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N브랜드매니지먼트실 박준우 상무, N브랜드매니지먼트모터스포츠사업부장 틸 바텐베르크, BRC 팀 총괄 가브리엘 리조, 2019 챔피언 노버트 미첼리즈, 2022 시즌 드라이버 부문 우승 미켈 아즈코나, 2018년 초대 WTCR 챔피언 가브리엘 타퀴니, 현대 모터스포츠 법인(HMSG) 커스터머 레이싱 수석 엔지니어 안드레아 치조티

‘레이스’하면 ‘포뮬러 1’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원래 레이스의 시초는 실제 판매하는 자동차를 기반으로 경주를 펼치던 것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개인이 보유한 차량으로 경주를 펼치던 것에서, 점차 관람객이 늘어나자 업체들은 기술과 성능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 자동차 제조사에서 직접 팀을 꾸려 경기에 참가하며 지금과 같은 모습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양산차 기반의 경기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투어링 카, 즉 4인승 이상의 자동차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대회가 있는데, 이 대회를 씹어먹고 있는 한국브랜드가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가 주인공.

현대 모터스포츠는 WTCR 마지막 시즌인 2022 시즌에서 드라이버 및 팀 부문 동시 챔피언을 달성했다

현대차는 2018년 기존 월드 투어링카 챔피언십(WTCC)에 이어 창설된 레이스 리그인 월드 투어링카 컵(WTCR)에 첫 시즌부터 참가, 지난 2022년 시즌까지 5개 시즌을 모두 참가하며 다른 브랜드들과 경쟁을 펼쳐왔다. 2018년 첫 시즌부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현대차는 이후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다 마지막 시즌인 지난해 팀 챔피언과 드라이버 챔피언을 동시에 달성하는 통합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특히 시즌 내내 우수한 성적을 고르게 낸 덕분에 최종 라운드 시작 전에 이미 챔피언을 등극하며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줄 정도였다. 이에 현대차그룹에서는 지난 시즌 드라이버 부문에서 우승한 미켈 아즈코나를 비롯, 2019 챔피언 노버트 미첼리즈, 2018 초대 WTCR 챔피언 가브리엘 타퀴니 등 전현직 선수들과 함께 N브랜드매니지먼트모터스포츠사업부장 틸 바텐베르크, 커스터머 레이싱 수석 엔지니어 안드레아 치조티, BRC 팀 총괄 가브리엘 리조 등을 초청, 미디어와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엘란트라 N(왼쪽, 국내명 아반떼 N)과 이를 베이스로 하는 엘란트라 N TCR 레이스카

먼저 경쟁팀 대비 현대차만의 특성을 묻자 “레이스카에서 양산차의 비중은 70~80% 정도로, 우승하려면 베이스가 되는 양산차의 성능이 뛰어나야 하는데 엘란트라 N(국내명 아반떼 N)을 보면 굉장히 빠르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엘란트라 N의 TCR용 제품은 WTCR을 비롯해 악명높은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첫 데뷔와 동시에 클래스 우승을 달성하고 이듬해에도 클래스 우승과 함께 역대 최고 성적을 달성하며 그 실력을 드러낸 바 있다.

N브랜드매니지먼트모터스포츠사업부장 틸 바텐베르크

최근 WTCR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현대차에는 ‘BoP(Balance of Performance)’라고 하는, 참가팀간의 성능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페널티 요소들이 적용됐다. 대표적으로 차고를 90mm 높여 경쟁자보다 10~20mm 더 높은 차고를 갖게 되는 ‘라이드 하이트(Ride Height)’의 경우 그만큼 하중 이동량이 늘어남에 따라 타이어 그립이 줄어들게 되고, 공기역학적 측면에서도 저항이 늘어나 가속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출력 제한, 핸디캡 중량 추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적용되어 현대차 입장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겪었다. 이 부부넹 대해선 “경기 규칙의 일부다 보니 피할 수 없어 최대한 BoP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개발해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해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특히 i30N의 경우 굉장히 많은 BoP를 받았는데, 이 때문에 엘란트라 N은 BoP 규정에 영향을 덜 받는 브레이킹이나 차량 밸런스 등 동력 부분들을 강화해서 역량을 향상시켜 극복해나갔다”고 밝혔다.

2022 시즌 드라이버 부문 챔피언 미켈 아즈코나

E-스포츠 선수에서 실제 레이싱 선수로 넘어온 미켈 아즈코나는 게임에서의 레이스와 실제 레이스와의 차이를 묻자 “게임이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실제 레이스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심레이서(시뮬레이터+레이서)에서 실제 드라이버로 전향하는게 굉장히 어려웠지만,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비용이나 효율적 측면에서는 더 나은 부분도 있다. 그래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심레이서 쪽으로 진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주니어 레이서들이 심레이서로 시작하는게 좋을지 논의하고 있다. 레이스 역시 전 세계적으로 비용을 줄이려 하는 상황인 만큼 심레이싱을 통해 주니어 드라이버를 발굴하는게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향후 현대 모터스포츠의 계획에 대해 틸 상무는 “HMSG, 그리고 여기 있는 레이서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ETCR(전기차 기반의 투어링카 레이스)을 통해서 지속 가능성을 선보였고, TCR 월드 투어도 계속하 나갈 예정이다. 모터스포츠의 미래에 대해서도 면밀히 보고 있는데, 롤링랩도 앞으로 계속 보여드릴 것이고,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는 남양에서 시작해 뉘르부르크링까지 이어지는 구조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레이스에 기반해서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이다”라고 레이스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의지를 보여줬다.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에 맞춰 모터스포츠에도 전동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에 대한 현대차의 준비에 대해 “ETCR과 WTCR의 차이는 향후 1~2년 내에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전기차 기반의 레이싱카로 승리할 지 고민하고 있다. 드라이버 관점에서 느끼는 차이는 출력이다. 내연기관차는 전륜구동 기반에 560마력의 성능을 내지만, 전기차는 후륜구동에 380마력의 성능을 낸다. 그래서 브레이킹이나 코너링 등 거의 모든 것들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주행 스타일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 과도기적이었던 지난 시즌에는 같은 주말에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모두 주행해야 해 굉장히 어려웠다. 하지만 전략 등 모든 것을 모두 새로 준비하는 이런 도전들 굉장히 즐겁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기술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WTCR에서 활약하며 기술력과 성능을 널리 알린 현대 모터스포츠팀, 지난 시즌으로 WTCR은 마무리되지만 지역 시리즈 레이스를 토대로 상위 15명의 드라이버를 모아 플레이오프를 펼치는 TCR 월드 투어가 올해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펼쳐지는 레이스지만, 그동안 좋은 활약을 펼쳐왔기에 올 시즌 역시 현대 모터스포츠의 활약을 예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차, 그리고 모터스포츠의 시작

2012년 독일 알체나우에 설립된 현대 모터스포츠 법인(HMSG)의 목표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였다. 새로 개발된 i20(국내 미출시)를 기반으로 테스트를 거듭한 HMSG는 마침내 데뷔 첫 해인 2015년, 멕시코 랠리에서 첫 포디움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독일 랠리에서는 원투 피니시(1, 2위 석권)를 달성, 첫 세계무대 도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친 현대차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듬해에도 보완에 보완을 거듭한 결과, 스웨덴, 사르데냐, 스페인 랠리에서 포디움을 달성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여기에 WRC를 위한 새로운 i20 차량 개발에 나서는 한편, 커스터머 레이싱 부서를 신설해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자동차의 무덤’, ‘녹색 지옥(Green Hell)’ 등 다양한 별명이 붙은 세계 최장의 서킷인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펼쳐지는 24시간 동안의 내구레이스에 출사표를 던졌다. i30 차량을 베이스로 향후 N 모델에 더해질 2.0 터보 엔진을 얹어 테스트에 나선 것. 완성형이 아닌, 테스트 모델임에도 완주에 성공하며 투어링카 레이스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WRC에서는 새로운 i20 WRC를 앞세워 무려 12차례의 포디움 입성과 47회의 스테이지 승리로 제조사 부문 최종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불과 참전 2년만에 달성해내며 챔피언의 자리가 머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뉘르 24시에서의 테스트를 기반으로 2017년, 첫 번째 N 모델인 i30N TCR을 앞세워 투어링카 레이스에 데뷔했다. 여기에 WRC에서는 꾸준한 성적을 바탕으로 전년도의 제조사 준우승의 기록을 한 번 더 이어감과 동시에 드라이버 부문에서도 준우승을 달성, 챔피언을 목전에 두었다.

챔피언의 기록은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먼저 나왔다. 2018년 시작된 WTCR에서 가브리엘 타퀴니(현 BRC 현대 N 스쿼드라 코르세 팀 기술고문)이 활약하며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우승의 주역 중 하나인 i30N TCR은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서 클래스 준우승에 오르며 성능을 입증했다.

2019년에는 WRC에서도 제조사 부문 시즌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코르시카, 아르헨티나, 사르데냐, 스페인 랠리에서의 우승을 비롯한 고른 활약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여기에 WTCR은 2019년에 이어 또다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였고,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서 벨로스터 N TCR이 클래스 2위로 영광을 이어나갔다.

2019 시즌 챔피언은 2020 시즌에도 강력했다. WRC 2020 시즌 통산 3회 우승, 11회 포디움, 54회 스테이지 승리로 2년 연속 제조사 부문 챔피언을 현대 모터스포츠 팀이 차지했다. 2021년에는 아쉽게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역대 최고 포인트로 챔피언의 가능성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한편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를 데뷔무대로 선택한 엘란트라 N TCR은 클래스 우승이라는 깜짝 기록으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22년은 WTCR의 마지막 시즌인 만큼 모두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을 것이다. 현대차는 엘란트라 N TCR으로 경기에 나섰고, 미켈 아즈코나를 비롯한 팀의 고른 활약 덕분에 최종 라운드 전에 팀과 드라이버 부문 모두에서 통합 챔피언을 확정지으며 WTCR의 왕좌에 올랐다. 승리의 중요한 열쇠중 하나가 된 엘란트라 N TCR은 두 번째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참가에서 클래스 우승과 함께 역대 최고 순위인 18위를 기록, 실력을 또 한 번 입증했다. 한편 WRC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전을 앞두고 팀부문과 드라이버 부문 준우승을 확정한 상황에서 팀 동료간 펼쳐진 치열한 접전 끝에 티에리 누빌이 최종전 우승, 오트 타낙이 준우승으로 원투 피니시를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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