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9.30 금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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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를 통해 기술을 꽃피우다, 야마하 WGP 60주년 이야기

긴 역사를 지닌 브랜드는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자동차나 모터사이클 브랜드 역시 그러한데, 수많은 제품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 제품들을 활용한 레이스에서의 이야기라면 손으로 일일이 꼽을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4대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야마하 역시 그러한데, 지난해 2021 EICMA에서 선보인 월드 그랑프리(WGP) 60주년 기념 모델을 통해 자사의 자랑스러운 레이스에서의 역사를 되새긴 바 있다. WGP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레이스에서 쌓아온 야마하의 기술과 노하우들은 시대를 거듭하며 진화, 발전되어 레이스에 다시 투입될 뿐 아니라 양산 제품에도 적용되어 향상된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설립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야마하가 레이스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보며 어떤 성적을 거뒀고, 어떤 모터사이클이 등장했으며, 어떤 선수들이 그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1955년, 역사의 시작을 알린 ‘고추잠자리’

야마하 중부지원센터(CSC)에 전시된 야마하 YA-1

제품의 성능을 알리는 데는 레이스만한 곳이 없다. 막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시작한 야마하에게는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경쟁 모델에 비해 우수한 성능을 지녔다고 자부했으나, 높은 가격을 소비자에게 납득시키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그런 야마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제 3회 후지산 힐클라임 레이스’였고, 출시된지 채 열흘 정도밖에 안되는 ‘고추잠자리’ YA-1을 출전시키기로 결정하고 대회 준비에 나섰다. 참가한 125cc 클래스에는 16개 브랜드 49대의 모터사이클이 출전했으며 야마하는 YA-1 10대를 출전시켰고, 그 중 1위를 차지하고 6명이 9위 안에 입상하는 등 뛰어난 성적으로 실력을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음해 대회에서는 YA-1과 175cc의 YC-1을 250cc 클래스에 출전, 각 클래스 모두 우승하며 첫 출전에서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불과 넉 달 뒤, 제 1회 아사마 고원 레이스는 영국의 맨섬 TT를 목표로 기획된 경기였다. 19.2km의 코스에서 타임 트라이얼 방식으로 진행된 경기에 야마하는 다시 한 번 YA-1로 출전, 우승은 물론이고 4위까지를 모두 독점하며 기세를 높였다. 2회 경기에서도 야마하는 125cc 우승을 비롯해 총 5명이 시상대에 오르며 경쟁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세계 무대를 위한 준비

1958년 카탈리나 GP에서 전도에도 불구하고 6위를 차지한 이토 사로 선수

야마하는 세계 무대 데뷔의 전초전으로 1958년의 WGP 8라운드 카탈리나 GP를 선택했다. 도로에 자갈이 흩어져 있는(당시는 서킷이 아닌,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서 경기가 펼쳐졌다) 상황에서 경기 초반 넘어지는 불운에도 불구하고 6위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시장에서 주목받은 야마하는 미국 진출의 청신호를 밝혔다. 다음해에는 맨섬 TT에서도 6위에 입상하며 레이스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달은 야마하는 GP 모터사이클 개발팀을 만들며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1961년, WGP 본격 데뷔를 앞두고 전초전 격인 데이토나 GP에 참가했다. 전초전인 만큼 WGP용 머신으로 참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산차인 YDS-1의 엔진을 얹은 프로토타입으로 5위를 차지, 프랑스 GP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첫 경기에서 250cc 클래스와 125cc 클래스에서 모두 8위를 차지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맨섬 TT 첫 출전임에도 6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어지는 다음 경기는 맨섬 TT(당시는 별도의 경기가 아닌, WGP의 경기로 함께 치러졌다)로, 1바퀴에 60km가 넘는 상당한 길이에도 불구하고 250cc 클래스 6위를 차지하며 대회 첫 포인트 획득에 성공했다. 이후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열린 레이스에 참가한 야마하는 본격적으로 우승 트로피를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1962년은 경영상의 문제와 머신 개발에 집중하기로 결정, 1년을 건너뛴 후 1963년 4번째 라운드부터 경기에 참가했다. 맨섬 TT에서는 2위를 기록하며 첫 시상대 입성에 성공했고, 이어지는 네덜란드 GP에서도 2위, 그리고 마침내 벨기에 GP에서 250cc 클래스 첫 우승과 함께 2위까지 석권하며 원투 피니시를 달성했다. 기세를 높인 야마하는 1964년 250cc 클래스에서 필 리드 선수가 라이더 챔피언을 획득하는 동시에 메이커 챔피언까지 달성하며 참가 3년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YZ의 시작과 500cc로의 도전

상위를 휩쓸고 있는 일본 브랜드 견제를 위한 새로운 규정을 도입하며 상당수 브랜드들이 철수를 결정했다

1967년,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 제조사들을 견제하기 위해 FIM에서 배기량에 따른 실린더 갯수 제한이라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했다. 이에 일본 제조사들은 WGP 철수를 결정했고 야마하 역시 1969년에 참가를 멈췄지만 레이스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야마하의 경우 시판 로드레이스 모터사이클을 계속 생산,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500cc 클래스에 대한 준비를 이어가며 머지않아 레이스에 복귀할 의지를 보여줬다.

 

1973년, 모터스포츠 시즌 개막을 알리는 ‘데이토나 200마일’ 레이스에 야마하가 참가를 선언했다. 5년만의 레이스 복귀전에서 당시 시판중이던 레이스 모터사이클 TZ350으로 500cc 클래스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4월, YZR500을 들고 프랑스 GP에 참가한 야마하는 라이벌을 제치고 1위와 3위를 기록, 여전히 강력함을 보였다. 이어진 오스트리아 GP에서도 원투 피니시로 경기를 마치며 언제든 시상대에 오를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전설적인 레이서 자코모 아고스티니를 영입하며 침체됐던 분위기에 반전이 일어난다

계속해서 승승장구할 것이라 생각됐던 야마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이탈리아 GP에서 250cc 클래스에 참가한 사리넨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며 야마하는 팩토리팀의 잔여 경기 참가를 포기했다. 여기에 전 세계를 덮친 오일쇼크와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의 전환 등 악재가 이어졌지만, 레이스에 대한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1973년 12월, 7년 연속으로 WGP500 챔피언을 차지하고 있는 자코모 아고스티니를 영입하며 정상을 향한 도전을 재개했다.

 

이듬해, 3월의 데이토나 200마일 레이스에서 아고스티니는 TZ750과 함께 첫 번째 우승을 달성하고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GP에서도 연이어 시상대 정상에 오르는 등 기세를 높였다. 최강 선수와 최강 머신의 조합은 풀 참전 첫해에 500cc 클래스는 물론이고, 125cc와 250cc, 350cc까지 모두 제조사 챔피언을 차지하며 막강한 실력을 자랑했다. 1975년에는 YZR500을 탄 아고스티니가 500cc 클래스 첫 라이더 챔피언의 영광을 차지했다.

조니 체코트(좌)와 케니 로버츠. 익숙한 컬러와 그래픽을 볼수 있다

1976년에는 경쟁사에 밀려 야마하가 차지한 우승 트로피는 단 1개뿐이었다. 체제를 새로이 가다듬고 1977년을 맞이했지만 경쟁사에게 2년 연속 챔피언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새로운 피를 수혈해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 상황. 야마하는 AMA 더트 레이스 출신의 케니 로버츠를 영입하며 새 시즌을 준비했다. 시즌 개막과 함께 로버츠는 승승장구하며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1979년과 1980년까지 3시즌 연속 챔피언에 오르며 야마하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특히 1979년은 시즌 개막 전 테스트 중 전도로 인해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총 5승을 거두며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경이로운 실력을 보여줬다.

 

1981년은 경쟁사에서 활약하던 배리 쉰이 야마하 팀에 합류해 케니 로버츠와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 시즌에서 로버츠가 2승, 쉰이 1승을 거두며 챔피언의 자리는 경쟁자에 양보해야 했으나, 두 사람이 조화를 이뤄 달리는 모습은 그랑프리에서 존재감을 강력하게 드러냈다. 1982년에는 개막전부터 로버츠와 쉰이 원투 피니시를 달성하며 좋은 출발을 보여줬다. 2전에서는 V4엔진을 탑재한 신형 YZR500을 투입해 케니 로버츠가 3위, 4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전반기까지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후반기에는 트러블이 이어져 4위로 시즌을 마쳤다. 반면 팀 메이트인 그렘 크로스비는 우승 기록은 한 차례도 없었으나 시상대에 5번 오르는 등 꾸준한 성적으로 시즌 2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때 적용된 프레임은 헤드파이프의 위아래와 피벗을 짧은 직선으로 연결하는 삼각형을 특징으로 하는 야마하의 대표 프레임, 델타박스형 프레임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야마하 슈퍼스포츠 모델에 탑재되고 있다.

 

250cc로의 복귀, 500cc의 연전연승

1986년 시즌 250cc 챔피언을 차지한 카를로스 러버드

1969년 야마하 팩토리팀이 250cc 클래스에서 철수했지만, 프라이빗 라이더에 꾸준히 시판 모델을 공급하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본 내 경기인 전일본 로드레이스에선 대부분 TZ250을 사용하고 일부 팀만이 유럽제 프레임에 TZ250의 엔진을 얹어 사용하는 등 TZ250 원메이크 레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 하지만 1984년 혼다가 신형 머신으로 참가해 바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자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1973년 TZ250을 발매한 이후 250cc 클래스는 시판차로 공급하던 원칙을 바꿔 본격적인 신형 머신 개발에 나섰다.

 

야마하는 개발중이던 1985년형 YZR500의 엔진을 세로로 분할한 V트윈 엔진에 전용 개발한 미션과 클러치를 투입한 YZR250은 1985년 최종전 예선에서 베스트 랩타임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보였다. 이듬해 개막전부터 본격 투입한 YZR250은 카를로스 라바드가 총 6승을 거두며 250cc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으며, 히라 타다히코도 최종전에서 본인의 첫 WGP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86년 시즌 전체에서 YZR250은 모든 레이스의 폴 포지션을 차지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레이스에 적용된 1축 크랭크 V트윈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한 TZR250R

YZR250은 1987년까지 2축 크랭크의 V트윈 엔진의 형태를 유지했으나, 다음해부터 90도/270도 간격의 1축 방식으로 변경한다. 이는 2축 형태가 진동면에서는 우위를 갖지만, 시동성에서는 1축이 더 나은 성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때 사용된 기술은 1991년 출시한 TZ250과 TZR250R에도 적용되는 등 레이스에 투입된 기술을 실제 양산차로 이어간 대표적인 사례다.

 

1988년에는 웨인 레이니가 야마하 팀에 합류하며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뤄낸다. AMA 슈퍼바이크에서 2회 타이틀을 획득했던 그는 WGP 참전 첫 해에 3위를 달성하는 돌풍을 일으킨다. 여기에 스즈카 8시간 내구레이스에서는 케빈 매기와 팀을 이뤄 폴 투 피니시를 달성한 것 역시 저력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1989년에도 상승세를 이어가 총 15라운드 중 우승 3회를 포함 13번이나 시상대에 오르며 랭킹 2위로 시즌을 마쳤고, 1990년에는 우승 7회를 포함, 총 14회의 시상대 입성으로 라이더 챔피언과 함께 야마하의 통산 6번째의 제조사 챔피언에 큰 공헌을 했다. 이어 1991년과 1992년에도 접전을 펼치며 3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최종전까지 향방을 알수 없었던 1992년은 성능을 끌어올린 YZR500은 마지막 접전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시대의 변화, 모터사이클의 변화

야마하는 맥스 비아지의 영입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라 예상됐던 야마하지만, 치열한 경쟁자들이 있는 만큼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도 있었다. 1997년과 1998년이 그러했다. 1996년 최종전에서 로리스 카피로시가 우승한 이후 무려 22경기 연속으로 우승 기록을 내지 못한 것. 1997년은 시상대에 오른 것이 고작 5번에 불과할 만큼 힘든 모습을 보였다. 1998년 8라운드인 영국 그랑프리에서야 겨우 사이먼 클래퍼의 우승으로 무승 행진을 저지하고 다시금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을 향한 재기의 칼날을 갈게 됐다.

 

1999년을 맞이하면서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우선 경쟁팀의 대표 선수였던 맥스 비아지를 영입한 것이다. 250cc 클래스에서 4년 연속으로 챔피언을 차지했던 그이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기대할 만한 상황. 또 하나는 기존 2행정 머신을 대체할 4행정 머신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WGP 외 여러 경기들을 통해 FZ750 기반의 FZR750과 같은 모델로 4행정 레이스 모터사이클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기 때문. 이때 개발한 제품들은 훗날 슈퍼바이크 챔피언십(WSBK)에서 활약하는 YZF-R1과 같은 양산모델로, 또한 지금까지도 야마하의 대표 레이스 모터사이클인 YZR-M1로 이어지게 된다.

'살아있는 전설' 발렌티노 롯시와 YZR-M1의 조합이 만들어낸 파급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2002년부터 WGP에서 모토GP로 이름이 바뀌며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바로 2행정에서 4행정 모터사이클로의 세대교체. 야마하는 YZR-M1을 투입해 맥스 비아지가 체코 그랑프리에서 1위를 차지하며 신형 머신의 첫 우승 기록을 달성한다. 이후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긴 했으나,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경쟁자에게 밀리는 상황. 2003년에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며 야마하에는 또다시 변화가 요구됐다. 이 때 투입된 것이 크로스플레인(CP) 크랭크 기술로, 싱글 플레인 크랭크 대비 훨씬 관성토크를 줄이며 기존 싱글플레인 대비 향상된 성능을 보였다. 2004년 이 크로스플레인 크랭크를 더한 YZR-M1과 모토GP의 전설 발렌티노 롯시의 만남, 개막전부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선전을 펼치며 시즌 전체에서 무려 9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야마하에게 12년 만에 챔피언 타이틀을 선물하게 된다. 기세를 올린 야마하는 2005년에도 활약, 무려 시즌 11승으로 2년 연속 챔피언에 팀 챔피언, 제조사 챔피언을 휩쓰는 3관왕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작성했다.

롯시의 부진을 로렌조가 메우며 연승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끝없이 성능이 올라갈것 같았던 YZR-M1이지만, 2007년은 그렇지 않았다. 배기량 상한선이 800cc로 제한됐기 때문. 야마하에서는 배기량이 줄어들었지만 이를 만회하기 위해 엔진 회전수를 높이기 위한 변경들이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4회 우승으로 시즌을 3위로 마무리한 발렌티노 롯시. 그와 팀은 타이어를 교체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롯시는 브릿지스톤으로, 팀메이트인 호르헤 로렌조는 미쉐린을 유지하는 독특한 구성이 이뤄졌다. 전례가 없었던 모험의 결과는 2008년 중국에서의 첫 우승을 시작으로 무려 9승을 거두며 챔피언을 탈환하는데 성공하고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 2009년에 롯시가 챔피언을, 로렌조가 시즌 2위를 차지했으며, 2010년에는 롯시가 부상으로 일부 경기에 불참하며 챔피언에서 멀어졌지만, 로렌조가 활약하며 첫 모토GP 챔피언과 동시에 3년 연속 라이더, 팀, 제조사 3관왕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다.

 

2011년 롯시가 두카티로 이적했으며, 2012년은 레귤레이션이 다시 1000cc로 바뀌고 실린더 숫자를 4개로 제한하는 규정도 추가됐다. 야마하 역시 새로운 YZR-M1을 투입했는데, 로렌조가 우승 6회, 2위 10회의 기록으로 최종전 직전 라운드에서 챔피언을 결정짓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줬다. 다음해에는 간발의 차이로 챔피언의 자리를 놓치긴 했으나 그전까지 활약하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계속해서 진화한 YZR-M1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화 중 하나로 기어박스의 변화를 통해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변속기의 밸런스가 조화를 이뤄 안정적인 타임을 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는 2015년 로렌조가 다시 한 번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파비오 쿼타라로는 2021년 시즌 챔피언을 차지했고, 올해도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어 V2가 유력한 상황이다

2016년, 모토GP에 또 한번의 변화가 찾아온다. 단일 브랜드 타이어의 공급, 그리고 연간 사용 엔진 수 제한, 여기에 모든 팀이 같은 ECU를 사용하는 변화가 이뤄졌다. 하위권 팀들에는 반가운 소식이었으나,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고 있었던 야마하와 같은 상위권 팀들에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하지만 레이스의 공정함과 모터스포츠에 대한 공헌을 위해 야마하는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여 개발을 진행하고 레이스에 참가했다. 그 결과 2017년에는 야마하 GP 통산 500승의 대기록을 작성한 것은 물론이고, 2021년에는 YZR-M1을 타는 파비오 쿼타라로가 프랑스인으로는 최초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2022년에도 야마하와 YZR-M1의 활약은 이어지고 있어 쿼타라로가 2위와 격차를 벌리며 순항하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올 시즌에도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무려 60년에 걸친 긴 레이스 역사에서 자사의 제품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모터스포츠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야마하, 그렇기에 그들이 10년 주기로 선보이고 있는 WGP 기념 모델들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2032년에는 어떤 모습의 기념 모델이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제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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