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7 수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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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의 제왕, 스즈키 하야부사를 추억하며

시대마다 각기 다른 패러다임이 모터사이클 산업에 영향을 준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펼쳐진 브랜드 간의 속도 경쟁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는 모델이 있다. 바로 스즈키 하야부사다.

최근에는 슈퍼스포츠 마력 경쟁이 치열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혼다 CBR1000RR-R, 야마하 YZF-R1M, 두카티 파니갈레 V4 SP, 스즈키 GSX-R1000R

마지막 황제

어떤 산업이든 라이벌과의 경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모터사이클도 마찬가지. 단순히 판매량을 가지고 경쟁하는 건 물론이고, 어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최고가 되기 위해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최근에는 클래식 모터사이클 시장이 가장 뜨거운 장르고, 슈퍼스포츠 모델의 마력 경쟁도, BMW GS 시리즈로 대표되는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경쟁이 펼쳐져 왔다.

신기술 적용도 좋은 경쟁 대상이 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탑재한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V4

이뿐만 아니라 최근 도입이 활발해진 IMU를 기반으로 한 트랙션 컨트롤, 차량 안정성 제어, 윌리 컨트롤, 코너링 ABS 등 다양한 첨단 기능들의 투입도 모터사이클 브랜드들 사이에서 펼쳐지고 있는 또다른 경쟁 구도다. 지난해 BMW가 모터사이클 최초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두카티는 양산 모델 중 최초로 신형 멀티스트라다 V4에 이 기술을 적용, 출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999년 310km/h의 기록으로 혼다의 CBR1100XX 블랙버드를 꺾었다

조금 더 시계바늘을 되돌려보면 한때 속도를 놓고 경쟁하던 시절도 있었다. 왕좌를 두고 일본 메이커들 사이에서 펼쳐진 이 치열한 접전에서 최종적으로 정상에 오른 것은 스즈키 GSX-1300R 하야부사였다(현재는 GSX-1300R이라는 모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와사키의 ZZR1100을 제치며 정상에 올라선 혼다의 CBR1100XX 블랙버드를 따라잡기 위해 개발한 스즈키의 괴물은 194마일, 310km/h를 달성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2세대 하야부사 북미형의 계기판. 우측 속도계 안쪽 km 단위 표시는 280이 끝이다

모터사이클의 성능이 20년 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향상됐으며 새로운 기술과 기능들이 추가되어왔지만, 그럼에도 하야부사가 아직까지 모터사이클 마니아에게 각인된 이유는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력한 성능, 독특한 디자인, 최고의 장비, 최고의 기록까지. 여기에 2000년 모터사이클 브랜드 간 협약으로 일반 도로용 모델의 속도 경쟁을 자제하고 최고속도와 계기판 상 속도 표기를 299km/h로 제한하기로 결정, 스즈키 하야부사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남은 마지막 최고기록이 됐다.

지금 보면 어설프지만 저 로고 스티커 하나만으로도 드림바이크를 탄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모터사이클에 막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빠른 모델, 하야부사에 대해 알게 되며 드림바이크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적잖은 초보 라이더들은 125cc 스포츠 바이크를 구매해 옆면에 하야부사의 로고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며 언젠가는 타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으니 말이다.

2018년을 끝으로 유럽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하야부사가 단종됐다

하야부사에 열광한 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두터운 마니아층이 형성될 만큼 높은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예전보다 최고속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낮아졌지만, 여유 있는 성능과 공기역학적 차체, 특유의 디자인 덕분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유럽과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2018년 12월 31일부터 생산 중단과 함께 단종(국내는 2019년)되어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낳고 있다.


 
최근 스즈키가 출원한 특허. 듀얼 머플러와 엔진 마운트 브래킷 지점의 형상이 하야부사와 유사해 신형이 나오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지난해부터 여러 외신에서 스즈키에서 출원한 특허 내용을 바탕으로 2021년에 하야부사의 신형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유로는 하야부사 특유의 4-2-2 구조의 배기 시스템과 한 쌍의 머플러, 기존 하야부사와 유사한 엔진 윤곽과 엔진 마운트 브래킷 포인트 등을 꼽고 있다. 여기에 2015년 도쿄 모터쇼에서 발표됐던 콘셉트 GSX의 디자인을 더하면 스포츠성을 드러내는 LED 헤드램프 적용, 측면으로 이동한 흡기구 등 전면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400km/h를 돌파한 가와사키 H2R

‘배기량=성능’으로 대변되는 요즘엔 스즈키 하야부사가 예전처럼 정상에 오르지 못할 수 있다. 가와사키는 H2R을 통해 굳이 배기량이 높지 않아도 최고속도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즈키 하야부사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까지도 하야부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 위를 날아가는 한 마리의 매가 다시 날개를 펼칠 날을 그려 본다.

 

공기역학 성능을 위해 수많은 풍동 테스트를 진행했다

벽을 깨뜨리기 위한 노력

하야부사가 처음 등장했을 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로는 넘어설 수 없다고 보았던 300km/h의 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이유로 우선 뛰어난 공기역학을 들 수 있다. 하나의 큰 반원을 보는 듯한 전체 형상은 공기역학 성능을 고려한 것이다. 스즈키는 이를 위해 수많은 풍동 테스트를 거치며 공기저항과 난기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기본 형태는 2008년 2세대 모델이 출시될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1세대 1,299cc 직렬 4기통 엔진은 2세대에 들어 1,340cc로 업그레이드됐다

다음은 강력한 엔진이다. 직렬 4기통 1,299cc 엔진은 최고출력 175마력/9,800rpm, 최대토크 14.4kg·m/7,000rpm의 성능으로, 최근 모델과 비교해봐도 뒤처지지 않는다. 여기에 46mm 스로틀 바디와 대용량 에어박스를 더한 램 에어 덕트가 더해졌다. 냉각 시스템 역시 효율성을 높였으며, SCEM 도금 실린더, 디지털 다이렉트 점화 시스템 등 당시로는 첨단 기술을 대거 투입했다.

전면 브레이크는 1세대에서 토키코 6포트 캘리퍼를, 2세대 부분변경에서 브렘보 모노블럭 캘리퍼를 사용해 출력에 걸맞은 제동력을 확보했다

고성능에 맞춰 트윈 스파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무게는 최소화하면서도 높은 비틀림 강도를 확보했으며, 스윙암 역시 대구경으로 강성을 높였다. 또한 당시 타이어로는 하야부사의 성능에 대응하지 못해 브릿지스톤과 협력해 고속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타이어를 개발, 적용했으며, 6단 변속기 역시 대용량 클러치와 함께 부드러운 다운 시프트를 위한 백 토크 리미터, 변속기 소음 감소를 위한 가위 형태의 주 기어를 사용했다. 브레이크는 전륜에 320mm 디스크와 6피스톤 캘리퍼가, 후륜에 240mm 디스크와 2피스톤 캘리퍼로 고성능을 제어할 수 있는 높은 제동력을 갖췄다.

2008년에는 하야부사의 첫 번째 풀 체인지가 이뤄졌다. 우선 배기량이 1,340cc로 늘어나며 최고출력 194마력/9,500rpm, 최대토크 155Nm(15.8kg·m)/7,200rpm으로 향상됐다. 당시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 3를 충족시키기 위해 촉매 컨버터를 배기시스템에 처음 적용했다. 섀시와 서스펜션도 업그레이드됐으며, 전체 페어링 역시 공기역학성능을 위해 다듬어졌다. 늘어난 출력만큼 엔진 냉각 성능도 높이기 위해 새롭게 곡선형 라디에이터를 장착했다. 제동력을 더 높이기 위해 토키코제 레디얼 브레이크 캘리퍼를 선택했으며, 이후 이는 2013년 부분변경에서 브렘보 모노블럭 캘리퍼로 바뀐다. 또한 주행모드를 적용해 모드마다 출력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라이더가 향상된 성능을 쉽게 다룰수 있도록 했다.

2세대 부분변경으로 제동력을 더욱 높였다

2013년에는 부분 변경이 이뤄졌다. 브렘보 모노블럭 캘리퍼로 제동력을 더욱 끌어올렸고, ABS를 표준 장비해 안전성을 높였다.

 

하야부사는 드래그 레이스의 단골 손님이다. 엔진을 튜닝한 경우 사진처럼 스윙암을 길게 해 앞이 들리는 걸 막는다

무궁무진한 잠재력

하야부사는 그 명성만큼이나 많은 일화를 남겨왔다. 특히 최고속 부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만큼 드래그 레이스와 같은 경기에서 경쟁자를 압도하기 위한 무기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드래그 레이스에 참가하는 하야부사는 개조를 거쳐 700마력이 넘는 성능으로 최고 270마일, 430km/h 이상의 속도로 0-400m 드래그 레이스 6.9초의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7월 빌 워너는 미국 메인 주 라임스톤에 위치한 로링 커머스 센터에서 터보차저를 더한 스즈키 하야부사를 타고 2.4km 구간을 달려 311.945마일, 502.027km/h를 기록하며 새로운 모터사이클 최고속도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맨섬 TT 선수인 영국의 가이 마틴이 하야부사 터보 버전을 이용해 1.6km 구간에서 300마일에 도달하기 위해 도전 중이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고속도로 순찰대가 사용하는 하야부사

하야부사는 경찰에서 이용하기도 했다. 지난 2006년 미국 오클라호마 고속도로 순찰대는 압수된 하야부사에 경찰용 모터사이클에 필요한 장비들, 공식 색상과 휘장을 입히고 레이더 유닛과 조명, 사이렌 등을 설치해 사용했다. 크루저 중심의 미국에서 스포츠 모터사이클을 통한 순찰이 좋은 반응을 얻자 2대를 더 구입해 순찰에 활용했다고 한다.

스즈키 GSX-R/4 로드스터. 하야부사의 엔진을 탑재했다

하야부사의 고성능 엔진은 좋은 튜닝 대상이었다. 모터사이클 자체로 활용하기 위함은 물론이고, 자동차 제작에 활용되기도 했다. 영국의 자동차 제작업체인 웨스트필드 스포츠카는 하야부사 엔진을 튜닝해 로터스 세븐에 얹은 ‘메가부사’를 제작했다. 스즈키 자체적으로도 2001년 콘셉트카인 GSX-R/4 로드스터와 오픈휠 경주용 자동차 포뮬러 하야부사를 선보였다. 래디컬 스포츠카는 자체적으로 만드는 레이스카에 하야부사 엔진을 사용했다. SR1 엔트리 레이스카를 비롯해 SR3와 PR6에는 1.6L로 보어업 한 엔진을, SR8 레이스카에는 하야부사 엔진 2개의 실린더 헤드와 맞춤형 엔진을 합친 V8 엔진을 설계했다. 이 밖에도 메르세데스-벤츠의 시티카인 스마트에 하야부사 엔진을 장착할 수 있는 업체도 있었으며, 본네빌에서의 최고 기록 달성을 위해 유선형 차체에 2개의 하야부사 엔진을 장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통해 달성한 최고기록은 360.913마일, 581km/h로 2009년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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