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이탈리안 모터사이클의 대명사인 두카티. 두카티는 모터사이클리스트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강력하고 매혹적인 슈퍼바이크를 만들어내는 마법의 공장이다. 단순히 상품으로써가 아니라 ‘갈망’을 현실화한 결과물로써 1993년 ‘몬스터’란 모델의 등장은 두카티를 갈망해 온 이들에게 ‘꿈이 현실로’ 다가온 일대 파란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몬스터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괴물’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모터사이클리스트에게 두카티 몬스터는 너무도 아름다운 괴물이라 하겠다. 사실 이 괴물에 대한 아이디어는 한 남자의 우연한 스케치로부터 시작됐다. 그가 고안한 몬스터가 두카티를 살린 파란만장한 디자이너로 묘사되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사실 처음에는 두카티가 아닌 혼다에 있었다는 것이다.
미구엘 안젤 갈루찌. 몬스터의 연료탱크처럼 부드럽고 풍만한 몸을 가진 그가 혼다에서 근무할 때 전 세계의 모터사이클리스트는 CBR에 취해있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본 잡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페어링이 완전히 벗겨진 모터사이클 사진을 발견했다. 섀시와 엔진, 두 바퀴만이 존재하는 순수한 탈것 그 자체였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안장, 연료탱크, 엔진, 두 개의 바퀴, 그리고 핸들바 뿐이에요.” 갈루찌가 말했다. “그 이후로 아주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죠.” 곧 두카티로 직장을 옮긴 그가 상관에게 스케치를 내밀었지만 큰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갈루찌는 포기하지 않고 틈이 날 때마다 스케치를 들이밀었다.
당시는 레이스를 기반한 풀 페어링 모터사이클이 당연시 되던 시기였다. 지금은 아름답다고 칭송받지만 당시 몬스터의 원초적인 형태를 그린 스케치는 마케팅 부서에서도 역시 푸대접이었다. 그리고는 매번 비웃음 섞인 핀잔을 들어야했다. “이런 건 아마도 안 팔릴겁니다.”
그 무렵 메인 프로젝트는 750SS의 하프 페어링 버전 디자인 작업이었다. 그는 상관인 보르디에게 몬스터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하겠다고 제안했고, 그런 그의 스케치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보르디는 제안을 수락했다. 갈루찌가 몇 번의 거절과 비아냥에 부딪혀 포기했더라면 훗날 대성공을 거뒀던 몬스터는 단지 몇 장의 스케치로 끝나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가 목업 버전을 만들어 해외 수입업자들이 모인자리에 몬스터를 선보였는데 생각외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심플한 모양을 가진 디자인이야말로 디테일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사실 나는 몬스터를 디자인하는데 그렇게 많은 스케치를 하지는 않았어요.” 갈루찌의 말이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몬스터의 디테일을 완성하기 위해 일부를 조금 변형하려고 했죠. 하지만 오리지널리티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몬스터의 프로토타입을 처음 보는 순간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산되는 시점에 다가설 때 까지 몬스터는 여전히 M900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당시 갈루찌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갈루찌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사랑스런 아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몬스터 사다 줄 수 있어?” 갈루찌의 아들이 말했던 ‘몬스터’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인기 있었던 손가락에 끼우고 노는 장난감 인형인데, 갈루찌는 그 이름이 새로운 모터사이클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여전히 반대가 심했다. 미국 시장에서 몬스터란 이름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우려한 것이다. 내부에서는 이미 M900이 ‘몬스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1992년 쾰른 모터쇼에 선보이기 직전까지 최종적인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갈루찌는 몬스터 개발 초기에 목업 버전을 수입상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이름에 대해 그들과 토론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두카티 내부 관계자끼리 이 모델을 ‘il mostro(이탈리아어로 괴물)’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마침내 분분했던 의견을 그들이 결론지어줬다. “왜 그냥 몬스터라고 부르지 않죠? 몬스터는 완벽한 이름인데요.”
비로소 제 이름을 찾은 몬스터는 1993년에 ‘몬스터 M900’이라는 이름으로 양산 판매되기 시작했다. 우려와 달리 매체에서는 이 모델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혁명적인 디자인과 완벽한 밸런스를 갖추었고, 무엇보다 다른 모터사이클이 가지지 못한 뚜렷한 개성을 칭송했다. 하지만 착잡한 반응도 함께였다. 아무나 접할 수 없는 두카티 고유의 거친 매력을 상당 부분 희석한 몬스터에 대해 두카티스타(두카티를 타는 마니아)들이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수개월 후, 결국 그들도 몬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매력을 인정한 것이다.
Superbike 888 그렇게 몬스터의 승승장구가 시작됐다. 두카티 창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라베르다 모델용 보쉬 헤드라이트, 851과 888 슈퍼바이크의 격자 모양 섀시, 904cc 공/유랭식 Pompone 엔진,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연료탱크가 합쳐지자 뿜어내는 시너지는 실로 엄청났다. 몬스터의 엔진은 거칠었지만 가벼운 무게와 편한 포지션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다. 높기만 했던 두카티의 문턱을 몬스터가 대폭 낮춘 것이다. 판매량은 두카티의 메인인 슈퍼바이크 이상이었다. 인기가 얼마나 갈지 몰라 두카티가 이미 가지고 있던 재고 부품을 재활용하는 설움도 끝이었다. 오히려 끝없이 밀려드는 주문에 몬스터 재고 파츠를 담당하는 부서는 몇 달 내내 업무 폭주에 시달려야 했다.
Monster M600
Monster M750 하지만 대중을 모두 만족시키기에 엔진은 여전히 거칠어 보였다. 이를 눈치 챈 두카티는 M900보다도 부담이 적은 새로운 몬스터를 개발하기로 했다. 1995년에 선보인 다운그레이드 몬스터는 배기량을 다이어트한 M600이었다. 부담이 한결 줄어든 새로운 몬스터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적당한 파워와 가벼운 무게를 갖췄고, 기존에 있던 많은 미들 클래스 네이키드 모터사이클 중에서도 가장 다재다능한 매력을 뽐냈다. M600은 오히려 초기 몬스터인 M900의 인기를 앞지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지금 시점에서 뒤돌아봐도 두카티를 대중에 가장 널리 알린 몬스터가 M600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Monster 600 Dark 다양한 베리에이션 확보도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됐다. 1998년에는 매트 블랙 컬러 버전인 600 Dark를 내놓아 모터사이클 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 버전은 몬스터를 오너로 하여금 빈 캔버스의 느낌으로 제공해 커스텀 페인팅의 여지를 남겨두자는 아이디어에서 태어난 컬러다.
Monster 620 ie dark 굳이 복잡한 의미를 연결하지 않아도 매트 블랙 컬러는 그 자체로 존재가치가 충분했다. Dark 버전은 새로운 모터사이클의 스타일을 창조했으며, 최소한의 액세서리로 더욱 본질적인 모터사이클 패션을 가진 순수한 몬스터로 평가됐다.
Monster 900 Cromo 반면 Cromo 900은 Dark 모델과는 정 반대선상에 위치한 개념이었다. 화려한 크롬 도금 탱크를 가졌고, 커스터마이징을 거친 듯 시각적인 화려함이 변화의 끝을 보여줬다. 이같이 몬스터는 성능을 중시했던 당시 전 세계의 다른 모터사이클과 온전히 차별화 된 개념을 제시했다.
Monster 800
Monster S4 오랜 기간 변화가 없었던 몬스터에 개량이 필요했다. 갈루찌는 “오리지널리티를 고수하며 좋은 방향으로 개량하고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훌륭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Monster S4R
Superbike 996 2004년 공개된 Monster S4R은 몬스터만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996cc 수랭식 엔진을 올렸다. 강인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 엔진은 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을 수차례 거머쥔 996의 것이었다. 외관상으로는 레이스에서 가져온 싱글사이드 스윙암과 듀얼 사일렌서 등 독특한 스타일로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 오싹한 퍼포먼스와 손쉬운 핸들링을 기막히게 버무린 S4R은 순수한 이탈리안 디자인과 퍼포먼스를 가장 잘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Monster S2R 1000 이듬해에는 공랭식 하이엔드 몬스터인 S2R이 등장했다. 스포츠 모터사이클링의 순수함과 최대의 즐거움이 결합을 목표로 준비된 새로운 몬스터는 최상위급인 S4R의 싱글사이드 스윙암과 트윈 사일렌서와 같은 대부분의 고급 파츠를 공유했다. 800과 1000 두 가지 버전이 있으며 2밸브 공랭식 엔진 특유의 본질적인 고동감과 감성적인 부분을 자극하도록 디자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워는 충분했으며 그 안에서도 충분히 짜릿한 주행성능을 만끽할 수 있었다.
Monster 695
Monster 696 가장 큰 변화가 있던 것은 최근 일이다. 보다 작고 파워풀한 몬스터 696이 신세대 몬스터로써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디자인과 클래스 이상의 퍼포먼스는 새로운 몬스터의 지향점을 선명히 드러냈다. 오랜 시간 숙성되어 온 데스모드로믹 메카니즘 속에 고회전으로 뿜어내는 출력의 한계는 가볍고 민첩한 섀시와 맞물려 그동안 가졌던 몬스터와는 또 다른 맛을 자랑한다.
Monster 796
Monster 1100
Monster 1100 evo 최근인 2011년에 등장한 몬스터 1100 evo는 최고 등급인 궁극의 몬스터다. 넉넉한 엔진 파워를 바탕으로 유용한 전자장비를 포함한 최초의 몬스터다. 두카티 세이프티 팩(ABS+DTC)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가장 작은 모델인 몬스터 696의 설계를 기본으로 한층 보강된 강성을 가졌다. 넉넉한 배기량에서 나오는 풍부한 토크와 더불어 부드럽게 유지한 핸들링 등 천의 얼굴을 가진 새로운 두카티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몬스터 1100 evo는 100마력을 내는 최초의 두카티 2밸브 엔진, ‘데스모듀에 에볼루지오네’를 채용했다. 이전의 1,100cc L트윈 실린더 공랭 데스모드로믹과 비교하면 고회전에서의 뛰어난 파워는 물론, 보다 완만한 토크 커브와 부드러운 출력 전달 특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또한 뛰어난 연소효율과 컨트롤 가능한 범위에서의 자유로운 토크 사용을 목표로 진보된 메카니즘을 가득 담았다.
Monster ‘디젤’ 콜라보레이션
Monster GP 레플리카 모터사이클 세계에서 단순한 탈 것 이상으로 진화한 몬스터. 많은 모터사이클리스트들의 특별한 개성과 존재의 표현이 되고 있다. 25만 명이 넘는 마니아들이 몬스터를 소유해 왔고, 몬스터를 영원한 두카티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출시로부터 20년, 두카티는 몬스터의 존재를 특별히 기념하기로 했다. 최신형 몬스터 시리즈에 브론즈 컬러의 프레임과, 빈티지 두카티 로고를 탱크에 그려 넣었다. 유니크+클래식을 추구한 스타일과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퍼포먼스의 결합을 추구한 것이다. 몬스터의 20주년 기념 모델은 몬스터 696, 796, 1100evo 전 라인업에 추가됐다.
뒤돌아보면 단지 ‘판매를 위한’ 모터사이클에서 모터사이클계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다. 이례적으로 시장에 등장한 순간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터의 진짜 가치는 단순한 판매량으로 계측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트렌드와 함께 발맞추는 것,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고집스런 오리지널리티를 고수하는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몬스터가 시기 적절히 히트를 치지 못했다면 두카티는 단지 레이스에 강한 슈퍼바이크 제조사에 머물렀거나, 혹은 어려운 상황 속에 도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두카티를 ‘드림’으로 남게 한 몬스터가 탄생한지 이제 20년이 지났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몬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탈 것 이상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더 기대되는 것은 지나온 20년 동안 몬스터가 만든 역사가 아니라 몬스터가 만들어갈 미래다. 과연 몬스터의 성장 한계선은 어디까지 인지, 모터사이클 역사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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