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라이드매거진 편집부입니다. 라이드매거진이 피기 이경훈과 함께 2015년 한 해 동안 있었던 프로사이클링 레이스의 하이라이트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올해 4월까지의 스프링 클래식 시즌 레이스입니다.

스프링 클래식은 유럽에서 봄에 열리는 오랜 전통을 가진 레이스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밀라노-산레모 레이스를 시작으로 험한 코블스톤 코스로 악명 높은 투어 오브 플랜더스와 파리-루베 레이스 등이 봄철을 대표하는 스프링 클래식 레이스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지금은 유럽 외의 지역에서도 다양한 레이스가 열리고 있죠. 최근에는 많은 선수들이 스프링 클래식을 준비하며 매년 시즌 초반 중동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유럽 프로사이클링 시즌 전 중동에서의 레이스

2014년 월드챔피언십에서 남자 개인 타임트라이얼 우승을 차지한 브래들리 위긴스는 2월에 열린 투어 오브 카타르에 처음으로 흰 바탕에 오색 줄무늬가 그려진 월드챔피언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위긴스는 팀 스카이에서 은퇴하고 리우 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 본인의 컨티넨탈 팀으로 옮기기 전 마지막 목표로 파리-루베 우승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중동에서 열린 레이스는 유럽과는 다른 환경 탓에 생긴 여러 가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투어 오브 오만에서는 모래폭풍으로 스테이지가 단축되기도 했고, 40도를 훌쩍 넘는 엄청난 더위로 인해 선수들이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습니다.

레이스에 출전한 선수들이 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인데 무척 난감한 일이겠죠? 하지만 선수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속도계의 온도센서가 무려 49도를 나타내는 엄청난 더위 속에서 시합을 강행하라는 대회 조직위원회의 명령은 부당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죠. 자칫 일사병으로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위험한 환경에서 열리는 레이스를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결국 파비안 칸첼라라와 탐 부넨, 빈센초 니발리 등의 스타 선수들이 주도해 해당 스테이지레이스의 취소를 이끌어냈지만, 대회의 조직위원인 에디 메르크스가 이로 인해 진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수들의 노조라 할 수 있는 CPA와 대회 조직위원회의 갈등은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는 작년 지로 디 이탈리아의 스텔비오 산악 스테이지 이후 계속되어 나오던 이야기였는데요, UCI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악천후 시 레이스 운영 프로토콜’의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코블 클래식 레이스의 시작 : 옴롭 헷 뉴스블라트

2월 28일, 벨기에에서 열린 옵롭 헷 뉴스블라트(Omloop Het Nieuwsblad, 구 헷 볼크)를 시작으로 벨기에의 코블 클래식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중동의 뜨거운 태양아래를 달리던 선수들이 으슬으슬한 날씨의 울퉁불퉁한 벨기에 코블스톤 길을 달리기 시작한 것이죠.

코블스톤이란 아스팔트로 도로를 포장하기 이전 시대의 도로를 포장하던 돌을 뜻합니다. 코블스톤 길은 말하자면 유럽의 옛 길인데, 울퉁불퉁해서 달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비가 오면 미끄러지기 쉽고 때로는 진흙탕으로 뒤덮이기도 하죠. 스프링 클래식 레이스들이 주로 짧은 기간 동안 열림에도 불구하고 악명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대회 코스에 코블스톤 구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코스 전체는 아닙니다만.

올해 옵롭 헷 뉴스블라트에서는 팀 스카이의 요기 베어, 이안 스태나드가 무시무시한 괴력을 선보이며 에틱스-퀵스텝을 완벽하게 농락했습니다. 레이스 후반이 되면서 팀 스카이의 이안 스태나드와 함께 에틱스 퀵스텝의 톰 부넨, 니키 테릅스트라, 스타인 반덴버그 3명의 코블스톤 경기 스페셜리스트가 선두그룹의 선수로 추려졌죠. 에틱스-퀵스텝의 3인방은 번갈아 공격을 시도하며 이안 스태나드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공격 순서가 꼬인 탓일까요? 아니면 손발이 안 맞았던 것일까요? 팀플레이라 할 수도 없는 별 효과 없는 공격이 이어졌고, 이안 스태나드는 잘 버티다가 강력한 반격을 한 방 먹입니다. 이안 스태나드가 선두로 뛰쳐나오는데 니키 테릅스트라만이 그의 뒤에 붙어 쫓아올 수 있었고, 결국 피니쉬라인 앞 스프린트에서도 이안 스태나드가 니키 테릅스트라를 완벽하게 제압하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어진 E3 하렐베케에서도 팀 스카이의 게런트 토마스가 우승을 차지했죠. 벨기에 언론들은 에틱스-퀵스텝의 몰락을 알리며 선수와 팀 모두를 비판하는 집중포화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부엘타 아 안달루시아 : 크리스 프룸과 콘타도르의 대결

아프리카 대륙과 가까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열리는 레이스 ‘부엘타 아 안달루시아(Vuelta a Andalucia)’는 태양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의미로 일명 ‘루타 델 솔(Ruta del Sol)’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올해의 부엘타 아 안달루시아에서는 팀 스카이의 크리스 프룸과 틴코프-삭소의 알베르토 콘타도르가 시즌 처음으로 같은 레이스에 참가하면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프룸과 콘타도르 모두 그랜드 투어 우승 경력이 있는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레이서입니다. 그들의 첫 대결은 스테이지 3, 긴 오르막에서 콘타도르가 일찍이 승부를 걸고 피니쉬라인까지 어택을 시도했습니다. 프룸은 언덕이 시작될 때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해 뒤쪽에 있었는데 콘타도르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그러나 스테이지 4에서 크리스 프룸은 피터 케냑과 미켈 니에베를 잇달아 내세운 뒤 이어지는 공세로 콘타도르를 떨쳐내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마지막 경기인 스테이지 6을 마치고 최종 승리는 크리스 프룸이 차지했습니다. 스페인 출신 레이서인 콘타도르로서는 무척 아쉬운 경기 결과였을 겁니다.

 

폭설 속의 티레노-아드리아티코, 악천후에 강한 나이로 퀸타나

 

이탈리아에서 열린 티레노-아드리아티코(Tirreno–Adriatico) 레이스는 일명 ‘두 바다를 잇는 경기’라 불립니다. 티레니아와 아드리아 두 바다를 연결하는 코스에서 열리기 때문이죠. 이탈리아를 종단하는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산악 스테이지에서의 성적이 레이스의 최종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팀 모비스타의 나이로 퀸타나는 2014년 지로 디 이탈리아 우승 당시 눈 오는 스텔비오 스테이지에서 강력한 클라이머로서의 실력을 드러내며 리더의 자리를 굳혔죠. 올해 티레노-아드리아티코의 스테이지 5에서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스테이지 5는 테르미닐로 언덕 정상에 피니쉬라인이 위치하고 있었고, 전날부터 테르미닐로 스키장에는 눈이 예보되었죠. 레이스가 시작된 순간에 눈이 그쳤기 때문에 일단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나이로 퀸타나는 경기 중반 가장 먼저 어택을 시도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의 동태를 확인하고 엄청난 속도로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죠. 너무나 빠른 가속에 다른 선수들은 허를 찔렸고 알베르토 콘타도르가 추격을 시작했지만 다른 선수들의 견제를 의식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기 후반이 되자 다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고 퀸타나는 다시 한 번 악천후에 강한 레이서임을 증명합니다. 특히 작년의 티레노-아드리아티코에서 콘타도르에게 우승을 내주었던 퀸타나로서는 완벽한 되갚음을 한 셈입니다.

시즌의 첫 모뉴먼트, 밀라노-산레모

이탈리아어로 봄을 뜻하는 ‘라 프리마베라(La Primavera)'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밀라모-산레모 레이스는 250km의 장거리 코스에서 선수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랜드 투어 우승자에서부터 코블 클래식 스페셜리스트, 브레이크어웨이 스페셜리스트, 스프린터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수많은 우승후보들이 경합을 벌이며, 전략보다도 선수 개개인의 본능적인 움직임이 승부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 흥미진진한 레이스죠.

브레이크어웨이 그룹과 이를 견제하는 펠로톤, 그리고 펠로톤 중앙에서의 낙차사고로 인해 발생한 아수라장... 또 다른 선수의 어택과 언덕에서의 추격, 특히 스프린터가 없었던 BMC 레이싱 팀은 수없이 어택을 반복하며 경쟁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또 다시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포죠의 내리막길에서 필립 질베르가 낙차, 여기에 즈데넥 스티바르, 미하일 크비앗코스키, 제랄드 치올렉 등 쟁쟁한 우승후보들이 한꺼번에 휘말리면서 이들의 운명이 한순간에 결정지어졌죠. 특히 이전해의 밀라노-산레모 우승자인 치올렉은 허탈함과 분노에 헬멧을 집어던졌고 스티바르와 크비앗콥스키가 마크 카벤디쉬에 이어 우승권에서 멀어지며 에틱스-퀵스텝의 밀라노-산레모는 끝나고 맙니다.

결국 피터 사간을 선두로 살아남은 이들은 포죠를 함께 내려왔고, 승부는 피니쉬라인 스프린트로 결정지어질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터 사간은 여기에서 앞으로 뛰어나가 어택을 할지 스프린트로 승부를 낼지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술을 고민하는 사이 다른 스프린터들이 그룹에 합류했고 그 결과 사간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10분간 힘을 허비했습니다.

결국 피니쉬라인 앞 치열한 스프린트 경쟁, 카추샤 팀의 루카 파올리니가 알렉산더 크리스토프를 이끌고 앞으로 돌진했고, 루카 파올리니가 피니쉬라인 250m를 남기고 옆으로 비키자 알렉산더 크리스토프가 앞으로 뛰쳐나갑니다. 그러나 롱 스프린트의 강자인 크리스토프였지만 너무 일찍 나섰던 것일까요? 뒤에서 가속하며 결국 피니쉬라인 15m 앞에서 자이언트-알페신의 존 데켄콜브가 크리스토프를 제치고 피니쉬라인을 가장 먼저 통과합니다.

데켄콜브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았고 포디엄에서도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한편 피터 사간은 4위를 하며 2위와 4위를 반복하는 ‘S4GAN’의 전설을 시작하게 됩니다.

겐트-베벌헴 : 생존게임

3월 29일 벨기에에서 열린 겐트-베벌헴(Gent-Wevelgem)은 아마 올해의 레이스 중 가장 스펙터클한 대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자연재해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바람 속에서 레이스가 진행되었죠.

평지에 가까운 코스에서 진행된 레이스였지만, 옆바람이 엄청나게 불면서 펠로톤이 갈갈이 분해되고,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사고가 이어지면서 고작 39명의 선수만이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선수들이 직선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코너링을 하는 듯 옆으로 기울어진 채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바람 때문에 선수들이 길가로 밀려나고 덕분에 기상천외한 사고가 이어지기도 했죠. 길가의 풀밭에 넘어지거나 심지어 수로에 자전거와 함께 풍덩 빠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람과 젖은 길 때문이니 이만하면 레이스에서 완주하는 것이 대자연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라 할 만 하네요.

이런 레이스에서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뛰어난 컨트롤과 승부를 걸 시기를 읽는 노련함이 필요합니다. 카추샤의 노장 루카 파올리니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다른 선수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이날의 승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포디엄에서 보여준 명랑한 파티보이의 이미지는 투르 드 프랑스 직전 파티에서 코카인의 흔적이 나오며 경기 중 퇴장하는 불명예스러운 결말로 끝나게 되어 무척 유감입니다.

 

드리에다스 데 판네 스테이지 3 : 0.0003초로 결정된 승부!

드리에다스 데 판네(Driedaagse De Panne)는 벨기에의 항구도시 데 판네에서 열리는 3일짜리 스테이지 레이스입니다. 그리고 올해 스테이지 3은 아마 사이클링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로 우승자가 갈리게 된 레이스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알렉산더 크리스토프는 스테이지 1, 2를 연속으로 우승한 후 스테이지 3에서 안드레 그라이펠과 경합하며 거의 동시에 피니쉬라인을 통과합니다.

사진으로 보아도 거의 차이를 알 수 없는 박빙의 승부, 이후 정밀 판독 결과 알렉산더 크리스토프가 안드레 그라이펠보다 0.0003초 일찍 피니쉬라인을 넘으며 우승자로 확정되었습니다. 당시 두 선수의 속도는 72km/h, 즉 6mm 차이로 우승자가 결정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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