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10시 여의도. 지인들과의 즐거운 만남을 뒤로 하고 택시에 올랐다. 목적지는 일산.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도 있었으나, 시간도 늦었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계속된 일과와 이후의 약속까지 소화하느라 비싼 교통비를 내더라도 귀가는 편히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서울 택시 안 푹신한 시트에 몸을 맡기고 마음이 풀어질 때 즈음, 생각하지 못한 불안감이 온 몸을 감쌌다. ‘기사 아저씨와의 대화’. 그렇다. 한 번 타면 집 앞까지 기사 아저씨와 뜻하지 않은 얘기를 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택시에 자리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대화가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고, 덕분에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최대한 말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썼을 텐데 말이다. 어찌 됐건, 난생 처음 보는 중년의 아저씨와 나눈 짧은 얘기를 통해 평소 알 수 없었던 택시기사의 고뇌와 번뇌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고, 우리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존재와 조금이나마 가까워 진 것 같아 값진 시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참고로 사진은 대화 당시 찍지 못해 추후 촬영한 것으로 대체했다.

 

 

혹시, 일산 가나요?

아, 네, 갑니다. 타세요.

 

(조수석 착석 후)원래 이 시간에는 장거리를 뛰지 않아요. 편도 20km 이상은 대략 12시부터 뛰기 시작하죠. 평일 이른 저녁에 일산과 같은 베드타운에 가면 십중팔구 손님을 태우지 못하고 서울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돈을 벌어도 가스 값으로 다시 돈이 들어가죠.

 

아, 몰랐네요.

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보통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세요?

오후 9~10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일합니다. 아무래도 심야시간에 술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이 많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을 여러 번 태워야 돈이 벌립니다. 택시는 자주 움직여야 수익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또 불경기라 그런지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술자리도 눈에 띠게 줄었고, 대리운전을 부르는 이도 증가했습니다. 여러모로 택시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면, 하루 평균 몇 팀 정도를 받으세요?

개인 및 단체 포함 25~30팀 정도 받습니다. 많이 받는 것 같죠? 그런데 수익은 그렇게 크지 않아요. 장거리를 가는 손님이 있는 반면, 단거리를 가는 사람도 꽤 되거든요. 거리로 따지면, 하루에 250~300km 정도 뛰는 것 같네요. 다시 말해 고생에 비해 벌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말이 250~300km지 일상이 되면 상당히 고단합니다. 매일 서울에서 대전을 왕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피곤합니다.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참, 어쩔 수 없다는 푸념을 낳게 하죠. 

 

아, 간혹 몇몇 손님들이 ‘왜 택시는 빨리 달리냐’라고 불만 섞인 어투로 물어보고는 하는데요, 저희도 압니다. 과속해서 좋을 것은 없죠.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택시는 많이 움직여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A라는 손님을 목적지까지 빠르게 모셔다 드리고 다음 B라는 손님을 받아야 합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거죠. 흔히들 ‘총알택시’라 부르는 부정적인 사회현상이 생겨난 원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돈 앞에서는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택시기사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니까요.

 

그래도 빨리 달리면 사고의 위험성 및 과속 카메라에 찍힐 확률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래도 결국 생계와 연결돼 있다 보니 속도를 줄이기가 쉽지 않네요. 이 때문에 과속 딱지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벌금이 돼 버렸어요. 저도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싶은데, 수익을 이런 식으로 밖에 낼 수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택시 관련 앱 증가로 벌이가 좀 나아지지 않았나요?

초창기에는 좋았어요.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찾아주고, 이에 따라 주머니도 평소보다 두둑했던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뭐든 항상 좋을 수는 없는 것이 세상사 이치 아니겠습니까? 장점만 있지는 않더라고요, 결국 사람이 문제인데, 솔직히 앱 자체가 콜 택시를 지향하는 것도 아닌데 마치 콜 택시를 부른 것 마냥 행동하는 손님들 때문에 골머리가 썩힙니다. 왜 앱 지도 위에 택시 위치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겠습니까. ‘콜비가 따로 없으니 미리 택시 위치를 확인하고 나와서 기다려주세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5~10분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돼 버렸어요. ‘도착했습니다’하고 연락을 하면, 그제서야 준비하는 게으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물론, 모든 손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부 몰상식한 이들 때문에 요즘은 앱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일반 손님을 받는 것이 속 편합니다.

 

그렇다면, 승차거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승차거부라는 것도 일부 진상 손님에 의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기사 입장에서는 그래요. 막말은 기본이고, 자기밖에 생각 못하는 그런 손님을 누가 받고 싶겠어요.

 

누가 진상 손님인지 어떻게 알죠?

택시기사들이 택시를 하루 이틀 몰은 것도 아니고, ‘아, 저 사람은 태우면 피곤하겠다’라는 감이 옵니다. 예를 들어 정해진 택시 승차장 내에 분명 여러 손님이 줄지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암묵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먼저 타겠다고 승차장보다 앞으로 나와 기다리는 이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 100%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죠. 되도록 태우고 싶지 않습니다.

 

택시는 언제부터 몰았나요?

5년 좀 넘었습니다. 원래는 잠깐만 하고 그만 둘 생각이었는데, 뭐,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 되나요? 안되잖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몰고 있네요.

 

 

(분위기를 달리해서)몰고 계신 LF 쏘나타 택시는 어떤가요? 좋나요?

이 차요? 좋습니다. 지금 4만7,000km 정도를 달렸는데, 만족합니다. 잘 나가고 제동력도 나쁘지 않습니다. 게다가 택시의 필수 요소인 공간적인 부분도 합격점을 줄 만큼 넓죠. 이전에 몰았던 YF 쏘나타보다도 넓습니다. 성능적인 부분도 더 우수하고요. 무엇보다 ‘신차효과’로 영업적인 면에서도 이득입니다. 손님들이 헌 택시보다는 새 택시를 더 선호한다는 의미고요, 실제로 오래된 택시대신 제 LF 쏘나타 택시를 타려고 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단점은 없나요?

굳이 단점이라고 하면 연비를 꼽을 수 있겠는데, 뭐, 고속으로 달릴 때는 상관없어요. 문제는 도심인데, 가다서다를 반복하니까 효율이 그렇게 좋지는 않더라고요, 결정적으로 LF 쏘나타 택시가 무거워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 차였던 YF 쏘나타 택시보다 연비가 더 안 나오는 것 같아요(LF 쏘나타 택시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9.6km, 공차중량은 1,465kg이다).

 

얘기하다 보니 금방 왔네요. 여기 맞죠? 다 온 것 같은데요.

 

아, 네, 맞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닙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들도 고충이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뒤 기사와의 짧은 얘기를 되새겨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척박한 근무 환경과 그 안에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왔던 위험성, 그리고 이와 관련된 택시의 부정적인 인식 등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삶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다가왔다. 결국 택시기사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고, 여유가 부족한 한국 사회 안에서 제 살길을 찾아 바삐 살아가는 서민이었다. 지극히 어느 택시 기사의 사견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총알택시 및 승차거부와 같은 좋지 않은 단면이 도출되고, 이로 인해 대중으로부터 지탄받아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늦은 밤, 떠나간 택시를 보내며 의도치 않게 깊은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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