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 맞이한 2015 투르 드 코리아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손꼽는 사이클링 스포츠 이벤트인 투르 드 코리아(Tour de Korea)가 지난 일요일 서울 스테이지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총 8일간 진행된 경기에서 투르 드 코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참가한 월드투어 팀인 오리카-그린엣지(Orica-GreenEdge)와 팀 리더인 캘럽 이완(Caleb Ewan)은 수준 높은 기량으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으며, 각 스테이지에서의 우승과 함께 스프린트(Spring), 산악왕(K.O.M., King of Mountain), 베스트 영 라이더(Best Young Rider)의 자리를 놓고 겨루는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은 사이클 팬들을 흥분과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마지막 경기가 열렸던 14일의 서울 스테이지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투르 드 코리아를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기 위해 올림픽공원을 방문했다. 평화의 광장을 출발한 선수들 행렬은 마포대교 반환점을 돌아와 올림픽회관 앞에 설치된 아치를 통과하며 2015 투르 드 코리아 1,272km 대장정의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투르 드 코리아를 달리는 모든 선수들의 목표는 바로 승리다. 팀의 승리를 위해 묵묵히 달리는 선수들, 팀 리더의 승리를 돕기 위해 온 몸으로 바람을 막아내는 선수들, 그리고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 앞으로 뛰쳐나가 결승선을 향해 돌격하는 선수들 모두가 승리를 향해 달리고, 그 중 가장 강한 선수가 영광스러운 챔피언 유니폼인 리더 저지(Leader Jersey)를 입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승리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리더 저지를 입는다는 것은 가장 강한 선수임을 알리면서 동시에 모든 라이벌들의 ‘목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선수들 가운데에서도 리더 저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결코 숨거나 도망칠 수 없다. 가장 강한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레이스가 끝나는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올해 투르 드 코리아의 리더저지는 프랑스의 스포츠웨어 브랜드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가 공급한다. 최근 3년간 투르 드 코리아의 공식 유니폼을 제공해온 르꼬끄 스포르티브는 국내에서 패셔너블한 스포츠웨어로 잘 알려져있지만, 지난 몇 십년간 투르 드 프랑스의 리더저지를 만들어온 사이클링스포츠와 깊은 인연을 가진 브랜드다.

이렇게 8일간의 레이스를 마치고, 올해는 투르 드 코리아에 참가한 20개 팀 총 119명의 라이더들 중 단 두 명의 선수가 이 리더 저지들을 입게 되었다. 2015 투르 드 코리아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는 각 부문 우승자들을 소개한다.

베스트 영 라이더 - 캘럽 이완 (오리카-그린엣지)

베스트 영 라이더 부문의 승자를 상징하는 흰색 저지는 만 23세 미만의 참가 선수 중에 누적 경기 기록이 가장 빠른 선수에게 수여된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선수들 간의 종합우승자에게 수여되는 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올해의 투르 드 코리아에서는 오리카-그린엣지의 신예이자 리더로 참가한 캘럽 이완 선수가 마지막 날 시상식에서 화이트 저지의 주인공이 되었다.

캘럽 이완은 1994년생의 어린 선수로 아직은 많은 경험을 쌓아갈 시기다. 하지만 이미 주니어시절 2011년 UCI 월드챔피언십 트랙 사이클 옴니엄 부문에서 우승하고, 2012 주니어 월드챔피언십 도로 사이클경기에서 2위, 2014 U23 월드챔피언십 남자 개인 도로 사이클경기에서 2위를 차지하며 장차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제목임을 스스로 입증한바 있다.

이번 투르 드 코리아에서 캘럽 이완은 최고의 신인 선수임을 입증해 보였다. 4번의 스테이지 우승은 물론 종합우승을 포함한 3개 부문 저지를 혼자서 차지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이클 팬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한국계 호주 이민자 3세인 캘럽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그의 우승을 응원하였으며, 이완 선수 역시 어머니의 고향에서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할 것을 경기 시작 전 인터뷰를 통해 밝혔고 그 약속을 지켜내었다. 2015 투르 드 코리아 베스트 영 라이더 캘럽 이완의 성장이 벌써 기대가 된다.

스프린트 - 캘럽 이완 (오리카-그린엣지)

서울에서 진행된 종합 시상식에서 베스트 영 라이더에 이어 푸른색 스프린트 저지의 주인공도 캘럽 이완이었다. 하지만 스프린터 부문은 마지막 스테이지8 까지 주인자리를 두고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부분이다. 캘럽 이완과 스프린트 포인트 부문 2위인 아반티 레이싱 팀(Avanti Racing Team)의 패트릭 베빈(Patrick Bevin)의 점수 차이가 고작 1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투르 드 코리아에서 가장 빠른 선수에게 주어지는 스프린트 저지는 모든 스프린터들의 꿈이자 목표다. 경기 코스 중반에 스프린트 포인트 기록 지점을 4등 이내로 통과하거나, 마지막 결승 지점을 15위내에 통과하면 스프린트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중간 스프린트 기록 지점에서 부여되는 포인트는 최대 5점이지만 결승 지점에서 부여되는 스프린트 포인트는 15점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 종합 시상식에서 푸른색 저지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스프린터는 매일의 경기에서 꾸준히 앞자리에 들어와야 한다.

마지막 날 경기의 스타트 라인에서 캘럽과 베빈의 점수 차는 단 1점, 그리고 이 날 걸려있는 스프린트 포인트는 총 점수 25점에 달했기 때문에 두 스프린터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캘럽 이완은 사고 없이 완주한다면 종합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데도 스프린트 저지까지 차지하기위해 위험부담이 큰 스프린트 경쟁에 뛰어들지 여부가 주목되었다.

선수들의 무리인 펠로톤(Peloton)이 반환점인 마포대교를 지나 올림픽대교를 넘어 올림픽 공원을 4주회 도는 마지막 도심 서킷에 도착했고 이때부터 스프린트 포인트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포인트는 펠로톤에서 떨어져 나와 앞을 달리던 4명의 선두그룹에 속해있던 서울 사이클링 팀의 이기석 선수가 차지했다. 그러나 캘럽 이완과 패트릭 베빈의 경쟁에는 아무 영향이 없는 상황.

이윽고 두 번째 중간 스프린트 지점에서 캘럽 이완은 팀원 아담 블라이스(Adam Blythe)의 도움을 받아 스프린트 포인트를 획득한다. 그러나 베빈 패트릭 선수 역시 중간 스프린트 포인트를 차지하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시상식에서 스프린트 저지를 차지한 것은 캘럽 이완이었지만 그 결과 역시 1점차이의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최고의 스프린터에게 주어지는 푸른색 저지는 캘럽 이완 선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장차 마크 카벤디쉬(Mark Cavendish) 마르셀 키텔(Marcel Kittel)과 같은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골라인을 넘게 될 이완의 모습을 그려본다.

킹 오브 마운틴 - 장경구 (코레일 사이클링 팀)

흰 바탕에 붉은 반점이 수놓인 킹 오브 마운틴 저지는 4개 부문 저지 중 가장 화려하다. 화려한 만큼 혹독하고도 처절하기 까지 한 산악구간 경쟁에서 승리한 강한 정신력의 선수만이 입을 자격을 부여받는 저지다. 자전거를 타본 사람이라면 오르막길이 얼마나 숨이 차고 힘든 것인지 알 것이다. 그곳을 가장 빨리 오르는 선수가 킹 오브 마운틴 저지를 입게 된다.

장경구는 지난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개인도로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도로 사이클의 최고의 기대주로 떠오른 선수다. 9년 전 투르 드 코리아 경기가 처음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올해는 우리나라 선수가 한 개의 스테이지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장경구 선수는 스테이지 7 종료 후 킹 오브 마운틴 저지를 확정지으면서 개최국의 자존심을 지켰다.

장경구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투르 드 코리아 산악왕에 오른 오르막과 개인독주 능력을 골고루 갖춘 올라운더 타입 선수다. 강한 어택을 여러 번 시도하여 경쟁자들을 모두 지치게 만든 후 혼자 골라인을 넘는 전략을 즐겨 사용하는데 체력과 경기운영 능력은 물론 엄청난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경주 방식이다. 이번 투르 드 코리아에서는 지난해에 비해 오르막 구간이 줄어든 편이었다. 3, 4 등급의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산악구간이 스테이지 중반에 지정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가 쉽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코스가 쉬워지면 모든 선수들이 더욱 빠르고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장경구 선수는 소수의 선두그룹이 펠로톤을 뛰쳐나와 경기를 이끌었던 스테이지 2, 5, 7 세 번의 경기에서 가장 빠르게 오르막을 정복하였다. 누구도 장경구 선수를 따라올 수 없었다. 하지만 8일의 투어 레이스 기간 동안 매일 선두의 브레이크어웨이 그룹에서 달리는 것은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장경구 선수의 소속팀인 코레일 사이클링 팀은 후방에서 이를 전폭 지원했다.

사이클 투어 레이스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리더의 목표를 위해서 팀원들이 희생을 감내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비정하지만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 같이 노력하는 모습이 사이클 경주의 묘미이기도 하다. 스테이지 4에 있던 두 번의 3, 4 등급 산악구간에서 같은 코레일 사이클링 팀원인 정충교 선수가 장경구 선수를 지원하며 함께 달렸다.

장경구 선수가 산악구간에서 경쟁에 합류하지 않고 쉬는 동안 다른 라이벌이 산악 포인트를 차지한다면 킹 오브 마운틴 저지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장경구 선수 대신 정충교 선수가 선두그룹에 달리며 점수를 차지해 다른 경쟁 팀의 선수가 산악왕 포인트 순위에서 장경구 선수를 추격하는 것을 막고, 장경구 선수는 다음날 경기를 위해 회복과 에너지 충전에 전념한 것이다. 스프린터인 정충교 선수 역시 구간 우승 등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팀 리더인 장경구 선수를 위해 자신을 과감히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이클 경기에서 이런 모습을 가장 명예로운 스포츠맨십으로 여긴다. 마지막 스테이지가 종료된 이후 인터뷰에서 장경구 선수는 킹 오브 마운틴 저지를 지켜준 팀원들에게 감사하며 마지막 날은 코레일의 스프린터를 위해 달렸다고 이야기 하였다. 아마도 정충교 선수를 이야기한 것이리라. 그리고 마지막 종합 시상식에서 코레일 사이클링 팀원들이 만들어낸 장경구 선수의 킹 오브 마운틴 저지는 무엇보다 화려하게 빛났다.

개인종합 - 캘럽 이완 (오리카-그린엣지)

이번 투르 드 코리아는 8개 구간 전반에 걸쳐 산악구간이 적은 코스로 구성 되었다. 최종 경기인 서울 스테이지를 골인한 이후에도 1위에서 개인종합순위 23위의 선수까지 누적기록의 시간차가 채 1분을 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순위경쟁이 있었다. 매일매일 경기에서 꾸준히 선두로 들어오며 차근차근 포인트를 누적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개인 종합우승을 상징하는 명예로운 옐로우 저지는 결국 캘럽 이완 선수의 차지가 되었다. 스테이지 2의 구간 우승이후 연승을 달리며 보너스 타임을 쌓아간 이완은 다른 종합순위 경쟁자들과 시간차를 벌려나갔고 마지막 날 서울 올림픽 공원의 피니쉬 라인을 넘으며 종합우승을 확정 지었다. 마지막 구간에서도 이완은 다섯 번째로 경기를 마쳐 젊은 선수라고 믿기 힘든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8일간의 레이스에서 누적된 기록을 비교했을 때, 이완과 개인 종합 2위였던 패트릭 베빈의 시간차는 고작 4초였다. 둘은 스프린트 저지 경쟁에서도 같은 순위로 경기를 마무리 했으니 패트릭 베빈은 이완에게 패배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빈의 소속팀 아반티 레이싱이 팀 종합우승을 거두었다. 팀 종합우승은 개인 종합우승 다음으로 높은 가치의 승리다. 이완의 소속팀 오리카 그린엣지는 팀 종합 순위에서 10위에 그쳤다. 팀 순위를 과감히 희생하는 대신 이완의 승리를 전력으로 지원한 것이다.

스프린터에게 유리한 코스로 구성되었던 2015 투르 드 코리아였지만 만약 이완이 오리카 그린엣지의 화력을 지원받지 못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골라인 앞에서 아무리 강한 질주를 보여주는 스프린터라도, 애초에 골라인 앞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경쟁에 참여할 수조차 없다. 단거리 전문가인 스프린터를 선두그룹 앞자리에 데려다 놓는 것은 동료 선수들의 역할이다. 오리카 그린엣지는 이완의 우승을 위한 특급 열차였을 뿐 아니라 경기 중반 펠로톤 앞쪽을 달리며 우승을 노리는 브레이크어웨이 그룹을 추격해 이완의 경쟁자들을 무력화 시키는 역할까지 도맡아 했다.

이 강력한 월드 투어 팀의 능력은 8일간 경기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강력한 스프린터이자 팀 에이스인 이완의 승리를 믿은 팀원들의 선택이었다. 오리카 그린엣지의 모든 선수들 역시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리더를 위해 팀원들은 철저히 희생했다. 캘럽 이완의 베스트 영 라이더, 스프린트에 이은 개인 종합우승은 오리카 그린엣지의 선수들의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팀워크의 결과물이다.

이번 투르 드 코리아에서 캘럽 이완은 프로 사이클리스트로서 첫 번째 개인종합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어머니와 가족들의 고향인 한국에서의 승리는 더욱 큰 의미가 될 것이다. 또한 8일간 계속되는 투어 레이스에서의 우승은 캘럽 이완의 경기운영 능력을 증명해보인 것이기도 하다. 이번 우승으로 젊은 이완은 전 세계에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투르 드 코리아 역시 뛰어난 우승자를 배출함으로서 세계규모의 사이클 레이스로 한 단계 격상되는 계기를 맞이했다.

8일 동안 진행된 2015 투르 드 코리아에서 형형색색의 저지를 입은 선수들의 경기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뜨겁게 타오른 선수들의 투혼은 챔피언들이 입은 4개 부문의 리더 저지를 더욱 빛내주었다. 그들의 열정에 박수와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더욱 강력한 선수들이 출전하여 멋진 경기를 보여줄 다음 투르 드 코리아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사진제공 : 국민체육진흥공단, le coq sportif

글

문인영 moonyoung@ridemag.co.k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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