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저'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지평선이 보일만큼 드넓은 평원에서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달리는 모습이 가장 대표적인 크루저의 이미지일 것이다. 낮은 시트와 높은 핸들바, 대형 윈드스크린, 푹신한 시트와 새들백 등 여러 요소들 덕분인데, 직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짧은 커브를 만나기라도 하면 부담스러워진다. 상대적으로 직진 상태에서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운동성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크루저로도 스포츠 라이딩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킹 오브 배거’ 같은 레이스를 통해 증명하고 있으며, 브랜드에서는 크루저 형태는 유지하면서 스포티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브랜드인 인디언에서도 스포츠 크루저를 선보였는데, 바로 스포츠 치프가 그 주인공이다.

치프 시리즈는 한때 인디언의 플래그십 모델로 자리했었는데, 지금은 로드마스터와 챌린저, 치프테인 등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다고 치프 시리즈를 단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투어링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모델은 플래그십에 맡기고, 치프 시리즈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모양새로 가며 이번에 신제품을 출시하게 된 것이다.

일단 외관부터가 기존 크루저와는 다른 방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면부의 쿼터 페어링은 크루저 모델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파츠인데, 언뜻 클래식 레이스 모터사이클의 전면부를 연상시키는 모양새다. 콤팩트한 사이즈라 방풍 성능에 대한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스포티함을 보여주는 용도로는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보통 크루저의 핸들바는 최대한 운전자 쪽으로 당기는 구성이 일반적인데, 스포츠 치프는 플랫한 형태에 가까운 핸들바로 스포츠 주행에 맞는 포지션을 연출하는데 도움을 준다. 시트는 높이가 686mm에 불과해 낮은 편이어서 탑승에 부담이 없고, 시트 뒤로 쿠션을 높여 허리까지 받치도록 설계해 급가속에서도 몸이 밀리는 일 없이 주행에 집중할 수 있다. 풋 페그(발판)의 경우 시트보다 앞에 위치한 미들 스텝으로,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어 장거리에서 편안한 포워드 스텝 대신 조종성에 초점을 둔 구성이다.

계기판은 4인치 원형의 터치스크린으로, 라이드 커맨드 시스템이 내장되어 차량 관련 정보는 물론이고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헤드셋 연동을 통한 음악 재생, 전화 송수신 등이 가능하다. 내비게이션은 탑재되어 있으나 국내 법규 등의 문제로 사용은 불가능하다. 스마트폰 연동 시 이동 중 충전하며 사용할 수 있도록 USB 충전 포트도 갖춰져 있는데, 엔진 앞쪽 프레임 사이에 커버에 덮여 숨어있으니 잘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스마트키가 적용되어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지 않고도 시동을 걸 수 있어 편리하다.

스포츠 치프는 경쟁자를 꼽기 어려운 유니크한 모델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스포츠 성향의 모델들이 일반적으로 1,000cc 전후의 배기량의 엔진을 탑재해 회전수를 높여가며 달리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스포츠 치프는 ‘치프 시리즈’인 만큼 화끈하게 116큐빅인치, 1,890cc의 엔진을 그대로 사용한다. 덕분에 163Nm의 강력한 토크가 고작 2,900rpm에서 뿜어져 나온다. 공회전이 1,000rpm 조금 안되니 순식간에 최대토크가 발생하는 회전대에 도달한다는 것.

덕분에 클러치를 연결하면서부터도 강력함이 느껴지는데, 평소 버릇대로 엔진 회전수를 살짝 높인 상태에서 클러치를 빠르게 연결했더니 앞바퀴가 들릴 듯이 살짝 가벼워지면서 맹렬하게 가속하는 모습에 뒷골이 짜릿하다. 300kg이 넘는 거대한 차체지만 워낙 높은 토크 덕분에 무게감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경쾌하게 가속한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스럽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 라이딩 모드를 선택할 수 있어 날씨나 도로 환경 등에 맞춰 출력특성을 조절할 수 있다. 스포츠 모드가 강력한 토크를 온전히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점은 좋지만 그렇다고 시내에서 예민한 반응에 피곤해질 필요는 없다. 주행모드를 투어나 스탠다드 정도로만 낮춰도 시내에선 한결 주행이 편해진다.

이름에 ‘스포츠’가 붙은 만큼 운동성에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민첩함을 경험할 수 있다.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면서 코너 탈출구를 바라보면 300kg을 넘는 크루저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차체가 기울어져 코너를 돌아나간다. 슈퍼스포츠 급은 아니어도 일반적인 네이키드와 비슷한 수준은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앞 서스펜션에 KYB의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를, 뒤 서스펜션에 폭스의 피기백 쇼크 업소버를 장착하며 운동성을 뒷받침하는 것도 한몫하지만, 기본적으로 차체 구성이나 밸런스 측면에서도 스포티함을 보여주기 위한 인디언의 노하우가 한몫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진입 속도에서 욕심을 내면 여지없이 스텝 아래 뱅킹 센서가 땅을 벅벅 긁어대는데, 어쩌다 한 번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과욕을 부릴 경우 슬립할 수도 있으니 안전을 위해 무리하지는 말 것.

그래도 이런 경쾌한 움직임이라면 와인딩 코스를 경험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짧은 코너가 이어지는 구간에서 감속 후 머리를 돌려 코너를 빠져나가 재가속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특히 코너를 빠져나오며 부드럽게 스로틀 레버를 감아주면 자연스럽게 차체가 일어서며 다음 코너를 빠르게 준비할 수 있다. 인디언이 전통적인 크루저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FTR 같은 모델도 만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스포츠성 강한 크루저를 선보이는 것도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강력한 성능에 맞춰 앞에는 브렘보 4피스톤 캘리퍼를 320mm 디스크와 조합해 좌우 양쪽으로 달았고, 뒤에도 300mm 디스크와 2피스톤 캘리퍼를 달아 높은 제동력을 발휘하도록 했으며, ABS를 더해놓았다. 휠은 앞 19인치, 뒤 16인치 구성이며 타이어는 앞 130/60, 뒤 180/65 사이즈다.

스포츠 치프의 가격은 블랙 스모크 컬러가 3,890만 원, 루비 스모크와 스텔스 그레이 컬러는 3,970만 원으로 높은 편이지만, 이렇게 스포티한 구성에 강력함까지 갖춘 모델은 이것 뿐이라는 점, 그리고 인디언 모터사이클 코리아에서 550만 원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으니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사람이 욕심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버려야 하는 욕심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모터사이클의 경우라면 양쪽 모두를 취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달리고 싶다면 어드벤처나 스크램블러를, 일상에서 편하게 타면서 주말에 트랙까지 즐기고 싶다면 네이키드를, 일상에서 편하게 타면서 가끔 와인딩을 즐기는 정도라면 스포츠 스쿠터도 좋은 선택이다. 일상에선 크루저 특유의 고동감과 스타일을 편하게 즐기면서 주말에 교외로의 투어링은 물론이고 와인딩까지 즐기고 싶다면 스포츠 치프가 정답이다. 그동안 갖고 있던 크루저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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