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라는 브랜드에서 레이스 DNA를 빼놓을 수 없지만, 활약세가 두드러진건 지난해와 올해다.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최고봉인 모토GP 경기에서 2020년부터 제조사(컨스트럭터) 챔피언을 차지하기 시작해 2년 연속 챔피언을 달성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세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이를 박살내겠다는 듯이 두카티는 기세를 끌어올리며 2022년 3년 연속 제조사 타이틀을 차지함과 동시에 2007년 이후 무려 15년 만에 모토GP 월드 챔피언 타이틀과 팩토리팀 두카티 레노보팀의 팀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한 데 이어 지난 2023년에도 다시 한 번 라이더 타이틀과 팀 타이틀, 컨스트럭터 타이틀 3관왕을 쓸어담으며 2022년의 결과가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러한 두카티의 상승세는 위성팀의 숫자와 지난해 경기 결과로도 알 수 있는데, 전체 11개 팀 중 팩토리팀 6개를 뺀 나머지 5개의 위성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3개 팀에서 두카티 데스모세디치 GP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중 지난해 라이더 챔피언십에서 1, 2, 3위를 모두 두카티 라이더들이 휩쓸었으며, 5위권에서는 4명이, 10위권에서도 6명이 오르는 결과를 달성하며 모토GP를 두카티 천하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승세가 올해도 이어질지는 시즌 개막 후 경기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특별한 변수 없이 지난해의 분위기를 유지한다면 경쟁자들의 상위권 입상은 쉽지 않을 듯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22일 두카티의 팩토리팀인 두카티 레노보팀이 2024년 신형 모터사이클과 디자인, 팀 구성원을 발표했다. 면면을 살펴보며 올해 두카티가 모토GP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예상해보자.

데스모세디치 GP

두카티가 ‘붉은 짐승(The Red beast)’로 칭하는 데서 이 모토GP용 모터사이클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오로지 서킷에서의 주행과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만큼 두카티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총집약해놓은 것이 바로 이 데스모세디치 GP다. 레이스를 위해 만들어진 모델이지만 여기서 개발된 기술들은 양산 제품에도 적용되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최근 도입이 늘어난 전면 스포일러로, 전면 페어링 좌우로 장착된 2개의 날개를 통해 주행 중 추가적인 다운포스를 생성해 앞바퀴의 그립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는다.

탑재된 엔진은 1,000cc 수냉식 90° V4 방식으로, 데스모드로믹 밸브가 적용되어 250마력이 넘는 출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최고속도는 350km/h 이상을 낸다고 발표했는데, 실제 지난해 레이스 중 달성한 최고속도 기록은 6전 이탈리아GP 스프린트 경기에서 에네아 바티스티아니니 선수가 달성한 364.8km/h가 있다.

서스펜션은 카본 아우터 튜브가 적용된 올린즈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올린즈 조절식 리어 쇼크 업소버가 적용되며, 브레이크는 모두 브렘보제로, 앞에 카본 디스크와 4피스톤 캘리퍼를, 뒤에 스테인리스 디스크와 2피스톤 캘리퍼가 장착된다. 휠은 마르케지니 마그네슘 단조 휠이 적용되며, 타이어는 공식 공급업체인 미쉐린의 17인치 제품이 적용되는데, 노면 상황에 따라 슬릭, 인터미디어트, 레인 등 트레드가 다른 타이어가 제공되며, 슬릭의 경우 소프트와 미디엄, 하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레인은 소프트와 미디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코스를 구성하고 있는 코너의 숫자에 따라 좌우 대칭 타이어와 비대칭 타이어가 함께 제공된다. 무게가 얼마나 가벼우냐에 따라 가속이나 최고속에서 차이가 나는 만큼 경량화 역시 중요한 부분인데, 철저한 경량화를 통해 건조중량이 쿼터급 슈퍼스포츠보다도 가벼운 157kg에 불과하다.

#1 프란체스코 바냐이아

199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바냐이아는 미니모토를 시작으로 레이스계에 뛰어들었다. 2009년 고작 12살의 나이로 유럽 미니GP에서 챔피언을 차지한 그는 모토GP의 전설인 발렌티노 롯시가 설립한 레이스 팀이자 선수 양성 아카데미인 VR46 라이더 아카데미의 선수로 뽑혀 125cc 지역 대회 2위, 2011년 스페인 챔피언십 125cc 클래스 1위, 모토3 클래스 3위에 오르는 등 활약을 이어나갔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바냐이아가 다음으로 나아갈 곳은 세계무대였다. 2013년 모토3 월드 챔피언십 데뷔한 그는 2015년 경량 클래스 첫 포디엄을 달성한데 이어 프랑스 GP 3위 등으로 점차 입상 횟수를 늘려갔다. 그리고 2016년 커리어 첫 우승으로 기세를 끌어올리며 총 6회 입상(우승 2회)의 기록으로 모토3에서의 세 번째 시즌을 전체 4위로 마무리했다.

2017년에는 더욱 강력한 경쟁자들이 포진한 모토2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도 실력이 빛을 발해 첫 시즌에 무려 4회나 포디엄에 오르며 ‘올해의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 번 탄력받은 기세는 그대로 다음해까지 이어지며 2018년 8회 우승과 12회 입상으로 승격 2년만에 모토2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2019년 드디어 두카티의 위성팀인 프라막 레이싱팀에 영입되며 꿈의 무대인 모토GP에 입성하게 된다.

경쟁에 경쟁을 거쳐 월드 클래스 선수들만이 모인 모토GP인 만큼 입성 초반에는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럼에도 입성 첫해 호주 GP에서 4위를 기록했으며,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GP에서 2위로 모토GP 첫 포디엄에 오른다. 그의 실력을 눈여겨본 두카티는 2021년부터 그를 팩토리팀인 두카티 레노보팀 선수로 영입했고, 시즌 결과는 두카티의 안목이 괜찮았음을 입증했다. 첫 경기부터 폴 포지션을 차지하며 3위로 경기를 마친 바냐이아는 꾸준히 시상대에 오르며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나갔고, 아라곤GP에서 첫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후 두 번 더 우승하며 라이더 챔피언의 자리를 노르는 듯 했으나, 경기 중 충돌 사고로 인해 결국 2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챔피언의 꿈은 다음 해로 미뤄야만 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2022년 스페인GP를 시작으로 우승기록을 하나씩 쌓아나갔으며, 잠시 주춤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기록적인 역전으로 4회 연속 우승을 보태며 시즌 종료까지 딱 3경기 남은 시점에 드디어 챔피언십 선두에 오르며 우승의 꿈을 목전에 두게 됐다. 결국 말레이시아 GP에서 우승 기록을 하나 더 추가하고 발렌시아에서 안정적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2022년 드디어 월드 챔피언에 오르며 두카티에게는 15년만의 라이더 챔피언십을, 조국인 이탈리아에게도 1972년 자코모 아고스티니 이후 50년 만의 월드 타이틀을 안기게 된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 모터사이클을 타고 모토GP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초의 라이더라는 기록도 함께 세우게 됐다.

2년 연속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바냐이아인 만큼 2023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첫 경기부터 스프린트와 본경기 모두를 휩쓰는 저력을 보이며 2년 연속 챔피언십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그는 스프린트 레이스 우승 3회, 본경기 우승 4회 우승을 차지하며 목표를 무난하게 달성하는 듯했다. 그러나 경기 중 큰 사고가 발생하며 부상으로 시즌 종료를 맞이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냈지만, 다행히 타박상 정도로 그쳐 다음 경기부터 다시 참가해 3위를 달성하며 많은 이들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다만 강력한 경쟁자인 프라막 레이싱팀의 호르헤 마틴이 바짝 추격하며 경기 막판까지 우승자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점수차를 좁혔고, 결국 최종 라운드에서 시즌 7번째 우승과 함께 월드 챔피언을 달성했다.

#23 에네아 바스티아니니

1997년 이탈리아 출신의 바스티아니니는 처음 모터사이클에 탄 것이 고작 생후 3년 3개월째였는데, 첫 경기 때 33번을 달며 이를 기념했다고 한다. 역시 미니GP 챔피언십을 통해 레이스에 입문한 이후 다양한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3년 모토3 이탈리아 챔피언십 일부 레이스에 참가하는 동시에 레드불 루키컵에도 함께 참가해 2회 우승을 달성했다.

바스티아니니는 2021년 독립팀인 에스폰소라마 레이싱팀을 통해 드디어 모토GP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첫 시즌임에도 두 번이나 시상대에 오르며 데뷔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듬해 그레시니 레이싱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개막전 카타르 GP에서 우승하며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줬다. 그의 우승을 우연이 겹친 결과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프랑스 GP에서 다시 한 번 시상대 정상에 오르며 개막전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줬다. 이후에도 2회의 우승과 2회의 입상을 더 추가하며 고작 모토GP 입성 2년만에 시즌 3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달성하게 된다.

이런 활약 덕분에 2023년, 드디어 팩토리팀인 두카티 레노보팀에 바냐이아와 팀을 꾸려 달리게 됐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첫 스프린트 경기가 열린 포르투갈 경기에서 충돌사고로 인해 골절상을 입으며 다음 두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회복 기간을 거친 후 스페인 GP에서 레이스에 복귀했지만 회복은 예상보다 더뎠고, 결국 2번의 레이스를 더 건너뛴 후에야 다시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불운의 신은 아직 그에게 관심이 남았던 것일까, 경기 중 다시 한 번 다른 선수들과의 충돌에 얽히며 왼손과 발목에 부상을 입고 한 달의 강제 휴식기를 갖게 된다. 거의 시즌 대부분을 부상과 씨름해야 했던 그였지만, 시즌 막판 복귀에 성공한 그는 말레이시아 GP에서 우승하며 이기는 법을 아직 잊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2024 시즌엔 사고와 부상만 잘 피한다면 팀 메이트인 바냐이아와 함께 충분히 시즌 챔피언 후보로 꼽힐 자격이 충분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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