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모터사이클의 판도는 어드벤처와 레트로라는 두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어드벤처 바이크와 감성을 자극하는 복고풍의 모터사이클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가장 뜨거운 카테고리로 등극했다. 

돌연 찾아온 레트로 붐에 모터사이클 업계도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라이딩 의류 브랜드는 너도나도 클래식한 라인업을 만들기 시작했고 모터사이클 제조사도 레트로 바이크의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야마하의 행보는 단연 돋보였다. 70년대 기종의 복각판이라 할 수 있는 SR400으로 합류하는 한편, XSR700과 XSR900을 통해 다른 대처 방법을 보여주며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XSR의 성공 방식은 유행에 편승하기보다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었다. XSR은 현대적인 네이키드 바이크인 MT-07, MT-09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고전적인 요소를 불어넣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현대적인 기종에 정 반대의 느낌을 주는 클래식한 포인트를 자연스럽게 녹여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전적인 요소가 과하면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되기 마련이고, 반대로 고전적인 요소가 적다면 레트로 바이크의 느낌을 살리기 힘들다. 

특히나 XSR은 엔진과 차대를 MT시리즈와 공유하기 때문에 고전적인 요소를 살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칫하면 양복에 슬리퍼를 신은 것 같은 어색한 모양새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SR은 두 가지 이미지의 비율을 절묘하게 조절해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또한 MT시리즈만의 스포티함과 첨단 기술력을 고스란히 남겨놓아 레트로 바이크에서는 볼 수 없는 주행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XSR은 경쟁자와 차별화된 방식으로 레트로 붐에 맞섰고 네오 레트로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XSR 형제 가운데서도 국내에서도 발매돼 성공 가도를 걷고 있는 XSR900은 특히나 이색적인 모델이다. MT-09의 엔진과 차대를 사용하고 있지만 시트와 연료탱크, 헤드라이트에 큰 변화를 주며 기존과 다른 실루엣을 연출해냈다. 또한 고전적인 포인트와 알루미늄 파츠를 곳곳에 배치해 레트로 바이크의 느낌을 내고 있다. 비록 야마하의 네이키드 바이크 중에서 가장 날렵한 이미지를 자랑하는 MT-09를 베이스로 했지만 외형은 턱시도를 입은 듯 고전적이고 시크하다.

스포츠 네이키드 바이크에 고전적인 이미지를 양립시킬 수 있던 것은 디테일과 아낌없이 드러내는 미학에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연료탱크 쪽이다. 보통 모터사이클이 연료탱크 브라켓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XSR900은 MT-09의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상 연료탱크 브라켓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조잡해보일 수 있는 부분을 억지로 숨기기보다는 과감히 드러내고 퓨즈박스로 사용하는 동시에 검정색 알루미늄으로 장식해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연료탱크는 실루엣과 모터사이클의 인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부분이다. 고전미에 치중하면 연료 용량과 라이더와의 일체감과 같은 성능적인 면을 잃기 쉽다. 반대로 편의성에 너무 투자하게 된다면 레트로 바이크의 정체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네오 레트로를 지향하는 XSR900의 연료탱크는 디자이너가 고민하고 타협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클래식 바이크라고 한다면 땅콩 형태가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XSR900은 엄연히 ‘네오’레트로 바이크다. 연료탱크의 전면부는 둥그스름하고 부풀려진 모습으로 여타 레트로 바이크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측면과 운전자 쪽에서는 현대적인 느낌을 살렸다. 자칫 고전적인 느낌을 잃을 수도 있는 도박이지만 측면은 다소 평평하게 가다듬어 놓았고, 연료탱크의 운전자 쪽은 과감하게 파놓았다. 이 것은 니그립을 위한 것인 동시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연료탱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빛의 복잡한 반사를 유도해 묵직하고 볼륨감있게 보이기 위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연료탱크의 뒤로는 클래식 바이크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의 시트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인 건파이터 스타일의 시트보다 높낮이를 줄이고 완만한 곡선 라인으로 깎아놓은 모습이다. 엉덩이가 닿는 부위는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이 적용된 반면에 측면과 동승자석 등 눈에 띄는 나머지 부위는 스웨이드를 사용한 덕분에 제법 클래식한 분위기가 난다.

헤드라이트는 전통적인 원형 헤드라이트의 형태를 따르면서도 길게 만들어 식상한 이미지를 탈피하는 동시에 커다란 알루미늄 헤드라이트 스테이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띄게 배치해 매력 포인트로 만들었다. 알루미늄을 이용한 포인트는 헤드라이트만으로 그치지 않고 라디에이터 커버와 펜더 스테이, 계기반 스테이, 사이드 패널 등 곳곳에 존재한다. 

네오 레트로의 콘셉트는 테일 라이트와 계기반에서도 묻어나온다. 원형 테일 라이트는 시트 뒤의 리어 펜더에서 올라오는 형태로 클래식 바이크에서 자주 보이는 형태다.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LED 전구가 내장되어 있어 시동을 켜고 작동하는 순간 180도 다른 모습이 된다.

마찬가지로 계기반도 시동을 켜기 전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원형타입이지만 LCD 디지털 타입으로 되어 있어 네오 레트로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크기는 작지만 성능은 무시할 수 없다. 타코미터, 속도계, 온도, 오도미터와 같이 기본적인 것은 기본이고 TCS, D-MODE, 에코모드 표시, 평균 연비까지 표시가 된다. 경고등까지 원형으로 둘러서 배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레트로와 클래식의 의미는 엄연히 다르다. ‘네오 레트로’를 지향하는 XSR900에게 주행성능까지 클래식할 필요는 절대 없다. 클래식한 상단부에서 시선을 밑으로 내리면 보이는 엔진과 프레임은 MT-09와 동일하다. 무겁고 단단한 클래식 바이크의 프레임과는 형식과 재질부터 다르다. 스포티하고 날렵한 움직임에 적합한 경량 알루미늄 프레임은 다이아몬드 형식으로 제작돼 마치 스포츠 모터사이클과 비슷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독특한 필링을 보여주는 3기통 엔진은 높은 RPM에 최적화되어 있어 스포티한 모습을 보여준다. 엔진의 출력은 115마력 토크는 8.9kg-m, 847cc의 엔진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수준이다. 

출력을 뒷받침해줄 장비는 ABS, TCS와 3가지 단계로 파워를 조절할 수 있는 D-MODE가 내장되어 있다. 또한 CP3 엔진의 높은 출력과 RPM 영역대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강한 백토크를 제어해주기 위한 어시스트&슬리퍼 클러치가 채용됐다. 스펙에서 볼 수 있듯 XSR900은 기존 레트로 바이크와 전혀 다른 노선을 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트로 바이크의 여유있고 감성적인 라이딩 성향과는 거리가 있다. 클래식한 모터사이클에서 스포츠 바이크 수준의 주행성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XSR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와 고전의 절묘한 조합의 결과로 XSR900은 디자인 평론가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네오 레트로 콘셉트에 부응하는 성능과 디자인, 디테일에 힘입어 작년 한 해 동안 Auto Color Award 특별상, Good Design Award에서 ‘BEST100‘, JIDA Design Museum Selection에 선정되었다. 2017년에는 Red Dot Award에서 ‘Best of Best’를 수상하고, iF Design Award에서도 입상해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 중 2곳의 수상경력을 가지게 되었고, 종합적으로 5관왕에 올랐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쉬울 리는 없다. 하지만 야마하는 현대적인 성능을 갖췄지만 유행 타지 않는 클래식한 모터사이클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이 전략은 효과적이었고 네오 레트로라고 하는 새 카테고리를 등장시켰다. 이제는 다른 브랜드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모델이 속속 등장하면서 또 다른 격전지가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XSR의 성공 비결과 레트로 바이크의 미래를 지켜보자. 네오 레트로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고 XSR은 이 분야의 선구자로서 앞으로도 많은 구경거리를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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