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것'을 디자인하는 인간의 상상력은 어쩌면 거의 정점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자동차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사실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른 차가 정확히 어떤 기종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마 그 차는 차체가 무척 납작하고 각이 졌거나 혹은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 되었을 것이다. 미래에는 분명 지금보다 더 빠른 차가 등장하겠지만, 디자인만큼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쨋거나 좀 성급한 결론을 내리자면, '빠른 차는 빠르게 생겼다'.

자동차와 에어로다이내믹스
요즘 나오는 ‘빠른 차’들의 생김새를 이야기하기 전, 잠깐 항공기 디자인을 볼 필요가 있다.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지만, 같은 엔진을 싣더라도 공기저항이 적은 차가 더 빠르다. 때문에 슈퍼카에는 항공기의 에어로다이내믹스(공기역학)가 적용될 수밖에 없으며, 필연적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카는 당시의 최첨단 항공기와 닮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처음에는 차의 장식을 위해 비행기를 닮은 날개를 달았지만, 차의 성능이 고성능화 되면서 점차 실질적인 공기저항을 줄이는 디자인으로 바뀌어가게 되며, 현대의 슈퍼카는 차체 위를 흐르는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여 운동성능을 높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항공기가 아직 둥글둥글하던 시절인 1940년대 이전에는 자동차도 둥글둥글했다. 그러나 프로펠러에서 제트엔진으로 바뀌면서 항공기 디자인은 점차 선이 단순하고 날카로워지는데, 특히 1970년대는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이 부각되던 시절이었고, 특히 초음속 항공기의 외형이 슈퍼카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실 '초음속 스타일'의 유행과 상관없이 쐐기처럼 납작하고 날카로운 형태의 차체는 고속주행에 유리한 부분이 많다. 주행중 마주치는 공기의 벽을 가르는데 유리하며, 차체의 윗면으로 공기를 부드럽게 흐르게 해 공기저항을 줄이면서 안정감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를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삼각형을 이루는 형태가 되는데 이를 웨지(wedgy : 쐐기) 디자인이라고 한다. 웨지 디자인을 설명하는 데는 그리 많은 이야기가 필요 없다.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웨지 디자인의 시작

<쿤타치 LP500 프로토타입>


<쿤타치 LP400>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람보르기니 ‘쿤타치’ LP500 프로토타입에는 446마력의 V12 4,971㏄ 미드십 엔진이 탑재되어 시속 300km라는 스피드를 자랑했다. 그러나 이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던 쐐기모양의 디자인이다. 쿤타치의 디자인은 누치오 베르토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수석 디자이너를 맡았던 마르첼로 간디니(간디니는 람보르기니 미우라의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의 작품인데, 날카롭고 강렬한 실루엣으로 이후 나온 모든 슈퍼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쿤타치 LP500은 LP400이라는 이름의 양산 모델로 출시되면서, 보다 직선이 강조된 남성적인 실루엣으로 다듬어진다. 보통 람보르기니 쿤타치라고 하면 LP400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이를 자동차 웨지 디자인이 대중적으로 인정받으며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웨지 디자인의 진화

<디아블로>
 

쿤타치의 디자인은 후계기인 '디아블로'로 이어지는데, 사실 디아블로는 순수한 쿤타치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경영 악화로 파산 직전까지 몰린 람보르기니는 1987년 크라이슬러에 인수되는데, 디아블로는 그 후인 1990년에 나온 모델이기 때문. 그러나 디아블로에서 쿤타치의 그림자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드쉽 엔진 탑재로 높이 든 엉덩이와 땅에 붙을 것처럼 낮은 코, 곡선이 가미되었지만 여전히 직선을 강조한 강한 실루엣은 디아블로에 쿤타치의 유전자가 살아있음을 말해준다.
 

<무르시엘라고>
 

람보르기니는 크라이슬러의 경영악화로 다시 매각되는데, 메가텍, V파워 등의 회사를 거쳐 1999년 아우디에 인수된다. 디아블로가 계승한 쿤타치의 유전자는 아우디의 터치가 가미되어 '무르시엘라고'로 이어진다. 디아블로가 다소 근육질의 느낌이었다면, 무르시엘라고는 더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며, 볼륨을 강조하면서도 직선을 더욱 살린 실루엣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 특히 무르시엘라고에서 시작된 각진 '눈'과 '코'는 현대 람보르기니의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생각된다. 라이트의 형상은 정면이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차체의 라인과 완벽하게 일치되며, 이러한 특징은 무르시엘라고 이후 등장한 가야르도, 레벤톤, 아벤타도르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가야르도>


<레벤톤>


<아벤타도르>
 

쿤타치에서 시작된 람보르기니의 혈통을 살펴본 것은 한 브랜드의 계보를 살펴보면서 디자인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지 디자인은 람보르기니 뿐 아니라 수많은 메이커에 영향을 주었고, 심지어 람보르기니의 숙원의 라이벌인 페라리조차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현대의 슈퍼카 디자인은 더 이상 웨지 디자인으로 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요소가 더해지고 다듬어져 만들어지는데, 다음번에는 웨지 디자인의 정 반대 콘셉트라고 할 수 있는 '스트림라인'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photo : automobili lamborghini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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