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서 미끄러지진 않을까? 헛바퀴가 돌면 어쩌지? 천천히 달려야 할까? 빠르게 건너야 할까?...’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고민을 했다. 오프로드는 긴장과 고민의 연속이다. 겨우 발목이 잠길 정도의 개울처럼 보였는데도 혹시 모를 변수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함께한 다른 사람들도 머뭇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저속 4륜구동인 ‘4L' 모드로 바꾸고 물에 들어갔다. 차 밑에선 요란한 소리가 난다. 무게 때문에 돌들이 짓눌리는 소리다. 페달에 약간 더 힘을 주니 여유 있게 물살을 가르며 지날 수 있었다. 렉스턴 W앞에선 오프로드도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새 엔진과 새 변속기

렉스턴 W

쌍용자동차는 새 엔진과 새 변속기를 렉스턴 W와 코란도 투리스모에 적용했다. 유로6 기준을 만족하는 새로운 2.2리터 d-XDi220 엔진의 최고출력은 178마력, 최대토크 40.8kg·m의 힘을 낸다. 기존 155마력, 36.7kg·m보다 힘이 세질 수밖에 없다. 연비는 리터당 12.0km다. 새 변속기는 신형 E-클래스와 S-클래스에 적용되는 7단 자동변속기와 동일한 것을 탑재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주장이다.

렉스턴 W 엔진룸

쌍용차는 시승코스를 고속도로와 험준한 오프로드로 구성했다. 배기량을 0.2리터 늘린 유로6 엔진과 벤츠 7단 자동변속기로 무장해서인지 관계자들은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두 차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체험해봤다.

코란도 투리스모


오프로드를 달리는 이유



모든 SUV가 거친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건 아닐 게다. 차고가 낮고, 2WD 방식 SUV로는 돌과 흙으로 덮인 길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니 여태껏 SUV를 시승하면서 매번 잘 닦인 아스팔트 위만 달렸었다. 심지어 자동차 경주용 서킷을 달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높은 차체와 물렁한 서스펜션 덕에 고무공 위에 올려둔 의자에 앉은 느낌을 받았다. 오프로드는 두렵기도 했고, 혼자 다닐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특유의 출렁임은 SUV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래서 당연한 말이지만, SUV는 오프로드에서 타봐야 진가를 체험할 수 있다. 높은 차체와 물렁한 서스펜션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해준다. 차체가 낮으면 차 바닥이 여러 장해물에 닿을 수 있다. 아까운 내 차가 상하는 소리는 꽤나 기분 나쁘다. 그리고 서스펜션이 딱딱하면 울퉁불퉁한 길의 충격이 온몸에 그대로 전달된다. 마지막으로 네 바퀴 굴림 방식 없이는 힘든 길도 있다. 네 바퀴 중 일부가 땅에 닿지 않은 채로 지나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코란도 투리스모, SUV 성격의 미니밴



먼저 시승한 건 코란도 투리스모다. 길이는 5미터가 넘고, 휠베이스도 무려 3미터나 된다. 심지어 차 무게는 2톤이 넘는다. 이런 차로 비포장도로를 잘 달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오프로드에 앞서 국도를 달릴 땐 큰 덩치 탓인지 뒤뚱거림이 심했다. 그렇다 해도 새 엔진과 변속기는 나쁘지 않았다. 고속으로 달려도 실내는 제법 조용했다. 차음재를 보강한 덕분이란다.



얼마나 달렸을까. 가평 방하리 오프로드 코스에 들어섰다. 2륜구동(2H)이었던 드라이브 모드를 ‘4H'로 바꿨다. 네 바퀴 모두를 굴리니 확실히 다르다. 제법 안정감이 느껴진다. 앞과 뒤에 적용된 서브 프레임과 뒷바퀴의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노면의 충격을 줄여준다. 온로드보다 오프로드에서 더 만족스럽다. 코란도 투리스모는 미니밴이지만 SUV에 가까운 모습이다.




렉스턴 W, 험난한 산길 거침없어 



오후엔 렉스턴 W에 올랐다. 이 차는 쌍용차의 최고급 SUV다. 엔진과 변속기는 앞서 탄 코란도 투리스모와 같지만, 실내는 한결 고급스러웠다. 진짜 나무 같은 장식을 많이 썼고, 운전석은 세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코란도 투리스모를 탄 다음의 소감이다. 고급 모델답게 편의 품목을 더 넣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스티어링 휠은 앞뒤 거리 조정(텔레스코픽)이 되지 않아 불편했고, 동승석 창문은 자동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했다.



오프로드에 접어들었다. 코스는 훨씬 험했다. 가평 칼봉산 자락을 넘어야 한다. 시속 20km 이상 속도를 낼 수 없는 길이다. 드라이브 모드를 '4L'로 바꿨다. 길에는 큰 돌이 많았고, 옆으론 수풀이 우거져 나뭇가지들이 차에 스쳤다. 나무에 가려 블라인드 코너도 많았고 길의 고저차가 있어서 운전이 쉽지 않았다. 앞이 안 보일 때는 전방 카메라가 도움이 됐다. (전방 카메라는 코란도 투리스모에도 있다.)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HDC(Hill Descent Control)를 이용하며 내려갔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도 시속 5~30km의 저속으로 자동주행하는 장치다. 브레이크 사용을 줄여줘 브레이크 파열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뭐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험한 길을 달렸다. 난생 처음이다.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꽤나 흥미진진한 코스가 아니었을까. 길이 이렇게 험한데도 불구하고 차는 꽤 안정적이었다. 풀 프레임 구조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차체가 비틀리지 않아 험로에서 자세를 유지하는 덴 모노코크 방식보다 프레임 방식이 유리하다. 프레임 방식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한 이유다.




정통 SUV 명맥 유지, 하지만 개선 필요



이 날 시승한 두 모델 모두 새 엔진과 새 변속기 덕분에 오르막 등판능력이 뛰어났고 험로 주행도 우수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SUV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세월이 꽤 흘렀다. 오래된 차체 구조와 부족한 편의품목은 경쟁 차종의 화려함을 떠올리면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좋은 칼도 갈지 않으면 오랜 세월에 무뎌지기 마련이다. 과거의 좋은 기술력을 잘 갈고 닦아 정통 오프로더의 명맥을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글 : 김진아 기자
사진 : 김진아 기자, 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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