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사이클링 붐이 일고 있는 영국의 런던시내 '리 밸리 벨로파크(Lee valley velopark)'의 벨로드롬에서 '식스데이 런던(Six day london)‘이 열렸다. 유럽 전역의 벨로드롬(Velodrome)을 순회하며 6일간 열리는 식스데이가 137여년 만에 첫 경기가 열렸던 런던으로 돌아온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아직 우리나라의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식스데이 그리고 자전거 실내 경기장인 벨로드롬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전거 레이스 문화가 먼저 발달한 유럽에서 식스데이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파티를 즐기는 대중적인 행사다. 남녀노소 누구나 트랙 위를 달리는 선수들의 역주, 저녁식사 혹은 음료와 함께 현장에 울려 퍼지는 흥겨운 음악 그리고 열띤 응원과 트랙레이스를 즐기는 모습은 자전거 동호인이라면 부러워할만한 모습이다.
식스데이는 6일 동안 저녁 6시에서 자정까지 벨로드롬 경기장에서 메디슨, 제외경기, 팀 타임 트라이얼 등 여러 가지 트랙종목으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두 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루어 6일간 각 종목에 출전하는데 당일의 경기와 6일간 전체 기록을 합산한 종합성적 시상이 있다. 각 부문별로 큰 상금이 걸려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유명 사이클리스트들이 상금과 동계 훈련 그리고 팬 서비스를 위해 이 대회에 참석한다. 관중들이 세계적인 스타들의 경기장면을 지켜보며 신나는 음악과 파티를 즐기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야구장에서 볼 수 있는 응원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스데이는 올해도 유럽의 여러 도시들에서 열렸다. 6일간 여러 종목의 경기가 진행되지만 식스데이를 대표하는 종목은 바로 메디슨(Madison)이다. 한 팀의 두 선수가 동시에 트랙에 올라가 휴식과 주행을 번갈아가며 달리는 장거리 종목으로, 선수교대 시 동료 선수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던지듯 가속을 시켜주는 핸드-슬링(hand-sling)은 이 종목의 상징과도 같다. 중간 스프린트에 걸린 점수와 최종 스프린트에서의 경합으로 성적이 결정되는데 두 선수간의 협동과 기량 그리고 다양한 전술로 풀어나가는 경기모습은 흥미진진하다. 국제사이클연맹 정식 종목이기도 한 메디슨은 식스데이의 역사가 만들어낸 트랙 종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식스데이의 백미 중 하나인 메디슨 경기. 교대하며 핸드슬링으로 가속하는 테크닉이 놀랍다. (※ 벨로드롬이 아닌 도로에서 절대 흉내 내서는 안 되는 위험한 기술임!)
식스데이, 1878년에 시작된 역사
세계최고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는 자전거를 탄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자 하는 이벤트에서 태동하였다. 식스데이 역시 그 최초 시작은 도전이었다고 한다. 1878년 영국의 사이클리스트였던 데이비드 스탠턴(David Stanton)은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 보이고자 6일 동안 하루에 18시간씩 달려 1000마일(약 1610km)을 달리는 도전에 나섰고 이 행사에 스포팅라이프(Sporting Life)지가 상금을 걸고 흥행을 위한 이벤트로 개최하였다.
런던 이즐링턴(islington)에 위치한 왕립농업회관(Royal Agricultural hall, 현 Business Design Centre)에서 개최된 이 행사에는 많은 관중이 운집했고 스탠턴은 73시간 만에 1000마일을 주파하며 도전에 성공했는데 이것이 식스데이 이벤트의 시작이다. 이후 유럽 각지에서 식스데이 이벤트가 열렸으며 초기 대회들은 12명의 선수가 출발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6일 동안 달려 누가 더 멀리 달리는지를 경쟁하였다. 이후 식스데이가 형식을 갖춘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미 대륙으로 건너간 이후였다.
1890년대 식스데이는 미국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보스턴, 시카고, 멤피스, 피츠버그 등 미국 내 주요 도시에는 식스데이를 위한 경기장이 세워졌으며 관중들은 점점 많아졌고 우승자를 상금 또한 커졌다. 이에 따라 선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레이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대회는 더욱 흥미진진해졌지만 잠을 잊고 페달을 밝아야하는 선수들의 건강과 안전이 우려되자 경기는 24시간 중 12시간만 진행할 수 있게 규정이 바뀌었고, 2명으로 구성된 팀 단위로 바뀌었다.
미국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에서 열렸던 식스데이에서는 최초로 2인 1조 경기가 열렸고 이때 핸드-슬링 기술이 등장하였으며, 이 당시의 식스데이 대회 자체가 이후 하나의 종목이 되어 ‘메디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식스데이는 미국에서 30여 년 동안 인기 있는 스포츠 경기로 자리 잡았다.
1, 2차 세계대전동안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이후 식스데이는 유럽에서는 독일을 중심으로 엘리트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중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았고, 식스데이 전문 선수가 등장할 정도로 유럽 각 국가의 대도시에서 정기적인 식스데이 대회가 열렸다. 반면 큰 인기를 누렸던 미국에서는 모터스포츠가 대두되며 점차 쇠락하여 마지막 식스데이 메디슨 스퀘어 가든 경기는 1950년에 열렸다고 한다. 가장 많은 식스데이가 열렸던 도시는 독일 베를린으로 1909년부터 지난 2014년 까지 총 103회가 열렸다.
관중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레이스
: Six Day London 2015 Overview
오늘날 식스데이 경기에서는 메디슨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목이 진행된다. 경기는 관람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된다. 특히 팀 간 시간계측 경기인 팀 타임트라이얼(Team time trial)은 규정이 독특하게 바뀌었다. 2명의 선수가 메디슨의 핸드 슬링 기술로 교대하여 2바퀴를 주행한 기록을 측정한다. 제외경기에 메디슨을 접목시킨 슈퍼스프린트(Super sprint)는 4바퀴 마다 최후미에 위차한 주자의 팀을 탈락시킨 이후 최종적으로 남은 4개의 팀 간의 라스트 스프린트 경합을 벌여 우승팀을 가리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엔진이 달린 자전거의 일종인 더니(Derny) 바이크가 상위 8개 팀의 선수를 리드하여 진행되는 더니 레이스(Derny Race)는 트랙 레이스에서 빠른 속도를 느낄 수 있는 종목이다.
식스데이에서 선수들은 여러 가지 종목에서 경합을 벌이지만 메인이 되는 경쟁 부문인 종합우승(General classification)은 전통대로 6일 동안 가장 먼 거리를 달린 팀에게 주어진다. 마지막 날 종합 시상식에선 많은 경기를 치루며 누적된 거리가 동일한 팀이 있을 경우 종목마다 별도로 주어지는 점수에 의거해 순위가 결정된다.
10월 18일부터 23일 까지 6일간 진행된 식스데이 런던에서는 여러 부문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되었다. 식스데이의 귀환을 환영하는 1878 컵, 단거리 트랙 레이서를 위한 경륜과 200m 타임트라이얼로 구성된 스프린터스(Sprinter)부문, 여성 트랙 선수들을 위한 우먼스 옴니엄(Women‘s Omnium), 차세대 유망주 선수들을 위한 U23 탤런트 컵(Talent cup) 그리고 메인이벤트인 6Day 부문까지 다양한 경기가 열려 관중들을 즐겁게 했다. 파티와 콘서트 형장을 연상케 하는 식스데이 런던 경기는 매일 오후 5시 반에 시작하여 10시 반에 종료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전국 주요 도시 근처에 훌륭한 시설을 갖춘 벨로드롬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우리 엘리트 트랙 사이클 선수들은 세계무대에서도 활약해도 뒤처지지 않는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는데 그 경기력은 아시아 선수권대회와 월드컵, 월드챔피언십에서 검증된바 있다. 식스데이가 열리는 유럽의 멋진 선수들과 경기장보다도 사이클링 스포츠를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기는 문화와 오랜 전통이 부럽게 느껴진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식스데이 서울, 식스데이 인천, 식스데이 부산과 같은 대중과 엘리트 선수들이 함께 호흡하는 이벤트가 개최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글
문인영 moonyoung@ridemag.co.k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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