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9.16 월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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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의 F1 스토리 - F1 카 색칠하기



지난 열 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F1 카의 디자인, 조작 방법, 동력 계통, 공기 역학, 타이어 등에 얽힌 기술을 대략적으로 살펴봤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려운 내용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웬만해선 펼쳐보고 싶지 않은, 교과서에나 등장할 만한 딱딱한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다 보니 이쯤 되면 F1이란 주제에서 뭔가 큰 재미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게서 원망이 터져나올 만도 하다. 잠시 말랑한 F1 토픽으로 눈을 돌려 숨을 고르자. 쉬어가기 위해 필자가 고른 소재는 ‘F1 카의 페인트칠에 얽힌 F1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자동차의 외장에 사용할 수 있는 컬러의 수는 이론적으로 무한하다. 하지만, 인간의 눈이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색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고, 이 중 자동차에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컬러는 열 손가락으로도 세기에 충분할 정도로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없는 살림 와중에 일부 컬러는 전통의 명차 혹은 아이코닉한 자동차 모델의 몫으로 떼어 주어야 한다. 이들 컬러-모델 컴비네이션은 추억의 인기 듀오 ‘서수남과 하청일 (Suh Soo Nam & Ha Cheong Il)’, 천재 일렉트로닉 뮤직 듀오 ‘다프트 펑크 (Daft Punk)’의 케미컬 만큼이나 절대적이어서 대중은 “OO색 자동차 하면 OOO이 갑이지”라며 자동차의 색상 만 듣고도 무의식적으로 그 짝 모델을 떠올린다. 만약 이 색이 칠해진 다른 자동차 모델을 접하면 다수의 경우 마치 서수남이 다프트 펑크의 보컬로 나서는 모습을 본 듯 몹시 어색해 하거나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람보르기니 레벤톤

예를 들어보자. 무광의 짙은 회색은 람보르기니의 전유물과도 같은 색이다. 형광 연두색은 포드의 고성능 모델, ST 와 RS 말고는 맘 편히 사용하는 모델이 없다. 망고빛 노란색은 르노의 스포츠 모델을 상징하는 색이다. 이 색을 섣불리 칠했다가는 택시 같다는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 실버는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자동차 색상 중의 하나지만 실버 하면 생각나는 자동차를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메르세데스-벤츠를 꼽는다.


르노 클리오 RS 200

그리고 그 정점에 페라리가 있다. 레드 컬러는 페라리의 전매 특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머리 속에 레드는 페라리를 상징하는 절대 색으로 각인되어 있다. ‘빨간 자동차 = 페라리’란 등식의 탄생 배경은 페라리 F1 팀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 없다. 페라리 로드카는 페라리 F1 팀과DNA를 공유한 형제이고 한 세기에 조금 모자란 페라리 F1 팀의 역사를 통틀어 그들의 상징 색은 언제나 레드였기 때문이다.


페라리 488 GTB

비즈니스로서 F1 팀의 주 수입원은 무엇일까? 한 시즌 동안 거둔 레이스 순위 결과를 근거로 F1 주관사로부터 받는 배당금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F1 팀의 가장 중요한 수익 모델은 후원자들의 돈을 받아 이들의 상품이나 브랜드를 광고하는 스폰서십 (Sponsorship)이다. F1 팀은 노출이라는 상품을 스폰서와 파트너들에게 판매한다. 현대 F1 비즈니스에서 스폰서십은 필수 요소이고, 스폰서십이 없다면 F1 팀들은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F1의 스폰서십 비즈니스는 F1 팀과 광고를 원하는 기업 혹은 기관을 직접 연결한다. 때문에, 이를 통해 F1 팀은 수입을 얻고, 광고주들은 전통적 마케팅 수단을 거치지 않고서도 전세계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브랜드나 상품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한 이유는F1이 연간 시청 인구가 가장 많은 스포츠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지극히 사소한 F1의 동정까지도 경쟁적으로 전달하는 수많은 스포츠 매체들 덕분에(?) F1 팀들의 노출 빈도가 꽤 높기 때문이다. F1에 대한 관심이 거의 전무한 한국에서는 믿기지 않을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현재에도 그렇듯 모터 스포츠는 과거 부유한 젠틀맨들의 취미였고 F1의 시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기업들의 스폰서십이 F1에 광범위하게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폰서십은 F1이란 스포츠가 수십억 달러 가치의 하이테크 산업으로 변신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공중파 혹은 위성 방송을 통해 F1 레이스가 전세계 여러 나라에 생중계되기 시작했고, F1은 전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여러 제품이나 브랜드들의 광고 매체로 급부상한다. 광고의 성공이 수입의 증가로 이어지는 시장의 이치를 일찌감치 터득한 기업들의 눈에 두 시간 동안 생중계되는F1 레이스카들이 비로소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팀 F1 카

아직까지도 여타의 프로 스포츠를 통해 가능한 마케팅이라고 해 봐야 경기 전후반, 혹은 쿼터와 쿼터 사이 쉬는 시간에 방영되는 TV 광고, 프로페셔널 운동 선수의 가슴이나 등판에 붙는 스폰서 스티커가 고작이다. 반면 F1 레이스는 전세계 F1 시청자의 시선을 두 시간 동안 TV 화면에 묶어두고 수십 대의 레이스카를 교차해 가며 클로즈업한다. 사람의 몸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자동차의 몸 전체에 광고 스티커를 큼지막하게 붙일 수 있으니 주목성이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광고 효과로 인한 매출 증가는 말할 필요도 없는 F1 후원 기업들의 1차적 마케팅 목표다.


 "Benetton Ford (1988/89)" by Rennstreckenderwelt is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Daniel Ricciardo 2015 Malaysia FP3” by Morio is licensed under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F1 팬들의 놀랍도록 높은 충성도 또한 광고주들의 입맛을 당기는 요소다. F1 에 대한 팬들의 애정은 연간 5억이라는 시청자로 증명될 뿐만 아니라 F1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취재하고 전달하고 분석하는 수많은 개인 블로그, 잡지, 책, 기사들과 F1 팬들 자신이 제작하고 업데이트하는 F1 데이터 베이스로도 짐작할 수 있다. F1의 열성 팬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팀 혹은 드라이버 (“최애캐 - 최(最)고로 애(愛)정을 갖는 캐릭터”란 인터넷 용어가 등장한 이후 설명이 한결 수월해졌다.)를 시즌 내내 응원하고 그들의 성적, 전적, 사생활, 이미지 등을 수집한다. 이러한 F1의 팬 베이스 특성은 기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군침 도는 부가 가치 창출 기회다. 사실 이것이 F1 스폰서들이 F1을 통해 얻으려는 진짜 목표다.


2015 F1 호주 그랑프리

F1 에서 가장 중요한 광고 매체는 레이스카다. F1 레이스카가 가장 효과적인 광고 방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F1 카의 디자인이 같아서다. 엄밀히 따지자면 각 팀의 F1 카 디자인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일체의 스티커를 배제하고 모든 레이스카를 같은 색으로 칠한 채 달리게 한다면 레이스 중 어느 차가 어느 팀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F1 카의 색상과 무늬는 F1 팀의 정체성, 레이스카의 미학적 완성도를 결정짓는 화룡점정이자 F1 카의 가장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F1 카의 전반적인 컬러 코드와 무늬를 “리버리 (Livery)”라고 부른다. F1의 충성스런 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리버리에 매우 민감하다. 왜냐하면 F1 그리드에서 자신의 최애캐 드라이버와 레이스카가 가장 세련되고 돋보였으면 하는 것이 팬들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F1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F1카의 리버리는 통상 팀에 재정적 기여를 가장 많이 하는 스폰서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해진다. 여기에 여러 다른 스폰서의 로고나 상품명 스티커가 더해진다.


 "Felipe Nasr - Sauber - Grand Prix du Canada - Circuit Gilles-Villeneuve” by Veilleux79 is licensed under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좋든 싫든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후원하는 기업이나 상품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만약 멋진 기업 이미지, 세련된 브랜드가 타이틀 스폰서가 되면 멋진 리버리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이 커진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어찌됐건 F1팬들은 내 ‘최애캐’가 타는 레이스카를 도와주는 스폰서들과 심리적 유대감을 갖는다. 같은 편이 되는 것이다. F1 팀을 후원하는 스폰서들의 투자에는 해당 팀의 팬들을 우리 편으로,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자신들에게 비적대적인 소비자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2008 DTM 레이스

반면WRC(World Rally Championship)나 DTM(German Touring Car Masters) 시리즈 같은 모터 스포츠의 경우 양산차 모델을 베이스로 레이스카를 제작한다. F1 카와는 달리 이들의 레이스카는 제 아무리 인상적인 컬러 컴비네이션과 스티커로 장식한다 하더라도 일반 대중의 눈을 먼저 사로잡는 이미지는 생활 속에서 얼굴을 익혀온 베이스 모델이다. 일반인들의 눈에 아파트 주차장과 출퇴근길에서 보았던 현대 i20, BMW 5시리즈와 이들 레이스카 사이의 차이는 레이스카의 색상과 무늬가 더 화려하고 생김새가 더 공격적이라는 점뿐이다. 메인 스폰서가 베이스 모델을 만드는 자동차 제조사라면 더할 나위 없는 광고 효과다. 하지만 레이스카에 새겨진 자신의 브랜드 혹은 제품이 주목 받기를 원하는 스폰서라면 옷보다 옷을 입은 모델이 소비자의 관심을 더 받는 이같은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리버리와 스티커가 확실한 대접을 받는 F1과 비교했을 때 이들 시리즈의 광고 효과는 확실히 덜 하다.



F1 팀들은 스폰서십 판매를 위해 각기 다른 가격 정책을 갖고 있지만 통상 스폰서의 기여도가 높을 수록 노출 빈도와 가시성이 커진다. 역으로 생각하면 리버리를 통해 어떤 F1에 대한 스폰서들의 기여도를 알 수 있다. 한 스폰서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경우 레이스카의 리버리는 이 스폰서를 상징하는 단색이나 단일 문양으로 정해진다. 레이스카의 리버리에서 눈에 익은 패턴을 찾을 수 없고 여러 색이 퀼트처럼 꿰맨 느낌을 받는다면 목돈을 대는 메인 스폰서가 없고 중소규모의 스폰서가 여럿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McLaren MP4/6 (1991, #2 Gerhard Berger)" by Morio is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BAR 002 (#23 Ricardo Zonta)” by Morio is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2000년 대 중반까지 F1 의 최대 후원자는 담배와 술 제조업체였다. F1의 글래머러스한 이미지는 담배와 술 회사가 주로 사용하는 마케팅 포인트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하지만2006 년 이후 F1 팀들은 담배 회사의 스폰서십을 배제하기로 한다. 2000년 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시행된 강력한 금연 정책으로 인해 담배 광고가 불법화되었기 때문이다 (술에 대한 규제는 아직 담배만큼 심하지는 않다). 자연히 담배 회사들은 F1을 떠나게 되었고 F1 카의 리버리에서 담배 브랜드는 자취를 감췄다.



F1의 최고 인기 팀인 페라리도 이 변화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2000년 대 중반까지 페라리 F1 팀의 공식 명칭은 ‘스쿠데리아 페라리 말보로 (Scuderia Ferrari Marlboro)’였을 정도로 필립모리스(Philip Morris)사의 담배 브랜드, 말보로와 페라리의 파트너십은 긴밀했다. 하지만 EU의 모터스포츠 담배 광고 금지령 시행 이후 그 어떤 형식으로도 F1을 통해 담배를 광고할 수 없는 탓에 말보로의 흔적은 페라리 F1팀의 공식 명칭과 레이스카에서 완전하게 지워졌다.


"Luca Badoer testing for Scuderia Ferrari at the Circuit de Catalunya in June 2008” by Midgrid i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그러던 어느날 페라리 레이스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코드가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바코드의 위치는 담배 금지령만 없었다면 말보로의 스티커가 붙음직한 자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바코드가 말보로를 의미한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흘러 나왔다. 페라리는 이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집요한 언론의 취재와 거센 비판 여론 때문에 이 마저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제거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말보로의 제조사인 필립모리스는 2015년 현재까지 페라리 F1팀의 메인 스폰서이다. 공식적인 스폰서링 규모도 매년 1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다. 어찌된 영문일까? EU의 법망이 페라리 F1 팀에만 느슨하게 적용되고 있단 말인가? F1카의 리버리에 담배 회사나 담배 제품 광고를 싣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담배 회사가 F1 팀을 스폰서링하는 것은 위법 행위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는 없지만 광고를 실어 주지도 않는 잡지사에 굳이 광고비를 주겠다는 광고주를 말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말보로는 페라리를 통해 직접적인 광고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면서도 기꺼이 막대한 광고비를 지불하고 있다.



페라리와 말보로 사이에 스폰서십을 통한 수익을 나누는 계약이 있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말보로와 페라리 간의 오랜 파트너십이 ‘페라리 레드 = 말보로 레드’라는 각인 효과를 튼튼하게 구축하였기 때문에 페라리가 새빨간 적토마로 F1트랙을 누비는 한 말보로는 기꺼이 스폰서십 댓가를 회수하고 있다는 것이 말보로의 판단일 것이다. 반대로 페라리는 말보로를 위한 어떠한 은밀한 불법 행위나 광고 없이 단지 레이스카를 붉게 칠하는 것만으로 매년 천문학적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F1 스폰서십의 활용 범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이버나 레이스팀 크루들이 입는 복장도 요긴한 광고 매체로 사용된다. 또 F1의 스폰서들은 대부분 F1 팀의 이미지나 활약을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나 제품의 성능과 연관지어 상승효과를 얻고자 한다. 어떤 스폰서들은 F1 팀을 자신들의 마케팅 자료에 등장시킴으로써 이미지를 상승시킨다. 어떤 기업들은 F1 팀의 이름을 자신들의 제품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글로벌 브랜드나 기업이다. F1 팀 스폰서십은 평균 5백만 달러 이상이 소요될 정도로 비싸지만, 스포츠라는 매력적인 형태로 전세계 주요 국가의 시청자들에게 노출되고, TV 시청의 맥을 뚝 끊는 짜증나는 일방향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들에게 이 고비용은 감당할 만한 투자다. 바꿔 말하면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한 비 글로벌 기업들에게 F1 스폰서십은 돈을 버리는 일이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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