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램블(scramble)’이라는 단어에는 ‘뒤섞다’는 의미가 섞여있다. 흔히 우리가 먹는 ‘스크램블 에그’도 계란을 팬에 익히며 뒤섞어준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스크램블러’도 통신쪽에서는 메시지를 특정한 규칙으로 뒤섞는 변환기를 뜻한다. 모터사이클에서의 스크램블러도 뒤섞였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섞었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이 스크램블러는 1950년대 영국에서 유행한 장르 중 하나로, 영국의 에이스 카페에서 시작된 온로드 레이스인 ‘카페 레이서’로 만족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온로드 중심의 레이스에서 오프로드까지 영역을 넓혀 레이스를 펼친데서 유래한 것이다. 어드벤처는 제조사가 중심이 되어 개발된 장르라면, 스크램블러는 사용자가 중심이 되어 개발됐다는 차이가 있다.

유행이 점점 번지자 각 브랜드에서 스크램블러 모델을 속속 선보였으나, 유행이 꺼진 이후에는 하나 둘 단종되며 일부 커스텀 빌더들에 의해 가늘게 명맥이 이어지는 수준에 그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클래식 붐이 일기 시작하자 두카티가 가장 먼저 칼을 빼들었다. 이 스크램블러 장르를 하나의 이름으로 삼아 제품으로 내놓은 것. 그렇게 스크램블러가 현대에 다시 부활했고, 여러 브랜드에서 스크램블러를 하나 둘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타 브랜드의 스크램블러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 것과 달리, 두카티는 다양한 파생모델을 연이어 선보이며 10여 년에 걸쳐 전 세계 10만 대 판매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이 독특한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지난해 말 드디어 스크램블러의 첫 번째 세대교체를 발표했다. 드디어 국내에도 제품이 입고되어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스크램블러 특유의 주행 감각은 여전한지 시승차를 받아 직접 타보며 하나씩 살펴봤다.

두카티 스크램블러는 예전부터 로고에 ‘X’자를 많이 사용해왔다. 여러 복합적인 의미가 있을텐데, 우선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르는 ‘크로스(cross)’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기존의 전통이나 노선을 깨뜨린다는 의미에서도 ‘X’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신형에선 여러 의미를 담은 ‘X’를 차체 곳곳에 심어 이전 세대와 차별화를 꾀했다. 단순히 헤드라이트에 X 로고를 담은 정도가 아니라, X자를 이용해 헤드라이트를 4분할했는데, 이를 통해 헤드라이트는 물론이고 테두리의 원형 주간주행등까지 4개로 나눠져 어떤 모델과도 다른 느낌을 표현했다. 여기에 차체 측면에서도 제너레이터 커버나 클러치 커버에 ‘X’를 더하며 세대 교체를 보여준다.

사실 이 부분과 약간의 데칼을 제외하곤 이전 세대와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움을 보여주면서도 스크램블러의 특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두 가지 특징이 상충되며 디자이너들도 상당한 고민에 빠졌겠지만, 헤드라이트와 데칼로 변화를 준다는 것 정도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관에선 큰 변화를 주기 어려웠지만, 기능적으로는 풀체인지에 걸맞은 다양한 변화점들이 적용됐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계기판으로, 기존 LCD 방식의 원형 계기판은 5인치 풀컬러 TFT 디스플레이 외곽에 장식으로만 남았다. 풀컬러로 바뀐 만큼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높은 시인성으로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차량 기능과 관련된 세팅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여기에 전자식 스로틀 채용으로 주행모드를 설정할 수도 있고, 엔진 출력이나 트랙션 컨트를 등 세부 기능을 자신의 취향대로 설정할 수 있다.

이번 세대교체와 함께 스크램블러 시리즈는 아이콘, 풀스로틀, 나이트시프트 3종으로 구성됐다. 지난 기사를 통해 각 제품의 특징을 살펴봤는데, 본격 시승은 스크램블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아이콘 모델로 진행했다. 물론 다른 두 모델 역시 멋진 스타일을 뽐내는 모델이지만, 스크램블러라는 이름에 걸맞은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이콘인 만큼 이번 2세대 스크램블러를 대표하는 시승에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시동을 걸면 공랭엔진 특유의 배기음이 귀를 간지럽힌다. 수랭 엔진과는 다른, 올드 모터사이클에서 들을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보여주는 소리가 묘하게 추억에 빠지게 만든다. 본격적으로 주행을 시작하면 그 느낌이 더욱 배가되는데, 거친 진동감과 어우러진 배기음이 제대로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평소보다 조금 먼 시승코스를 잡아 남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클래식한 느낌을 보여주는 엔진이지만, 성능까지 클래식한건 아니다. 공랭 2기통의 데스모듀에 엔진은 최고출력 73마력/8,250rpm, 최대토크 65.2Nm/7,000rpm의 성능을 낸다. 수치적으론 그리 높지 않지만, 이것이 185kg(공차중량)의 가벼운 무게와 어우러지면 로드스터 못지 않은 경쾌한 주행을 보여준다. 물론 구조상 최고속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일반도로나 와인딩을 즐기는 라이더라면 차고 넘치는 정도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 한적한 도로에서 확인했을 땐 160km/h의 속도까진 확인했지만 그 이상은 주행풍 때문에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예전 서킷에서 경험했던 180km/h의 속도를 생각하면 이번 신형 역시 못지 않은 최고속도를 기대하게 된다.

특히 이번 신형에선 운동성의 상승도 주목할만 하다. 전체적으로 4kg의 무게를 덜어냈는데, 그 중 2.5kg은 엔진에서 덜어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좌로 우로 차체를 기울이는 과정이 정말 빨라져 어지간한 네이키드 모델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운동성능까지 갖추게 돼 스포티한 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라면 정말 재밌게 탈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짧은 코너들이 이어지는 강원도의 몇몇 고갯길에서 이 아이콘이 빛을 발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직선이나 와인딩에서 즐겁게 탈 수 있는 이유는 아이콘의 기본 포지션 자체가 워낙 편하기 때문이지만, 여기에 신형은 이 포지션이 더욱 편해졌다. 핸들바를 운전자쪽으로 당기고 높이를 낮춰 조작이 한결 수월해졌고, 시트는 전체적인 형상을 날렵하게 다듬고 유선형으로 재설계해 착좌감이 향상됐을 뿐 아니라 발이 땅에 더욱 잘 닿게 됐다. 키가 작은 라이더들은 이 부분 역시 모터사이클을 고를 때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데, 스크램블러는 795mm의 낮은 시트고를 갖고 있고 여기에 옵션으로 15mm를 높이고 낮추는 옵션 시트가 함께 발매되기 때문에 높이에 대해 부담갖지 않아도 된다.

서스펜션은 모두 KYB 제품으로, 전면에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뒷면에 프리로드 조절식 쇼크 업소버를 적용해 스포티한 주행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슈퍼스포츠의 극단적인 세팅이 아닌, 온/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르는 스크램블러의 특성에 맞춰 적당한 부드러움을 갖도록 세팅된 덕분에 노면에서의 자잘한 진동은 잘 걸러줘 승차감이 우수하다. 브레이크는 앞 330mm 싱글 디스크와 브렘보 4피스톤 캘리퍼, 뒤 245mm 싱글 디스크와 1피스톤 캘리퍼를 조합했는데, 배기량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한 스펙처럼 보이겠지만, 무게를 생각하면 그리 부족하지 않다. 실제 주행에서도 원하는 지점에 멈춰 세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제동력이 꾸준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번 시승이 첫 탑승이었음에도 원하는 만큼 속도를 줄이는 과정이 늘 해오던 것처럼 쉽고 자연스러웠다. 여기에 더해진 코너링 ABS는 직선에서의 급제동 뿐 아니라 커브길을 돌아나가는 상황에서의 갑작스런 제동 상황에서도 차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존재만으로 반가운 기능이다.

빨리 달리고 싶다면 슈퍼스포츠를, 편하게 달리고 싶다면 투어러나 크루저를 선택하면 되지만, 이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스크램블러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어렴풋이 느끼던 이유를 이번 시승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바로 스크램블러에서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기술의 발달로 진동을 억제하고 다듬어낸 배기음의 매력도 분명 존재하지만,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라이더를 열광하게 하는 건 다듬어지지 않은 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래식의 유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고, 스크램블러의 명맥이 이어지는 것이다. 스크램블러 중에서도 각각의 스타일과 매력에 따라 선택지가 갈리겠지만, 확실한 건 조금씩 다른 모습에서도 스크램블러만의 매력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의 취향에 맞춰 고르기만 하면 된다. 스크램블러의 세계로 들어온 당신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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