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참았던 걸까. 22일 열린 신형 K5 시승회에서 만난 기아차 관계자들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보였다. 기아자동차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핵심 차종, K5가 처음으로 평가 받는 날이니 분명 조심스러웠을 테다. 이 회사에선 처음 시도하는 듀얼 디자인을 적용했고, 엔진 라인업도 취향에 맞게 다양하게 준비했다. 게다가 이런저런 화려한 편의장비와 안전장비들로 무장했으니 차를 타본 소감을 묻지 않고선 배겨 내지 못했을 거다.



기아는 신형 K5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컸다. 전작의 성과를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과, 여러 새로운 시도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이름과 디자인을 이어간다는 거다. 그동안 중형 세단을 내놓으며 이름을 계속 바꿔왔다. 그나마 수출명으로 ‘옵티마’를 쓰면서 이름을 유지한 게 전부다. 쏘나타가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온 것에 비하면 내세울 게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기아차 이미지를 한 방에 바꿔버린 혁신의 아이콘, K5의 전통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미지의 연속성



겉모양은 구형에서 이어지는 연속성을 표현한 탓에 “달라진 게 뭐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사진만 봤을 땐 그럴 법도 하다. 실제로 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훨씬 웅장하다. 구형은 작고 날쌨다면 신형은 크고 세련된 느낌이다. 게다가 모던함을 강조한 MX와 역동성을 강조한 SX로 디자인이 나뉜다. 취향에 따라 디자인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인테리어에서도 연속성을 강조했다. 신형 쏘렌토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기아 라인업의 연속성을 보인다. 탑승공간을 둘러싸는 듯한 랩 어라운드 타입으로 구성된 인테리어와 단순한 면을 표현한 센터페시아. 그리고 그곳을 관통하는 박음질까지. 이런 노력들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이어가려 했다.



이날 시승차의 디자인은 MX였다. 앞 범퍼 아래 육각형 모양의 LED 안개등이 귀엽다. 그 위에 자리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길쭉하게 양쪽 헤드램프와 이어진다. 연결감이 좋다. 앞범퍼 양쪽 아래엔 앞 타이어로 이어지는 구멍이 뚫려 있다. 공기 흐름이 차체를 잡아주면서 타이어를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옆 모양은 길쭉하다. 앞에서 뒤로 이어지는 느낌이 단정하다. 얇고 길게 디자인된 테일램프도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요소다. 


2.0 CVVL – 조용하고 무난해



신형 K5의 엔진은 다섯 가지다. 이중 2.0 CVVL을 먼저 탔다. 딱 중형 세단이다. 두루두루 무난한 컨셉트다. 공회전 상태에선 시동이 걸린 줄도 모를 만큼 조용하다.

가속할 때 들리는 소리는 꽤 스포티하지만, 실제 주행 성능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성능은 2.0리터급 자연흡기 방식 가솔린 엔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최고출력 168마력, 최대토크 20.5kg.m의 성능을 낸다. 변속기는 6단 자동. 분명 이번 K5 라인업 중에서 가장 무난한 성격일 거다.



엔진룸에서 들리는 소리나 달릴 때 바람소리는 잘 차단됐다. 깜짝 놀랄 만큼 조용하다. 상대적으로 하체에서 들리는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이날 시승한 코스는 외곽순환도로다. 그리 조용한 노면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내 정숙성은 꽤 뛰어난 편이다. 시속 140km쯤에서도 동승자와 대화를 나누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고속주행안정성은 놀랄 만큼 발전했다. 시속 180km쯤에서도 차분하다. 멈춰 설 때도 자세를 비교적 꾸준히 유지한다. 핸들링은 긴 허리 탓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차선을 급히 바꾸거나 고속 코너링에서도 꾸준함을 유지한다. 골격이 훨씬 단단해진 덕분이다. 여기에 듀얼 로어암 타입 후륜 서스펜션도 한 몫 했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엔진 회전 수가 조금 더 높아지면서 반응이 빨라진다. 에코로 놓으면 힘을 쭉 뺀다. 페달을 밟아도 잘 나가지 않는다.


1.7 디젤 - 단단한 서스펜션이 특징



1.7 U2엔진은 최고출력 141마력, 최대토크 34.7kg.m의 성능을 낸다. 2.0리터급 가솔린 엔진보다 배기량은 줄었지만 순간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은 훨씬 세다. 가속할 때 느낌도 나쁘지 않다. 부드러우면서 빠르게 가속된다. 변속기는 7단 DCT가 맞물린다.



달릴 땐 2.0 가솔린보다 조용하게 느껴졌다. 디젤엔진 특유의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해 흡차음재를 더 보강한 탓이 아닐까 싶다. 연비는 차를 격하게 몰아붙였을 때 리터 당 11km쯤이었고, 흐름에 맞춰 부드럽게 했을 때 리터 당 19km가 넘었다. 먼 거리를 달리면서 체크하면 연비는 훨씬 좋아질 것 같다.

먼저 탄 가솔린 2.0 모델과 비교하면 서스펜션이 단단한 편이다. 유럽 차의 느낌을 주려 노력한 것 같다. 


뒷좌석에 앉아보니 넓은 공간 인상적



인테리어는 몇 군데 소재가 살짝 아쉽다. 보기와 달리 딱딱한 곳이 많다. A필러는 가죽 느낌이 나도록 모양을 냈지만, 빛이 많이 들어오니 반사되며 플라스틱 티가 많이 난다. 차라리 천을 덧댔으면 어땠을까 싶다. 센터페시아의 여러 버튼은 만질 때 느낌이 좋다. 조작하기 쉽게 잘 구성됐다. 내비게이션도 빠르고 기능마저 많아 좋다. 스마트폰 무선충전 기능도 들어있는데, 아직까진 호환되는 몇 개 기종만 해당되니 크게 와닿진 않았다.



뒷좌석에도 앉아봤다. 휠베이스가 길어져서 공간이 꽤 넓다. 중형차가 맞나 싶을 정도다. 대형차를 탄 듯한 느낌이 든다. 문짝엔 작은 수납공간도 마련됐다. 작은 페트병도 충분히 들어간다.

조수석 시트 등받이 왼편에 붙어있는 ‘워크인 디바이스’를 이용하면 조수석 시트 위치를 쉽게 옮길 수 있어 편하다. 운전석에선 동승자를 배려할 수 있고, 뒷좌석에선 공간을 만드는 데 유용한 기능이다. 다만, 잠금장치가 없어 주행 중엔 아이들이 장난치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다.



트렁크에서 넘어오는 소리도 적은 편이다. 옆 창문의 선셰이드도 좋다. 햇빛을 잘 가려준다. 이왕이면 뒤 유리에도 가리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정체성을 이어가길…



신형 K5는 완전히 새로운 차다. 모든 걸 바꿔놨다. 특히 탄탄해진 주행감각이 마음에 든다. 초고장력 강판을 51% 적용하고, 구조용 접착제를 다섯 배 이상 써서 강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에어백도 7개나 기본 적용했다.



일단 전통을 이어가려 한 건 칭찬할 일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자동차가 단순히 탈 것을 넘어 ‘문화’이자 ‘생활’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아울러 차를 만들고 판매함에 있어서 ‘스토리 텔링’도 수반돼야 할 것 같다. 역사와 전통 뒤에는 항상 숨은 얘기들이 많다. 잘 포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쏘나타가 보수적인 성격이라면 K5는 조금 더 공격적이다. 같은 플랫폼을 쓰지만 전략을 달리 해서 최대한 서로의 정체성을 살리려 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잘 참고했으면 좋겠다. 서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개성을 잘 살린 게 상생의 묘책이 아닐까.


글/ 박찬규 기자 star@ridemag.co.kr
사진/ 박찬규 기자, 기아자동차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