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사키는 제트스키나 모터사이클 회사로 알려진 국내 사정과 달리 사실은 다양한 크기의 엔진과 비행기, 헬리콥터, 배를 만드는 회사로 원래 정식 명칭은 가와사키 중공업이다. 그 중 가와사키 모터사이클은 레저 파트 소속의 부가가치 사업인 셈이다.
알다시피 제트 엔진이 접목되는 비행기나 초대형 내연기관이 들어가는 선박 등을 자체 생산하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이동수단을 개발/제작하는 기업으로써는 매우 큰 규모를 가진 것이다. 언뜻 생각해봐도 엔진 달린 탈 것 중에 가장 작은 크기를 가진 모터사이클은 비행기나 배에 비하면 존재가치가 미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지 이동수단으로써 크기가 작다고 기술력이나 투자가 적게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작게 구현해야 하는 기계일수록 설계 및 제작이 복잡다단한 법이다. 작은 엔진으로 높은 출력을 끌어내야 하고, 가벼운 무게만큼 탑승자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 이동수단이 모터사이클이다.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닌 것이다.
그런 가와사키는 오랜 시간 모터사이클을 생산해 오면서 줄곧 이슈를 만들어 왔다. 디자인은 항상 미래지향적이어서 타 메이커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곤 했으며, 출력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역할도 매번 가와사키가 적잖은 영향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언론이나 대중들에게도 ‘트렌드 메이커’로 인식되며 매번 신 기종이 등장할 때 마다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예상했던 대로 얼마 전 일본에서 진행된 도쿄 모터쇼에서 가와사키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상당했다. 특히 부스 메인에 전시된 슈퍼차저 엔진이 그랬다. 양산형 슈퍼차저 엔진의 등장은 모터사이클 역사를 통틀어서도 충분한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가와사키의 엔진 개발 기술력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새로운 가와사키 슈퍼차저 엔진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아, 가와사키가 만들 줄 아는 엔진은 훨씬 더 많았지!’하며 무릎을 탁 친 것은 기자뿐 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엔진만 덜컥 공개된 상태이며 구체적으로 적용된 모터사이클이 없는 만큼 비쥬얼적인 충격은 크지 않았다. 이 엔진이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봤다면 몰랐을까, 아직 자세한 감흥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분명 아직은 가와사키만이 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인 것은 맞지만 사실 눈에 띄는 것은 따로 있었다.
화려한 가와사키 J 콘셉트가 그것이다. 모터사이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독특한 외형을 가진 이 콘셉트 모델은 광택 짙은 메탈릭 소재와 가와사키 그린을 섞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탈 것’이다.
가와사키는 J 콘셉트에 대해 ‘도심과 교외를 이동하는 개인 이동수단에 대한 가와사키만의 통찰력’이라고 시사하며 미래의 새로운 이동수단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기본적으로 휠은 3개로 기존의 유럽 메이커들이 내놓은 트라이크를 날렵하게 다듬은 듯하지만 사실은 특이한 점이 많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엔진이다.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 모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엔진이 위치할 자리에는 내연기관 대신 대용량 니켈 수소 전지가 들어가 있다. 마치 녹색 대형 건전지를 보는 듯한 외형의 이 배터리는 기가셀 타입으로, 충전시 고출력으로 오랜 주행 시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가와사키가 고안한 형태다. 전기 모터 특성상 공해 요소가 전혀 없는 장점은 두말할 나위 없고, 그 동안 한정된 주행거리가 큰 골칫거리였던 점을 해결하기 위해 가와사키도 많은 고민을 해왔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무엇보다도 가솔린과 같은 한정원료 다음 세대의 에너지원으로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는 추세는 오래 전부터 전망되어 왔고, 실제로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리드할 수 있는 시기는 사실상 지났지만, 이제 선점의 개념을 떠나 실제 양산 가능한 전기 모터 기반 모터사이클을 대중 앞에 내놓아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런 흐름에 시기 적절히 부합되는 것이 J 콘셉트다. 전기 모터 외에도 독특한 점은 또 있다. 두 개의 휠로 움직이는 앞 바퀴에 연결된 링크와 서스펜션, 그리고 스텝 위치를 전자동으로 조절해 라이딩 포지션을 시시때때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낮은 속도로 달리는 도심에서는 스탭과 핸들 포지션을 조절해 수직에 가깝게 일어선 자세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다. 또 평균 주행 속도가 높은 교외의 한적한 도로를 달릴 때에는 마치 스포츠 바이크를 타듯 적극적으로 공기 저항을 줄이는 포지션을 연출할 수 있다. 차체와 어우러진 낮은 자세는 주행풍에 대한 저항의 피로감을 줄이는 것은 물론 높은 일체감과 함께 화끈한 라이딩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J 콘셉트가 설렁설렁 타는 모터사이클이 아니라는 점은 고속에서의 주행풍을 컨트롤하는 뒷바퀴 위의 샤크 핀이 증명해 준다. 이미 언급했듯 비행기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보유한 가와사키는 유독 타 메이커에 비해 공력특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편이다. 그 사실은 이제껏 양산 판매해 온 다양한 종류의 가와사키 슈퍼바이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제는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나 모터사이클, 자전거 등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또한 결코 낮지 않다.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버스는 이미 지역관광이나 근거리용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는 일반인들의 반응도 좋다. 더욱이 전기 자전거는 일상 속에서 그보다도 파급력이 더 세다. 주부인 옆집 아주머니가 전기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마트에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스포츠 바이크라 하더라도 내연기관에 필적할만한 파워를 가졌다면 기존 모터사이클과의 이질감 등의 감성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한 소비자 또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전기 모터를 이용한 이동수단이 직접적인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어디서 어떻게 충전해야 하느냐’는 문제와 비싼 초기 구입비용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친환경 트렌드는 멈추지 않고 모든 신제품이 가져야 할 시장성의 중심 과제가 될 것이며, 전기 충전 문제 등 인프라 구축과 같은 주변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 전망은 충분히 밝다.
비록 J 콘셉트는 모터쇼를 풍성하게 하는 화려한 얼굴 마담 중 하나로 비춰졌을지 모르지만, 가와사키가 시사 하는 바는 크다. 무엇보다도 도전을 좋아하는 메이커이기 때문에 콘셉트 모델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현실화 될법한’ 새로운 모터사이클을 내놓는 것에 한 번 더 눈길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J 콘셉트는 모터쇼를 찾은 매체 관계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시선도 단번에 휘어잡을 만큼 매력적인 제품이었다. 주행 모습을 가상 이미지로 공개한 가와사키의 바람처럼 조만간 J 콘셉트와 같은 작품이 우리 주변의 도로에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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