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하면 ‘911’ 정도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과거를 되짚어보면 911의 바탕이 되는 모델들부터 어디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의 스포츠카, 다양한 레이스에서 활약해온 레이스카 등 다양한 모델들이 포르쉐 역사의 페이지들을 차례로 장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보들을 책이나 잡지를 통해 알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자처럼 게임을 통해 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독일에 갈 기회가 있어 포르쉐 박물관을 방문해봤다면 이러한 역사적인 모델들을 실물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사진으로만 감상할 수밖에 없고, 국내 일부 자동차 박물관에서 소장한 몇몇 모델들을 만나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런 마니아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시켜 줄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바로 ‘포르쉐 이코넨 서울’이 바로 그것. 이름 그대로 포르쉐의 아이콘(독일어로 ‘Ikonen’)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모델들을 전시하는 행사인데, 이번에 서울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아시아 최초로, 포르쉐가 한국 시장의 중요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행사의 본격 시작을 앞두고 미리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지난 4월 10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찾았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전시물들이 다양하다. 크고 작은 미니카를 비롯해 포르쉐에서 자사의 역사나 제품에 대해 소개하는 책들 역시 마니아들이라면 군침 흘릴만하다. 특히 ‘카레라’ 모델 하나만을 가지고 쓴 책은 크기와 두께 모두 어마어마한데, 나중에 검색으로 알아보니 카레라 GT의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고 심지어 부품별 도면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책은 무려 860페이지에 책 무게가 4kg에 육박한다고.

잠깐의 대기 후 스크린이 열리고 드디어 포르쉐 이코넨 서울 현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좌우로 늘어선 역사적인 여러 모델들에 어디로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모바일 도슨트가 제공되어 각 전시물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지식이 해박하지 않아도 재밌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관람할 수 있다. 대신 개인 이어폰은 반드시 지참할 것.

가장 첫 번째 공간은 ‘헤리티지’라는 이름으로, 포르쉐의 시작인 356과 포르쉐를 상징하는 911의 초기형 모델, 독특한 디자인의 718 포뮬러 2와 같은 역사적인 모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델로 꼽을 수 있는 건 제임스 딘의 애마로 잘 알려진 550 스파이더다, 독일에 가기 전까진 실물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이번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을 포르쉐코리아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550 스파이더의 자태는 지금의 시각에서 봐도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디자인의 힘을 새삼 다시 느끼게 한다.

다음 공간은 모터스포츠다. 포르쉐와 모터스포츠는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서킷에서만 잘 달리는 모델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고정식 ‘롤 오버 바’를 더한 911 타르가의 유래인 ‘타르가 플로리오’ 레이스와 같은 일반도로 레이스에서도 활약했으며, 심지어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가리지 않는 랠리, 그중에서 가장 악명높은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1986년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모터스포츠는 포르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에 남을 레이스카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다양한 레이스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1971년 르망에 참가한 917/20, 일명 ‘분홍 돼지(Pink Pig)’일 것이다. 공기 역학 등을 고려해 디자인된 차체에 대해 ‘돼지같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정말 돼지처럼 분홍색을 입히고 부위를 표시하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머 감각을 보여준 모델이다. 재미없기로 소문난 독일인들에게 이런 재치가 있을 줄이야.

‘모터스포츠’ 구역에서 마지막 모델인 919 하이브리드를 눈에 담고 다음의 ‘이노베이션’ 구역으로 넘어오면 매우 닮은 또 다른 모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바로 하이퍼카 콘셉트 모델인 919 스트리트가 그것. 앞서 본 919 하이브리드를 일반도로 주행용으로 다듬어낸 것으로, 한국인 디자이너인 정우성 씨가 외관 디자인에 참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양산에 이르지 못해 실내는 패널로 막혀있지만, 외관에서 봐도 상당한 고성능의 최첨단 모델이 될 것이라는 점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입구에 전시한 책에서 등장을 암시한 카레라 GT, 918 스파이더,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운 고성능 스포츠카 959, 가장 최신의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터보 S까지 포르쉐의 혁신을 보여주는 모델들이 총출동했다.

이번 포르쉐 이코넨 서울 행사는 4월 22일까지 진행되며 네이버 예약을 통해 티켓 구매가 가능하다. 성인은 10,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는 5,000원, 미취학 아동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포르쉐 오너라면 차량 키를 제시하면 동반 3인까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되며, 15~17일은 단축 운영된다.

따뜻해진 날씨에 봄꽃의 향연이 야외로의 발걸음을 부추기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 포르쉐 이코넨 서울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국내에서 다시 보기 힘든, 멀리 독일까지 가야 볼 수 있는 희귀한 모델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포르쉐의 역사적 모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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