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연재를 통해 필자는 F1이라는 국제적 모터스포츠와 한국 사이의 현실적 거리가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좁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F1은 물론 모터스포츠 전반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F1이란 스포츠에 대한 이렇다 할 소개도 없이, F1과 한국의 접점을 다급하게 찾으려는 필자의 현실 진단은 독자들에게 다소 궁색하고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F1에 대한 소개와 현실 진단의 순서를 바꾼 이유는 지난 몇 해 동안 F1 코리안 그랑프리가 수면 위를 부유하는 난파선처럼 위태롭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고, 필자도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팬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술 기반 스포츠인 F1이 신흥 기술 강국이라 자부하는 한국의 대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환영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더 늦기 전에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코리안 그랑프리는 2014년 F1 캘린더에서 결국 빠지게 됐습니다. 이제 안타까움을 접어 두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F1이라는 스포츠가 생소한 독자들에게, F1의 A-Z를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코리안 그랑프리의 2015 F1 시즌 복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F1을 소개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늦은 감은 있으나, F1이란 스포츠를 100% 일상의 언어로 소개함으로써 더 이상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다 많은 한국 대중의 즐길 거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F1 은 ‘Formula 1’ 이라는 공식 명칭의 약자입니다. ‘Formula’ 라는 단어를 캠브리지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Formula : a standard or accepted way of doing or making something”
“포뮬러 : 어떤 것을 실행하거나 만듦에 있어 표준이 되거나 인정되는 방법 ”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해석하자면 ‘Formula 1 카’는 ‘표준이 되거나 인정되는 방법에 따라 으뜸이 되게 만든 자동차’입니다. 실제로 F1카는 레이스카 중 가장 가볍고, 가장 빠르고, 가장 튼튼하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많은 비용을 들여 제작되는 자동차이기에 가장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습니다.
Formula 1 에서 ‘Formula’는 레이스카의 규격, 디자인, 성능, 재질, 제작 방식에 대한 ‘표준’을 말합니다. ‘포뮬러’ 라는 개념은 엔지니어나 과학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하게 들리겠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지 못할 뿐 도로 위를 달리는 보통의 자동차들도 넓게 보면 일종의 포뮬러 카 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운행 중인 자동차와 관련된 사항들을 규정한 법률인 ‘자동차 관리법’을 살펴보면 승용 자동차는 경형, 소형, 중형, 대형으로 분류됩니다. 이는 대한민국 자동차 관리법 상 합법적인 모든 승용차는 반드시 이 네 카테고리 중 하나에 속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소형차는 ‘배기량이 1,600㏄미만인 것으로서 길이 4.7m, 너비 1.7m, 높이 2.0m 이하인 자동차’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국내에서 판매할 소형차를 설계하는 경우, 자동차 관리법이 정한 이 소형차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이 설계한 차는 법적으로 ‘소형차’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길이 4.7m, 너비 1.7m, 높이 2.0m 인 가상의 박스 내에서는 별도의 구속 조건 없이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동차 관리법에 명시된 이 소형차 규격은 단지 설계의 자유를 허용함에 있어 F1의 ‘포뮬러’보다 관대할 뿐, 소형차 설계의 최소 필수 요건을 강제하는 일종의 포뮬러입니다.
F1은 FIA(국제 자동차 연맹)가 제정한 일종의 자동차 관리법인 ‘F1 기술 규정(F1 Technical Regulations)’에 따라 레이스카를 제작하고 FIA가 정한 ‘F1 스포츠 운영 규칙’에 따라 트랙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스포츠입니다. 이 F1 기술 규정에는 F1카 각 부분의 모든 규격과 사양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F1카의 각 부분을 가상의 여러 박스로 나누고 각 박스의 치수와 허용 오차를 매우 촘촘하게 정의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레이스카의 각 파트는 기술 규정에 정의된 각 박스의 경계를 절대로 벗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기술 규정의 본래 의도에 따라 차를 디자인하면 누가 디자인 하더라도 차의 대략적인 형태는 비슷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재료와 조리법으로 음식을 조리하면 요리하는 사람에 따라 맛은 약간 달라질 수 있으나 그 음식의 맛은 대동소이 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F1 기술 규정의 기본 의도는 그랑프리 참가 팀 모두가 비슷한 조리법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된장찌개에 치즈를 가미하면 더 맛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아직 “표준이 되거나 널리 인정되는 방법”이 아닙니다. 된장찌개 본연의 맛을 지키기 위해 F1 기술 규정은 이 ‘치즈’를 엄격히 제한합니다. ‘치즈’ 와 같은 변칙의 사용을 차단함으로써 된장찌개의 맛을 순수하게 잘 살리는 요리사를 공정하게 가리는 것이 이 규정의 취지입니다.
11개의 서로 다른 F1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아할 정도로 획일적이고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현대 F1카의 디자인은 이 동일한 ‘조리법’을 사용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FIA 기술규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합니다. 된장찌개와 치즈의 조합이 영원히 축복 받지 못할 인연으로 남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제 현대 F1카의 디자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F1카의 생김새를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크고 넓은 두 쌍의 바퀴는 차체 밖으로 완전히 노출 되어있습니다. 이를 ‘오픈 휠’ 타입이라고 합니다. 앞바퀴는 장난감 바퀴처럼 자유롭게 구를 수 있으며 뒷바퀴 축에만 동력이 전달되는 뒷바퀴 굴림 방식을 사용합니다.
F1 서스펜션vs 승용차 서스펜션
휠 허브와 차체 사이에 스프링과 댐퍼가 수직 방향으로 직접 연결되는 승용차의 서스펜션과는 달리 F1 카의 휠 허브는 엉킨 듯 보이는 여러 개의 납작한 막대들을 통해 차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스펜션은 흔히들 ‘쇼바’ 라고 토종화시켜 부르는 ‘Shock Absorber’의 정식 명칭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닭 가슴살 아래 V자 모양의 가는 뼈를 부러뜨리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기 때문에 이 뼈를 ‘위시본 (Wishbone)’이라 부릅니다. F1 카는 V자 모양의 위시본 두 개를 상하로 평행하게 눕혀 V자의 꼭지점 부위에 타이어 휠 허브가 부착되고, 두 팔 끝을 차체에 연결한 형태의 서스펜션을 사용합니다. 이를 가리켜 ‘더블 위시본 (Double wishbone)’ 타입이라 부릅니다.
평행한 두 위시본 사이를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가는 막대가 휠 허브와 차체 사이에 연결되는데, 휠에 가해지는 충격과 무게 등을 비롯한 모든 방향의 힘이 이 막대를 통해 지탱됩니다. 이 막대를 ‘로드(Rod)’ 라 부르며 이 로드의 끝은 차체 안에 숨어 있는 스프링, 댐퍼 등에 연결됩니다. 스프링 등 서스펜션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차체 안에 숨어 있다고 해서 이를 ‘인보드(Inboard)’ 서스펜션 이라 부릅니다.
차체는 성인 남자 한 명 겨우 비집고 들어가 다리를 뻗고 몸을 눞일 수 있는 크기이며 흡사 관을 연상케 합니다. 이를 ‘모노코크(Monocoque)’라 부르며 사고 시 차의 다른 부분은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이 모노코크는 절대 부서지지 않고 드라이버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세이프티 셀(Safety cell)’이라고도 합니다.
모노코크 뒤에 엔진과 기어 박스를 순서대로 일렬로 연결하고, 모노코크의 양 옆 볼록한 부분 안에 엔진의 열을 식히는 라디에이터를 부착합니다. 마지막으로 차체의 앞과 뒤에 날개를 달고 바닥에 넓은 치마를 달아주면 F1카가 완성됩니다.
Lotus E21 vs Ferrari Italia
현대의 F1카는 우리가 일상에서 타는 승용차와 생김새 면에서 매우 이질적입니다. 현존하는 승용차 중 가장 날쌔다는 페라리와 비교해 보아도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Lotus E21 vs Eurofighter Typhoon
사실 F1카의 디자인은 사촌 격인 승용차보다 오히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제트 전투기를 더 닮아 있습니다. F1카의 디자인이 전투기의 형상을 닮은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레이스의 본질이 그러하듯 F1카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빨라질 수 있는 디자인으로 진화해 왔고, 현존하는 디자인 중 가장 빠른 속도에 최적화된 디자인은 항공기, 그 중에서도 전투기이기 때문입니다.
F1카의 레이스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기계적인 성능을 결정하는 엔진, 타이어, 서스펜션, 브레이크, 기어 박스 등이 있습니다. 이는 일반 승용차의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F1카에서 기계적 요소들은 ‘빠르기’를 지배하는 요소라기보다 ‘내구성’을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현대 F1 카의 레이스 결과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자는 기계적 성능이 아닌 공기 역학이라 불리는 바람의 영향입니다. 공기 역학은 물체가 공기의 흐름을 거슬러 움직일 때 물체의 형상과 속도에 따라 물체의 전후, 좌우, 상하로 발생하는 힘과 뒤틀림의 변화를 다스리는 기술입니다. 현대 F1카의 레이스 성능을 100이라 한다면 공기 역학이 레이스 성능에 기여하는 비중은 80이상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별도의 지면을 통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현대 F1카의 디자인 작업은 전적으로 공기 역학적 이득을 최대화하는 형상을 찾는 사냥이며, 그 기술의 최고봉은 항공 역학입니다. 이런 이유로 F1 공기역학 엔지니어들은 항공 역학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훔쳐옵니다. 그렇다면 과거 F1카의 디자인은 어떠했을까요?
메르세데스 W25 vs BMW 328
왼편의 차는 F1 이란 스포츠가 태동하던 1930 년 대 독일의 메르세데스가 사용한 그랑프리 카이고, 오른편의 차는 비슷한 시기 판매되던 가장 빠른 스펙의 BMW 스포츠카입니다. 일반 승용차의 디자인과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현대의 F1 카와는 달리, 1930년대에 제작된 이 두 자동차의 디자인은 사촌지간임을 의심할 여지없이 서로 많이 닮아 있습니다. 당시의 그랑프리 카는 한 눈에 보아도 당시 가장 빠른 승용차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F1 카와 일반 승용차 모두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우연입니다.
메르세데스 W25 vs 포케볼프 190F
사실 초창기 F1 카의 디자인도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빨랐던 기계를 닮으려 했던 노력의 결과입니다. 1930년대 그랑프리 카의 디자인 역시 당시에 설계된 독일의 전투기 디자인과 매우 흡사합니다. 현대의 F1 카와 1930년대 그랑프리 카는 단지 시대만 달리할 뿐, 모두 동시대에서 가장 빠른 탈 것의 모양의 베꼈던 것입니다.
미래의 어느 날 외계의 UFO 가 도심에 추락하고 그 비행체에서 인류가 꿈에서 조차 생각지 못했던 놀랍도록 효율적인 공기 역학적 디자인 아이디어를 발견한다면, 그리고 다행히도 F1 이 아직 지속되고 있다면, F1 카의 디자인도 분명 그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해 있을 것입니다. F1에서 ‘속도’는 최고의 미덕이며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가치는 오직 ‘안전’뿐이기 때문입니다.
공기 역학이 지배하는 F1은 “F1 은 공기 역학에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을 뿐 양산차 기술과는 너무 괴리가 커서 자동차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언제나 자동차 마니아들을 ‘그렇다’ 와 ‘아니다’의 두 편으로 갈라서게 합니다. 사실 전혀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닙니다. 오직 빠르게 달리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F1카의 디자인이 판매를 위한 양산차에 사용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또 F1 기술이 양산차 제작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아우디, BMW, 포르쉐, 토요타 등의 메이저 자동차 회사들이 그저 넋 놓고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의 또 다른 강자들인 페라리, 맥라렌, 메르세데스-벤츠, 르노 그리고 혼다가 아직도 F1 엔진과 파워 트레인 개발에 적지 않은 연구 개발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을 보면 “F1이 양산차 기술 개발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필자는 두 의견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모든 자동차 자이언트들이 미래에 자신들의 무기가 될 신기술들을 모터스포츠를 통해 시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4년부터 사용될 F1 엔진의 배기량은 1.5리터 생수 병 보다 조금 더 큰 1.6리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에너지 회수장치를 이용해 구동하는 전기모터를 통해 터보엔진의 고질적인 저회전 영역에서의 가속 지연 문제를 해결하고, 전기모터의 동력을 직접 사용하기도 함으로써 750마력을 뿜어냅니다. 10년 전 선보인 페라리 엔초에 탑재된 6리터 12기통 엔진과 비교할 때, 불과 ¼크기로 동일한 출력을 내는 것입니다. 불과 10년 사이에 이룩된 기술의 진보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F1은 이 하이브리드 기술을 뽐내기라도 하듯 ‘엔진’이란 용어조차 규정에서 공식적으로 삭제했습니다. 이제 F1카는 ‘엔진’이 아닌 ‘파워 유닛’의 힘으로 달리게 됩니다. 페라리, 메르세데스, 르노, 혼다는 F1에서 한두 해 쓰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새로운 엔진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새로운 F1 엔진 기술이 안정화 되면 페라리, 메르세데스, 르노, 혼다는 자신들의 고성능 양산차 모델에 이 고성능, 고효율 꼬마 엔진을 달게 될 것입니다.
현재 F1에 직접적으로 참가하고 있지 않은 아우디, BMW 등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전에 이미 F1 기술 개발 경험을 축적하고 떠났거나, 현재까지 WEC(세계 내구레이스 선수권대회)와 DTM(독일 투어링카 선수권대회)등의 모터스포츠 시리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WEC와 DTM은 F1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까운 미래의 양산차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기술들이 시험되는 경연장입니다. 아우디, BMW, 포르쉐, 토요타가 F1에 전혀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단지 현재 F1에 참가하고 있는 자동차 회사들보다 조금 더 가까운 미래에 주목하고 자본을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F1에 대한 비판을 두고 서로 충돌하는 이 두 의견을 아우르며 F1을 중립적으로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형용사가 있습니다.
‘Experimental 실험적인’
F1카는 사람 사는 세상과 동 떨어진 괴상한 ‘머신’이 아닙니다. 단지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기술과 내구성의 한계를 확인하고자 조금 더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일 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F1카 디자인에 숨어 있는 F1 엔지니어들의 꼼수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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