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매거진을 통해 F1 스토리를 연재 중인 김남호 박사는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이며, 명문 F1 팀인 Lotus F1 Team에서 성능 분석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한국인 F1 엔지니어이다. 혹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지난 연재 기사 링크를 안내한다.

* 김남호의 F1 STORY PART 1 - 더 이상 남의 잔치가 아닌 F1 >

* 김남호의 F1 STORY PART 2 – interview >

* 김남호의 F1 STORY PART 3 – 누가 F1카를 머신이라 부르라 했던가 >

* 김남호의 F1 STORY PART 4 – F1 과 메이드 인 코리아 >

* 김남호의 F1 STORY PART 5 - 코리안 F1팀의 꿈과 현대 기아차를 위한 변명 >

* 김남호의 F1 STORY PART 6 -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해부학 >

* 김남호의 F1 스토리 PART 7 - F1 취업을 알선합니다 >

* 김남호의 F1 스토리 PART 8 - F1카 10분 만에 이해하기 >

지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F1카와 첫 대면하였고 F1카의 생김새와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그랑프리 카로부터 현대의 F1카에 이르기까지 F1카의 디자인은 더 빠른 스피드를 얻기 위하여 진화해 왔음을 실례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이번에는 F1카의 디자인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봄으로써 지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F1 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사전 지식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앞으로 이어질 내용 역시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2013 F1 시즌 종료 후 약 3개월의 최종 준비기간을 거쳐, 2014 시즌동안 경쟁할 F1 팀들의 모든 무기가 마침내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한 차례 그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이 신형 레이스카들은 모든 F1 팀들이 공통으로 따라야 할 2014 F1 기술규정에 따라 제작되었습니다.

F1 기술규정은 안전성을 높이거나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매년 조금씩 변화하고, 때로는 격변합니다. 레이스카를 요리로 비유한다면 F1 기술규정은 요리법이라 할 수 있는데, 표준 요리법이 해마다 바뀌기 때문에 요리의 생김새나 맛도 해마다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2014 시즌용 레이스카들은 이미 2013 시즌 시작 무렵부터 새로운 기술규정에 따라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우리가 보는 신형 F1카들은 지난 1년 동안 각 팀이 2014 F1 기술규정을 최대한 유리하게 해석하여 만든 결과물입니다.

평소 F1에 관심이 있었거나 사물의 생김새를 한눈에 파악하는 눈썰미가 남다르다면 모르겠으나, 일반인이 F1카의 디자인 변화를 알아채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올해 등장한 새로운 F1카 디자인 역시 일반 대중에게는 그저 전형적인 모습의 또 다른 F1카일 뿐 그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F1 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올해 각 팀들이 들고 나온 신형 F1카 디자인에 큰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2014 F1 시즌에 출전할 F1카들의 전반적인 디자인은 F1 의 오랜 팬들마저 성적 조롱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괴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2014 F1 기술규정 발표 이후 대다수의 모터스포츠 저널리스트들은 이미 이 비극적 결과를 예상했었고, 여러 F1 팀의 디자이너들도 새 규정 하에서 자신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디자인의 미적 한계를 여러 번 실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형 디자인을 보고 F1 팬들이 느낀 충격과 배신감은 단 1% 도 완충되지 못한 듯합니다. F1 팬들에게 F1카는 단순히 레이스를 위한 기계이기 이전에 미적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F1 팬들이 신형 디자인에 보이는 거친 실망감은 마땅히 배달되어야 할 ‘아름다움’이란 택배가 도착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반작용입니다.



그렇지만 21세기 들어 선보였던 다양한 F1카들은 전반적으로 디자인 면에서 수려하고 보기에 따라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팬들에게 큰 실망을 끼친 2014 년 F1카 디자인은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F1카 디자인이 초창기부터 근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F1 기술규정은 마치 성긴 그물과 같아서 현대 F1 기술규정 보다 구속력이 약했고, 차량의 설계에 있어서 비교적 높은 자유도를 허용하였습니다.

때문에 과거 F1 팀들은 레이스카의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자신들이 고안한 여러 가지 방법을 비교적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출전 팀들이 서로 차별화된 디자인과 성능의 차로 경주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March 711 ©Sutton Images



March 751 ©Sutton Images



Tyrrell P34 ©Sutton Images



Ligier JS5 ©Sutton Images



Brabham BT46B ©Sutton Images



Ensign N179 ©Sutton Images



Arrows A2 ©Sutton Images



Arrows A22 ©F1 Fanatic



Tyrrell 025 ©Sutton Images



Williams FW26 ©Sutton Images



Honda RA108 ©Sutton Images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안전성 향상이나 독주 방지, 비용 절감 등의 목적으로 F1 기술규정이 부분적으로 개편되었고, 수십 년이 지난 현재의 F1 기술규정은 특정 부위의 지엽적인 치수까지도 정의하고 있어서, 이 규정에 따라 차를 설계, 제작하면 자연스럽게 비슷한 성능과 디자인의 차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F1카 디자인의 진화가 어떤 식으로 유도되는지를 보여주는 최근의 예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편에서 필자는 현대 F1카의 레이스 성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공기 역학’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공기 역학적 이득을 효과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공기가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 없이 차의 표면을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이는 돌기들을 필요한 형태로 제작하여 원하는 부위에 붙임으로써 비교적 예측 가능하게 유도될 수 있습니다.

F1 기술규정에는 2008년까지 이러한 인위적 부착물의 사용을 금지하는 구체적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이 영역은 팀들의 주된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F1카 디자이너와 공기 역학 엔지니어들의 과제는 수평 방향의 공기 저항력을 줄여주는 동시에 차를 수직 방향으로 내려 누르는 힘이 최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부착물의 형상을 찾고, 이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F1카 몸통의 이곳저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뿔이 달리곤 하였습니다.


BMW Sauber F1.08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팀 간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어느새 팀들은 이 괴상한 성형 수술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붇고 있었고, 이 출혈 경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FIA는 2009년부터 인위적 부착물 사용 금지 조항을 도입합니다. 이 금지 조항 도입 이후 차체 디자인은 다시 날렵하고 매끄러워집니다.


BMW Sauber F1.09

하지만 이것으로 디자인 전쟁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F1 팀들은 다시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공기 역학적 이득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수년간 중하위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현 챔피언 레드불 팀이 2009년부터 서서히 부상하더니, 급기야 2010년부터 타 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인 레이스 성능을 보입니다.

그 성공의 비밀은 모노코크(차체 머리 부분)와 노즈 콘(날개가 부착된 차의 코 부분)을 가능한 높이 올려 차체 아래로 흐르는 단위시간 당 공기의 흐름을 늘린 것이었습니다. 차의 바닥과 지면 사이에 단위시간 당 공기의 흐름이 많아지면 압력이 낮아지고, 그 결과 차체가 지면 쪽으로 당겨지는 힘이 증가합니다. 스위스의 ‘베르누이’라는 과학자가 이를 수학적으로 정리했고, 이를 통해 유도된 공기역학적 힘을 F1에서는 ‘다운포스’라고 칭합니다.

코너를 통과할 때 다운포스가 높으면 타이어를 내리누르는 힘이 커지기 때문에, 더 높은 속도에서도 타이어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결과적으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시도되어 왔으나 레드불 팀이 재발견한 이 ‘하이 노즈(high nose)’ 디자인은 다운포스를 늘리는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한 팀의 성공적인 아이디어는 금방 다른 팀들의 벤치마크가 되고, 다른 팀의 엔지니어들은 분주하게 이 아이디어를 모방합니다. 시즌 초반 서로 달랐던 각 팀의 디자인이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가장 빠른 F1카의 디자인을 닮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콧대 높은’ 디자인의 유행 이후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차량의 노즈가 높다 보니 뒤에서 추격하던 차가 앞 차와 추돌하는 경우 노즈 아랫부분 경사면을 타고 이륙하듯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디자인은 차의 노즈가 운전석 측면의 보호 패널 높이와 비슷하여, 어느 한 차량이 다른 차량의 측면 90도 방향으로 충돌하는, 이른바 ‘T-bone’ 충돌 시 노즈가 드라이버의 머리까지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FIA는 이 위험요소를 이전까지 예상하지 못했고, 더 큰 사고발생을 막기 위해 논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노즈 콘이 드라이버 머리 높이에 절대 미치지 못하도록 노즈 콘 끝부분(노즈 팁 : nose tip)의 높이를 제한하기로 결정 합니다.

처음에 FIA는 노즈 팁의 최대 높이만 제한하면 자연히 모노코크의 전체적인 높이도 낮아져 앞서 언급한 두 종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F1팀들은 공기역학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이 하이노즈 디자인, 정확히 말하면 차량의 배와 지면 사이의 ‘벤츄리 관(venturi tube)’ 형상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묘안을 찾던 디자이너들은 노즈 팁의 높이는 기술규정이 요구하는 제한 높이로 낮추되, 배부터 지면 사이의 공간은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오리 주둥이’ 형상, 일명 ‘스텝 노즈(step nose)’ 라는 꼼수를 선보입니다. FIA는 예상치 못한 이 편법에 당황하였지만 이 디자인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오리 주둥이’ 디자인을 불법으로 규정할 근거가 당시 규정에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FIA는 다시 한 번 기술규정을 손보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오리 주둥이’ 사용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노즈 높이를 대대적으로 낮추고, 측면에서 보여야 할 노즈 콘의 단면 형상을 구체적으로 정의하였습니다. ‘노즈를 측면에서 보았을 때 불연속적인 계단(Step) 형상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강제 규정을 2014년부터 도입한 것입니다.

FIA의 이 조치로 신형 F1카에서 ‘오리 주둥이’는 사라졌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신형 F1카는 ‘오리 주둥이’가 사라진 멋진 디자인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새 기술규정이 노즈의 측면 형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노즈 정면 모양에는 여전히 별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 F1 기술규정은 단지 노즈 팁으로부터 5cm 떨어진 지점의 높이가 지상으로부터 185mm, 그 단면적이 9000mm²를 넘지 않아야 함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요건만 충족시키면 합법적인 디자인이 됩니다.

F1 팀들은 이 허점을 이용하여 저마다 공기 역학적 이득을 최대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노즈 디자인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시간의 실험을 마친 각 팀은 공기 역학적으로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된 합법적(?) 노즈 디자인을 제각각 선택하였고, 안타깝게도 이 디자인들은 팬들이 원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F1 기술규정의 지향점은 F1 팀들이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초래되는 혼란이 없도록 근거를 명확하게 기술하고, 이들이 편법으로 규제를 피해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촘촘히 만드는 것입니다. 기술규정이 꼼꼼하게 잘 작성되고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이벤트에 참가하는 레이스카들 간의 성능격차가 좁혀져 승리를 독식하는 절대 강자의 출현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팬들이 더욱 흥미로운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이벤트 프로모터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상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입니다.

반면 F1 팀들이 다투는 기술개발 경쟁은 F1 기술규정이 미처 꼼꼼하게 단속하지 못한 허점을 찾고, 이를 이용하여 남보다 좀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이 경쟁의 결과물인 F1카의 디자인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F1 레이스에서는 예술 점수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스피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F1 팀과 엔지니어들에게 F1카의 아름다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F1 팀들의 유일한 목표는 제한적으로 허용된 설계의 자유 속에서 최선의 스피드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해답이 다소 비겁한 편법이라 할지라도 합법적이라 판단되면 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F1 팀들을 위한 필자의 변명입니다.

FIA는 이미 기괴한 2014 F1카 디자인을 불가피하게 만든 2014 F1 기술규정의 한계를 인식하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낮은 노즈는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낮은 노즈의 위험성도 발견되었습니다. 2014년의 첫 경기인 오스트레일리아 그랑프리에서 후방 추돌 사고가 있었는데, 뒷 차의 노즈가 앞 차의 뒷부분 하단을 삽으로 퍼 올리듯 비집고 들어가 앞 차를 뒤집을 뻔 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IA는 규정을 다시 손볼 것입니다. 하지만 F1 팀들이 ‘허점 찾기’를 멈출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F1 팀들이 성능개선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F1카 디자인의 진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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