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술은 서로 가까워서는 안 되는 존재다. 자동차와 술이 남성들이 좋아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지만, 왜 그 둘이 너무 가까워져서는 안 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 전 세계의 수많은 모터스포츠 팬들은 마티니라는 술에 열광한다. 심지어 포르쉐가 작년에 공개한 918 스파이더 프로토타입의 테스트카가 보닛 중앙에 'MARTINI' 로고를 커다랗게 붙이고 트랙에 등장하기도 했다.



마티니(martini)는 1860년에서 1862년에 미국의 바텐더 제리 토머스가 만들어낸 칵테일이라고 전해지는 술의 이름이다. 마티니에는 베르무트진이라는 술이 들어가는데, 특히 이탈리아 ‘마티니(MARTINI)’사의 베르무트 진이 유명하다. 마티니는 운전과 관계된 한 가지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데 “Drinking and driving don’t mix." 말 그대로 술과 운전을 섞지 말라는 뜻이다. 



자동차와 술이 둘이 서로 가까워져서는 안 되는 존재고, 마티니가 술과 운전을 섞지 말라고 대놓고 얘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포르쉐와 마티니는 왜 이렇게 공식적인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포르쉐의 의류와 액세서리에서도 마티니의 로고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이 둘의 관계는 이미 무척이나 깊은 것으로 보이는데 서로 만나서는 안 될 이 둘은 대체 어떤 연결 고리로 이어진 것일까?



이 둘의 만남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포르쉐는 1962년까지 포뮬러카 레이스에서 활약해 왔지만, GT레이스가 회사의 이미지와 어울린다는 판단 하에 활동무대를 르망24시 내구레이스로 옮긴다.

당시 르망24시에서는 페라리와 포드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포르쉐는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에어로다이내믹스 디자인과 철저한 경량화, 무시무시한 파워의 엔진으로 무장한 917 레이싱카를 개발한다.



한편 마티니는 1968년부터 자동차 레이스를 후원하기 시작한다. 독일 호켄하임링에서 열린 작은 레이스를 후원한 것을 계기로, 1969년에는 두 대의 포르쉐 907 레이싱카로 이루어진 팀을 꾸려나가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마티니 레이싱’ 팀이다.



마티니 레이싱은 1970년대부터 포르쉐와 함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1년 르망 24시에서 마티니 레이싱 팀은 포르쉐 917 레이싱카를 투입한다. 포르쉐 917은 콤팩트한 보디에 5리터 12기통의 대형 엔진을 탑재한 강력한 레이싱카로 1위와 2위를 독차지하며 르망24시의 우승을 일궈 낸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마티니 레이싱 팀은 1973년 타르가 플로리오 우승, 1976년과 77년에는 르망24시에서 다시 우승하는 등 수많은 영광의 기록을 남겼다. 포르쉐와 마티니 레이싱 팀은 영광의 절정을 함께 맞이했다.



1980년대 들어 르망24시의 인기가 시들해지며 포르쉐는 레이스 참가 중단을 선언한다. 한편 마티니 레이싱은 1982년부터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 란치아와 함께 랠리 세계선수권대회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포르쉐와의 사이는 자연스레 멀어지는 듯 했다.



마티니 레이싱 팀은 란치아와 함께 수 차례 챔피언십 타이틀을 따내며 레이스 명문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또한 투어링카, 파워보트 등 다양한 분야의 레이스에서도 마티니 레이싱 특유의 컬러 스트라이프를 찾아볼 수 있었다.



포르쉐는 1995년 르망 복귀를 선언하고 웍스 팀으로 참가해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간 왕좌를 차지한다. 하지만 다시 짧은 영광을 뒤로한 채 바람처럼 홀연히 르망24시를 떠난다. 포르쉐와 마티니 레이싱이 함께하던 영광의 시절은 앞으로 영원히 전설로만 남게 될 것 같았다.



포르쉐가 작년 918 스파이더 프로토타입을 마티니 레이싱 팀 디자인으로 공개한 것은 918이 917의 계보를 잇는 하이퍼포먼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흰 바탕과 블루/레드 스트라이프의 마티니 레이싱 팀 컬러는 여전히 수많은 팬들에게 포르쉐의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포르쉐와 마티니 레이싱이 다시 손잡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2012년 7월, 포르쉐는 갑작스럽게 르망24시 레이스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2013년 르망24시의 최상위 클래스인 LMP1 레이싱카 개발을 끝마치고, 2014년의 레이스에 참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올해 50주년을 맞이하여 모터스포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 5월 4일, 마티니 레이싱 팀은 포르쉐 모빌1 슈퍼컵 원 메이크 레이스에서 911 GT3 컵 레이싱카로 트랙에 복귀할 것임을 발표했다.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외곽의 카탈루니아 서킷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WRC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는 베테랑 드라이버 세바스티앙 롭이 번외 참가로 운전대를 잡았고 11위로 완주했다. 



포르쉐와 마티니가 다시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전설의 부활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한 가지다. 포르쉐와 마티니가 함께 팀을 만들어 르망24시로 복귀하기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메이커와 스폰서의 이해관계와 팀의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노선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만약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수많은 포르쉐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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