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1년 동안 나온 자동차 가운데 최고를 뽑는 시상식들이 있다. 과거에는 국산차가 여기에 이름을 올릴 거란 상상도 못했지만, 어느새 각 부문 별 후보로 올라 쟁쟁한 브랜드들의 제품과 겨루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수상은 물론이고 그 중에서도 최고인 올해의 차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 시작했다.

지난해의 경우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 N을 주목했다. 아이오닉 5를 기반으로 앞뒤에 강력한 모터를 탑재해 최대 478kW(650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갖춘 건 물론이고, 레이스에 특화된 여러 기능들을 더해 효율을 중시하던 전기차 시장에 드라이빙의 재미를 보여주는 모델로 각광 받고 있다. 이렇게 레이스에 특화된 다양한 기능을 갖췄으니 다음 순서는 아이오닉 5N으로 본격적인 레이스를 진행할 차례다. 현대차는 올해 현대 N 페스티벌의 eN1 클래스에 투입할 아이오닉 5 N eN1 컵 카(이하 eN1 컵 카)의 이미지와 개발과정을 지난해 말 현대 N 페스티벌 시상식 현장에서 처음 공개한 바 있는데, 실제 차량을 지난 3월 29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처음 공개해 현장을 찾았다.

현대자동차 N브랜드매니지먼트실 박준우 상무

현대차 N브랜드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박준우 상무는 “저희가 N브랜드를 하는 이유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정말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타고 싶어하는 차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일하고 있다. N 브랜드는 상상과 용기를 통해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현대차에서 기술에 대한 선구적 역할을 하는 곳이 이곳 N브랜드이기 때문이다. RN22e와 N 비전 74를 만들 때도 55개 이상의 팀에서 많은 인원들이 합심해 한땀한땀 만들었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들을 현실로 옮기고, 그 현실을 고객들, 팬들이 탈 수 있는 차로 만들어냈다. 이것이 저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사명감을 갖고 이 업무를 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드디어 eN1 컵 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스 전용 차량인 만큼 불필요한 장비들을 제거하고 주행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비들을 대거 투입한 것이 특징으로, 외관에선 대형 리어 윙과 함께 더 커진 리어 펜더와 프런트 립, 단조 휠, FRP 후드 등 경량화와 함께 공력 성능을 높이는 장비들이 더해졌다.

실내는 모든 시트와 매트, 내장재를 모두 제거하고 롤케이지를 비롯해 버킷시트 등을 장착했는데, 이 때문에 차량 뒷좌석 쪽은 텅 비어있어 각종 차량 관련 장비들이 그대로 노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전기차의 특성을 고려해 전기차 전용 소화기와 질식소화포 등을 더해 사고에도 대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eN1 컵 카의 무게는 1980kg으로, 아이오닉 5 N 순정사양 대비 300kg의 무게를 덜어냈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량화 소재를 대거 투입해 무게를 더 줄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경기에 참여하는 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오닉 5 N의 가격은 기본모델 7,600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이 eN1 컵 카는 대략 1억 초중반 대의 가격이며, 일단 올해가 eN1 컵 카로 레이스를 치르는 첫 해인 만큼 제조사에서는 각종 차량 데이터를 수집하는 동시에 참가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리스 방식으로 차량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제품을 살펴봤으니 이제 성능을 직접 경험할 차례. 가장 먼저 드리프트 택시 주행을 위해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일반적인 아이오닉 5 N인가 했지만 이 모델은 지난 3월 굿우드 페스티벌에도 전시됐던 아이오닉 5 N 드리프트 스펙으로, 박준우 상무는 이 모델에 대해 “아이오닉 5 N 개발 과정에서 사용됐던 테스트 차량을 모아 부품들을 조합해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차량의 외관은 기존 아이오닉 5 N과 다를 바 없었지만, 실내에 롤케이지와 버킷시트, 유압식 핸드 브레이크가 설치된 것이 달랐다.

헬멧을 쓰고 차량에 올라 4점식 벨트를 힘겹게 채우고 나니 본격적인 드리프트 체험이 시작됐다. 강력한 650마력의 파워가 뒷바퀴로 전달되자 맹렬하게 휠스핀을 일으키며 차량 후미가 부드럽게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아내야 하는 입장에서 비가 오는 날씨가 야속하게 느껴졌으나, 그런 걱정이 필요없을 만큼 차 안팎이 온통 타이어 타는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찬다. 드라이버가 스티어링 휠을 돌리며 핸드 브레이크를 당길 때마다 어찌나 부드럽게 미끄러지는지 타이어 타는 냄새만 없다면 마치 눈길이나 빙판길 위에서 차를 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만큼 드리프트가 매끄러웠다. 예전 아이오닉 5 N을 처음 시승했을 때도 드리프트를 살짝 맛보긴 했으나 전문가의 솜씨로 직접 경험하니 차원이 다르다. 드리프트를 위한 특별한 구성 없이도 누가 운전하는지에 따라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아반떼 N

다음으로는 본격적인 eN1 컵 카 체험 전 아반떼 N과 아이오닉 5 N의 시승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아반떼 N은 익숙한 모습에서 뿜어지는 강력한 성능와 날렵한 움직임에 약간은 이질감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뿐, 금세 적응해 앞차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내연기관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배기음과 수시로 터지는 팝콘 사운드에 달리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단단한 서스펜션과 예민한 액셀러레이터의 반응에 좀 더 세심하게 조작해야 하지만 그것도 서킷을 달리는 재미 아니겠는가.

아이오닉 5 N

다음으로는 아이오닉 5 N의 차례다. 전기차인 만큼 확실히 앞서 탄 아반떼 N에 비교하면 한 차원 다른 가속성능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오닉 5 N이 재밌는 이유는 내연기관에서 느낄 수 있는 요소들, 배기음이나 변속 충격 같은 부분들까지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N 액티브 사운드 기능과 N e-시프트 기능인데, 사실 기록만을 위해서라면 끄는 것이 낫겠지만, 재미를 위해 달리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켜놓고 달리는 것을 추천한다. 본격적인 eN1 컵에서는 팀별로 다른 소리를 적용해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승으로 몸도 풀었으니 이제는 오늘의 주인공 eN1 컵 카를 탈 차례다. 본격적인 레이스 사양인 데다 슬릭 타이어까지 장착되어 오늘은 택시 드라이빙으로만 경험해보기로 하고 조수석에 올랐다. 롤 케이지와 버킷 시트가 몸을 꽉 죄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서킷에서, 그것도 선수가 운전하는 레이스 사양의 차를 타야 한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생각은 차가 코스에 진입한 직후부터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실제 레코드 라인에 가깝게 연석 끝부분을 밟아가며 달리는 통에 차가 쉴 새 없이 요동친다. 인제스피디움을 적잖이 달려봤다고 자부하지만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달려본 적은 없었다. 여기에 오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려 시승이 가능할 지 의문이었는데 오후가 되니 비가 그치고 노면까지 말라 레인타이어 대신 슬릭타이어로 교체하다보니 연석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주행이 펼쳐진다.

앞서 레이스에 필요 없는 모든 내장재들을 전부 덜어냈다고 했는데, 차가 가벼워지는 것만 생각했지 이렇게 시끄러워지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연기관이었다면 엔진 소리가 더 커서 묻힐 듯한데, 전기차라 e-사운드를 통해 인공음을 만들어내도 내연기관만큼은 크지 않아 차체가 요동치는 소리, 노면의 각종 이물질이 타이어에 밀려 차 하부에 부딪히는 소리 등 온갖 소리들이 고스란히 들려온다.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 운전자는 매 코너마다 빠르게 달리기 위해 집중하고 있고, 기자는 몸이 요동치는 걸 막기 위해 몸을 고정하느라 집중하게 된다.

아무리 선수의 운전이라고는 하지만 브레이크 포인트가 평소보다 훨씬 늦다는 느낌이다. 이 부분은 인제스피디움 메인 스트레이트를 지나 1번 코너에 진입하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는데, 100m 표지부터는 서서히 감속을 준비해야 할텐데 50m 표지판을 지난 이후에나 제동이 느껴진다. 다른 차였다면 코스를 이탈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 짧은 거리에서의 제동임에도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을만큼 속도가 확 줄어든다. 당연히 앞뒤 모두 업그레이드된 eN1 컵 카의 브레이크 사양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여기에 더해진 회생제동도 적잖은 몫을 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등에 적용된 회생제동 기능은 엔진 브레이크 정도의 감속을 보여주는 정도에 불과한데, 그보다 더 높은 0.6G에 달하는 강력한 회생제동이 더해지면서 훨씬 높은 제동력을 만들어내기에 가능한 일이다.

 

거칠게 차체가 요동치지만 불안함은 없다.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차체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4개의 타이어가 노면에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을 위해 당연히 서스펜션도 레이스에 맞는 업그레이드된 사양이 적용됐다. 재밌는 기능 중 하나는 에어잭 리프트로, 실제 경기에서 빠른 타이어 교체를 위해 차체 측면의 노즐에 공기주입기를 연결하면 차체 하부에서 나온 리프트가 차를 들어올려 그 자리에서 바로 타이어를 교체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오랫동안 원메이크 레이스를 진행하며 쌓은 노하우를 이렇게 적용하는 현대차의 센스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맹렬하게 달리는 eN1 컵 카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기본 프레임과 파워트레인이다. 레이스 전용 모델이지만 양산차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프레임과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는 것. 시판용 차량에도 이렇게 강력한 파워트레인을 적용한 덕분에 누구나 강력한 아이오닉 5 N의 파워를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안전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서킷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왼쪽부터 현대자동차 N브랜드 매니지먼트 모터스포츠 사업부 장지하 팀장, N브랜드매니지먼트 실장 박준우 상무, N브랜드&모터스포츠사업부장 틸 바텐베르크 상무

eN1 컵 카의 체험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니 확실히 몸은 피곤하지만 심장이 계속 두근거린다. 오래간만의 짜릿한 경험에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레이스 DNA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아이오닉 5 N eN1 컵 카가 어떤 느낌인지, 얼마나 강력한지 궁금하다면 현대 N 페스티벌 현장을 찾아 전기차로 펼쳐지는 색다른 레이스를 직접 보며 확인해볼 것. eN1 컵은 4월 27~28일 인제스피디움에서 공식 테스트를 거친 후 5월 11~12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총 5라운드의 경기가 펼쳐질 예정이며, 그 중 상반기 2회는 선수들의 차량 적응과 세팅을 고려해 1:1 토너먼트 방식으로, 나머지 3회는 스프린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전기차의 강력한 성능으로 펼쳐지는 레이스인 만큼 기존보다 더욱 짜릿한 경기가 될 것으로 예고된다. 레이스에 관심이 있고 전기차가 얼마나 잘 달릴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현대 N 페스티벌에서 펼쳐지는 eN1 컵을 꼭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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