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5일 일요일 아침,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난지 한강공원을 ‘제3회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경기대회’ 참가자들이 가득 매웠다. 경기 시작과 함께 물로 뛰어 드는 사람들, 끊임없이 팔을 저어1.5㎞의 수영을 마치고 바꿈터에서 자전거에 올라 40㎞ 사이클 코스를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라톤 10㎞를 달려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면 모든 경기가 끝난다.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경기대회’는 올림픽 코스에서 진행되는 트라이애슬론 경기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는 철저히 홀로 달리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할 선수는 조금 특별하다. 수영, 사이클, 마라톤 경기 모두를 두 사람이 함께 한다.
사랑하는 은총이에게
‘은총이와 함께하는’이라는 대회 명칭에서 이 대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지만, 은총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은총이는 올해 13살을 맞이한 소년의 이름이다.
모든 아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은총이에게는 정말로 뜨거운 부모님의 사랑이 함께했다. 은총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치료가 어려운 여러 가지 병으로 의사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은총이의 부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차례의 수술과 각고의 노력 끝에 은총이는 조금씩 호전되었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군산에서 분당까지 오가며 꾸준한 재활치료를 계속한 끝에 은총이는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은총이와 은총이 아버지, 두 사람이 함께 철인삼종경기에 나오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은총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가 밀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은총이 아버지는 어느 날 우연히 유모차를 뛰면서 밀게 되었고, 평소보다 더욱 좋아하며 기쁨을 표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마라톤 경기 참가를 결심하게 된다.
평소 운동은 걷기와 숨쉬기가 전부였던 박지훈 씨의 삶은 은총이로 인해 큰 변화를 맞이했다. 그저 은총이가 느끼는 달리는 즐거움, 행복해 하는 얼굴을 위해 본격적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은총이가 걷게 된 재활치료를 계기로 세상의 또 다른 은총이들에게 용기를 주기위해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 경기대회’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보건복지부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등록되어 있는 장애어린이가 30만 명 정도지만, 아마 등록되지 않은 장애어린이들을 포함하면 국내에 약 100만 명 정도의 은총이 같은 어린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많이 돈이 필요한 진료비와 재활치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함께 철인경기를 준비하는 군산클럽 회원들과 함께 ‘은총이와 함께하는’ 첫 철인3종 경기대회를 어렵게 개최하게 되었다.
“약 150여명의 참가선수와 함께한 군산대회 이후 은총이와 함께하는 대회를 계속 열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철인연합회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2년 전 여주에서 열린 첫 대회를 시작으로 이번 3회째까지 이어 올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에서 큰 대회나 행사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2회째부터는 서울시와 한국지역난방공사의 후원으로 난지한강공원에서 대회를 진행하게 되었죠. 너무나 감사하게도 3회째 대회는 약1,300명이 신청 해주셨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800여명의 선수만을 접수하여 이번 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은총이 아버지에게 들은 이 대회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은총이 아버지는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경기대회’에 참가하고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모아진 참가비 전액은 전국의 100만 명의 은총이들을 위한 장애어린이 재활병원설립기금으로 기부된다.
보트, 트레일러, 휠체어 그리고 자전거
보트, 자전거 트레일러, 휠체어 위에서 은총이는 경기에 참가하는 아버지가 모든 코스를 완주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은총이와 함께 철인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다. 대회는 매번 다른 지역에서 열리기 때문에 경기마다 보트와 자전거, 트레일러, 휠체어를 옮겨야 한다. 은총이네 가족이 살고 있는 군산에서 대회장이 열리는 지역까지 이동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도 군산의 철인클럽 회원들의 수고로 많은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철인 대회를 준비하며 어려웠던 에피소드들을 나누었다.
철인3종 경기의 수영과 마라톤은 직접 몸을 움직이는 종목이기 때문에 사이클보다는 조금 더 쉽게 준비 할 수 있었다. 처음 철인3종 경기의 참가를 준비하면서 사이클 경기에 참가하기위해 은총이 아버지는 많은 고생을 했다. 일반 로드 바이크에 보급형 트레일러를 장착해 참가했는데, 합판과 각목으로 개조한 트레일러에 자체 제작한 쿠션을 깔고 어린 은총이를 태워 대회에 참가했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준비하고 참가한 첫 경기는 무거운 트레일러 무게로 고생했었다.
매년 성장하는 은총이의 키와 몸무게를 버티기에 기존의 트레일러로는 부족했다. 6년 동안 2번의 트레일러를 교체해야했다. 최근 많이 성장한 은총이에게 맞는 트레일러를 국내에서 구입할 수도 없었다. 수소문 끝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제작된 트레일러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팀 은총이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레일러 문제는 해결했지만 많은 경기에 참가하면서 손상된 자전거를 교체해야 할 시기가 왔다. 주변의 도움으로 새로운 자전거를 구했지만 트레일러를 자전거에 장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새롭게 준비한 트레일러를 장착하고 달리기 위해서는 둥근 시트포스트를 사용하고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우면서 튼튼한 자전거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트렉 에몬다 ALR이라는 모델의 소개를 보고 트렉바이시클코리아에 구입을 문의했다. 은총이의 사연을 전해들은 트렉바이시클코리아는 지난 7월 에몬다 ALR6 모델과 함께 프리시전 핏(PRECISION FIT)을 통한 자전거 세팅, 헬멧, 의류, 용품 등을 지원했다.
대회 전날인 토요일 오후, 막히는 도로사정으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자전거, 트레일러, 휠체어를 기다리며 수영경기를 준비했다. 은총이와 함께하기 위해서 보트에 바람을 채우기 시작한다.
“은총이는 수영, 사이클, 마라톤 중 수영을 가장 좋아합니다. 물놀이를 즐길 기회가 철인3종경기밖에 없기 때문이죠. 수영 다음으로 사이클과 마라톤의 출발 순간을 가장 즐깁니다. 그리고 내일 경기에서 모든 선수들이 부상 없이 완주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내일 경기에서 즐거워 할 은총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스윔수트와 보트를 끄는 끈, 부자를 이어주는 안전 허리띠를 꼼꼼히 챙겼다. 다행히 어둠이 내리기 전 트레일러와 휠체어가 도착했다.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휠체어, 보트를 바꿈터로 옮기고 대회 준비를 마쳤다.
작은 도움의 손길들이 모여 만든 희망
대회 당일인 9월 13일 오전, 박지훈 씨의 말처럼 은총이는 빨리 보트에 타기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한강의 만조로 인한 거친 물살로 많은 참가자들이 수영에서 포기 했다. 그러나 ‘팀 은총이네’는 최선을 다했다. 사이클경기가 끝나고 이어진 마지막 10km 마라톤 경기, 언제나 옆에서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는 서포터즈가 있어 든든하다.
은총이 아버지는 경기를 마친 선수들과 응원 나온 선수 가족들 등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3시간 40분 제한시간(Cut Off)을 약 20분 남겨두고 통과한 박지훈 씨는 완주의 기쁨과 함께 거친 숨을 고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힘든 경기를 무사히 끝낸 은총이 아버지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 빛나보였다. 전날 대회 준비를 하면서 초조하고 애타는 마음이 가득했던 얼굴은 사라지고 세상 그 어느 아버지 보다 밝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지난 2회 대회가 끝난 후 눈물이 나더라구요. 은총이와 제가 뭐 길래 이 많은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하고 모금도 해주시고 이렇게 도움을 주실까. 한 번에 많은 금액을 기부 받는 것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천원, 이천원 이런 작은 도움들이 그저 감사합니다.”
철인3종 경기는 프로 선수도 피니쉬 후 한동안 거친 숨을 가라앉힐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경기이다. 은총이 아버지는 경기를 마치자마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몰려드는 취재진들에게 미소를 잊지 않고 인터뷰와 기념사진 촬영을 이어갔다. 대회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박지훈 씨만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최선을 다한 입상 선수들의 시상식을 마치며 내년에 열릴 2016년 제4회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경기대회를 기약했다. 은총이 아버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트럭에 트레일러, 휠체어, 자전거를 싣고 군산으로 돌아갈 준비로 클럽 회원들과 분주히 움직였다.
2014년 3월, 서울시의 도움으로 마포구 상암동에서 착공식을 가진 장애어린이 재활병원은 오는 2016년 봄 개관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다. 장애어린이 재활병원을 위한 기금 마련과 장애어린이의 재활을 돕기 위해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3종경기대회’는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팀 은총이네’는 2015년 9월 20일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트라이애슬론 국제대회 인 ‘IRONMAN 70.3’ 대회에도 참가 할 예정이다. 은총이 부자의 선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또 다른 은총이와 부모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이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글
구민정 koomin@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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