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3.6.7 수 13:53
상단여백
HOME 자동차 시승기
우수한 성능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독일산 SUV, 폭스바겐 티록(The New T-Roc)

한국인의 특성을 표현하는 단어 중 ‘다다익선’이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 말도 점차 적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 대가족 중심 사회가 3~4인 정도의 핵가족 사회를 지나 이제는 ‘1인 가구’가 그리 낯설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변화는 소비에서도 적용되어 ‘가성비’ 중심에서 점차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가성비 높은 제품보다야 가격은 좀 더 비쌀지언정, 스스로의 만족도, 디자인, 성능, 브랜드의 가치관 등이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기 색상에 빨강과 파랑 등 개성있는 색상을 더해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세단 시장의 상당수가 실용성을 중시한 SUV로 전환됐고, 대형차를 선호하던 분위기에서 소형 SUV의 인기가 상승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과거 현대차가 소형 SUV 베뉴를 처음 선보이면서 ‘혼라이프(혼자+라이프)’라는 말을 제안했고, 그 말이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어쨌든 소형 SUV 시장은 몇 년 전부터 점차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국산 브랜드뿐만 아니라 수입 브랜드들까지도 개성 넘치는 모델로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또 하나의 경쟁자가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폭스바겐의 티록(T-roc)이다. 사실 폭스바겐의 참전은 좀 늦은 감이 있다. 글로벌 론칭은 2017년 이뤄졌으나, 당시 폭스바겐코리아는 디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차량 판매를 중단하고 리콜에 집중하는 상황이어서 신차 도입에 대해 당장 계획이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고, 그 후 2019년 하반기 도입을 검토했으나, 인증 문제로 출시가 지연됐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수입차 시장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세단과 SUV 라인업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폭스바겐코리아 슈테판 크랍 사장

어쨌든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브랜드 재건을 선언한 폭스바겐코리아가 드디어 2021년 티록을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이번 출시는 폭스바겐 5T 전략의 일환으로, 폭스바겐의 티록, 티구안, 티구안 올스페이스, 투아렉, 테라몬트까지 5개 모델을 출시하며 SUV 라인업을 강화,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티록의 아랫급 모델인 티크로스(T-cross)는 국내에 출시하지 않는다.

출시 현장에선 드라이빙 퍼포먼스로 티록의 역동성을 보여줬다

지난 1월 29일, 국내에 처음 선보인 티록을 만나기 위해 서울 대치동의 SETEC을 찾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행사가 쉽지 않은 상황임에도 온라인이 아닌 현장 이벤트를 마련했다는 건 그만큼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 아니면 티록의 많은 부분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였을까? 안전한 행사를 위한 철저한 방역 절차와 넉넉하게 떼어놓은 좌석 사이 거리에서 그동안 다닥다닥 밀집해 현장을 지켜보던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가 새삼 실감나기 시작했다.

도심형 SUV지만 가벼운 오프로드 정도는 문제없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출시 행사의 포문을 연 것은 신나는 음악과 함께 무대를 누비는 3대의 티록이었다. 마치 뮤지컬 공연을 보듯 음악에 맞춰 차량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역동성을 표현했다. 도심형 SUV지만 비포장도로나 가벼운 오프로드 정도는 문제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대 한쪽 요철이 깔린 길을 전진과 후진으로 거뜬히 넘어 다닌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영상들을 볼 수 있겠지만 이만큼의 박진감은 현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까지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사진에선 짧고 뚱뚱해보이는 인상이지만, 실제로 보면 비율이 좋다

차량에 대한 소개를 마친 후 잠깐의 시승시간이 주어졌다. 서울 시내에서 1시간의 테스트는 그냥 가볍게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시국에 따끈따끈한 새 차를 타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할 일이다.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보니 땅딸막해 보이던 사진에서와 달리 실물은 비율 좋은 차체가 인상적이다. 살짝살짝 각을 세워놓은 전체적인 외관이 훨씬 젊은 느낌을 준다. 전면부의 그릴과 헤드라이트의 조합은 폭스바겐 SUV 라인업의 패밀리룩으로 통일감을 부여했다. 방향지시등을 겸하는 LED 주간주행등은 안개등을 감싸고 있는데, 무뚝뚝하지만 귀여운 사내아이 같은 표정이어서 귀여워 보인다.

실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잘 조합해 누구나 금방 적응할 수 있는 구성이다

실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전환점에 서 있는 듯하다. TFT 스크린으로 선명하고 또렷한 화질을 보여주는 계기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위한 센터 스크린 등은 충분히 디지털적인 요소지만,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센터 스크린 주변에 아날로그 방식의 다이얼과 퀵 메뉴 버튼을 배치하고, 하단 공조장치 제어부 역시 아날로그 버튼과 다이얼로 구성했다. 요즘에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적당히 속도를 조절한 폭스바겐의 선택이 반가울 따름이다. 센터 스크린은 운전자 쪽으로 살짝 기울여 시인성을 높였고, 공조장치 제어부 하단에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를 마련했다.

MQB 플랫폼을 사용해 전체 길이에 비해 긴 휠베이스를 갖춰 동급 대비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공간은 B 세그먼트 SUV치고는 예상보다 넓은 편으로, 폭스바겐의 MQB 플랫폼을 기반으로 해 전장은 4,235mm지만 휠베이스가 2,605mm로 길어 실내 공간 역시 차급보다 넓게 구성됐다. 평균 키 성인 4명이 타기에 불편하진 않겠지만 장거리 이동 시에도 안락하다고 말하기도 조금 어려운 수준이다. 근래에는 이 점을 고려해 뒷좌석에 슬라이딩이나 리클라이닝 기능을 넣기도 하는데, 티록 역시 다음 변경 때는 적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수납공간으로는 우선 트렁크가 기본 445L에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최대 1,290L까지 늘어난다. 시트 하단에도 부드러운 드라이빙 슈즈나 글러브, 실내 청소용 걸레 등을 넣어놓기 좋은 서랍이 있고, 글러브 박스 도어 안쪽 면에는 동전과 신용카드 등을 보관할 수 있는 홈을 더했다. 이런 소소한 아이디어들이 의외로 편의성을 높여주는 부분들이다.

파워트레인은 2.0 TDI 엔진 1종으로 높은 성능과 낮은 CO2 배출량을 두루 갖췄으나,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티록은 직렬 4기통 2.0 TDI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시장이 점차 전기나 하이브리드 같은 친환경 쪽으로 전환되고 있고, 머지않은 시기에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디젤이 퇴출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디젤 게이트의 뼈아픈 과거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디젤 엔진 차량을 선보였다는 건 단순히 패기나 오만이 아닌, 잘못한 부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완벽한 수정, 보완이 이루어져 자신있게 선보일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파워트레인 선택권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수입 브랜드의 한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폭스바겐의 디젤 엔진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CO2 배출량은 124g/km으로 가솔린 엔진과 비교해도 오히려 앞설 정도로 배출가스를 잘 관리했다. 자신감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디젤엔진다운 우수한 연비에 스타트 앤 스톱 기능으로 배출가스는 줄이고 연비는 높인다

성능은 최고출력 150마력/3,500-4,000rpm, 최대토크 34.7kg‧m/1,750-3,000rpm으로, 최고속도 205km/h, 제로백 8.8초의 준수한 성능을 갖췄다. 하지만 이 차에 기대하는 건 최고 성능보다는 연비일 터. 복합 연비 15.1km/L, 도심 13.8km/L, 고속도로 17km/L로 경제성을 기대하는 소비자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갖추고 있다. 연비 향상을 위해 스타트 앤 스톱 기능을 더해 정차 시 알아서 시동이 꺼지고 켜지는데, 셀 모터로 구현하는 방식임에도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시동을 걸어줘 불편하지 않다.

ACC 기능 정도면 전 사양에 적용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방 추돌 경고와 긴급 제동 시스템, 다중 충돌 방지 브레이크, 프로액티브 탑승자 보호, 보행자 모니터링, 블라인드 스팟 모니터링과 후방 트래픽 경고 등 운전자 보조 시스템은 부족함 없이 갖추고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파노라믹 선루프는 프리미엄 모델 이상에만 적용되는데, 선루프야 그럴 수 있지만 ACC는 전 사양에 기본 적용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내공간 정숙성은 차급 이상이다. 파노라믹 선루프는 프리미엄 이상 트림에만 적용된다

디젤 엔진을 얹었음에도 실내 소음도는 매우 만족스럽다. 동급 경쟁자들을 떠올려보면 내연기관을 탑재한 모델 중 이보다 조용한 차량을 찾기란 어려울 듯하다. 시승 내내 영상 촬영을 위해 동승자와 함께 대화를 나눴지만, 한 번도 소음 때문에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말이 끊긴 적은 없었다. NVH 측면에서는 한두 차급 위 모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우수하다.

뒤 서스펜션은 토션빔이 적용됐지만 멀티링크 못지 않은 충격 흡수력으로 승차감이 우수하다

시내 주행 중심이어서 고속에서의 움직임은 테스트하지 못했지만, 중저속에서는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운 핸들링을 보여준다. 7단 DSG도 부드러운 변속으로 티나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뒤 서스펜션은 한국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토션빔 방식이지만, 막상 타보면 멀티링크 방식 못지않을 만큼 노면의 충격과 진동을 잘 걸러내고, 과속방지턱에서의 충격도 크지 않다. 단가와 성능 사이에서 적절하게 타협했다.

독일 현지보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표는 달라진 한국 시장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가격은 기본형인 스타일 트림이 3,599만 2,000원, 프리미엄 3,934만 3,000원, 프레스티지 4,032만 8,000원(모두 부가세 및 개별소비세 3.5% 포함)이고, 할인 혜택과 보상 프로그램 등 최대 할인을 받으면 스타일 트림을 3,200만 원대부터 구매할 수 있다. 최근 동급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아 셀토스와 비교해보면 선택 가능한 모든 옵션(튜온 파츠는 제외)을 더한 가격이 3,227만 원이니, 수입차 치고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다. ‘수입차 시장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폭스바겐코리아를 위해 폭스바겐 본사에서 독일 현지보다 적게는 1,200만 원, 많게는 1,500만 원 싼 가격표를 달아줬기 때문으로, 확실히 수입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이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다.

우수한 성능에 경쟁력 있는 가격까지 갖춰 소형 SUV 시장에서의 선전이 기대된다

폭스바겐 티록은 한발 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성능적인 면이나 가격적인 면에서 나쁘지 않은 포지션을 갖춰 경쟁력 있는 선택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입차가 ‘과소비’나 ‘사치’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보편적인 시각보다 자신의 만족감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높아진 만큼 폭스바겐 티록이 소형 SUV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지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상단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