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여객터미널의 출입국사무소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근무 중이던 경비원, 행정공무원 그리고 하역작업 중이던 지게차 아저씨까지, 낮선 모습의 스파이더들의 등장에 하나둘 모여들어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도 그럴 것 이번 일본투어는 국내 등록된 스파이더로 최초의 해외투어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날-일본으로 떠나는 스파이더
캐나다의 BRP에서 캔암 스파이더가 개발되어 출고된 지가 8년이나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등록할 수 있는 법이 없어서 극소수의 마니아들에 의해 소수가 비정상적으로 수입은 되었지만, 이후 바이크원의 집요한 노력으로 드디어 2015년부터 국내에 정식 등록이 가능하게 됐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첫 해외 투어팀이 부관페리에 실렸다.
출발 전부터 이번 스파이더 일본투어에는 몇 가지 걱정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오토바이로 등록이 되어 있지만 일본에서는 자동차로 등록이 되어있는 스파이더가 과연 통관하는데 이상은 없을지 선적료는 더 받지 않을지, 또 별다른 문제없이 일본에 도착을 한다 해도 좁은 일본의 도로에서 정상적인 투어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둘째 날-일본 고속도로를 경험하다
밤새 거친 대한 해협을 달려 이른 아침 성희호는 일본의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다. 접안이 시작되고 선내에선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6시부터 아침식사. 7시 40분부터 하역작업이 시작되니 바이크를 타고 오신 손님들은 하선 준비를 하라고 한다. 엄청 큰 부관페리의 지하에 있는 차량용 화물 데크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고래 뱃속에서 요나가 토해져 나오듯 성희호의 뱃속에서 자동차들이 쏟아져 나온다. 드디어 국내 등록된 스파이더가 최초로 일본에 상륙했다. 일본 정복 작전에 투입될 전투 장비처럼,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독특한 외모에 전투적으로 생긴 스파이더들이 시모노세키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관문대교를 건너 혼슈에서 큐슈로 접어들어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린다.
대한민국 라이더들의 간절한 소망이던 고속도로 주행, 하지만 일본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륜자동차, 삼륜자동차, 사륜자동차 차별이 없다. 한 시간 가량을 달려 후쿠오카를 지나 다이자후에 도착했다. 오토바이들은 역시 한 쪽 귀퉁이로 인도되고 스파이더들은 자동차 주차라인으로 자리를 잡아준다. 그러나 주차 요금은 두 배였다. 이런 점에서는 역시 두 바퀴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최대의 학문의 신을 모신다는 다이자후에는 신학기를 앞두고 일본 전역에서 엄청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대관봉에서 바라본 아소산의 분화구에선 조금씩 연기가 올라온다. 불과 몇 달 전 큰 폭발이 있었던 활화산이라고는 도저지 믿기지 않는 평온한 모습이다. 해발고도 1000미터의 대관봉 고원에는 규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잔설이 남아있다. 쌀쌀한 날씨에 단단히 무장을 하고 우리는 아소 스카이라인을 타고 황혼의 찬란한 햇볕을 느끼며 숙소로 달렸다.
셋째 날-친절함에 즐거워진 여행
고요한 스머프 마을의 아침이 밝았다. 이글루 같은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진 수백 채의 숙소를 가진 아소팜랜드에 붙여진 별명이다. 이른 아침 서둘러 우리는 아름다운 아소파노라마 로드를 따라 쿠사센리를 지나 아소산에 올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소분화구는 진입이 금지되어 바로 코앞의 주차장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소산을 지나 일본의 건국신화가 담겨있는 다카치오 협곡으로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답다.
하지만 이상 기온의 쌀쌀한 날씨 탓에 응달진 모퉁이 도로에는 조금씩 얼음과 물기가 남아있었다. 두 바퀴의 오토바이에게는 치명적인 도로의 상태지만 첨단 장치를 더한 세 바퀴의 스파이더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꼬불꼬불한 산길들을 돌고 돌아 다카치호에 도착했다. 정교한 주상절리, 깊고 푸른 물 소리, 태고의 신비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다카치호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일본 최남단의 도시인 미야자키로 향했다.
미야자키에 위치한 쉐라톤 그랜드 호텔까지 주행 중이었다. 오마루강을 따라 협곡에 만들어진 22번 지방도에 도착했을 때 산사태 복구공사 중이라 도로는 전면 통제 중이었다. 다른 길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먼 거리를 달려왔다. 도로를 막고 서있는 공사 관계자는 오토바이는 산길을 따라 좁은 길이 있으니 돌아가면 되지만 스파이더는 갈 수 없는 좁은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잠시 당황해 있는 사이 우리를 지켜보던 공사 관계자는 열심히 무전으로 연락을 주고받더니 공사구간으로 그냥 통과하라고 허락해줬다. 고마운 마음에 몇 번이나 “아리가토”를 외치며 오마루강의 협곡으로 접어들었다. 개성 강한 스파이더 덕을 본 듯했다.
넷째 날-험난한 추억을 만들다
미야자키의 아침은 폭우로 시작됐다. 일정대로라면 8시 호텔을 나서야 했지만 동승자를 태워야 하는 팀원이 있어 잠시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얼마 후 비가 소강상태를 보여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왔다. 내리는 빗속에서 미야자키에서 유명하다는 라면집을 찾았지만 식당은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동큐슈 고속도로의 자그마한 휴게소에서 혼 없는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날씨가 좋아지고 있었다.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돌아내려가니 기리시마만의 거친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후 1914년 폭발로 섬에서 육지가 된 사꾸라지마 화산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꾸라지마에서 페리를 타고 가고시마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이 됐다.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280km가 남았는데 이미 해는 지고 날씨는 흐리고 고속도로에는 비가 내린다는 도로 표지판은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내일은 부산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곳까지 주행 후 안전에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 생기면 중간에서 숙소를 찾기로 하고 저녁 9시쯤 가고시마를 출발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고속도로의 노면은 젖어있다. 야간 주행의 젖은 노면에서 와이드 타이어로 무장한 삼륜의 스파이더들의 높은 안전성이 빛을 발한다. 늦은 밤 고속도로에서 안전속도를 유지하며 9대의 바이크가 함께 이동하는 것은 약간의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그룹으로 나누기로 했다. 늦은 저녁 250km를 달렸을 때 무전기에서 앞서가던 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행의 모터사이클 중 한 대의 연료가 떨어졌다.
마침 2km 전방에 간이 휴게소가 있어서 안전한 곳에 정차를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곳엔 주유소가 없었다.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곳이라 딱히 방법이 없었다. 고민 끝에 이번 투어의 촬영팀에서 타고 있는 바이크를 눕혀 기울어진 주유구를 통해 흐르는 연료를 부었다. 응급조치를 하는 동안 다른 팀과 합류해 목적지까지는 함께 주행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무사히 호텔에 도착해보니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섯째 날-4박 5일의 투어를 마감하며
국내 최초로 진행된 스파이더들의 일본투어의 마지막 날은 시련 뒤의 축복처럼 시작됐다. 하지만 좁고 복잡한 일본의 도심에서 스파이더들을 주차하는 문제는 쉽지 않았다. 자동차들은 주차타워에 이륜차는 지정 주차장에 하지만 삼륜의 스파이더는 완전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륜자동차가 아닌 소형자동차로 분류된 스파이더는 항상 노상의 무인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했다. 한 시간당 주차요금은 약 3~4만 원씩 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어제의 고생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마음으로 후쿠오카시내에서 쇼핑도하고 초밥도 먹었다. 화창한 날씨와 여유로움 속에 다시 투어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돌아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다시 일본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시모노세키까지 약 100km의 거리지만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는 일본의 고속도로를 통해 지나오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 했다. 깊이 잠든 대한 해협을 건너 아침이 돼서야 부산에 도착했다. 전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스파이더와 함께 국내 최초로 도전한 4박 5일 일본투어는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과 성취감을 느끼기 충분했다.
글/사진 박경수
제공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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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성엽 ssy@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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