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적용된 첨단 기술을 가장 빨리 만나볼 수 있는 방법은 최신 레이스 바이크를 살펴보는 것이다. 특히 최고의 선수와 팀들이 참가하는 ‘그랜드 투어’와 같은 프로 레이스는 자전거의 개발과 관련된 여러 메이커들의 전장이기도 하다.

미국의 자전거 컴포넌트 메이커 스램(SRAM)은 현재 일본의 시마노(SHIMANO), 이탈리아의 캄파뇰로(CAMPAGNLO)와 함께 자전거 시장을 삼분할하고 있다. 특히 스램은 시마노나 캄파뇰로와 비교하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적극적이고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는 메이커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 레드 e탭의 라이벌, 시마노 Di2와 캄파뇰로 EPS

 

레이스에서 프로 선수들이 사용하는 자전거에는 각 자전거 메이커들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다. 특히 변속기와 관련된 분야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레버가 케이블을 당겨서 작동하는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 컨트롤러와 전기모터의 힘으로 변속하는 전동식 구동계가 주로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 스램 레드 eTAP 프로토타입은 출시 전부터 많은 레이스에서 활약하며 실력을 검증했다.

그런데 시마노는 ‘듀라에이스 Di2', 캄파뇰로는 '슈퍼레코드 EPS'라는 전동식 구동계를 선보인 반면 스램은 전동식 구동계의 개발에 다소 늦은 행보를 보여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스램이 기술개발에 뒤쳐졌다고 단정 짓기엔 이르다. 비록 등장은 조금 늦었지만 스램이 공개한 신형 전동구동계인 ’레드 e탭(RED eTAP)‘은 케이블의 설치가 필요 없는 혁신적인 ’무선‘ 방식으로 디자인되어 라이벌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스램 아시아 마켓 매니저인 이안 왕이 방한해 스램 레드 e탭을 소개했다.

12월 3일, 스램의 공식 디스트리뷰터인 에이치케이 코퍼레이션은 미디어와 자전거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스램의 신형 무선 전동 구동계 레드 e탭을 처음으로 국내 공개했다. 이 자리에는 스램 아시아 마켓 매니저인 이안 왕(Ian Wang)이 참석해 스램 레드 e탭을 소개했다. 행사를 시작할 때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 스램 스타일이라는 이안 왕은 짧은 이야기로 스램 E탭을 소개했다.

“세 사람의 고고학자가 있었는데 첫 번째 고고학자가 땅을 10미터 정도 파니 어떤 기계장치 같은 것을 발굴했습니다. 고고학자가 외쳤어요. ‘내가 유물을 발견했다!’(1) 그리고 두 번째 고고학자는 땅을 50미터를 파서 어떤 전자제품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외쳤죠. ‘더 진보한 무언가를 발견했다!’(2) 마지막 세 번째 고고학자는 땅을 100미터를 더 팠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내가 제일 진보한 유물을 찾았다. 이건 와이어리스다!’(3) ” 두말할 필요 없이 기존의 기계식 구동계(1) 와 유선 전동식 구동계(2) 보다 스램의 무선 전동(와이어리스) 레드 e탭 구동계(3) 가 우수하다는 것을 비유한 농담이다.

: 레이스바이크에 장착되어 테스트중인 레드 e탭 프로토타입. 와이어리스 방식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가짜 전선이 부착된 상태로 테스트했다고 한다.

 

일반 공개되는 것이 늦어지긴 했지만, 스램이 전동식 구동계를 개발 중이라는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구체적인 스펙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프로 레이스에서 스램이 후원하는 팀 선수들이 타고나온 자전거에 시판되는 것과 다르게 생긴 전동식 변속기가 장착된 것이 자주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램은 레드 e탭을 이미 5년 전부터 개발해왔고, 완벽한 제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수년간 비공개로 테스트해왔다고 한다.


: 스램 e탭은 출시 전까지 여러 프로 선수들과 스램의 테스트라이더들에 의해 20000시간, 50만 km이상을 주행하며 성능을 검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스램의 전동식 구동계가 시마노나 캄파뇰로처럼 배터리-쉬프트 레버-전선-변속기로 구성된 유선 방식일 것이라고 짐작했고, 스램은 이런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어엎었다. 사람들이 목격한 스램의 전동식 구동계에는 전선이 연결되어있었는데, 사실 이 전선은 접착제로 붙인 가짜였고 처음부터 스램의 전동식 구동계는 무선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 스램 아시아 마켓 매니저의 설명이다.

포뮬러 원 레이스카를 닮은 무선 전동 구동계

 

 

레버의 왼쪽 패들을 터치하면 뒷변속기가 저단 기어로 이동, 오른쪽 패들을 터치하면 뒷변속기가 고단 기어로 이동한다. 마치 포뮬러 원 레이스카를 모는 드라이버가 핸들 좌우 패들을 터치해 변속하는 것과 비슷하다. 앞변속기를 움직일 때는 좌우 패들을 동시에 눌러주면 작은 체인링에서 큰 체인링/큰 체인링에서 작은 체인링으로 변속된다. 기존 변속기와 전혀 다른 방식이지만 아주 쉽기 때문에 누구나 금방 배워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스위치의 위치가 헷갈려 변속 실수를 하는 것을 방지하며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쉽고 정확하게 변속레버를 누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 스램 e탭의 기본 구성. 전선과 별도의 컨트롤러가 필요 없는 단순한 구성을 자랑한다.

레드 e탭은 로드바이크 전용 그룹세트와 타임트라이얼바이크 전용 에어로 그룹세트로 각각 출시되었다. 로드바이크용 그룹세트를 살펴보면 기존 RED22 그룹세트에서 변속과 브레이킹을 담당하는 쉬프트 레버와 리어 디레일러 및 프론트 디레일러가 전동식 컴포넌트로 변경되어 출시되었다. 또한 에어로 그룹세트 역시 로드바이크용 그룹세트와 마찬가지로 시프터와 리어 디레일러, 프론트 디레일러가 전동으로 변경되었는데, 로드바이크와 달리 별도의 ‘블립박스’라는 무선 컨트롤러가 추가되었다는 점이 로드바이크용과 다르다.


: 스램 레드 e탭 쉬프트레버 - 무게는 좌우 합쳐 260g, 모양은 기존 스램 레드와 비슷하지만 후드의 크기가 약간 작아졌고, 리치 조절 기능을 이용해 손가락 길이에 맞게 레버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로드바이크용 쉬프트 레버의 경우 레버 안에 배터리와 송신기가 내장되어 있다. 배터리는 CR2032가 들어가며 약 2년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브레이크레버는 스램의 기존 레드22와 거의 동일하며, 리치 조절 기능을 통해 손이 작은 라이더라도 브레이크레버를 쉽게 다룰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 특히 레드 e탭의 레버 후드는 기존의 레드22보다 더욱 콤팩트하게 디자인되었다.

변속은 무척 간단하다. 왼쪽 쉬프트 레버의 탭을 누르면 뒤 디레일러가 왼쪽으로 움직여 체인을 큰 스프라켓에 걸어주고, 오른쪽 시프터의 탭을 누르면 오른쪽으로 움직여 기어를 작은 스프라켓에 걸어준다. 또한 양쪽의 탭을 동시에 누르면 앞 디레일러가 이너에서 아우터/아우터에서 이너로 움직인다.



좌우 쉬프트 레버의 후드 안쪽에는 '블립스(BLIPS)'라는 2개의 위성스위치를 추가로 연결할 수 있는 포트가 있다. 그리고 변속 패들 안쪽에는 작은 스위치가 하나 있는데, 변속기와 쉬프트 레버를 페어링(연동)하거나 미세조정 시 사용하게 된다.

 

 

블립스는 응용하기에 따라 무척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기존의 로드바이크 드롭바에 장착할 경우 핸들바의 상단, 혹은 하단을 잡은 상태에서 쉽고 빠르게 변속하는 것을 돕는다. 또한 에어로 바를 장착한 상태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스램은 블립스를 보다 깔끔하게 장착할 수 있는 ‘블립 클램프’와 에어로 바용 ‘블립 그립’과 같은 부품도 함께 출시한다.

 

 

 

타임트라이얼 바이크와 같이 쉬프트 레버가 사용되지 않는 자전거에는 ‘블립박스(BLIPBOX)’라는 무선 송신기와 4개의 블립스를 이용해 변속기를 컨트롤하게 된다. 블립박스가 블립스와 앞뒤 디레일러를 무선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반 (로드바이크용 쉬프트 레버는 무선 송신기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블립박스가 필요 없다.)

 

: 스램 레드 e탭 뒤 디레일러 - 무게는 배터리를 포함해 239g. 카본 풀리 케이지와 세라믹 풀리 베어링이 적용된다.

앞뒤 디레일러는 쉬프트 레버와 무선으로 연동되며, 각각 배터리를 장착해 전원 공급을 위한 전선을 연결할 필요가 없어 깔끔하다. 스램은 'Airea(에어리어)'라는 2.4GHz 128비트의 독자적인 프로토콜을 통해 쉬프트 레버와 디레일러를 연결한다. 스램 에어리어 프로토콜은 블루투스나 ANT+보다 보안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주변에 다른 무선통신기기가 작동중이라도 에어리어를 사용하는 레드 e탭은 혼선으로 인한 오작동 가능성이 거의 없고, 외부에서 경기 방해를 목적으로 해킹을 시도하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 스램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ATM 기계보다 보안이 철저하다’고 한다.


: 스램 레드 e탭 앞 디레일러 - 무게는 배터리를 포함해 163g. 스램 야(YAW) 기술이 적용된 것이 특징인데, 변속 시 디레일러의 플레이트가 수평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부채꼴을 그리며 뒤 디레일러 변속 시 체인의 간섭이 없는 각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앞 디레일러의 ‘트리밍’이 필요 없는 것이 특징이다.

 

 

배터리는 한번 충전하면 1000km 이상의 장거리 라이딩이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스램 레드 e탭은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슬립모드에 들어가 배터리의 불필요한 방전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는 것이 특징. 만약 라이딩을 시작할 경우 내부의 센서가 자전거의 움직임을 감지해 즉시 사용가능모드로 전환된다.

또 재미있는 특징은 앞뒤 디레일러가 같은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배터리의 정확한 사용시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별 것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앞뒤 배터리를 바꿔 끼울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다. 우선 하나의 충전기로 두 개의 배터리를 번갈아 충전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뒤 디레일러의 배터리가 빨리 소진되기 때문에 비상시에는 앞 디레일러의 배터리로 교체가 가능하다.
 

 

충전기는 USB 방식으로 전원을 공급받으며, 유사시 충전기의 출력 포트를 통해 다른 USB 장치를 추가로 연결해 전원을 공급하거나 동시에 충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레드 e탭의 패키지에는 컴퓨터와 무선으로 연결하기 위한 USB 스틱이 하나 포함된다. 별도의 케이블 연결과 같은 복잡한 과정 없이 무선으로 간단히 펌웨어 업데이트 등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스램 e탭 로드바이크용 그룹세트의 구성품은 e탭 전용 쉬프트 레버, 리어 디레일러, 프론트 디레일러와 크랭크세트 및 BB, XG-1190 카세트, 스램 레드22 체인, 스램 레드 브레이크세트로 구성된다. 에어로 그룹세트는 로드 그룹세트에서 시프트레버가 빠지고 블립스 4개와 블립박스, 에어로 브레이크 레버가 들어있다. 그룹세트 무게는 각각 2096g과 2015g(GXP 크랭크/BB 기준)으로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며, 두 그룹세트 모두 전용 배터리 충전을 위한 중전기와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위한 USB스틱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스램 레드 e탭 발표 행사에서 실제 변속기의 세팅 시연은 무엇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단순히 스펙으로 전달되는 제품의 성능이 아닌, 실제 사용자의 관점에서 제품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연을 참관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굉장히 간단한 변속기의 세팅 방법이다. 스램 레드 e탭의 설치는 뒤 디레일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뒤 디레일러의 버튼을 5초정도 눌러 페어링 모드가 시작된 다음, 앞 디레일러와 레버의 버튼을 각각 5초정도 눌러주면 자동으로 인식해 무선으로 연결된다. 굉장히 쉽다.

 

변속기의 미세조절은 앞 디레일러는 기존의 기계식 변속기와 동일하며, 뒤 디레일러는 레버를 이용해 조절하게 된다. 쉬프트 레버 변속 패들 안쪽의 펑션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레버를 작동하면 뒤 디레일러가 좌우로 약간씩 움직여 미세한 조절이 가능하다. 전체 장착에 소요되는 시간은 15분 내외로 무척 빠르다.

 

 

 

 

e탭은 기존 구동계들과 다른 새로운 무선 기술의 도입, 그리고 장기간의 테스트와 레이스에서 검증된 성능으로 전동식 구동계의 후발주자에서 새로운 강자로 도약했다. 스램은 레드 e탭의 출시를 시작으로 내년 봄 디스크브레이크와 와이플라이 버전 e탭으로의 라인업 확장 등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스램 레드 e탭은 2016년 자전거 시장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을까? 이제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