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옷은 밖에 입고 다니기 민망하지 않나?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네” 몸매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쫙 달라붙는 사이클링 저지를 흔히 사람들은 ‘쫄쫄이’라 부르면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면서 효과적으로 라이딩을 하기 위한 기능성 옷이다”라고 설명해줘도 여전히 그들에겐 남사스런 옷일 뿐이다.
하지만 사이클링을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에겐 저지는 매우 상징적인 옷이다. 저지엔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있다. 옷 하나로 인해 라이더 자신이 속한 팀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기도, 혹은 라이더 개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투르 드 프랑스나 지로 디탈리아와 같은 유명 사이클 대회를 보다보면 유독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옐로우 컬러, 그린 컬러, 핑크 컬러 등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저지를 입고 경기 내내 수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는다. 다수의 선수들이 함께 무리지어 달리는 펠로톤 속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과히 독보적이다. 방송 중계 카메라, 사진작가의 카메라, 갤러리, 그리고 TV 앞 시청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 특별한 선수들에게 집중된다.
이 스페셜한 저지들은 레이스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거나, 보여 준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땀과 노력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라이더만의 특권이자 선수 개인, 소속 팀 혹은 국가에게 최고의 명예를 부여한다. 투르 드 프랑스의 옐로 저지, 지로 디탈리아의 핑크 저지, 부엘타 아 에스파냐의 레드 저지, 그리고 월드 챔피언십의 레인보우 저지 등 매년 선택 받은 단 몇 선수들에게만 부여하는 사이클링 계의 예복이다.
빛나는 Yellow Race! 투르 드 프랑스
투르 드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사이클링 대회다. 그래서 그런지 선수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총 4가지의 스페셜 저지들이 선수들에게 부여되는데, 구간 종합 선두 및 종합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옐로우 저지(Maillot jaune: 마이요 존느)가 대표적이다. 이 저지는 1919년 제 13회 투르 드 프랑스부터 입기 시작했는데, 수많은 선수들 틈에서 구간 종합 선두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유명 극작가이자 방송 진행자인 장 폴 올리비에는 옐로우 저지를 가르쳐 ‘우아한 옐로우’라 칭하면서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도로에서 끈적이는 땀으로 뒤덮인 라이더에게 우아함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옐로우 저지뿐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 한 모든 선수들이 단 하루라도 입어보고 싶어 하는 옐로우 저지는 1987년부터 <크레디 리요네>라는 프랑스 은행의 후원을 받아 제작되고 있다.
그린 저지(Maillot vert: 마이요 베르)는 가장 많은 포인트 점수를 획득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저지다. 포인트 점수를 얻기 위해선 결승 포인트나 스테이지 중간 중간 자리 잡고 있는 스프린트 포인트를 획득해야만 한다. 따라서 엄청난 가속력을 자랑하는 스프린터들이 많이 차지하는 저지다. 이 저지를 입은 자는 스프린터 중의 스프린터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2012, 2013 시즌 2년 연속 슬로바키아의 피터 사간이 이 그린 저지를 획득했었다. 피터 사간은 빠른 속도로 많은 포인트 점수를 획득해가며 투르 드 프랑스를 정복했다. 그의 파워풀한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투르 드 프랑스를 정복한 남자라는 뜻의 ‘투어미네이트’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그는 “단지 눈앞의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페달을 굴리지 않는다”면서 “현재 하고 있는 레이스에 최선을 다하는 것, 다가올 상황을 예측하고 멀리 내다보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말하며 2년 연속 그린 저지를 차지한 소감을 말했다.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산악을 정복하는 ‘산악왕’에게 수여되는 레드 폴카 도트 저지(Maillot à pois rouges: 마이요 아 푸아 루주)는 1975년에 만들어졌다. 힐클라이머들에겐 꿈의 상징인 이 저지는 75년 당시, 대회 후원사인 제과 회사 Poulain Chocolate의 캔디 포장지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됐다. 알프 듀에즈(1850m), 몽 방뚜(1912m)와 같은 높은 산악구간들을 여러 번 정복해야 입을 수 있는 저지라 그런지 많은 사이클 팬들의 관심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여담으로 산악구간 몽 방뚜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가장 관심 있게 봐야 할 코스 중 하나다. 사이클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나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회색빛의 자갈밭과 백색의 방송 송신탑이 어우러져 마치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달나라 분위기를 풍긴다.
26세 이하 선수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낸 선수에게만 수여되는 화이트 저지(Maillot blanc : 마이요 블랑)는 젊은 선수들이 가장 탐내는 저지이자 미래의 실력자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저지다. 참고로 94년~95년 마르코 판타니, 02년 이반 바쏘, 07년 알베르토 콘타도르 등 여러 스타들이 거쳐 간 자리기도 하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Pink Race, 지로 디탈리아
“남자가 무슨 핑크야? 뭔가 징그러워” 안그래도 몸에 꽉 끼는 옷이라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옷인데 거기에 핑크 컬러라니,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생각한다. 여자가 핑크 컬러 저지를 입었다하면 ‘화사한 분위기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남자가 입었을 경우 뭔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이클링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태리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로 디탈리아를 상징하는 컬러가 무엇인가. 바로 핑크다. 이태리에서 핑크는 누구보다 강하고 섹시한 남성을 상징하는 컬러다. 챔피언에게 주어지는 컬러, 핑크는 지로 디탈리아를 계획하고 시행한 이태리 최대 언론사 La Gazzetta dello Sport를 상징하는 컬러로 대회에 그대로 반영됐다. 대회는 투르 드 프랑스의 옐로우 저지와 마찬가지로 핑크 저지(Maglia Rosa: 말리아 로자)를 구간 종합 선두 및 종합 우승자에게 수여한다.
핑크 저지(말리아 로자)는 이태리 안에서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단 누구나 알다시피 지로 디탈리아나 투르 드 프랑스와 같은 월드 투어 레이스는 선수들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무지막지한 레이스다. 세계 여러 나라의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 이러한 레이스에서 자국 선수가 자국 레이스 우승을 거머쥘 확률은 극히 낮다. 이태리 선수가 이 핑크 저지(말리아 로자)를 입게 되면 모든 이태리 사이클링 선수들의 우상이 되고, 국민들에겐 영웅이 된다.
참고로 지난 2013 지로 디탈리아에서 이태리의 사이클링 선수 빈센초 니발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니발리는 모든 이태리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단숨에 국민적인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평생의 꿈을 이뤘다”라고 말했다.
2014 시즌 핑크 저지는 아일랜드 출신 산티니 SMS 디자이너 퍼커스 닐랜드가 디자인했다. 이 디자이너는 자신의 조국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세잎 클로버를 핑크 저지 우측 사이드에 새겨 넣었다. 닐랜드은 “세계적인 대회 지로 디탈리아 안에서 나의 디자인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심장박동 수가 빨라진다! Red Race 부엘타 아 에스파냐
확실히 투르 드 프랑스나 지로 디탈리아보단 대회의 인지도가 낮다. 그래서 그런지 부엘타 아 에스파냐를 상징하는 레드 저지(la roja: 라 로하)는 옐로우 저지나 핑크 저지보다 그 상징성이 떨어진다. 또 레드 컬러는 옐로우, 핑크 컬러보단 눈에 확 띄질 않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거나 대회를 상징하는 컬러로 자리 잡기가 약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정열을 상징하는 레드 컬러와 그 안에서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땀 흘리는 선수들의 열정이 녹아들어 그 어떤 저지 컬러보다 강렬해 보인다. 올 해도 스페인은 레드 저지를 차지하기 위한 선수들의 피 튀기는 경쟁이 시작 될 것이다.
정상을 향하여! Rainbow Race 월드 챔피언십
국제사이클연맹(UCI)가 주관하는 월드 챔피언십 우승자에겐 레인보우 저지가 수여된다. 로드, MTB, BMX 가릴 것 없이 모든 자전거 선수들에겐 이보다 더 영광스런 저지는 없다. 세계 5대륙을 상징하는 5가지 색상이 모여 그 어떤 저지보다 세련된 디자인을 보여준다. 이 레인보우 저지를 차지한 선수는 다음 해 새로운 우승자가 탄생하기 전까지 착용 가능하다.
한번 챔피언은 영원한 챔피언이라 했던가. 설령 다음 해 대회에서 챔피언 자리를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레인보우 디자인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챔피언은 자신의 저지 컬러(목 부분)와 커프스(소맷부리)에 작게나마 레인보우 디자인을 장식할 수 있다.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탈리아, 월드 챔피언십을 모두 석권했던 한 챔피언은 “옐로우 저지나 핑크 저지는 일 년 밖에 그 영광이 가질 않는다”면서 “하지만 레인보우 저지는 평생 그 영광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라고 표현해 선수들 사이에서 레인보우 저지에 대한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달 9일이면 월드 투어 레이스 중 하나인 지로 디탈리아가 시작한다. 이어 투르 드 프랑스, 부엘타 아 에스파냐, 월드 챔피언십까지 다양한 메이저 급 대회들이 열린다. 곧 옐로우, 핑크, 레드, 레인보우 등 다양한 컬러가 보여주는 상징적인 저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누가 이 저지들을 차지 할 수 있을 진 아직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건 분명 올 해도 이 저지들은 선수들에게 돈과 명예 그리고 모든 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줄 것 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선수들은 이 영광의 저지를 입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 선수들의 열정과 그 열정이 만들어낸 상징적인 저지들이 있기에 대회는 더욱 흥미롭고 의미 있어진다.
제공 : 문서우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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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드매거진 sjlee@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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