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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메이커, 맥라렌
  • 라이드매거진 편집부
  • 승인 2020.03.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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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메이커들에게 레이싱은 스포츠이면서 마케팅과 기술 시험장의 역할까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많은 기술들이 레이싱 대회에서 테스트를 거친 후 양산모델에 적용되며 카탈로그 등 각종 자료에는 ‘레이싱에서 영감을 받은’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3월이면 F1월드 챔피언십의 2020년 시즌이 시작된다. 시작 전에 상하이 그랑프리의 취소가 확정되는 등 뒤숭숭하지만 본격적인 새 시즌은 시작한다.

전통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레이싱에 뛰어들었다면 레이싱에서 태어나고 발전하는 메이커도 있다. 그 중에 슈퍼카 브랜드 ‘맥라렌’은 자신들의 ‘태생의 비밀’과 모든 메커니즘을 F1 레이스로 설명하는 특별한 메이커다. 흔히 맥라렌 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레이서이자 엔지니어인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과 자동차 메이커 ‘맥라렌’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슈퍼카 브랜드 ‘맥라렌’의 시작은 1963년 ‘브루스 맥라렌 모터레이싱’이란 이름으로 설립됐으며 1966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데뷔했다. 지금은 많이 대중화 된 카본 파이버를 이용해 차체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실현시킨 팀이다. 이후 F1에서 가장 성공한 팀으로 역사를 썼으며 8번의 ‘컨스트럭터’ 타이틀, 12번의 ‘드라이버 챔피언’, 160번의 그랑프리 우승, 5번의 캔암 타이틀과 43승 기록, 3번의 인디500 우승 등 수많은 타이틀을 따냈다.

1964년 맥라렌팀은 진정한 맥라렌 스포츠카인 M1A를 만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주목받았다. 성능을 입증한 이후, 주문이 밀려 들어와 총 24대를 제작했다. 뒤를 이어 개발한 M1B는 더 빨라져 맥라렌팀은 캔암 챌린지컵(Canada American Challenge cup)에 출전하게 된다. 정밀하며 고도로 튜닝된 대형 V8엔진의 강력한 파워는 당시 F1 머신보다 빨랐고 브루스의 신생팀은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맥라렌은 시리즈 3위를 기록하며 주목 받게 된다.

1965년 브루스 맥라렌은 자신만의 F1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테스트 차량의 섀시를 적용한 M2B를 개발해 모나코 GP에 데뷔했다. 비록 동력 부족과 안정적이지 못한 엔진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브루스 맥라렌은 시즌 후반 2점을 올리고, 영국의 브랜즈 해치 서킷의 3번째 경주에서 6위를 차지하는 등 쾌조의 출발을 시작하게 된다. 맥라렌의 첫 번째 F1 머신의 진짜 진가는 몇 가지 특징적인 혁신을 이루게 된다.

현재까지 맥라렌의 주요한 특징인 경량화는 디자이너 로빈 허드(Robin Herd)에서 시작됐다. 우주항공 산업에서 역량을 쌓아온 자동차 디자이너 로빈 허드는 엔드그레인 발사(Endgrain Balsa)라는 가벼운 목재를 여러 겹으로 쌓아 만든 몰라이트(Mallite)라는 소재로 M2B의 실내 전체와 모노코크 차체를 제작했다. 견고하고 가벼운 차체를 완성했으며 이 같은 특징은 카본파이버 모노코크 차체를 사용하는 맥라렌의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모터스포츠 역사 상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1967년이 되자 맥라렌팀은 트레이드 마크인 오렌지색을 앞세워 첫 번째 타이틀을 기록했으며 총 6회의 레이스 중 5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맥라렌팀은 1967년부터 1971년 까지 총 19번의 레이스 1위와 2위(one-twos)를 동시에 차지했으며, 총 43번의 레이스에서 우승 기록이 37회에 달한다. 캔암 시리즈를 지배하는 동안 판매량은 크게 올랐으며 캔암 시리즈를 떠날 때까지 43회 우승을 거뒀다. 경쟁자인 포르쉐보다 거의 3배에 달하는 승률을 기록했을 만큼 압도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맥라렌 F1 팀이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1968년 벨기에 GP에서 최초로 우승하게 된다. M7A는 당시 가장 빠른 자동차 중 하나였으며 맥라렌의 오렌지 컬러를 팬들에게 각인시킨 첫 해였다. 당시 브루스의 팀 동료였던 드라이버 데니 흄(Denny Hulme)은 1968년에 두 번 더 우승했고, 후반기 캐나다 GP에서는 맥라렌으로서는 최초의 원-투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데니 흄은 1969년 4회의 그랑프리 우승을 더했다.

1970년 굿우드에서 테스트하던 중 브루스 맥라렌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으며, 이후 맥라렌 팀은 혼란을 겪지만 테디 메이어(Teddy Mayer)의 지도와 데니 흄이 1975년 은퇴할 때까지 지속했던 헌신을 기반으로 맥라렌의 레이싱 역사는 화려하게 기록될 수 있었다.

화려한 역사에 등장하는 맥라렌의 드라이버는 이름만 들어도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챔피언들을 보유하고 있다. 1974년 브라질 출신의 에머슨 피티팔디(Emerson Fittipaldi)가 맥라렌 M23을 타고 세 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하며 처음으로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 챔피언십(first Drivers’ and Constructors’ championship)을 동시에 기록하게 된다. 이후 1976년 제임스 헌트가 페라리의 니키 라우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는 8년 중 1987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맥라렌 소속 드라이버인 니키 라우다,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 아일톤 세나(Ayrton Senn)가 챔피언에 오른다. 1998~99년 연속으로 미카 하키넌(Mika Hakkinen)에 이어 2008년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까지 이어지는 챔피언과 함께 F1을 호령했다.

맥라렌은 F1 레이싱에서 쌓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양산차에 적용했다. 그 와중에 예기치 않은 에피소드도 생겼다. 기술의 발전은 극적으로 랩타임을 단축시켰다. 대표적인 기술이 브레이크 스티어다. 맥라렌은 1997년 F1 시즌에서 처음 브레이크 스티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브레이킹을 할 수 있는 페달을 추가했는데, 코너링을 할 때 수동으로 안쪽 뒷바퀴에 브레이킹을 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언더스티어를 감소시켜 랩타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술이다.

현대의 차체 제어 시스템을 수동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었으나 FIA에서 금지 시켰다. 현대로 넘어와 맥라렌 슈퍼카에 전자식으로 적용이 됐는데, 다른 브랜드에서 유사한 메커니즘을 디퍼렌셜로 구현하는 것에 반해 맥라렌은 전자식으로 구현한다. 디퍼렌셜을 장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경량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브루스 맥라렌의 전설적인 M1A는 맥라렌 엘바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맥라렌 최초의 2인승 오픈 콕핏 로드스터 엘바는 루프와 윈드스크린이 없지만 일반 도로를 주행한다. 누가 보더라도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파격적인 구조로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냈지만 핵심은 따로 있었다. 바로 레이싱에서 시작된 에어로다이내믹 기술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었다.

세계 최초로 적용된 액티브 에어 매니지먼트 시스템(Active Air Management System, AAMS)이 핵심이며 AAMS는 공기의 흐름을 주행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시스템으로 고속 주행시 차량의 전면부에서 시작되는 공기 흐름을 캐빈 위로 보내 캐빈을 마치 버블 안에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바깥에서 안으로 휘어들어가는 디자인의 카본 파이버 구조 및 윈드 스크린과 루프 없이 캐빈 안으로 들이치는 바람을 분산시키는 에어로다이내믹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한 것이다.

맥라렌은 여전히 레이싱을 통한 기술 개발을 이어 가고 있다. 랩타임을 줄이기 위한 기술의 진보는 일반 드라이버들을 위한 드라이빙 즐거움과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레이싱을 통한 경쟁이 궁극적으로 양산형에 적용되기 때문에 자동차 마니아라면 레이스를 관전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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