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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하 CSC에서 만나는 특별한 모델, 야마하 최초의 모터사이클 YA-1
  • 라이드매거진 편집부
  • 승인 2021.04.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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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하 YA-1

요즘 대전은 ‘재미없는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라이더들한테는 이제 해당없는 이야기다. 대전 외곽으로 조금만 달려나가면 멋진 모터사이클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 야마하 중부지원센터(Central Service Center, CSC)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 전시장에는 야마하가 현재 판매 중인 모터사이클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내에 판매됐던 야마하의 주요 모델들도 전시되어 있다. 2층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유일하게 무대에 올려놓은 모델을 볼 수 있는데, 야마하의 시작을 알린 1호 모터사이클, ‘고추잠자리’ YA-1이다. 이 특별한 모터사이클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보자.

 

야마하 모터사이클의 태동

당시 사장이었던 겐이치 카와카미. 그의 결단이 지금의 야마하 모터사이클을 만들었다.

야마하는 원래 악기를 전문으로 생산하던 업체였다. 그래서 지금도 로고에 소리굽쇠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기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당시 사장인 겐이치 카와카미는 일본 내에서 모터사이클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유럽을 방문해 시장을 조사한 뒤 모터사이클로 사업을 확장할 것을 결정했다.

문제는 시장에는 이미 수많은 경쟁자들이 먼저 자리하고 있는 레드오션이라는 것. 1950년대 당시 일본 내에서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던 곳이 최대 204개까지 늘어나기도 했을 정도니 얼마나 치열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이런 상황을 직원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내부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수요가 폭증하기 어려운 악기 산업은 그렇게 전망이 좋은 산업은 아니”라고 지적, 모터사이클 생산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DKW사의 RT125. DKW사는 아우토 유니온 결성 후 지금의 아우디가 된다.

우선 대여섯 개 정도의 엔진 시제품 생산 후 그중 하나를 골라 본격적인 생산에 나선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유럽에서 생산되던 모터사이클 중 하나를 골라 차종을 구체화하기로 결정했고, 그 중 독일 DKW사의 2스트로크 125cc 차량인 RT125를 기반으로 개발을 시작한다. 이 DKW사는 1932년 아우토 유니온(Auto Union)을 결성하고 4개의 원이 이어진 상징을 사용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맞다. 바로 현 아우디의 조상이 바로 DKW다. 야마하가 선택한 RT125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복제가 이루어졌던 명차로 꼽히는 모델이다.

야마하의 기반이 악기에 있기에 로고에 소리굽쇠 로고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방향을 잡았지만, 그렇다고 신제품 개발이 수월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피아노에도 금속과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이 사용되지만, 모터사이클에 요구되는 것과는 결이 달랐던 것. 피아노 프레임을 만드는 주조 기술로 첫 번째 실린더를 만들었지만 ‘주전자’라고 놀림 받을 정도로 평이 좋지 않았고, 주조에 모래를 사용해 표면을 매끄럽게 가공하는 과정이 추가돼야 했다.

킥스타터와 변속레버를 하나의 축으로 묶는 등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RT125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만들어냈는데, 단순히 베끼기만 한 것이 아닌, 나름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용해 편의성을 끌어올렸다. 예를 들어 3단 변속기는 4단으로 늘리고, 변속 페달과 킥 페달을 같은 축으로 사용하는 디자인을 채택했으며, 변속 기어 위치와 관계없이 클러치만 분리하면 시동을 걸 수 있는 일본 최초의 방식을 채택한 것 등이다.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야마하 최초의 모터사이클이 탄생하게 된다.

검정색 일색이던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갈색과 크림색이 조화를 이룬 YA-1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모터사이클의 색상은 검정색이 대부분이었는데, 야마하는 도쿄예술대학 디자인과의 도움을 받아 갈색과 크림색 2종류를 사용한 눈에 띄는 색상을 선택했다. 여기에 킥 페달을 한 번만 밟아도 단번에 시동이 걸리는 우수한 시동성과 날카로운 가속성, 민첩한 핸들링을 갖춰 ‘고추잠자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야마하의 첫 모터사이클 YA-1과 개발에 참여한 직원들.

모터사이클 생산을 밀어붙인 가와카미 사장은 현장에서 제품 생산을 진두지휘한 것은 물론이고, 직접 엔진을 조립하고 주행 테스트에 참여했다. 이뿐만 아니라 1950년대 제품 중 이례적으로 1만 km에 달하는 주행 내구성 테스트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새로 시작하는 모터사이클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1955년 2월 11일, 공랭식 2스트로크 125cc 엔진을 탑재한 야마하 1호 모터사이클 ‘YA-1’이 완성되어 시장에 출하되기 시작한다.

 

고추잠자리, 날다

YA-1이 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 야마하가 당시로는 후발주자여서 기존 제조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던 판매점과의 협상이 쉽지 않았다. 여기에 경쟁모델 대비 높은 가격도 발목을 잡는 요소였다. 당시 125cc 모터사이클의 평균 가격은 11~12만 엔 정도였는데, YA-1의 가격은 13만 8000엔. 당시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의 첫 월급 평균이 1만 엔 정도였으니 지금으로 치면 모터사이클 구입에만 2,000만 원 이상을 줘야 하는 셈이다. 아무리 품질이 좋고 성능이 뛰어나도 가격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야마하는 색상과 디자인, 우수한 시동성, 다루기 쉬운 편의성 등을 내세워 시장에 어필하기 시작했고, 점차 생산이 안정권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1955년 7월 1일, 모터사이클 제조 부문을 악기 제조사이던 모기업에서 독립시켜 ‘야마하 발동기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에 위치한 본사에서 150명의 직원들이 목조 단층 공장 2동에서 월 200대 생산을 목표로 삼아 야마하 모터사이클의 본격 시작을 알렸다.

첫 생산을 시작한 지 3개월째인 1955년 5월, 야마하는 제품의 성능을 더욱 확실히 알릴 수 있는 방안을 궁리했다. 답은 레이스였다. 다른 브랜드의 제품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성능과 품질을 입증받아 시장에서 더욱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 당시의 레이스는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선보이기 위한 ‘기술 경연’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각 브랜드가 사활을 걸고 참가하고 있었다.

사운을 걸고 출전한 첫 레이스에서 야마하는 무려 7대의 YA-1이 10위권 내에 입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야마하의 첫 도전 무대는 1955년 7월 10일에 개최된 제3회 후지산 등반 경주였다. 당시 모터사이클 업계의 큰 이벤트 중 하나였던 이 레이스에서 전년도까지는 혼다가 1위 자리를 휩쓸고 있는 상황이었다. 참가를 결정한 상황에서 레이스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여.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우승이 반드시 필요했고, 야마하는 사운을 걸고 레이스 준비를 시작한다.

신형 머플러 투입으로 마력을 높여 출전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출전 클래스는 125cc 양산차 부문으로, 레이스를 위한 어떤 개조도 허용되지 않는 분야였다. 야마하는 이를 위해 엔진 출력을 높이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이었는데, 의외의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도착했다. 바로 YA-1의 베이스가 된 DKW사에서 공급한 신형 머플러였다. 지금이야 배기 시스템의 수정만으로도 출력이 향상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경험이 부족했던지라 야마하 관계자들은 성능이 향상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수일간 밤새 이어진 테스트와 개량 끝에 5대의 예비를 포함, 총 16대의 엔진을 레이스 현지로 보냈으며, 각 대리점의 협력을 받아 총 12명의 라이더를 모집할 수 있었다.

레이스 코스는 후지산을 오르는 총 24.2km 거리로, 고도차가 1400m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경기였다. 야마하가 참전한 125cc 양산차 클래스는 16개 브랜드에서 총 49대의 모터사이클이 출전했다. 시간 기록으로 순위를 겨루는 타임 트라이얼 방식으로 진행된 레이스에서 YA-1을 탄 노보루 히요시가 29분 07초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1위부터 10위까지 총 7대의 YA-1이 순위표에 이름을 올렸다. 고성능의 엔진과 4단 변속기, 뛰어난 조종 안정성을 통해 이끌어낸 성과였다.

단 2개월만에 엔진 출력을 2배로 끌어올리는데 성공, 이어진 레이스에서도 상위권을 휩쓸었다.

기세가 오른 야마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제 1회 아사마 고원 레이스에도 참가한다. 카와카미 사장은 YA-1의 성능을 2배로 끌어올릴 것을 주문했다. 개발자들은 트롬본의 공명 원리를 배기 시스템에 적용, 배기 챔버 크기를 바꿔 성능을 끌어올렸다. 또한 유체 역학 원리를 통해 실린더 포트의 기체 흐름이 원활하면 마력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 이를 설계에 반영해 5마력이었던 엔진의 출력을 단 2개월만에 10마력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시마 고원 레이스에서도 YA-1은 상위를 독점하는데 성공한다.

야마하와 레이스는 불가분의 관계다. 야마하를 대표하는 레이서 발렌티노 롯시.

야마하는 레이스 우승때마다 본사가 위치한 하마마츠를 비롯해 도쿄, 오사카, 고베 등 주요 도시에서 우승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기록 영화를 만들어 각 대리점에 배포하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야마하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 1955년 2,272대 생산에서 1956년 8,743대, 1957년에는 15,811대로 크게 증가했다. 야마하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레이스에서의 성공은 자사 기술력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도 레이스를 통한 브랜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야마하의 시작을 알린 이 전설의 모터사이클 YA-1, 아쉽게도 실제 구동까지 가능한 모델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YA-1을 실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치 않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겠지만 아직 대중에게 열려있는 공간은 아니다. 곧 있을 야마하 중부지원센터의 그랜드 오픈을 기대해보자. 역사적인 모터사이클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제원표

야마하 YA-1

가격(출시 당시) 138,000엔
전장×전폭×전고 1980×660×925(mm)
휠베이스 1290mm
엔진형식 공랭 2스트로크 단기통 123cc
보어×스트로크 52×58(mm)
압축비 6:1
최고출력 5.6마력/5,000rpm
최대토크 0.96kg‧m/3,300rpm
변속기 4단 수동
최고속도 76km/h
연료탱크 9.5L
무게 94kg
타이어 (F) 2.75-19-2P (R) 2.75-19-4P
브레이크 (F)(R) 드럼 브레이크
서스펜션 (F)(R) 코일 스프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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