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대표 중형 세단은 K5다. 기아는 그동안 중형 세단을 내놓으며 이름을 계속 바꿔왔지만 K5부터는 이름을 그대로 쓴다는 방침을 정했다. 1세대 K5의 성과가 워낙 좋은 데다, 이름에 알파벳과 숫자를 함께 쓰는 ‘알파뉴메릭’ 네이밍 정책을 이어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시도가 이어졌다. 전작의 이름만 물려받은 게 아니라 디자인까지 이어간 것이다.
성공적인 디자인과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된 데다 강력한 ‘K5’라는 브랜드 파워까지 갖춰서일까. 지난 7월 이 차를 내놓으며 라이벌로 지목한 건 다름아닌 폭스바겐의 대표 중형 세단 ‘파사트(Passat)’였다.
파사트는 세계적으로 꾸준한 사랑을 이어가는 중형 세단이다. 1973년 1세대가 나온 뒤 6세대까지 1,500만대가 넘게 팔린 폭스바겐의 효자 차종이기도 하다. 지금은 7세대를 넘어 유럽에 먼저 출시된 8세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팔리는 건 아직 7세대고, 북미공장에서 만든 차다. 7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중국과 미국시장을 고려한 탓인지) 몸집을 많이 키운 걸 꼽을 수 있겠다. 어쨌든 기아는 이런 파사트를 라이벌이라 콕 찍어 얘기한 거다.
비교에 앞서…
휴가 기간 동안 K5를 800km넘게 타볼 수 있었다. 혼자 탈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했다. 먼 거리를 다녀오면서 여러 특징을 체험할 수 있었다. 꽤 발전했고, 분명 장점이 많은 차다. 우연이지만 휴게소 주차장 옆 자리(?)에서 파사트도 만났다. 7세대 가솔린 모델을 시승해본 적이 있지만 잘 달리는 점 말고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신형 K5의 느낌이 잊혀지기 전에 파사트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물론 비교할 수 있는 건 7세대 파사트와 신형 K5다. 8세대가 출시되면 다시 비교해볼 계획이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수소문 끝에 지인의 파사트 2.0 디젤을 느껴볼 기회가 생겼다.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해볼까?
파사트의 생김새는 단정하다. 그냥 딱 모범생 같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선과 면이 조화를 이룬다. 굵직한 선이 지나가는 곳이나 모이는 곳의 처리도 아주 단순해서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해 보인다. 쉽게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다. 라디에이터 그릴 가운데엔 폭스바겐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반면 K5는 부드러운 느낌을 살리면서 날렵함을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CC와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1세대 디자인은 잘 짜인 조형미가 특징이었다면, 이 디자인을 물려받은 2세대는 커진 덩치를 살려 웅장하고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거듭났다. 디자인을 이어가게 되면 일정한 틀 안에서 디테일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만들어진 걸 고치는 건 새로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두 차는 크기가 비슷하다. 파사트가 길지만, K5는 넓고 낮다. 파사트의 길이x너비x높이는 4,870x1,835x1,485(mm), 휠베이스는 2,803mm다. K5는 길이x너비x높이가 4,855x1,860x1,465(mm), 실내공간을 좌우하는 휠베이스는 2,805mm로 K5가 2mm 더 길다. 트렁크는 파사트가 527리터, K5가 510리터다. 둘 다 골프백 네 개가 충분히 들어갈 만큼 충분히 큰 사이즈를 자랑한다.
인테리어도 겉모양의 특징이 이어진다. 파사트의 속은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다. 그렇지만 차를 타면서 필요한 건 대부분 갖췄다. 편안한 시트, 딱히 부족하지 않은 수납공간, 깔끔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딸깍딸깍 공조장치의 다이얼을 돌리는 느낌도 꽤 좋다. 운전대 그립감도 좋고, 기어 변속 레버도 무게감이 나쁘지 않다.
K5는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많은 요소를 담아내야 하는데 화려하면 탑승자가 쉽게 질리기 때문이다. 센터페시아 디자인도 잘 다듬어졌고, 버튼 형상도 신경 써서 운전할 때 여러 기능을 다루기 쉽다. 예전처럼 반짝거리는 유광 소재의 사용을 줄인 건 잘한 일이다. 때문에 자칫 심심해질 수도 있지만 가죽 느낌 대시보드와 스티치 장식이 분위기의 무게감을 잡아준다.
편의장비는 K5의 압도적 승리
파사트는 한국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펜더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키리스 엑세스, 멀티펑션 디스플레이처럼 나름 갖출 건 다 갖췄다. 그렇지만 극에 달한 K5의 화려한 기능들을 살펴보면 갑자기 한숨이 나온다. 휴대폰 무선 충전 기능이나 액티브 하이빔 어시스트처럼 가끔 쓰는 새로운 기능은 물론 파노라마 선루프, 후측방 경고 시스템,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LDWS), 자동 요금징수 시스템, 동승석 워크인 디바이스, 긴급 제동 보조 시스템(AEB), 스마트 트렁크 시스템 등 중형 세단에 집어넣을 수 있는 웬만한 기능은 다 넣었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이런 품목들은 가격 인상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편의를 챙겨줄 기능들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라인업 비교
우리나라에 들어온 파사트는 북미형으로 세 가지 라인업을 갖췄다. 1.8 TSI와 1.8 TSI 스포츠는 가솔린 직분사 터보엔진을 얹어서 최고출력 170마력(PS@6,200rpm), 최대토크 25.4kg.m(@1,500~4,750rpm)의 힘을 낸다. 변속기는 6단 팁트로닉이 맞물린다. 복합연비는 리터 당 11.6km.
이에 대응하는 K5를 꼽자면 1.6 T-GDi가 있다. 듀얼 디자인 중 SX 모델에서 고를 수 있다. 최고출력은 180마력(PS@5,500rpm), 최대토크는 27.0kg.m(@1,500~4,500rpm)이다. 변속기는 7단 DCT. 18인치 휠 기준 복합연비는 리터 당 12.7km.
2.0 TDI는 디젤엔진으로 최고출력 140마력(@4,200), 최대토크는 32.6kg.m(@1,750~2,500)다. 변속기는 6단 DSG(더블클러치변속기)가 맞물린다. 18인치 휠 기준 복합연비는 리터 당 14.6km. 도심 12.6km, 고속도로 17.9km다.
K5 디젤은 파사트 2.0 디젤과 성능이 비슷하다. 141마력(@4,000rpm)짜리 1.7리터 디젤엔진에 7단 DCT(더블클러치변속기)가 맞물린다. 최대토크는 34.7kg.m(@1,750~2,500rpm)이다. 18인치 휠 기준 복합공인연비는 리터 당 16.0km다. 도심 14.8km 고속도로 17.8km다.
제원상 파사트 디젤보다 K5 디젤의 배기량이 적은데도 힘이 세다. 무게도 K5가 33kg(18인치 휠, 디젤 기준)쯤 가볍다. 복합연비와 도심 연비는 K5가 좋지만 고속도로 연비는 파사트가 좋다. 타이어 규격은 235/45R18로 같다.
달려본 소감은?
짧은 시승이었지만, 파사트의 주행 성능은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철저히 기본기를 강조하며 잔고장 없이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컨셉트가 특징이다.
시내에선 별다른 특색이 없어서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털털거리는 중형 디젤 세단이다.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성격이 변한다. 샌님 같던 수줍음은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움직임에 자신감이 넘친다. 하체가 꽤 안정적이다. 노면에 착 달라붙어 달린다. 서스펜션 움직임도 민첩해서 흔들림 없는 코너링이 일품이다. 믿음직스럽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이에 비하면 K5는 한결 차분하다고 할까. 파사트의 절제된 움직임과는 다르지만 지향점은 비슷하다. 고속주행에 많이 신경 썼다. 불안하지 않다. 1세대는 철 없던 아이였다면, 2세대는 완연히 의젓해진 모습이다. 엔진과 변속기에 대한 자신감도 묻어난다. 서스펜션의 좌우 움직임도 적극적이어서 과감한 핸들링도 충분히 소화해낸다. 불안하지 않다. 그런데 상하 움직임은 파사트가 적극적이다. K5도 상하 움직임에 여유를 두면 좋겠다. 가변 서스펜션을 적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주행 중 소음은 K5의 압도적 승리다. 파사트는 소음을 적극적으로 줄이지 않았다. 타이어 소리, 엔진 소리가 실내로 스며들어온다. 물론 그리 거슬리진 않는다. 여러 주행 중 상황을 느끼면서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지만 민감한 사람은 노면에 따라 다소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신흥강자 K5 VS 관록의 파사트
‘차는 잘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서일까. 파사트는 별다른 재주 없이도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유럽에 출시된 8세대는 7세대 디자인에 세련미를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이어가는 건 세계적 추세다. K5도 이런 흐름을 잘 탔다고 볼 수 있겠다. 긍정적 시도다. 게다가 이제 2세대에 불과하지만 관록의 파사트를 라이벌로 지목할 만큼 자신감에 차있다. 그만큼 꼼꼼히 분석하고 준비해왔다는 얘기다. 젊은 K5는 재주가 정말 많다. 이것저것 골고루 잘 한다. 달리기 실력도 뛰어난 편이고, 트렌드에도 민감한 나이여서 그런지 새로운 걸 배우는 데도 적극적이다. 신흥강자 K5의 내공은 꽤 세다. 전통의 강호 파사트 관록에 맞서는 모습이 흥미롭다.
프리미엄 세단을 향해
기아차는 신형 K5가 ‘프리미엄 세단’으로 인정받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한 건 ‘디자인의 계승’이다. 큰 성과를 남긴 1세대 K5를 기념하고, 이를 재해석해 헤리티지(Heritage; 유산)를 쌓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시 해석했다’는 부분이다. 요즘 트렌드를 철저히 분석해 이에 대응하려 애쓴 흔적이 ‘듀얼 디자인’과 ‘파워트레인 다변화 전략’이다.
‘프리미엄(Premium)’이라는 단어는 ‘일정한 가격 따위에 더하는 여분의 금액’을 뜻한다. 결국 프리미엄은 스스로 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장의 원리에 따라 사람들이 정하는 가치다. 신형 K5는 중형 세단으로서 갖출 수 있는 요소를 거의 담아냈다. 안전성은 기본, 넉넉한 공간에 적당히 단단한 하체에다 화려한 편의품목까지 갖췄다. 듀얼 디자인과 다섯 가지 심장으로 고르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프리미엄 세단으로의 비상(飛上)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글
박찬규 star@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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