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소재로 한 영국의 유명 TV쇼에서 진행자들이 슈퍼카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세 사람의 진행자들이 모두 독일산 슈퍼카를 극찬했지만, 정작 자기가 어떤 차를 사고 싶냐는 질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페라리”
페라리(Ferrari)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누구나 붉은 슈퍼카를 떠올린다. 페라리보다 더 빠른 자동차를 만드는 메이커도 있지만, 클래식카와 포뮬러 원 레이스, 역사적 정통성에서부터 우아하고 관능적인 이미지까지 수많은 장면들을 단 하나로 함축할 수 있는 단어는 아마 페라리밖에 없을 것이다.
페라리를 닮은 자전거 메이커가 있다. 이탈리안 메이커로 레이스에 대한 열정과 정통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창업자 본인이 레이서로 활약했다. 심지어 이 자전거 메이커는 페라리와 오랜 시간동안 협력해왔고, 페라리를 위한 자전거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두 바퀴의 페라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바로 콜나고(COLNAGO)다.
에르네스토 콜나고와 엔초 페라리의 만남
: 영국 굿우드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주세페 사로니 (1982)
콜나고 자전거의 창립자 에르네스토 콜나고(Ernesto Colnago)가 자동차 메이커 페라리의 창립자이자 F1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창립자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를 만난 것은 1986년 마라넬로에서였다.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베페 사로니(Beppe Saronni, 이탈리아 출신 자전거 선수 주세페 사로니의 애칭)와 함께 레이스용 자동차의 마법사를 만나러 페라리 본사를 방문했다.
사로니는 1982년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서 위대한 선수들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지만, 월드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이후 레이스에서의 성적은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콜나고와 사로니가 페라리를 방문한 이유는 레이스를 위한 것이었다. 더 빠른 자전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페라리를 통해 힌트를 얻기 위해서였다.
: 콜나고 사로니 (1982). 사로니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모델로, 6암 크랭크와 650c 휠을 장착했다. 참고로 붉은 바탕에 흰 스트라이프, 검은 색 로고가 페인팅 된 ‘사로니’ 디자인은 클래식한 감성과 세련됨을 동시에 갖춘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많은 콜나고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르네스토 콜나고와 주세페 사로니가 페라리를 방문했을 때 엔초 페라리는 그의 사무실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아마 당시의 이탈리아인 대부분이 자전거 레이스에 열광했듯 페라리 역시 마찬가지였고, 콜나고와 사로니 또한 엔초 페라리와의 만남에 어린아이처럼 흥분된 상태였다고 한다.
: 엔초 페라리와 에르네스토 콜나고
엔초 페라리는 사로니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사로니의 레이스, 그리고 그가 이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가로 옮겨갔다. 그런데 갑자기 엔초 페라리가 에르네스토 콜나고에게 퉁명스럽게 질문을 했다.
“에르네스토, 당신은 지금 몇 살이오?”
당시 엔초 페라리는 88세의 노인이었고,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54세의 장년이었다.
“아마 54세 정도일 것입니다만...”
“에르네스토 나는 당신이 부럽소. 내가 페라리를 시작했던 것이 54세였고 그때가 바로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였소.”
당시 엔초 페라리는 88세의 노인이었고,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54세의 장년이었다.
“아마 54세 정도일 것입니다만...”
“에르네스토 나는 당신이 부럽소. 내가 페라리를 시작했던 것이 54세였고 그때가 바로 내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였소.”
: 페라리의 F1 레이스카(1987-89. 카본섬유기술은 당시 F1 레이스카에 사용되던 ‘미래의’ 첨단기술이었다.
엔초 페라리는 에르네스토 콜나고에게 페라리의 엔지니어와 카본섬유기술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고 몇 가지 조언도 곁들였다. “카본섬유기술을 생각한 것은 좋은 선택이오. 그것은 미래요. 그리고 세 개의 살로 구성된 바퀴도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소? 그것이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할 거요.”
콜나고와 페라리가 함께 진행했던 첫 번째 혁명적인 콘셉트 바이크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콜나고와 페라리가 함께 진행했던 첫 번째 혁명적인 콘셉트 바이크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콜나고의 페라리 콘셉트
페라리의 협력은 단순한 카본섬유기술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콜나고와 페라리의 공동 프로젝트는 기존의 자전거의 상식을 깨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어떻게 하면 자전거가 더 빨리 달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고 미래적이며 더 완벽한 자전거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 끝에 1988년 콜나고의 첫 번째 페라리 콘셉트 모델이 완성된다.
: 콜나고 페라리 콘셉트 (1988)
콜나고-페라리 콘셉트는 당시 자전거 기술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레임은 페라리의 기술을 적용한 특수한 래핑 방식의 카본 튜브와 카본-폴리아미드 섬유 러그를 이용해 프레임을 만들었다. 또한 크랭크에는 페라리의 레이스카에서 모티브를 얻은 데스모드로믹(desmodromic) 기어박스, 유압식 브레이크를 장착한 슈퍼바이크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너무나 비싸고 복잡했을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무거웠다. 무게가 13kg이나 나갔다.
: 'CARBITUBO' (1989) 프레임. 'CARBON'소재와 다운튜브가 두 갈래로 갈라진 ‘BI TUBE'기술이 적용된 모델. 카본 튜브를 알루미늄 러그를 이용해 연결해 만든 것으로 완전한 카본프레임이라 볼 수는 없지만, 카본기술을 적용한 ’양산형‘ 모델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에르네스토 콜나고는 곧바로 페라리의 기념비적인 슈퍼카 F40을 개발한 마라넬로 워크숍과 협력해 포뮬러 원 레이스카에 적용되던 카본 기술을 적용한 프레임의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첨단기술인 3D CAD 기술을 통해 프레임을 설계했는데 이 프레임을 통해서만 네 가지 디자인 특허를 등록했다.
: 콜나고의 기념비적인 모노코크 프레임 로드바이크 ‘C35' (1989). 페라리와 함께 개발한 그리고 콜나고의 35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다. 금도금 된 캄파뇰로 C-레코드 구동계가 장착된 완성차는 많은 수집가들이 1순위로 탐내는 모델 중 하나다.
이 프레임은 금형에 카본 소재를 적층하고 오토클레이브에 넣어 280℃ 170a의 고온고압으로 성형하는, 현대의 카본 모노코크 프레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러그를 이용해 단순한 직선의 튜빙을 연결하던 기존 자전거 프레임과 달리, 전체가 매끄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프레임이 완성되었다. 이때는 1989년으로 콜나고가 35주년을 맞이한 해였고, 콜나고와 페라리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이 아름답고 기념비적인 자전거는 ‘C35’라 불리게 된다.
: 콜나고 CF7 (2003)
이후에도 콜나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페라리 콘셉트 모델을 출시한다. 콜나고는 2000년 다시 한 번 ‘페라리 바이크’를 ‘CF1’ 출시한다. CF는 COLNAGO for FERRARI의 약칭으로 이후 매년 다양한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모델별로 무척 적은 수가 생산되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프레임에는 페라리를 상징하는 로고와 함께 페라리의 레이스카가 아름답게 페인팅 되어 자전거 수집가들이 탐내는 모델이다.
콜나고의 레이스 플래그십들
: 토니 로밍거는 1994년 콜나고의 아워레코드 바이크를 타고 1시간동안 55.291km를 달려 세계신기록을 세운다. 당시 사용했던 TT바이크의 프레임은 크롬몰리 소재였다. 다만 휠과 같은 파츠에 점차 카본소재가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콜나고가 C35의 개발 이후 곧바로 카본 프레임을 양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당시 레이스에서는 여전히 스틸 프레임이 주로 사용되었고, 앞서 소개한 콜나고의 ‘마스터’ 시리즈 역시 당시 활약했던 모델이다.
: 콜나고 C40 1세대 ‘아르데코’ 프레임
그러나 콜나고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모델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은 역시 ‘C'로 시작되는 모델명의 모델일 것이다. 1994년 출시된 콜나고 4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 C40은 마치 스틸 프레임의 명기 마스터를 카본으로 다시 빗어낸 듯한 아름다운 형상으로도 유명하며, 단순한 한정판 모델이 아닌 수많은 레이스에서 10년 이상 활약했고 특히 ’마페이(MAPEI, 퀵스텝의 전신)‘ 팀의 레이스바이크로 잘 알려졌다.
: 1995년 파리-루베. 마페이는 말 그대로 당대 최강의 레이싱 팀이었다. 대체 어떤 팀이 파리-루베의 포디엄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을까?
: 2002년 지로디탈리아, 마페이-퀵스텝의 팀 타임 트라이얼
마페이는 팀이 창단한 1993년과 2001년을 제외하면 2002년까지 매년 콜나고를 타고 UCI 랭킹 1위를 차지했던 당대 최강의 팀이었다. 마페이-퀵스텝 팀의 스페인 출신 스프린터 오스카 프레이레(Oscar Freire)는 콜나고 C40을 타고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다. 그리고 2002년에는 파올로 베티니가 C40을 타고 다시 한 번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 C40 월드챔피언 (2003). 오스카 프레이레의 월드챔피언십 우승 기념모델
: C50 'GEO' 프레임
2004년 50주년을 맞이해 나온 모델인 C50은 ‘50 Anniversary' 기념모델 뿐 아니라, 당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콜나고의 레이스바이크답게 화려한 컬러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에서 스프린터 오스카 프레이레는 라보뱅크 팀 소속으로 콜나고 C50을 타고 에릭 자벨과 루카 파올리니를 꺾으며 다시 한 번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해 콜나고와 C50에게 기념비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 미하엘 라스무센은 클라이머를 위한 경량 모델인 콜나고 익스트림-C를 타고 2005년 투르 드 프랑스 산악왕을 차지했다. 이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흰 바탕에 붉은 반점이 수놓아진 한정모델이 출시되기도 했다.
: 콜나고 EPS 마페이(2009). 마페이-퀵스텝 팀이 사라진 이후 나온 모델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이클링 팬들이 기억하는 마페이 팀 컬러로 디자인 되었다.
: 콜나고 C60 (2014- )
C50 이후 콜나고 레이스바이크는 익스트림-C와 익스트림파워(Extreme Power, EP), EPS, EPQ, C59라는 후속모델을 거쳐 2014년 출시된 C60에 이르게 된다. C60은 현재까지 콜나고를 대표하는 레이스 플래그십 모델이다. 카본 튜빙을 러그와 결합하여 만드는 프레임인데, 페라리와 함께 이미 1980년대에 모노코크 프레임을 개발했던 콜나고가 왜 플래그십 모델에 러그와 튜빙을 연결해 프레임을 만드는 고전적인 방식을 고집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C60 프레임의 러그는 단순히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카본으로 재현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헤드튜브와 BB셸에 사용된 러그 그 자체가 프레임이 높은 강성을 가질 수 있도록 보강하는 역할을 하며, 콜나고 마스터 시절부터 사용된 클로버(♣)를 닮은 단면의 튜빙을 계승한 팔각형 튜빙을 통해 프레임 강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또한 러그를 사용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프레임의 커스텀과 비용이다. 콜나고는 전통적으로 레이서를 위한 완벽한 지오메트리를 무척 중시하는 자전거 메이커다. 프레임 전체를 금형을 이용해 만드는 모노코크 프레임은 가볍고 튼튼한 프레임을 만들 수 있지만, 대신 프레임 사이즈와 지오메트리의 변경이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프레임의 사이즈가 다양하지 않고 라이더가 자전거의 프레임에 몸을 맞춰 타게 된다.
그러나 콜나고의 러그방식 프레임은 튜빙을 절단하는 길이에 따라 다양한 사이즈의 프레임을 만들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커스텀 제작도 가능하다. 레이서에게 완벽한 지오메트리의 프레임을 공급하기 위해 콜나고 C60은 ‘가장 진화한’ 러그방식 프레임을 고집한다.
V1-r - 페라리와 손잡고 만든 모노코크 프레임
C60이 전통적인 레이스바이크를 계승했다면, 한편으로 V1-r은 미래를 준비하는 콜나고의 레이스바이크다. V1-r의 개발을 위해 콜나고는 다시 한 번 페라리와 손잡는다. V1-r은 모노코크 프레임의 양산형 레이스바이크다.
V1-r은 한정판 모델인 ‘COLNAGO for FERRARI'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V1-r을 단순히 대량생산 저가형 모델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콜나고와 페라리가 직접 프레임을 개발했고, 실제 페라리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카본 원사를 이용해 프레임을 제작했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때문에 V1-r은 콜나고의 다른 양산형 모노코크 프레임들과도 차이를 두며, 프레임에도 페라리의 로고가 작게 들어간다. V1-r은 사실상 콜나고의 미래를 상징하는 ’모노코크 플래그십‘의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V1-r의 특징은 올라운더 스타일의 레이스바이크지만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접목했고, 윈드터널 테스트를 통해 성능을 검증했다. 또한 드롭아웃을 포함한 프레임 전체가 카본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노면의 진동을 줄이기 위한 ‘REGGISELLA’ 시트포스트, 림 브레이크와 함께 디스크브레이크 모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도 차세대 모델의 면모를 보여준다.
: Colnago C60 frame
콜나고는 전통을 중시하는 레이스바이크 메이커다. 그러나 혁신적이면서 아름다운 자전거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콜나고의 전통이었고, 이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콜나고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글
장낙규 rockyou@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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