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렸을 적에 외계인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E.T.였다. 솔직히 말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보다 우뢰매나 영구와 땡칠이에 더 열광했던 유년기였지만, 어쨌거나 E.T.는 곧 외계인을 말하는 대명사였을 정도로 이 영화의 여파가 컸음은 분명하다. 철이 들고 영어를 배우면서 E.T.가 외계 생명체를 의미하는 Extra-terrestrial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쩐지 친근하고 착한 외계인이라면 여전히 ’이티‘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E.T.는 지구의 식물표본을 채취하기 위해 온 외계인 과학자였지만, 동료들이 지구인의 눈을 피해 서둘러 우주로 떠나면서 홀로 지구에 남는다. 홀로 남은 E.T.는 방황하다가 한 가정집에 숨는데 그 집 꼬마 엘리엇과의 만남을 계기로 지구 소년들과 끈끈한 우정을 쌓게 된다. 하지만 외계인의 존재를 눈치 챈 항공 우주국 직원들이 E.T.를 쫓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추적을 피해 E.T.를 자전거에 태우고 달아난다.
E.T.와 함께 달아나던 아이들은 경찰들을 그들의 놀이터로 유인한다. 거친 황무지처럼 보이지만 흙으로 만들어진 잘 다져진 점프대와 둔턱이 있는 그곳은 평소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던 곳이었으리라. 거친 흙길을 내달리는 아이들의 자전거는 다름 아닌 BMX다. 날쌘 턴과 가속으로 경찰차를 따돌리고, 가로막는 경찰의 머리 위로 점프해 따돌리는 장면은 30년 전 영화임에도 여전히 박력이 넘친다.
이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는 BMX가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시기다. 삽 한 자루만 있으면 한적한 동네의 공터에 코스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고, BMX를 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경주를 벌이는 모습은 어느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렇게 평소에 라이딩 실력을 다져놨으니 뛰는 경찰 위에 나는 꼬마들일 수밖에.
영화 E.T.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엘리엇이 E.T.를 태우고 하늘로 날아오른 자전거 역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극중에서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달고 나온 이 자전거는 일본의 자전거 메이커 쿠와하라(Kuwahara Bikeworks Japan)가 만든 BMX로 KZ-2.5라는 모델이다. 영화 E.T.의 성공과 함께 쿠와하라의 BMX는 단번에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비록 영화에 등장한 자전거는 허름한 바구니를 단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사실 내용물은 BMX 레이싱에 사용되는 고급 부품으로 꾸며진 자전거였다. 사실 이런 고급 자전거는 무척 비싸기 때문에 현실에서 어린이용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그러나 쿠와하라 KZ-2.5, 특히 E.T.에 등장한 컬러의 모델은 없어서 못 파는 자전거가 되었고, 인기에 힘입어 이후 ET-1이라는 새로운 한정판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이제는 E.T.를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듯, 1980년대의 BMX 열풍은 MTB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식어갔다. 그러나 쿠와하라는 여전히 BMX를 만들고 있고, 지난 2012년에는 영화 E.T.의 30주년을 기념한 BMX 모델 'KE-01'을 출시하기도 했다.
KE-01은 1980년대 초의 BMX를 놀라울 만큼 충실하게 재현했다. 자전거 프레임의 모양과 색 뿐 아니라 당시의 자전거에 장착되었던 부품까지 재현한 멋진 ‘올드 스쿨(Old School)' BMX다.
특히 쿠와하라 BMX의 특징이었던 V자 모양의 바가 가로지르는 핸들까지 원형 그대로 재현한 것은 놀랍다. 1980년대 BMX의 형태를 빈틈없이 재현한 만큼, 성능도 1980년대로 돌아간 것은 반가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E.T. 영화 개봉 당시에 격동의 청춘을 보냈던 늙은 소년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우리의 친구 E.T.는 떠났지만 자전거는 남았다. 쿠와하라 KE-01은 한정판 모델로 출시되었지만, 약간의 품을 판다면 지금도 구입 가능한 모델이다. 가격은 650달러에 한국까지의 배송료가 추가된다. 자전거 한 대에 100만원 가까운 돈을 쓴다는 것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추억을 영구 보존하기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비싸지 않은 투자다.
글 장낙규 기자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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