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이나 물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와. 예술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다. 이런 상황의 면면들을 보면 뭔가 기발하거나, 절묘하거나, 극단적이거나, 감동적인 경우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수식어들은 모두 모터스포츠에 가져다 붙여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모터스포츠와 예술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고 통하는 부분도 꽤나 많다.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모터스포츠에서 다양한 소재를 얻거나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대부분은 사진이나 영상 혹은 그림이겠지만, 조금 다른 것들도 있다. 

 

합성도 이 정도면 예술

아무런 설명 없이 ‘무제(Untitled)’란 제목이 붙은 작품들이 있다. 반면 이 작품은 분해(Disintegrating)’ 란 제목의 사진 연작이며 딱히 설명없이도 주제를 알 수 있다. 아마 사진이 시간 속의 순간순간을 멈춰 세울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실제 자동차처럼 보이지만 실제 자동차가 아닌 정밀하게 축소된 모형을 분해한 것이다. 정밀 축소 모형에서 떼어낸 부품 하나하나를 얇고 투명한 낚시줄에 묶어 사진을 찍고 이 사진들을 컴퓨터에서 합성해 만들어 낸 것이다. 합성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부품 하나 하나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보통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이 놀라운 작업을 해 낸 사람은 Fabian Oefner(파비앙 외프너). 1984년 스위스 태생으로 아티스트이자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며, 제품 디자인을 전공 했다. 철저하게 과학의 지배를 받는 모터스포츠와 자동차에서 감각과 감정의 세계를 끌어내고 그 미세한 경계를 걸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그는 이미 유명인사다. 작년 11월, 노루페인트가 주관하는 NTCS(노루인터내셔널 컬러트렌드쇼)에 초청 연사로 초대되어 과학과 컬러를 잇는 실험적인 기법과 미래 트렌드를 소개 하기도 했었다. 이런 그를 모튤이 만나 봤다.

 

  

보이는 에어로 다이내믹

옆면의 로고도 있지만 이 자동차는 페라리의 캘리포니아 T다. 차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윈드 터널 안에서 송풍기를 이용해 형광도료를 뿌린 후 촬영한 이미지다. 마치 빠른 속도로 우주 혹은 미지의 공간을 달린 후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에어로 다이니믹의 중요성을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페라리니 그와 함께 작업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페라리는 TED에서 그의 이야기를 봤다며 연락을 해왔고, 과학과 컬러를 잇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함께 일 하기로 결정한 후 페라리 마라넬로 공장을 방문 했는데 그때까지도 대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공장을 둘러 보는 과정에서 풍동실험을 하는 윈드 터널에서 꽤 흥미로움을 느꼈다고. 과학적인 원리도 원리지만, 그 곳에서 달릴수록 낮게 깔리는 차를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에너지와 시간, 자원이 투입되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람에 형광페인트를 실어 보내면 어떨까란 생각이 즉흥적으로 들었고 이를 실행했다. 물론 어마어마한 계산과 시뮬레이션이 있었고, 현재 남아 있는 이미지가 최종 결과물인 셈이다.

 

 

결국은 엔진오일

연소실 내부에서 혼합기가 폭발하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이미지. 실제로 그런 상황을 찍은 사진도 있겠지만 이 이미지는 오일(어쩌면 엔진오일일까?)을 검은 수조에 담긴 물 위에 떨어뜨리고 촬영한 것이다. 기름이 물과 접촉해 화려하게 퍼져나가는 순간을 촬영한 것으로 기름막은 빛의 반사에 의해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Fabian Oefner는 이런 것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약간의 힌트를 주기도 했다. 기름막의 두께에 따라 색은 파란색과 녹색에서 붉은색 계열로 변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다들 과학적인 현상과 예술의 경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모튤은 또 한 명의 예술가를 만났다. 파비앙 외프너의 작품들이 시간 속의 순간순간을 멈춰 세웠다면, Jean-Denis Claessens(쟝 데니스 클라센)과 Edmond Pogo Thonnard(에드먼드 포고 토나드)는 흘러가는 여러 순간들을 하나의 사물에 담았다.

레이스가 끝난 후 
쟝 데니스 클라센은 어린시절부터 카레이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레이싱카에 붙어 있는 각종 스폰서의 스티커(리버리)를 좋아했는데, 몇 년 전 친구의 작업장에 놀러 갔다가 구석에서 더럽지만 리버리가 붙어 있는 오래된 레이싱 머신의 후드를 발견했다고. 그걸 보는 순간 이 프로젝트를 떠올렸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깨끗한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긴 시간 주행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그 상처들은 기록이며 고유한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이들의 작업은 실제 경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 그에 맞춰 정도를 더 하는 작업을 하거나 깨끗한 후드의 경우 실제 경기를 마친 것처럼 꾸미기도 한다. 사용하는 재료는 진짜 오일이나 고무와 페인트 등 레이싱 경기 중 후드에 묻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의 제목들은 After the Race(레이스가 끝난 후)다. 어쩌면 레이싱 경기가 끝난 후의 모습을 표현한 일종의 디오라마다. 우리가 보는 사진에서 레이싱 머신은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레이싱 경기가 끝나면 처음의 그 상태일 수는 없다. 달리는 동안 앞차의 배기가스와 타이어 분진, 기름과 먼지 등이 묻게 되니까.  특히 내구 레이스처럼 12시간이나 24시간을 달리면 자동차는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다.

이들의 작업물에는 유독 포르쉐가 많다. 왜 그렇냐는 질문에 전설적인 레이싱카들이 많고 그만큼 파츠를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물론 그는 BMW나 애스턴 마틴과 같은 다른 브랜드의 자동차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들은 F1 레이싱카 전체를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꾸며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그전에 포르쉐 993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주기 원하는 사람의 포르쉐를 꾸며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어쩌면 모튤이 왜 이런 인터뷰를 진행 했는지 궁금해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궁금증의 답은 이렇다. 엔진오일은 엔진을 보호하는 것과 함께 자동차가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어쩌면 예술과 삶의 관계도 비슷하다. 예술이 삶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으니까. 이 멋진 문구는 명동 성당 건너편의 삼일로 창고 극장 간판에 있던 문구의 패러디다. 예술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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