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많은 차를 만날 수 있는 직업이라지만 유난히 인연이 없는 차가 있다. 기아 K9도 그 중 하나다. 출시행사 때나 해외 모터쇼에서 잠깐 앉아만 봤을 뿐 제대로 타보질 못했다. 좋다는 얘기가 많지만 직접 보고, 듣고,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차다. 그런데 29회 한국여자오픈의 갤러리 행사로 K9 시승 이벤트가 있었다. 욕심이 생겼다. 겸사겸사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 다녀왔다. 골프대회도 구경하고 차도 타고 일석이조다.



이 행사에선 K9 중에서도 최상급인 ‘퀀텀’을 타볼 수 있었다. 의무적(?)으로 차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실내를 들여다봤다. 브라운 컬러의 나파가죽 퀼팅시트가 고급스럽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박음질과 부드러운 황토색이 검은색 내장재의 답답함을 편안함으로 바꿔준다.



그리고 K9의 핵심은 뒷자리 중에서도 VIP석, 그러니까 조수석 뒷자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발 받침대가 생기는 전동식 풋레스트 기능도 마음에 든다. 이 기능을 쓰면 조수석엔 사람이 타지 못한다. 조수석 시트가 최대한 앞으로 이동하고, 등받이도 젖혀지며 뒷자리 공간을 최대한 늘려주기 때문이다. 또 풋레스트를 선택품목으로 넣으면 조수석(동승석)엔 통풍 시트 기능을 넣을 수 없다. 구조적 특징 탓인 거 같다.



플래그십 모델답게 큼지막한 엔진이 탑재됐다. V형8기통 5.0리터 GDI 엔진이 425마력을 내며, 최대토크는 52.0kg.m나 된다. 웬만한 스포츠카 뺨치는 출력이다. 힘도 장사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가슴을 압박하며 튀어나간다. 8단 자동변속기가 이 엔진과 맞물려 넘치는 힘을 빠르게 전달한다. 저속이든 고속이든 부드럽지만 강하게 가속된다. 자연흡기 엔진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부드러움이 매력이다. 시끄럽지도 않다.


왼쪽부터 에코-스포츠-스마트

주행모드는 노멀-에코-스마트-스포츠로 나뉜다. 계기반엔 금테를 두른 속도계와 회전계가 꽤 멋스럽다. 12.3인치 풀 사이즈 TFT LCD 클러스터가 적용돼 모든 내용이 그래픽으로 보여진다. 에코 모드로 바꾸면 푸른색 배경이 추가된다. 조금이나마 환경에 피해를 덜 끼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스포츠 모드는 과감하다. 그래픽이 확 달라져서 바늘 대신 커다란 숫자로, 직관적으로 정보를 표시한다.



핸들링은 부드럽다. 직접 몰아보기 전엔 차가 길고 넓어서 많이 휘청거릴 거라 생각했다. 예상보다 자세 유지 능력이 뛰어났다. 운전대를 빠르게 돌릴 땐 차의 뒷부분이 한 템포 늦게 따라오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진 않다. 무게가 2,105kg이나 되고, 휠베이스가 자그마치 3,095mm에 달한다. 차의 길이는 5미터 하고도 95mm다. 정말 길다. 이렇게 큰 차가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려면 서스펜션이 레이싱카처럼 단단해야 할 거다. 하지만 K9의 컨셉트는 최고급 세단이다. 부드러움, 편안함이 우선이다.



골프클럽을 벗어나 인근 도로를 한 시간쯤 달려봤다. 짧지만 궁금한 부분을 느끼기엔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몇 군데 디자인을 바꾼 새로운 K9은 꽤 예쁘다. 큰 사이즈에서 느껴지는 웅장함과 함께 차분한 느낌이 좋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디자인이다. 최고의 안락함을 추구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뿜어낸다.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속은 알차다. 뒷좌석에 편안히 탈 때나, 직접 몰 때나 모두 매력이 있다. 플래그십 차종만의 ‘특별함’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고, 결국 브랜드 전체 이미지와 맞물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K9 퀀텀은 플래그십 차종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정확히 짚어낸 차다.

글,사진/ 청라(인천)=박찬규 기자 star@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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