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트렉 바이시클 코리아의 주최로 산악자전거의 선구자 게리 피셔와 함께 하는 팬 미팅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에서는 트렉의 신제품 산악자전거 체험 행사는 물론, 게리 피셔와 동호인들이 함께 하는 한강 라이딩 이벤트도 진행되었다.







게리 피셔는 조 브리즈, 톰 리치와 함께 ‘산악자전거의 대부’라 불리는 인물이다. 게리 피셔는 오프로드 자전거에 처음으로 변속기를 부착해 근대적인 산악자전거 탄생의 계기를 제공했고, 이후에도 29인치 휠을 장착한 ‘29er' MTB의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며 산악자전거 개척자의 삶을 살아왔다.







게리 피셔는 이번 행사에서 열렬한 팬들과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동호인을 만나 산악자전거란 장르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 그가 일구어낸 또 다른 혁신인 29인치 산악자전거의 탄생과 새로운 트렌드인 27.5인치(650b) 산악자전거에 대해 이야기하며 산악자전거의 산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라이드매거진은 행사에 참석해 그와 함께 별도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는데 그와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봤다.



산악자전거란 장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로드바이크를 즐겨 타고, 팀에 소속되어 선수 활동도 했었죠. 아시다시피 로드바이크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팀으로 움직여야 제대로 탈 수 있는 장르의 자전거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팩을 이루고, 전략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달려야만 하는 그런 스포츠였죠. 여러 가지로 준비해야할 게 너무 많았어요. 게다가 그런 경기용 자전거의 부품 구성도 완전히 획일적이었죠. 당시에 경기용 자전거라고 하면 죄다 똑같은 형상을 가진 스틸 프레임에 구동계는 캄파뇰로 말고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혼자서도 즐겁게 탈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자전거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자전거를 창고든, 자동차에서든 꺼내서, 혼잡한 도로를 떠나 마치 ‘숲 속에서 파티를 즐기듯’ 쉽고 재미있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궁극적인 스포츠로서의 자전거를 갈망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산악자전거란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자신의 게리피셔 MTB와 함께 행사장을 방문한 열성 팬들도 있었다.



초창기 산악자전거의 개발의 핵심 아이디어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바로 ‘전통을 존중하는 것(respect tradition)’이었습니다. 산악자전거를 처음으로 만들려고 한 시절, 저는 자전거 잡지의 자전거 테스터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최대한 기존의 표준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것을 소비자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기에 표준 규격을 존중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헤드셋, 바텀 브라켓, 크랭크와 같은 부분은 물론이었고, 지오메트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창기 산악자전거의 지오메트리는 로드바이크의 지오메트리를 기초로 설계되었죠.







그렇게 시작된 아이디어는 당시 동업자이자 친구였던 찰리 켈리(Charlie Kelly)와 함께 하면서 판을 키워나갔습니다. 1981년부터 뉴욕 바이크 쇼에 함께 참가했고, 이후에는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를 5년 간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게다가 찰리 켈리에겐 대단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였습니다. 상상만 해도 정말 엄청난 일이었죠! 우리는 조지 루카스와 함께 회의를 하면서 바이크쇼를 준비했고, 단어 그대로 ‘뿅 갈 정도(mind-blowing)’로 환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산악자전거의 세계로 끌어들였습니다.

한편 사람들에게 산악자전거를 널리 알리는 일도 중요했지만, 가격 경쟁력이란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제작되던 자전거의 가격은 너무나 비쌌거든요. 그 시절 999달러면 이탈리아산 수제 프레임에 멋진 캄파뇰로 구동계를 갖춘 로드바이크를 구입할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 제작된 산악자전거는 1,000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가격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를 제공한 것은 바로 일본 기업들이었습니다. 시마노(Shimano)는 물론, 탕게(Tange), 니토(Nitto), 선투어(Suntour), 스기노(Sugino)와 같은 기업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일본 정부에서도 협력적으로 나섰습니다. 덕분에 고성능 산악자전거 완제품 가격이 처음으로 800달러 정도로 내려갔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될 수 있었습니다.



29 인치 휠셋 산악자전거의 탄생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29인치요? 사실 제가 29인치 산악자전거를 발표하기 전에도 29인치,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휠이 사용되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당장 자전거가 막 탄생했던 120년 전만 해도 32인치 휠이 표준 규격이었고, 당시에는 자전거로 다니던 길이 전부 오프로드였죠. 포장도로라는 개념조차도 없었으니까요. 29인치 산악자전거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제가 산악자전거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어냈던 시절 중시했던 핵심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바로 ‘전통을 존중하자’는 것이었죠. 그 먼 옛날, 과거로부터 현재를 이끌어낸 겁니다.




: 1999년 지오메트리가 완성된 게리 피셔의 29인치 산악자전거는 프로토타입 제작을 거쳐 2001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한다. 사진의 모델은 게리피셔 슈퍼캘리버 29(2001)



29인치 산악자전거는 처음으로 공개되기 십여 년 전부터 계속해서 관련자들과 논의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현실로 29인치 표준을 이끌어낼 순간이 왔다는 걸 직감했고, WTB사의 마크 슬레이크(Mark Slate)에게 29인치 타이어의 제작을 요청하면서 공식적인 29인치 산악자전거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트렉의 대표적인 29인치 XC 산악자전거 슈퍼플라이



프레임의 경우에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기존 26인치 산악자전거 프레임과 새롭게 설계한 29인치 산악자전거 프레임의 설계도를 프린트해 지오메트리를 비교해보고 실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데이터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26인치 휠셋에 비해 29인치 휠셋은 최소 3%에서 최대 8% 더 빠른 속도를 보여줬으니까요. 재미있는 건 이런 29인치의 빠른 속도가 언덕을 오르는 코스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나중에 실전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죠.



정말 멋진 순간들이었군요! 이런 혁신을 계속해서 이끌어온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큰 도움이 된 부분은 역시 가족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건축사 일을 하셨고, 저에게 설계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설계를 비롯해 이와 관련된 어떠한 정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지만, 그런 혈통, 전통을 이어받아 계속해서 혁신의 길을 열어갈 수 있었습니다.



혁신가이자 선구자인 당신에게 있어 삶의 핵심 키워드를 세 가지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일단 제일 첫 번째는 바로, 앞서 말한 ‘전통을 중시하라(respect tradition)’는 것입니다. 전통을 무너뜨리는 일은 언뜻 생각하기에 혁신으로 직결되는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혁신은 과거의 일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습니다. 기존의 것들을 모조리 없던 일로 해버리고 새로운 규격을 만드는 건 정말 쉽지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무조건 강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찌되었든 그 모든 것들에는 지지 기반이 있어야만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실현하라(bring it to reality)’는 겁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고, 누구나 혁신을 꿈꿀 수는 있지만 그런 것들을 실제로 만들지 않으면 전혀 소용이 없으니까요. 혁신에 있어 실체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요?

마지막은 바로 ‘힘들게 일하라(hard job)’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바꾸려고 한다면 힘든 순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을 도전하든, 새로운 혁신을 향해 나아가든 직접 부딪쳐보고 힘들게 일했을 때 비로소 꿈을 이루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키워드로부터, 저는 제 소유의 브랜드 Gary Fisher를 트렉 바이시클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업체가 바로 트렉이었으니까요. 다른 업체들이 무조건 앞서 가려고 할 때, 트렉은 전통을 존중하는 혁신을 이해하며 가족의 마음으로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함께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다면 27.5(650b)인치 규격의 산악자전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650b의 전망은?


 : 북미 브랜드 최초로 선보인 650b 규격의 트레일 바이크, 트렉 레메디(Remedy)



제 생각에 650b는 정말 탁월한 규격입니다. 기존의 26인치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도 않았고, 역시 기존에 있었던 규격을 다시 가져와 성공적으로 현실로 이끌어냈으니까요. 지금 당장 전 세계로 퍼져나가긴 힘들겠지만, 아마 10년 정도가 지나면 26인치를 밀어내고 차세대 규격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지금도 트렉과 함께 제품 개발을 하고 계신가요? 하고 계신다면 어떤 분야에서 협력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요즘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스마트 바이크(Smart Bike)입니다. 얼마 전 트렉의 하이브리드 자전거인 FX와 DS에 적용된 블렌더(Blender)가 바로 그것입니다. 앞으로도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전거를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군요. 앞으로도 트렉과 함께 하실 텐데 지금 트렉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트렉이 직면한 과제는 바로 ‘광고(Advertise)’입니다. 트렉의 기존 고객들은 트렉이 어떤 기업인지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요. 사실 트렉은 경쟁업체에 비교했을 때 무려 10배에 달하는 연구진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은 실제로 제품을 직접 연구하고, 제작하고, 실험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릅니다.

예를 들어 사이클링 의류 브랜드로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텐데요, 이탈리아의 카스텔리(Castelli)와 영국의 라파(Rapha)를 생각해보세요. 카스텔리는 사이클링 의류 분야에서 경험도 풍부하고, 기술력도 대단합니다. 반면 라파는 겨우 10년 밖에 안 된 브랜드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주 폭발적인 반응이죠! 멋진 사진, 사이클링에 관련된 멋들어진 이야기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겁니다. 카스텔리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이런 반응이 다소 이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라파는 ‘스포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understanding sports)’ 있는 겁니다.




: 트렉 FE26 콘셉트



소비자들에게 기술을 설명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정말 대단한 기술을 실제로 보여줬을 때 사람들은 실제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너무 기술적이니까요. 반면 어떤 업체들은 실제로 연구진도 제대로 없으면서 풍동 실험실을 만들어 그 안에 팀 선수들을 집어넣고 멋진 사진만 찍어서 보여주지만 사람들은 열광합니다. 구구절절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미지, 그 순간의 느낌이 사람을 사로잡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트렉은 앞으로 스스로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주는 능력을 갖춰야만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혁신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트렉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있게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트렉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고, 차차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한국 팬들이 궁금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당신의 콧수염입니다. 그런 멋진 콧수염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하하 콧수염! 제 콧수염의 비결은 바로 콧수염 왁스(Mustache wax)입니다. 주변 어르신들께 물어보세요. 콧수염 왁스만 있으면 저처럼 멋진 콧수염을 만들 수 있어요! 아, 밤에 자기 전에 제대로 각을 잡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에 콧수염이 조금 줄어들기도 하니까 조심하세요. 잠결에 콧수염을 깨물면 그대로 잘려나가 버리니까요!




: 이번 행사에서는 트렉/게리 피셔 컬렉션의 대표적인 스포츠 하드테일 마린(Marlin) 증정 이벤트도 있었다. 당첨자와 함께 즐거워하는 게리 피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게리 피셔를 만나지 못한 팬들도 많은데, 다시 한국에 방문하실 계획이 있으신지요?

물론입니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겁니다!




: 난지 MTB 파크에서 팬들과 함께



글·사진 이동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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