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론데 반 플란데렌 : 가장 뜨거운 원데이레이스

론데 반 플란데렌(De Ronde van Vlaanderen), 아마 ‘투어 오브 플랜더스’라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분이 많지도 모르겠군요. 이 대회에서는 매년 프로사이클링에서 가장 뜨거운 레이스가 펼쳐지곤 합니다. 세계 최고의 원데이레이스답게 모든 팀이 최고의 전력을 투입했고, 넘치는 긴장감과 치열한 레이스로 인해 각종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좁은 코블스톤 길에서는 낙차사고도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때로는 넘어진 선수들을 피해 길가의 풀밭으로 뛰어들어 달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죠. 이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인 게런트 토마스를 위해 팀 스카이는 레이스 대부분을 앞에서 주도하며 경기를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전략은 팀의 리더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지만, 대신 전력의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레이스 후반부에 팀 에이스를 도와줄 수 있는 선수들이 줄어듭니다. 또한 팀 리더가 견제를 받기 때문에 팀의 컨디션이 정말 좋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죠. 실제로 게런트 토마스는 엄청난 견제를 받았고, 그 와중에 에틱스-퀵스텝과 카추샤가 강력한 펀치를 날렸습니다.



피니쉬라인을 30km 남긴 지점에서 에틱스-퀵스텝의 니키 테릅스트라는 어택을 시도해 선두로 나와 펠로톤과 갭을 벌리고, 재빨리 카추샤의 스프린터 알렉산더 크리스토프가 따라붙어 그룹을 형성합니다. 알렉산더 크리스토프는 후반부 마무리에 강한 스프린터입니다. 아마 뒤에서 보고 있던 다른 선수들은 크리스토프가 스스로 앞에 나가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 반가웠겠죠. 적극적으로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니키 테릅스트라의 머릿속은 복잡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홀로 달리자니 힘들고, 크리스토프와 함께 가자니 피니쉬라인 앞 스프린트 대결에서 승리를 강탈당할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언덕에서 알렉산더 크리스토프를 떨쳐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문제는 이날 가장 강한 선수가 바로 크리스토프였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일종의 도박이었지만 그만큼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는 뜻이겠죠.



뒤따라오던 펠로톤은 앞서나가는 니키 테릅스트라와 알렉산더 크리스토프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0초까지 시간차를 줄이는데 성공하죠. 그러나 팀 스카이의 게런트 토마스는 하루 종일 공격을 방어하느라 체력을 소진한 상황. 결국 화력이 꺼지고 BMC의 그렉 반 아버맛과 틴코프-삭소의 피터 사간이 앞으로 뛰쳐나와 선두의 두 사람을 추격합니다.



이제 크리스토프와 니키는 도망을 가야 할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km를 남기면서 니키는 크리스토프와 선두교대를 하지 않고 그의 뒤에 따라붙습니다. 피니쉬라인에서 경쟁을 해야 할 사이니 크리스토프가 체력을 아낄 수 있도록 협조하지 않는 것이죠. 크리스토프 역시 니키의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에서 계속 끌고 나갑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그렉 반 아버맛과 피터 사간이 쫓아옵니다.
 

그리고 피니쉬라인 앞 스프린트 대결, 후방에서 그렉 반 아버맛이 롱 스프린트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니키 테릅스트라도 스프린트를 시작하지만 니키가 왼쪽에서 앞으로 나오려는 것을 감지한 알렉산더 크리스토프 또한 곧바로 스프린트를 시작해 완전히 따돌리고 피니쉬라인을 가장 먼저 통과합니다. 그리고 피터 사간은 힘없이 떨어져나가며 4위로 레이스를 마칩니다.
 

하지만 이처럼 치열한 경주보다도 사이클링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숨은 주인공(?)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중립지원을 맡았던 시마노의 뉴트럴 서포트카입니다. 절대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선수들을 지원해야 하지만, 반대로 큰 사고를 치고 맙니다.

심판의 지시에 따라 최선두로 이동하려는 순간 브레이크어웨이의 트렉 팩토리 레이싱 팀 선수 제시 서전트를 치어 넘어트리고 맙니다. 이 사고로 제시 서전드는 안타깝게도 쇄골 골절의 큰 부상을 입으며 다음날 수술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FDJ의 세바스티앙 샤바넬이 펑크로 바퀴를 교체하기위해 멈추고 FDJ 팀 서포트 카도 급정거를 합니다. 이를 피하지 못하고 바로 뒤에 있던 시마노 뉴트럴 서포트 카가 그대로 충돌, 그리고 바로 앞에 있던 샤바넬은 2차 충돌에 의해 앞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시마노의 중립차량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시마노는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사고에 휘말린 선수들은 모두 시마노가 후원하는 팀 선수들이었습니다.

파리-루베 : 스프린터의 용기

올해의 파리-루베(Paris-Roubaix) 레이스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파비안 칸첼라라와 톰 부넨의 부재로 모든 선수들이 끝까지 우승을 위해 싸우는 각축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아름다운 레이스였습니다. 눈치싸움 끝에 어느 한 팀이 경기를 주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팀이 기회를 차지하기위해 앞에 나서 다른 팀을 압박하였고 시종일관 빠른 페이스로 레이스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회 전날 비가 내려 먼지가 가라앉았고 대회 당일에는 건조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펠로톤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첫 5등급 섹터인 아렌버그를 지난 이후에도 많은 선수들이 살아남았죠. 또한 레이스의 승부처 중 하나인 몽성페벨의 3km 코블스톤 구간을 무려 평균시속 32.82km, 5분 29초만에 돌파하는 엄청난 페이스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올해 파리-루베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선수 중 한명은 브래들리 위긴스입니다. 위긴스는 마지막 프로레이스 무대로 파리-루베를 선택했죠. 트랙에서의 성공, 영국인 최초의 투르 드 프랑스 우승, 종목을 넘나드는 올림픽 5관왕, 타임트라이얼 월드챔피언십 우승 등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브래들리 위긴스. 투르 드 프랑스 우승 이후 슬럼프를 겪는 듯 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틴코프-삭소의 피터 사간에게는 악몽의 날이었을 겁니다. 레이스 초반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하며 길가의 풀밭으로 뛰어들어 곤란한 일을 처리해야 했죠. 이후 회복해 어택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지만 레이스 후반부의 결정적인 순간 기재고장으로 인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트렉 팩토리 레이싱 팀은 큰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레이스가 시작되기도 전 강력한 우승후보인 파비안 칸첼라라가 부상으로 불참했고, 팀 리더 및 가장 중요한 도움선수인 스타인 데볼더와 헤르트 스테그만이 모두 낙차로 인해 레이스를 이어나갈 수 없었습니다.

한편 이날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요 일명 ‘트레인 스포팅’이라 불리는 철도 건널목 무단횡단 사건입니다. UCI 규정에 의하면 선수들은 기찻길의 차단기가 내려간 상황에서 멈춰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무려 펠로톤에 있던 선수들의 1/3 가까이가 차단기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철도를 건넜죠. 특히 TGV가 고속으로 달려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칫 대규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같은 사건은 2006년에도 있었습니다. 2, 3, 4위를 차지한 선수가 차단기가 내려오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철도를 건넜지만 경기 종료 후 실격 처리된 적 있죠. 하지만 올해는 사건 당시 심판들이 너무 뒤쪽에 있었고, 이후 뒷그룹 선수들이 합류할 수 있도록 조치되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앞서 건넌 선수들을 실격처리하지 않도록 결정합니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이유로 UCI의 해명과 후속처리를 요구했지만, 워낙 많은 선수들이 연루되어있어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올해 파리-루베를 수적 우위로 지배하려 한 팀은 에틱스-퀵스텝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코블 클래식 슈퍼팀 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죠. 특히 만24세의 젊은 선수인 이브스 람페르트는 선두에서 달리며 펠로톤을 흔들어놓았고 후반부에는 직접 어택에 나섰습니다.

한편 팀 스카이의 브래들리 위긴스 역시 코블 섹터에서 강력한 어택을 보여주었죠. 위긴스는 선두에 나선 에틱스-퀵스텝의 반덴버그를 어택 한방으로 잡아냈고, 그런 위긴스를 다시 벨기에 내셔널 챔피언인 엔스 데부셰어와 체코 내셔널 챔피언인 즈데넥 스티바르가 추격, 이들을 다시 카추샤 팀이 추격해 따라잡는 혼전이 벌어졌죠.

그 와중에 아스타나의 라스 붐은 어택을 시도, 여기에 그렉 반 아버맛과 피터 사간이 합류해 그룹을 형성합니다. 여기에 작년 우승자인 니키 테릅스트라가 합류했지만 이번에는 로토 수달과 로토NL 윰보 두 팀이 맹추격을 시작해 결국 다시 하나의 그룹으로 합쳐집니다. 이후에도 펠로톤에서의 어택과 추격이 이어지며 결국 결승지점을 10km 앞둔 지점에서 선두는 7명으로 압축됩니다.

파리-루베의 결승지점은 루베의 벨로드롬입니다. 선수들은 경기장에 들어와 벨로드롬을 한 바퀴 반 돌아 피니쉬라인을 통과하게 됩니다. 자이언트-알페신의 존 데켄콜브는 에틱스-퀵스텝과 다른 선수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것을 절묘하게 이용합니다. 선두에서 달리던 7명의 선수 중 가장 강력한 스프린터였던 데켄콜브, 에틱스-퀵스텝은 즈데넥 스티바르를 기다리며 페이스를 늦추었지만 바로 이때 데켄콜브는 퀵스텝의 뒤에 숨어 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선물 받게 됩니다. 결국 존 데켄콜브는 루베의 벨로드롬을 돌아 마지막 스프린트로 파리-루베의 우승을 멋지게 차지합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존 데켄콜브는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우승의 열쇠였다”라고 말하며 스프린터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기회를 찾아 앞으로 나선 용기가 바로 우승의 원동력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작년 파리-루베에서 2위로 마친 데켄콜브, 올해는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라이드매거진이 전해드리는 2015 프로사이클링 하이라이트 : 스프링 시즌은 여기까지 입니다. 2015 프로사이클링 하이라이트의 다음 이야기는 투르 드 프랑스를 앞두고 열린 레이스 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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