 기본으로 이미 터보 엔진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차체 중량 200킬로그램 이하 수준으로 자동차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가벼운 차체를 가진 모터사이클은 모든 면에서 섬세한 조작이 요구되는 예민한 기계다. 모터사이클 입장에서 보면 훨씬 부드러운 엔진 맵핑이 철저히 계산되지 않으면 자칫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로 해석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기술력 발전으로 섬세하게 세팅된 퓨엘 인젝션과 더불어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이 그러한 부분을 커버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특히 자동차 사업으로는 유독 소형/경형 자동차를 집중적으로 만들어 온 스즈키의 풍부한 노하우가 모터사이클에도 완성도 높은 터보 엔진을 자연스레 적용할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계기반은 운전자가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중요 장비다. 아날로그식 타코미터를 중심으로 스피드 미터는 디지털 숫자로 표시되며 양쪽으로는 고화질 LED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화려하지 않은 구성이지만 필요한 정보만 집중해 둔 모습이 보기 좋다. 핸들 스위치는 더욱 진보된 방식을 썼다. 이른바 터치패드 핸들 스위치라고 불리는데, 주행 중에 손가락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라고 한다. 다양한 부가기능을 터치패드로 조작할 수 있는 반면, 시동 스위치와 같이 기계적으로 중요한 스위치는 아날로그 버튼으로 유지했다.
콘셉트 모델답게 화려하게 치장한 휠과 카본 파츠가 눈에 띄긴 하지만 양산모델에 그대로 적용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양산화시 이런 부분은 원가 절감의 1순위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파츠보다 오히려 눈에 단번에 들어오는 것은 Recursion의 유기적인 실루엣이다.
도쿄 모터쇼 당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는 특히 옆 라인의 실루엣 이미지를 띄워놓고 앞, 중간, 뒤 파트로 나누어 각각 별개의 타원을 그리며 미묘하게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지는 디자인을 강조했다. 터보 엔진을 사용한 로드스터로써 기계적인 성능이 부각될 만도 하지만, 스즈키는 그런 부분을 최대한 자제하고 인간에 가까운 부드럽고 유기적인 매력이 조명되도록 애썼다. 차갑고 건조한 기계 이미지를 최대한 배제하려 한 것이다.
‘콘셉트 모델은 말 그대로 콘셉트에 그칠 뿐’이라는 과거의 모터쇼와 달리, 최근의 국제 모터쇼에 등장한 콘셉트 모델은 메이커의 철학과 근미래를 표현함과 동시에 이듬 해 바로 양산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다. Recursion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스즈키 콘셉트 모델에 비하면 무척 현실적이다. 물론 그 중심이 되는 모터사이클용 터보 엔진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스즈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이 엔진의 다양한 쓰임새일 것이다. 스포츠 바이크에, 네이키드 바이크에, 그리고 소형 크루저에 다양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부연 설명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Recursion의 레트로 디자인은 사실 예시일 뿐이다. 터보 엔진 탑재 모터사이클의 양산이 확정되면 레트로 카테고리보다는 훨씬 시장성 높은 장르에 적용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 해도 모터사이클용 터보 엔진의 양산 출시는 상당한 이슈다. 오랜 시간 자리 잡아 비교적 위험부담이 적은 4기통 시장을 탈피해 MV 아구스타와 야마하가 3기통 틈새시장을 파고든 발단과 유사한 양상으로 다른 메이커 또한 앞 다투어 터보 엔진 모터사이클을 쏟아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도쿄 모터쇼에서 경쟁사인 가와사키는 슈퍼차저 엔진을 공개했다. 바야흐로 ‘효율’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엔진과 차체 사이즈를 줄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엄청나게 크다. 기민한 운동성이 특징인 모터사이클은 특히 그렇다. 엔진 다운사이징 트렌드의 선두주자인 자동차보다도 오히려 부가 효과가 클 수 있다.
선행자의 입장에 서게 된 스즈키는 단지 자부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확보한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갖출 필요가 있다. 250cc, 1,200cc, 스쿠터용 터보 엔진까지 하루라도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야말로 Recursion이 단지 예쁜 콘셉트 모델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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