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면서 웃음이 나긴 정말 오랜만이다 . 재미있는 차를 만났다 . 내가 가려는 길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이 움직여줬다 . 너무나 안정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깊게 밟고 , 과격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놀고 있는 기분이었다 . 폭스바겐 ‘골프 R’은 그런 차였다 .
왕좌에 오를만한 달리기 성능
왜이리 바쁜 걸까 . 빽빽한 일정 탓에 제대로 쉬어본 게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 골프 R과 함께한 날도 퇴근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향했다 . 주차장에 고이 세워놓고 집에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다시 차에 탈 수밖에 없었다 . ‘이런 녀석을 주차장에 묶어두는 건 예의가 아니지 … ’
시동 버튼을 누르자 보통 골프와 다른 소리를 냈다 . 이 차는 2.0리터 TSI 엔진을 장착했다 . 최고출력 292마력 (hp, @5,400~6,200), 최대토크 38.7kg ㆍ m(@1,900~5,300)의 힘을 가진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 6단 DSG 변속기와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인 ‘4MOTION’ 덕에 엔진의 힘을 네 바퀴 모두에 빠르게 전달한다 . ‘4MOTION’은 5세대 할덱스 커플링을 사용한 최신형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이다 .
도로에 나오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 길에서 보이는 골프와 달리 조금 큰 배기음 , 살짝 멋을 낸 외관 탓일지도 모른다 . ‘남다른 성능 ’을 느껴보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 중미산이라도 가보면 어떨까 싶었지만 너무 멀었다 . 그래서 문득 생각난 곳은 ‘북악스카이웨이 ’. 여러 형태의 코너가 어우러진 곳이어서 빠르게 달리지 않더라도 코너링 성능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
도로상황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좁고 험한 길에서 격하게 몰아도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 오르막 산길을 달리면서도 힘이 부족하지 않았고 , 안정감 있게 도로를 꽉 쥐고 돌아나가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
단단한 하체는 운전의 즐거움을 높여줬다 . 코너에 앞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도 차가 앞으로 쏠리는 느낌이 적었다 . 커브를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차가 휘청거리지 않고 노면을 움켜쥐고 달리는 듯했다 . 급한 코너가 연속되는 길에선 날렵한 몸놀림이 일품이었다 . 뒷바퀴가 코스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 더 달려보라고 부추기는 듯했다 .
달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잘 서는 거다 . 브레이크 성능은 나무랄 데가 없다 . 일부에선 브레이크가 빨리 지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 직접 몰았을 땐 다운힐 (Down-hill) 상황에서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 성능과 성격에 잘 어울리는 세팅이다 . 멈춰 서는 느낌도 꽤 좋은 편이다 .
그리고 이 녀석은 주행 모드를 고를 수 있다 . 기어 레버 옆 ‘드라이브 모드 ’ 버튼을 눌러 레이스 , 노멀 , 에코 , 개별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 스포츠 모드 대신 레이스 모드가 있어서 신선했다 .
‘레이스 모드 ’는 말 그대로 극한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 모드다 . 엔진음이 커지고 변속 시점도 달라진다 . 엔진 회전수를 높이면 고막을 자극하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펴진다 . 직접 들어보면 반할 만한 사운드다 . 그래서인지 자꾸 레이스 모드에 손이 갔다 . 물론 ‘에코 모드 ’에서는 다른 녀석으로 변한다 . 빠르게 변속하고 최대한 낮은 엔진 회전수를 유지하며 조용히 달리는 것이 마치 안경을 쓴 ‘모범생 ’ 같은 느낌이었다 .
간결함을 유지한 겉모습
이 차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강인한 느낌을 받는다 . 과하게 멋을 내지 않고 고성능 버전이라고 티를 내지 않아도 이 녀석의 성격이 파악된다 . 흔히 알고 있는 경제성을 중시한 골프 같지만 한편으로는 골프 같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
헤드라이트에 빛나는 ‘U’ 자형 LED 주간 주행등 마저 특별하게 보인다 . 넓게 뻗어 있는 앞 범퍼에 널찍한 공기 흡입구가 강인한 느낌을 준다 . 라디에이터 그릴에 작게 붙어있는 ‘R’ 배지는 이 차의 성격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
옆 모양은 전형적인 해치백이다 . 다만 은색으로 꾸민 사이드미러 커버와 블랙과 스틸로 멋을 낸 19인치 알로이 휠이 눈에 들어온다 . 또 일반 골프보다 자세가 20mm 낮아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
뒷모습은 더 인상적이다 . LED로 꾸민 테일램프는 균형감을 주고 두 갈래로 나뉜 배기구는 터프한 느낌을 준다 . 또 뒤범퍼 아래 장착된 디퓨저는 탄소섬유 (카본 )로 만들었다 .
미묘한 차이를 가진 실내
‘크게 다르진 않네 ?’ 차에 탄 다음 느낀 첫인상이다 .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보인다 . ‘R’ 모델에만 적용되는 블루컬러 속도계에 찍혀있는 숫자는 무려 320km/h. 스티어링 휠은 ‘D’ 컷으로 꾸몄고 손에 닿는 가죽은 땀이 차지 않도록 처리됐고 , 촉감 또한 좋았다 . 시트와 도어 트림에 카본 (탄소섬유 ) 패턴을 넣어 멋스러움을 더한 점도 매력이다 .
대시보드 중앙에 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쓰기 편리했다 . 블루투스로 휴대폰을 연결하는 방법도 쉬웠고 ,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의 시인성도 좋았다 . 단 , 후방카메라가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
뒷좌석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 머리 공간과 무릎 공간이 나름 (?) 충분해 불만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 트렁크 공간도 넉넉했다 . 뒷좌석에 사람을 태우는 것을 포기하고 의자를 접으면 많은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다 . 이건 다른 골프와 같다 .
말 그대로 최고의 장난감
독일 사람들은 ‘Auto ist ein bestes Spielzeug‘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 ‘자동차는 최고의 장난감이다 ‘란 뜻이다 . 이 말에 딱 맞아 떨어지는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 시원스레 달리고 격하게 몰아도 내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이었다 . 운전하는 내내 신나게 웃으며 놀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
물론 더 강력하고 재미있는 차들도 있지만 그런 차들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 하지만 이 녀석은 넉넉한 뒷좌석 공간에 널찍한 트렁크까지 갖추고 있으니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다 . 평일엔 데일리카로 , 주말엔 레이싱카로도 변신할 수 있다 . 장난감 값 , 5,190만원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
글
허인학 heo@ridemag.co.k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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