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는 뭇 남성들의 추억 속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SF 블록버스터다. 다양한 시리즈가 나왔지만 특히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Terminator 2: Judgment Day)’은 1991년 개봉돼 지금까지도 SF 장르의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 및 각본, 감독을 맡았고 전편의 주연이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T-800 역), 린다 해밀턴(사라 코너 역)이 다시 주연으로 출연했다. 여기에 에드워드 펄롱(존 코너 역), 로버트 패트릭(T-1000 역)이 새로운 주연으로 등장해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는 1991년 개봉 당시 박스 오피스 성적과 비평 모두에서 매우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또한 이후 제작된 많은 액션 및 SF 영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주인공 일행을 쫓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터미네이터 T-1000에 사용된 시각 효과는 당시 CG 기술의 큰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더불어 시상대에서 아카데미상(분장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시각효과상)을 비롯한 권위 있는 상을 여럿 석권한 기록이 있다.
한편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이 모터사이클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 모터사이클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특히 누구나 기억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탄 대형 모터사이클은 많은 남성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주인공인 그가 타는 할리데이비슨 팻보이는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잘 드러낸 모터사이클이다. 닉네임인 팻보이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해 종전시켰던 원자폭탄 Fat Man과 Little Boy의 이름을 땄다. 강인한 힘과 권력의 이미지로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위상을 드러낸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아놀드는 훗날 인간연합군 사령관이 될 존 코너를 액체금속 터미네이터인 T-1000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과거로 보내진다. 아놀드는 특유의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며 알몸으로 근처 PUB(술집)을 찾아가 사람들과 섞이기 위해 필요한 옷을 뺐고, 영화 내내 훌륭한 이동수단으로 쓰일 모터사이클을 얻는다. 당연히 인간이 아닌 기계라는 설정상 아무런 죄책감 없이 건달들을 무력으로 응징해 할리데이비슨 팻보이를 탈취해 유유히 사라진다. 재미있는 점은 주차된 모터사이클과 자동차를 스캔하는 터미네이터의 눈에 해당 모터사이클의 브랜드, 자세한 모델명과 연식 등 무척 디테일한 정보가 슬쩍 자막으로 지나간다는 것이다.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한편 아직 어린 나이인 존 코너는 자신이 훗날 핵전쟁 이후 남은 인류를 이끌 사령관이 될 운명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철없는 문제아로 살아가고 있다. 또래 절친과 함께 신용카드를 훔쳐 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오락실에 놀러가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다. 재미있게도 존 코너 역시 모터사이클을 유일한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데, 혼다 XR100이 바로 그것이다.
XR100은 혼다의 미니 더트 바이크다. 본격적인 오프로드 레이서 타입은 아니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더트 바이크로 인기가 높다. 크기도 작아 존 코너와 같은 어린 나이의 작은 덩치로도 쉽게 탈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다. 현재는 좀 더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신형이 나와 있다.
액체금속 터미네이터인 T-1000은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로 왔다. 그는 등장부터 운 좋게 경찰과 마주해 경찰 제복과 패트롤 카를 탈취할 수 있었다. 덕분에 경찰의 신원 조회 시스템을 이용, 간단히 존 코너의 거주지 주소를 알아내 뒤를 쫓기 시작한다.
존 코너는 영문도 모르고 두 터미네이터와 마주치며 자신의 모터사이클인 혼다 XR100으로 전력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희대의 추격신이 시작된다. 존 코너의 XR100을 쫓는 T-1000의 대형 트럭과 그 뒤를 쫓는 아놀드의 팻보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 사이에는 역동적인 액션 씬을 여럿 감상할 수 있다. 가벼운 무게를 이용해 날렵하게 도망치는 XR100과, 폭발적인 가속력으로 그 뒤를 쫓으며 고공 점프 등 ‘과연 할리데이비슨으로 가능한 점프인가’싶을 정도로 과감한 팻보이의 액션 씬이 무척 인상적이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든 액션 씬은 배우와 똑같이 분장한 스턴트맨이 대역했고, 특히 할리데이비슨 팻보이의 무게가 상당해 스토리보드와 동일한 점프 씬을 찍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케이블 등으로 팻보이와 라이더를 묶고 들어올려, 점프 착지시 충격을 조절하는 등 많은 공을 들여 해당 씬을 해결했다고 한다.
한편 존 코너를 팻보이 연료 탱크에 태운 아놀드는 한 손으로 장총을 장전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로 추격하는 T-1000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액체 금속인 T-1000은 아무렇지 않게 큰 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아 멈추지 않고 존 코너를 추적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추격을 멈추지 않는 T-1000으로부터 어렵사리 보호 임무를 수행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 훗날 인공지능 기계와의 전쟁 원인이 되는 사이버 다인이라는 회사의 개발자를 찾아 공장을 폭파시키는 과정에서 또 다른 모터사이클이 등장한다. T-1000이 현장에서 경찰의 패트롤 모터사이클을 뺏어 타고 유유히 빌딩으로 진입한 것. 큰 덩치의 모터사이클을 탄 채 건물 비상계단을 질주하며 올라간다. 이 장면 역시 전문 스턴트맨의 라이딩 스킬이 십분 발휘된 부분이다.
패트롤 모터사이클은 언뜻 할리데이비슨 모델 같지만 사실은 가와사키 크루저인 KZ1000이다. 이 바이크를 타고 건물 계단을 올라간 T-1000은 멋진 경찰 복장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창 밖으로 주변을 정찰하는 헬리콥터를 발견한다. 잠시 머리를 굴리는 듯 하더니 그대로 바이크를 달려 창밖을 뚫고 빌딩을 탈출하며 헬리콥터에 올라탄다. CG가 발달한 근래 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과감한 액션 씬이 1991년도 작품인 터미네이터2에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존 코너를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한 터미네이터는 결국 용광로 속에 몸을 던져 자멸한다. 그래야만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일종의 인간형 로봇인 터미네이터 자체의 디테일도 상당하지만 액체금속이라는 기발한 형태의 캐릭터를 맞서게 한 독창성이 기발하다. 그 사이사이로 등장한 모터사이클의 비중 높은 액션 씬 또한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준 기막힌 소재가 됐다. 이를테면 약방의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중년이 되어 할리데이비슨 팻보이 오너가 된 고객과 이야기하다 보면 과거에 인상 깊게 본 근육질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탔던 모터사이클을 은연중에 ‘꿈’처럼 간직해 왔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그만큼 흥행이 크게 된 영화에 등장한 모터사이클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잠재고객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거다. 더군다나 터미네이터와 같이 강렬한 남성미를 갖춘 캐릭터도 드물다. 굵직한 라인을 가진 팻보이는 그야말로 터미네이터와 가장 잘 맞는 마초의 모터사이클이다. 오랜 기간 세계적으로 많이 팔린 스테디셀러로 팻보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도 그와 같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두 번째 편인 ‘심판의 날’에서 가장 큰 흥행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 등장한 속편에서도 모터사이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해 왔다. ‘기계와 인간의 대립’이라는 주제로 냉혹하고도 대담한 액션을 펼쳐야 하는 콘셉트 상 모터사이클과 같은 다이내믹한 소재는 필수적인 것이 됐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들이 모터사이클을 이용한 다양한 액션 씬 뿐 아니라, 배우와 함께 스토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좋은 촉매제로 활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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