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 메이커 르노가 2018년 시즌부터 FIA 월드 랠리크로스 챔피언십에 참전한다. 르노는 메간 IV를 베이스로 레이스카를 개발 중이며, 레이스카 개발 파트너로 영국의 프로드라이브와 손잡았다.

르노는 이미 모터스포츠의 역사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현재도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자동차 메이커다. 레드불 레이싱을 비롯한 여러 F1 팀에 엔진을 공급하는 한편, 작년부터 팩토리 레이싱 팀이라 할 수 있는 ‘르노 F1’이 직접 레이스에 참전한다.

그러나 F1은 자동차 메이커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초고성능 레이스카의 무대일지언정, 엄밀히 말해 대중에게 가까운 무대는 아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F1 팬에게 르노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는 있겠지만, 르노 자동차의 고성능 이미지를 직접 전달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고성능 레이스카를 투입하면서 한편으로 F1보다 대중적인 모터스포츠 종목이라면 랠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랠리크로스’는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는 종목이다. 랠리크로스는 온로드/오프로드 구간이 섞인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전용 서킷에서 열리는 레이스다. 

코스 주행기록을 겨루는 전통적인 랠리와 달리, 여러 대의 경주차가 달리며 순위를 겨룬다. 특히 레이스 트랙을 뛰어넘는 점프와 드리프트 같은 ‘화끈한’ 요소가 군데군데 들어가 있고 한 번의 경기에 3-6대의 경주차가 출전해 몸싸움을 방불케 하는 ‘대결’을 벌여 토너먼트 방식으로 승부를 가린다. 모터스포츠를 처음 접하는 이도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대중적이다. 이것이 르노가 랠리크로스에 뛰어드는 이유 아닐까?

물론 랠리크로스에 나가는 레이스카, 특히 최상위 클래스인 ‘슈퍼카 WRX’에 출전하는 차는 시판되는 승용차의 외관에 엔진과 섀시는 전혀 다른 것을 사용한다. 600마력대의 엔진을 탑재해 0-100km/h 도달시간이 2초 이내로 F1카보다 빠른 가속성능을 자랑하는 이 레이스카를 온로드와 오프로드에서 자유롭게 모는 것은 묘기에 가깝다.

이미 많은 모터스포츠 경험을 갖고 있는 르노지만, 영국의 프로드라이브와 손잡은 것은 단기간에 고성능의 레이스카를 개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1984년 설립된 프로드라이브는 단순한 레이스카 튜너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엔진, 카본파이버 복합구조물, 유체역학디자인 분석 등 레이스카 개발을 위한 핵심기술을 담당하는 500여 명의 엔지니어가 활약 중이며, 심지어 아메리카 컵 출전 요트의 선체와 화성 탐사 로봇 개발에도 프로드라이브의 기술이 사용되었다. 

아직 레이스카는 개발 중이지만 르노와 프로드라이브는 몬스터에너지가 후원하는 프랑스 출신 드라이버 겔랑 치체리와 협력하며, 그를 중심으로 GCK라는 팀을 결성해 올해 9월부터 랠리크로스 무대에 나갈 계획이다. 겔랑 치체리는 전 프리 스키 월드챔피언이자 FIA 크로스컨트리 랠리 월드컵 우승경력이라는 독특한 경력을 가진 드라이버다. 

르노와 프로드라이브는 아직 외관을 도색하지 않은 ‘르노 메간 RX 슈퍼카’를 공개했다. 카본 특유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외관이 인상적이다. 시판되는 차량과 달리 보닛과 펜더, 루프, 도어에 이르기까지 외관 전체에 카본소재를 사용했다. 단순히 카본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벼운 것이 아니다. 카본섬유의 적층과 경화, 에어덕트와 같은 복잡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차량의 외관 전체를 깔끔하게 만들어내는 데는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내부에는 물론 차체강성을 높이고 전복이나 충돌 시 드라이버를 보호하는 롤 케이지가 장착되었다. 레이스를 위해 뒷좌석은 설치되지 않았지만, 메간 IV의 외관을 충실하게 재현하며 리어 도어와 손잡이까지 만들어진 것이 재미있다. 물론 도어와 펜더까지 전체가 카본, 투명한 창은 유리보다 훨씬 가볍고 질긴 폴리카보네이트제다.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달려야 하는 랠리크로스의 특성상 차체 높이는 시판되는 차량과 비슷한 수준. 차체 하부로 유입되는 공기량을 줄이고, 바퀴 주변 난류를 정리하기 위해 프론트 범퍼 하부와 펜더 주변에 두른 에어댐과 에어커튼이 인상적이다. 좌우로 돌출된 휠과 이를 덮는 커다란 펜더, 커다란 날개가 이 차의 성능을 암시한다.  

리어윙과 디퓨저는 다운포스뿐 아니라 차량 후방의 와류를 정리해 불필요한 저항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랠리크로스는 최고 속도를 겨루는 종목이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엄청난 가속성능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가벼운 차체와 높은 강성의 섀시가 필요하며 여기에 600마력의 2.0리터 터보엔진을 얹었고, 넘쳐나는 출력을 감당하고 민첩한 운동성능을 이끌어내기 위해 네 바퀴에 모두 동력을 전달하는 AWD 방식을 사용한다. 사실상 WRC에 출전하는 랠리카 플랫폼을 조금 변형한 형태다. 

그러나 메간 RX 슈퍼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100%의 성능을 이끌어내기 위한 개량이 이제부터 시작되며 오는 9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FIA 월드 랠리크로스 챔피언십 6차전에서 데뷔할 예정이다.  또한 이후에도 르노와 프로드라이브, 드라이버인 겔랑 치체리는 내년 시즌 직전까지 테스트를 거듭하며 랠리크로스 우승을 노릴 수 있는 레이스카를 완성해야 한다.

메간 RX 슈퍼카는 물론 양산될 가능성이 없는 레이스카다. 그러나 르노는 ‘메간 RS’라는 고성능 핫해치 모델을 보유하고 있으며, 르노의 랠리크로스 참전은 브랜드 이미지 향상과 함께 메간 RS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도 분명 일조하지 않을까? 

올해 초 르노삼성은 CEO 간담회에서 국내 소비자의 고성능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음에도 고성능 모델의 출시가 당장은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더라도 운전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화끈한 모델을 국내에서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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