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 투르 드 프랑스는 영국 요크셔 지방의 도시 리즈에서 출발하였다. 세계최고의 자전거 대회가 영국에서 출발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여 요크셔 페스티벌에서는 옛날의 한 사이클 선수에 대한 연극 공연이 열렸다고 한다. 아마 영국의 오래된 사이클 영웅이라면 대부분 레이스 중 몽 방뚜를 오르는 험난한 길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난 비운의 레이서 톰 심슨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고 더군다나 남자선수도 아니었다. 영국의 전설적인 여자 사이클 선수인 베릴 버튼(Beryl Burton)을 기리는 공연이었다.






 

“그녀가 만약 남자였다면 누구나 그녀의 이름을 알았을 겁니다.” - 배우 겸 극작가 Maxine Peake
 

베릴 버튼(1937~1996)은 첫 메달을 목에 건 1957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29년의 선수생활 동안 90여개 대회에서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5개의 개인 추발 월드챔피언 타이틀 그리고 두 번의 개인 도로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선수로 여자 사이클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영국 내에서 베릴보다 빠른 여자선수는 없었다. 1959년부터 무려 25회 연속 Road Time Trials Council’s British Best All-Rounder에 올랐으며 여자 사이클링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4년에 MBE(Memb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훈장이 1968년에는 OBE(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 훈장이 수여되었다.







베릴은 1967년에 12시간 독주 기록에 도전하여 277.25마일 (약 446km)을 달려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 기록은 남녀 기록을 통합한 것 중 가장 뛰어난 기록 이었다. 베릴보다 멀리달린 남자선수는 없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에 경종을 울린 이 기록은 2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세계무대에서 트랙 추발과 독주 부문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이며 수많은 메달을 획득하였으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1984년 로스 엔젤스 올림픽에 처음 여자부 경기가 시작 되었을 때 베릴은 이미 47세였기 때문이다.




: 베릴과 어린 드니스, 드니스 또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사이클 선수가 되었다.



베릴에게 자전거를 처음 알려준 사람은 남편인 찰리 버튼이었다. 찰리는 평생을 베릴의 선수생활을 위해 헌신하였다. 영국 요크셔 지방 리즈의 평범한 여성이던 베릴과 1955년에 결혼하였으며 2년 후 1957년, 베릴은 첫 내셔널 챔피언 타이틀 메달을 목에 걸며 사이클리스트로서의 재능에 눈을 뜨게 된다. 찰리는 집안의 가장이었으며 경기장에서는 감독과 미캐닉 그리고 서포트카 운전기사로 베릴의 선수생활을 도왔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자 사이클리스트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1976년 영국 내셔널 챔피언십 스타트 라인에 선 드니스와 베릴



베릴의 딸인 드니스 버튼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사이클 선수로 자랐으며 베릴 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가진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되었다. 1976년 영국 내셔널 챔피언십에서 모녀가 나란히 포디움에 오르기도 했다. 베릴은 우승을 차지한 드니스와 시상식에서 악수조차 나누지 않았는데 모녀간에 냉랭한 분위기에 대해 베릴은 드니스가 경기 중 사이클리스트로서 매너를 지키지 않아 화가나 있던 것으로 밝힌 일화가 있다. 그밖에도 모녀는 함께 탠덤 바이크 독주 기록을 세우는 등 어머니와 딸이 정상급 선수로서 경쟁을 하기도 하고 동료가 되기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베릴의 선수로서 능력과 열정이 나이가 들었음에도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년의 나이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했던 베릴 버튼



“베릴 버튼이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강인한 여성으로 잔 다르크보다 더 칭송받았을 것이다.”  -영국 요크셔 리즈에 있는 베릴 기념공원에 남겨진 프랑스인의 글

베릴의 업적은 수많은 우승 기록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베릴이 선수로 활동할 당시 여성이며 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베릴은 운동선수로서 자기 자신과 싸웠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자  스포츠 선수 그리고 어머니로서 여성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투쟁했던 인물로 평가 받는다. 



 
: 배우 겸 극작가 Maxine Peake가 제작 및 주연을 맡은 ‘A Love Story on Two Wheels’는 베릴의 이야기를 담았다.



베릴은 1996년 지병이던 급성 심장질환으로 인해 58세의 나이에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생일파티 초대장을 전달하러 다니던 중 돌연 심장질환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베릴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나 유럽 본토에 비해 사이클 스포츠에 관심이 적었던 영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영국에 사이클링 붐 이후 다시금 재조명 받기 시작했고 2009년 브리티시 사이클링 명예의 전당에 추서되었으며 베릴의 이름을 딴 ‘베릴 버튼 자전거길’이 영국 북부 나스보로와 해러게이트 사이에 놓였다. 또한 베릴의 드라마틱한 일생은 ‘A Love Story on Two Wheels‘ 라는 제목의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되어 BBC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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