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의 제품들은 대부분 특유의 디자인 줄기를 따라가는 모습이지만 그렇지 않은 모델이 하나 있다. 바로 ‘G-바겐(G-Wagen)’이라고도 불리는 벤츠의 오프로더 G-클래스다. 벤츠의 디자인은 곡선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유일하게 G-클래스 만큼은 직선과 각으로 이뤄진 전혀 다른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디자인의 유래는 사실 군용으로 개발됐기 때문으로, 이란의 군주였던 팔라비 2세의 주문으로 개발됐지만 1979년 팔라비 왕조가 이란 혁명으로 퇴위하게 되며 예상치 못한 ’노쇼(no-show)’가 발생해 처치 곤란했던 물량들을 민간용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G-클래스의 시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직선과 각으로 구성된 디자인과 외부로 드러난 경첩 등 다른 SUV 라인업과 차별화된 디자인을 갖추게 된 것. 이 G-클래스의 부분변경 신형이 국내에 출시되어 지난 12일 경기도 용인 AMG 스피드웨이에서 진행된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오프로드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찾아 주행 성능과 실력을 직접 확인해봤다.

외부에 마련된 관람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웅장한 음악과 함께 벤츠의 모든 SUV 시리즈들이 총출동해 하나둘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림막을 찢으며 나타난 G-클래스의 모습은 충분히 파격적이었다. 무대 주변을 돌다 중앙에 설치된 높은 경사로를 오르는 G 450 d 앞으로 등장한 전기 G-클래스인 G 580 위드 EQ 테크놀로지가 등장해 내연기관차로는 구현할 수 없는 제자리 360도 회전 기능인 G-턴으로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파격적인 등장 퍼포먼스로 시선을 사로잡은 G-클래스의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일단 이번 신형 G-클래스에 대해 살펴보자면, 특유의 오프로더다운 각진 외모는 그대로 이어가면서 소소한 변경점들이 적용됐다. 가장 큰 변화는 실내와 파워트레인으로,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이 처음으로 탑재됐다. 그동안 G-클래스에 대해 호평하면서도 오래된 실내 디자인에 대해선 아쉬움이 있었는데, 벤츠의 첨단 시스템을 투입하면서 이런 아쉬움들을 싹 날려버리게 된 것. 덕분에 MBUX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나 음성 어시스턴트 기능 등도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뒷좌석 탑승자를 위한 하이엔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도 적용할 수 있다고.

도하 중인 G 450 d

엔진에서도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는데, G 500은 28마력 증가한 449마력의 최고출력과 560Nm의 최대토크를 내고, G 450 d는 37마력 향상된 367마력의 최고출력과 750Nm의 최대토크를 낸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통합형 스타터 제너레이터를 더해 20마력의 출력과 200Nm의 토크를 추가로 제공한다고. 또한 최신의 주행 보조 및 안전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어 도로에서의 운전이 한결 수월해지겠다.

이번 부분변경 모델과 함께 G 580 위드 EQ 테크놀로지(이하 G580eq)도 함께 선보였는데, 116kWh 리튬 이온 배터리와 총 432kW(약 587마력)의 성능을 내는 4개의 전기모터로 최대 473km(WLTP 기준)까지 주행 가능하다. 여기에 오프로더라면 필수적으로 갖고 있는 로우 레인지(LOW RANGE) 기어 감속도 모터로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닌, 실제 기어를 넣어 다양한 노면에서의 주행은 물론이고 오프닝 세레모니에서 선보인 G-턴과 오프로드 주행 시 회전 반경을 크게 줄여주는 G-스티어링 기능, 저속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3단 지능형 오프로드 크롤링 크루즈 컨트롤 등을 갖추고 있다. 오프로더인 만큼 다양한 노면 주파는 물론이고 도하도 가능한데, 내연기관 모델은 최대 70cm까지 도하가 가능하고, G580eq는 이보다 15cm 더 깊은 85cm의 물을 건널 수 있다.

중앙의 검은색 판이 G580eq의 하부 보호 패널이다

AMG 스피드웨이에 왔으니 몸풀이 겸 AMG A45와 CLA45, SL63을 타고 가볍게 서킷을 달리며 몸을 풀어준 후 자리를 옮겨 신형 G 클래스와 G580eq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으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이번 오프로드 익스피리언스 데이를 위해 본사에서도 개발자 2명을 파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는데, 재밌는 물건이 하나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G580eq 하부에 탑재되는 보호 패널이다. 기존 G-클래스와는 달리 G580eq는 오프로더를 표방하는 전기차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전기차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이 안전할까?’하는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충격이 높은 확률로 화재로 이어지며 이에 대한 불안감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차량 하부를 보호하는 패널을 직접 전시한 것이다.

플라스틱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플라스틱과는 다른 느낌의 소재가 꽤나 두껍게 쌓인 구조로 이뤄진 것으로, 패널은 2cm 정도 두께에 플라스틱보다 훨씬 무겁고 단단한 느낌이다. 벤츠 담당자는 “카본 파이버에 여러 가지 소재를 혼합한 소재를 여러겹으로 적층했기 때문에 실제 오프로드에서 겪을 수 있는 차량 하부의 충격에서도 배터리를 안전하게 보호한다”며 “돌에 박힌 상태에서 G-클래스를 3대 정도 올려도 끄떡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기차여도 G-클래스만의 엠블럼을 공유한다

이름도 궁금했다. 분명 콘셉트 모델의 이름은 ‘콘셉트 EQG’였는데, 막상 출시하니 이름이 복잡하게 바뀌게 됐으니 말이다. 이에 대해선 “전동화로 가겠다는 야망을 밝힌 만큼 브랜드를 복잡하게 하지 말고 통합하자는 생각을 했고, 클래스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EQ를 별도 브랜드로 가져가지 않고 기존 클래스명 뒤에 접미사 형태로 EQ를 붙이는 방식으로 명명 전략을 바꿨다. 다만 기존에 나왔던 EQ 시리즈의 경우는 이름을 바꾸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겠지만, 새로운 세그먼트나 신차인 경우에는 EQ라는 이름을 더 이상 붙이지 않을 것”이라며 “클래스 별로 파워트레인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옵션처럼 체계화하기 위해 바꿨다”고 설명했다.

맨 오른쪽 버튼이 G-턴 활성화 버튼이다

제품에 대한 소개를 들었으니 이제 직접 타볼 시간. 먼저 G-턴 기능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드리프트 기술로 360도 회전은 가능하지만, G580eq처럼 완전히 제자리에서 도는 건 내연기관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한 건 개별로 제어하는 4개 모터가 탑재되었기 때문으로, 쉽게 좌측과 우측의 바퀴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다만 작동 조건은 까다롭다. 로우 레인지 기어로 변경하고 오프로드 모드를 설정한 다음 바퀴가 일자로 되도록 스티어링 휠을 중립 상태로 놓은 다음 G-턴 버튼을 눌러 기능을 활성화시킨 후 스티어링 휠 뒤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좌측과 우측 두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해 돌릴 수 있다.

설명이 끝나고 운전석에 앉은 인스트럭터가 기능을 작동시키자 거대한 차체가 제자리에서 맴돌이를 시작한다. 무게가 3.5톤에 달하는 큰 덩치인데도 거침없이 제자리 회전이 가능하다는 건 그만큼 모터가 높은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 다만 무한정으로 돌 수 있는 건 아니고 최대 2회전까지만 가능한데 이는 1회 사용시 약 1% 정도의 배터리를 소모하기 때문에 전력 관리 차원에서 제한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능 사용 시 스티어링 휠이 움직이면 바로 회전을 멈추는데, 스티어링 휠이 조금이라도 틀어지게 되면 차량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안전상의 이유라고. 실제 기능이 작동하며 스티어링 휠을 조금 움직이자 빠르게 돌던 차체가 누가 손으로 잡은 것처럼 바로 멈춰 세워버린다. 실제 오프로드 주행 시 좁은 곳에서 방향전환이 필요할 때 매우 유용한 기능이 되겠지만, 오프로드가 아닌 곳에서 작동할 경우 타이어가 마모되어 주행감이 나빠지거나 심한 경우 타이어 파손으로 운행이 불가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겠다.

상당한 난이도의 G-클래스 전용 코스도 마련했다

마지막 코스는 G-클래스의 오프로드 주행 체험이다. 오프닝 때 G-클래스가 멋지게 등장했던 지하도가 오프로드 체험 코스로 가는 길. 메르세데스-벤츠는 에버랜드 측과의 협의를 통해 AMG 스피드웨이 바깥쪽에 SUV인 GL 시리즈나 G-클래스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개설해 앞으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길이 좁고 장애물이 많아 G-클래스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

코스는 2개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GL 시리즈나 G-클래스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G-클래스만 주행할 수 있는 특별한 코스다. 일단 G580eq에 올라 G-클래스 전용 코스를 체험해봤다. 코스가 난이도가 있어 아직은 개별 운행보다는 체험 위주로만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것이 코스를 주행해보니 워낙 길이 좁아 자칫 주행하다 차량이 손상될 우려가 있기 때문. 오랜시간 운전을 해왔고 이런 오프로드 시승도 많이 해봤음에도 직접 이 곳에서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만큼 난이도가 상당했다. 게다가 장애물, 둔덕, 진흙밭 등 본격 오프로더가 아니라면 어디 한 군데서 걸려 멈춰서서 구난을 기다려야 할만큼 장애물도 만만치 않은 코스를 보니 왜 G-클래스 전용으로 지정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난이도가 상당한 코스들임에도 G580eq는 문제없이 코스를 통과하는 모습에서 G-클래스가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를 깨닫게 됐다.

65%(33도)의 경사를 오르는 G580eq

실력을 파악했으니 이젠 직접 달려볼 차례. G580eq와 G 450 d를 번갈아 타고 공용 오프로드 코스를 달려보기로 했다. 먼저 G580eq를 타고 로우 레인지 기어와 오프로드 모드를 설정하자 차가 느릿하게 나아가기 시작한다. 오프로드용 크루즈 컨트롤 기능으로, 오프로더를 지향하는 모델이라면 다들 갖고 있는데 G580eq는 3단계로 조절하도록 설정되어 있어 패들 시프트를 조작하자 조금이지만 나아가는 속도가 바뀐다. 이 속도는 평지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모두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운전자는 속도 조절에 쏟는 신경을 조향과 장애물 회피에만 집중하면 되니 편리하다.

보닛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전방 상황을 보여준다

오프로드에서 가장 부담되는 부분은 시야의 제한이다. 상황을 파악해 피할 건 피해야 하지만 차량 구조나 도로 형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시야를 조금 전 봤던 기억을 떠올려가며 통과할 수밖에 없는데, 짧은 구간이면 괜찮지만 긴 거리라면 노면 위 장애물을 기억하는 것도 벅찬 일. 이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전방 그릴에 카메라가 달려있어 차량 앞 노면 쪽을 비춰주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다. 장애물은 물론이고 오르막 상황에서도 차량이 원하는 방향으로 똑바로 가는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스티어링 휠과 연동되어 바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까지 센터 스크린에 띄워주기 때문에 극단적인 오르막이나 통나무 다리 같은 극단적으로 좁은 길도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다.

30도 정도의 측면 경사로도 거뜬하다

등판 실력에 대해선 말이 필요할까. 일반도로에서 만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선 40도 가까운 극단적인 경사의 오르막길은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여기에 30도 넘는 측면 경사도 거뜬히 오르는데, 손 뻗으면 닿을만큼 가까워진 땅바닥에 차량이 넘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지만 G580eq는 불안한 움직임 없이 거뜬하게 통과한다. 오프로더란 이런 것임을 직접 보여준다.

내연기관보다 우수한 도하 능력도 검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깊은 물속이지만 거침없이 내달리는 G-클래스의 능력은 새삼 대단하다. 여기에 내연기관과 구조도 다르고 배터리나 하네스 등 각종 부품들에 모두 방수처리가 된 건 물론이고, 이 부분을 테스트하기 위해 1m 수심에 배터리를 넣고 테스트했어도 전혀 침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기차의 주요 부품인 배터리가 충격에 취약하다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오프로더로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메르세데스-벤츠는 이 부분에 완벽하게 대응하는 한편, 전기차라는 특성까지 더해 재밌는 전기 G-클래스를 만들어냈다. 원래부터 오프로드에서 정평난 내연기관 G-클래스는 첨단 시스템을 더해 더욱 업그레이드시키고, 전동화를 거친 G-클래스는 전기차만이 가능한 기능들을 더해 스페셜한 오프로더로 거듭나게 된 것. 기회가 된다면 AMG 스피드웨이를 찾아 꼭 G580eq를 통해 G-클래스의 오프로드 실력을, 그리고 전동화를 거친 G-클래스만의 특별함을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 전기차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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