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50km가 넘는 빠른 속도로 거친 산길을 내달리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다운힐(Downhill) 종목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과격한 스포츠 중 하나일 것이다. 점프대에서 도약하는 순간 수십미터를 날아 땅에 착지하고, 급격한 코너에서는 지면에 몸이 닿을 듯 옆으로 누워 가파른 벽처럼 솟구친 길을 타고 롤러코스터처럼 달린다.
하지만 이 같은 거친 코스를 달리는 레이스에서 자전거의 타이어가 바퀴에서 뽑혀나간다면 그처럼 재수 없는 일이 또 있을까? 제대로 달리기는커녕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산에서 내려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겨루는 월드컵에서.
:2014 UCI 월드 컵 다운힐(DHI) 레오강 경기에서 분리된 타이어와 함께 피니쉬로 들어오는 아론 그윈과 정비팀의 인터뷰.
아론 그윈의 자전거는 뒷바퀴의 타이어가 바퀴에서 분리되었고, 노면에서 미끄러지며 컨트롤 되지 않는 자전거를 타고도 그는 중상위권의 성적을 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실 아찔한 위험에 처하긴 했지만 이 사건으로 아론 그윈은 그 실력을 만천하에 알렸으니 꼭 나쁜 일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두 번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왕좌를 노리는 아론 그윈
지난 주말, 6월 13일과 14일 양일간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UCI 월드 컵 다운힐(DHI) 경기 3차전이 열렸다. 다운힐 경기는 예선의 기록을 바탕으로 성적이 나쁜 선수가 먼저 출발, 성적이 뛰어난 선수일수록 늦게 출발한다. 우승 후보는 거의 마지막에 경기를 치르는 셈이다. 피니쉬라인에는 핫시트라 불리는 ‘가장 빠른 선수의 자리’가 있고 경기 성적이 가장 좋은 선수가 이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데, 핫시트에 앉아있는 선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나타나면 이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핫시트에 한번 올라가서 마지막까지 내려오지 않는 선수가 바로 대회의 우승자인 셈이다.
아론 그윈(Aaron Gwin, 스페셜라이즈드)은 스페셜라이즈드의 다운힐바이크 데모를 타고 출전했고 예선 순위 3위의 좋은 기록으로 결승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론 그윈은 UCI 월드컵 1차전을 리드한 로이 브루니(Loic Bruni)보다 2.5초 늦은 기록으로 바짝 추격하는 중이었고, 2015 UCI 월드컵 3차전 1위의 왕자를 놓고 예선부터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약간만 차이를 좁힌다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운명의 장난과 역경을 이긴 승리
:2015 UCI 월드 컵 다운힐(DHI) 레오강 경기 스케치
그리고 결전의 시간, 아론 그윈이 출발했다. 그러나 페달을 밟은 직후 변속기가 트러블을 일으키며 체인이 스프라켓에 휘감기며 끊어져버렸다.
“저도 놀랍습니다. 체인이 끊어졌고 오늘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론 그윈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스페셜라이즈드의 분석에 의하면 아론 그윈은 페달을 밟지 못해 0.8초 정도의 기록을 손해봤다. 하지만 아론 그윈은 미국의 챔피언답게 노련한 기술로 경기를 진행했다. 산 정상에서 굴러 내려가는 바윗덩어리처럼, 페달을 밟아 가속할 수 없으니 속도를 덜 줄이고 몸을 숙여 공기저항을 줄이면서 속도를 유지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코스 중간을 제외하고는 크게 페달링이 필요한 구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몸을 숙이고 빠르게 내려가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사실 체인이 휠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로 떨어졌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죠.”
: 각자의 자리를 지키던 1~3위 랭크된 선수들은 마치 믿을 수 없다는 허무한 표정으로 아론 그윈의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 선수의 불행이 경쟁자들에게는 행운일 수 있다. 어쩌면 아론 그윈의 자전거에서 체인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 내심 좋아했던 선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져버렸다. 체인 없이 굴러 내려온 아론 그윈이 제일 빨랐다! 아론 그윈에게 핫시트를 내어주고 물러나는 선수들이 얼마나 황당한 기분이었을지는 사진으로 짐작해보기 바란다. 아론 그윈은 2위인 코너 피어론(Connor Fearon)과 1.3초 차이로 12번째 월드컵 우승, 포트 윌리엄(Fort William)에서 열린 브리티시 다운힐 시리즈 2차(British Downhill Series #2 - Fort William)전에 이은 2015 시즌의 두 번째 승리를 거머쥐었다.
사실 이런 트러블은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한 선수가 이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겪을 확률은 더욱 낮으니, 아론 그윈은 얄궂은 운명이 선택한 남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경을 이기고 얻은 승리이기에 애런 그윈의 레이스는 수많은 이들에게 더욱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애런 그윈의 다음 월드컵 경기 모습은 오는 7월 4일부터 스위스의 렌쩨르하이데(Lenzerheide)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구민정 koomin@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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