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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한 외모에 숨겨진 리터 스포츠의 백미, 혼다 CB1000R
  • 글 임성진 / 사진 임성진, 황호종
  • 승인 2018.09.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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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열풍이 차츰 사그라들자 뒤를 이어 현대적 요소에 클래식 스타일을 접목해 더욱 문턱을 낮춘 이른바 네오 클래식 스타일이 더욱 인기를 끈다. 모터사이클에 적용되는 네오 클래식을 떠올리면 단번에 뉴 CB 시리즈가 생각날만큼 신형 CB1000R을 비롯한 패밀리 기종 세 모델은 네오 클래식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CB125R, CB300R로 이어지는 새로운 CB-R 라인업 중 맏형인 CB1000R은 슈퍼스포츠인 CBR1000RR 엔진을 활용해 저중역대 토크를 높였다. 다시말해 ‘스포츠 DNA'를 품은 엔진을 가졌다는 뜻이다. 외모나 전체적인 스타일은 세 모델이 거의 유사해 분간하기 쉽지 않지만 모터사이클의 심장인 엔진을 놓고 본다면 시작점부터 완전히 다른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인상은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 신사

고성능의 진정한 스포츠 모터사이클을 표방하는 CB1000R은 단정하고 말쑥한 이미지를 품었다. 첫 인상은 아무래도 밋밋하다. 네오 클래식이란 말그대로 옛 것과 현대의 것을 적절히 섞어놓은 것인데 뭔가 화려하게 튀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수수하다. 모터사이클을 잘 모르는 일반인에게 보여줘도 ‘부담없어 보인다’고 하고, 앉아보고 나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느냐’며 사진 한 방 찍어달라고 휴대폰을 내민다.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해 그냥 툭 세워놔도 거리에 잘 어울리고 쉽게 배경에 스며든다. 이것이 클래식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클래식도 따지고 보면 그 자체로 독특하기 때문에 튀기 일쑤다. 그런데 CB1000R은 정말 도시 친화적이다. 이미지만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CB1000R의 진가는 시동만 켜봐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셀프스타터로 시동을 걸면 수랭 DOHC 병렬 4기통 엔진이 그르렁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포효라고 봐도 좋을만큼 순정 사양인데도 존재감이 크다. 낮게 깔린 음색은 시끄럽지 않지만 언뜻 수수해 보이는 이미지와 상반되기에 놀라게 된다.

깨끗하게 표시되는 블랙 배경의 LCD 계기반은 타코미터와 속도계 등을 중심으로 표현된다. 특히 타코미터 가운데에 위치한 기어 단수 표시기가 눈에 잘 띄고 클래식 이미지에 맞게 화려함을 최대한 배제하고 꼭 필요한 정보가 큼직하게 표시되는 점이 좋다.

중립상태 1,500rpm에서 숨 쉬는 엔진은 전자식 스로틀에 의해 움직인다. 출발 전 잠깐 라이딩 모드를 확인해 보니 보통 모드인 스탠다드에 맞춰져 있다. 더 기민한 모드는 스포츠, 둔한 모드는 레인이다. 스탠다드 모드에서 1단부터 가속을 해보면 저속출발부터 토크가 묵직함을 느낀다.

사실상 클러치만 스르륵 놓아도 토크가 붙어 부드럽게 출발이 가능하다. 3,000rpm부터는 부드럽고도 묵직하게 가속이 시작되며 이때부터 비로소 리터급 엔진임이 실감된다. 시내에서 5단이나 6단으로도 별 불편없이 달릴 정도다. 과거 슈퍼스포츠였던 CBR1000RR이 높은 회전수에서 쓰던 토크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슈퍼스포츠 엔진의 강력함이 실영역에서 고스란히 발휘

엔진은 소리없이 토크를 내뿜는데, 2기통과 다른 점은 그 기세가 점차 오르는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슈퍼스포츠보다는 훨씬 단순화한 곡선으로 파워그래프를 다듬은 엔진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회전 중심으로 탄생한 4기통 고출력 엔진이 베이스라서, 레드존 직전인 약 10,000rpm까지 전방에서 빨아들이듯 가속하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풀 카울링이 아니라 정면에서 맞바람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기에 가속감이 더욱 세차게 느껴진다. 니그립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스르륵 뒤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달리면서도 라이딩 모드는 변경할 수 있다. 스포츠 모드는 스로틀 반응이 좀더 민감하다. 엔진을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싶다면 이 모드가 적절하다. 여과없이 뒷바퀴로 출력을 토해내는 느낌이 든다. 특히 4,000rpm부터 쭉쭉 밀어붙이는 가속감은 슈퍼스포츠 못지않다.

속도나 기어에 상관없이 언제라도 풀 스로틀하면 앞 바퀴가 살살 올라올 정도다. 수더분한 표정으로 시속 200km이상 아무렇지 않게 돌파하는 CB1000R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 정도라면 동그란 헤드라이트를 단 모터사이클 중에 가장 강력한 것 아닌가 싶었다.

사실 CB1000R의 진짜 재미는 리터급치고 부담없는 작은 차체, 그리고 가벼운 무게와 고출력 4기통 엔진의 조화다. 질량감이 아래로 응축되어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좌우로 핸들링하는 느낌이 정말 매끄럽다. 특히 저속에서 초기 선회동작이 아주 재밌다.

쿼터급 정도의 질량감으로 좌우로 미끄러지는 듯한 코너링성능은 좌우로 휘몰아치는 뒷산 와인딩로드를 정말 즐겁게 만든다. 부드럽고도 묵직하게 쏟아내는 토크를 쥐락펴락하다보면 통제하는 즐거움도 만점이다.

고속 코너링은 아무래도 슈퍼스포츠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일단은 앞이 가볍다. 특히 7,000rpm 이상 고회전으로 돌리다보면 작은 차체에 비해 오버 파워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만큼 힘이 넘치며 품에 쏙 들어오는 차체는 ‘포켓 로켓'이 연상된다. 단순화한 프레임설계나 서스펜션 설정을 살펴봐도 역시 뻥 뚫린 고속 주행도로보다는 시속 100km 전후로 달리는 보통 환경에서 가장 재밌다.

 

트랙션, 엔진 브레이크, 파워 조절도 취향대로 세팅 가능

왼쪽 핸들부의 버튼들로 조작하는 전자장비는 복잡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 달리면서도 설정할 수 있는 라이딩 모드는 길게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빠르게 조작할 수 있고 즉각 적용되는 점이 좋았다. 한편 사용자 설정모드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수치들로 조합해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제공되는 세 가지 라이딩 모드 말고도 개인의 성향에 맞춰 파워의 민감도는 물론 엔진브레이크 컨트롤, 뒷 바퀴의 미끄러짐을 제어해 주는 HSTC의 개입 정도를 각각 선택할 수 있다. 가장 궁금했던 엔진 브레이크 컨트롤은 기대보다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310mm 더블 디스크와 토키코 래디얼 4포트 캘리퍼의 조합으로 제동력이 충분했다. 프론트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는 대용량으로, 수직 타입 피스톤을 사용해 조종성을 높였다고 한다.

실제 시승 시 앞 브레이크는 슈퍼스포츠에 준하는 컨트롤성을 보여줬으며 급제동 시에도 압력의 변화가 없고 미세한 컨트롤을 가능케 해 만족스러웠다. 리어 브레이크는 싱글 디스크와 2포트 캘리퍼로 자세 조정이외에도 부가적인 제동력을 이용하기 수월했다.

 

조절식 서스펜션으로 라이딩 스타일 반영

서스펜션은 쇼와 SFF-BP 프론트 포크로 좌우 분할식 기구를 채용했다. 왼쪽 포크는 감쇄력 조정기구가 포함돼 압축/신장력을 조절할 수 있게 해뒀고, 오른쪽은 단순 초기하중만 변경할 수 있다. 스포츠 라이딩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행 스타일과 신체 하중에 어울리는 기본 서스펜션 세팅이 중요하다. 조절식 서스펜션을 사용한 것은 서스펜션 품질을 떠나 좋은 선택이다.

또한 혼다의 설명에 따르면 모노 백본 프레임에는 고강도 스틸을 사용했고, 리어 쇽 업소버의 위치를 최적화해 프레임에 가해지는 충격을 분산해 결과적으로 프레임 두께를 줄이면서도 밸런스를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 

시트는 면적이 그리 넓지 않고 단단한 쿠션 특성으로 단시간의 스포츠 주행에 적합하다. 리어 시트 또한 크기가 작은 편이라 오랜시간의 텐덤 라이딩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단단한 응축감을 위한 디자인으로 앞/뒤가 짧고 단순화한 실루엣 때문에 얼른 알아차리기에도 거의 1인승 모터사이클로 보이므로 누가 태워달라고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스윙암에 연결된 번호판 지지대는 말끔하게 잘려나간 숏 테일 디자인을 더욱 멋지게 표현한다. 이런 스타일의 단점은 의외로 노면의 오물이 잘 튀어올라온다는 점인데, CB1000R의 경우는 디자인이 효과적으로 되어 있어서인지 일반적인 리어휀더처럼 뒤탈없이 말끔하게 라이딩할 수 있었다. 대신 190mm의 굵직한 뒷 타이어가 시원스럽게 노출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은 있다.

전반적으로 심플하고 시크한 이미지를 잘 표현해놓은 페인팅의 품질도 우수해 소유감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연료탱크 용접부위가 겉으로 보이지 않고, 알루미늄 느낌을 주는 컬러나 각부의 실제 금속 파츠들이 단단한 무게감을 표현했다.

전반적으로 어디 하나 거슬리는 구석이 없는 단순한 디자인의 극치다. 여러가지 일제 모터사이클을 경험해왔지만 CB1000R은 최근 신선한 충격을 줬던 X-ADV와 마찬가지로 디자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훌륭한 모터사이클이라고 생각한다.

 

숨겨진 강인함, 원할 때만 이빨 드러내는 포커페이스

강력한 파워를 숨기고 있지만 겉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는 절제미야 말로 CB1000R의 진짜 매력이다. 수치상 146마력을 내는 네이키드 바이크가 실상 필요할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어쩌다 한번 쓰는 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충분하다. 10.6kgm의 토크는 매순간 쉽게 꺼내쓸 수 있고 컴팩트한 차체를 통제 하에 두면서 휘두르는 재미는 충분했다.

CB1000R을 이틀간 시승하고 난뒤 이전에 시승했던 CB1100 시리즈가 잠시 겹쳐보였다. 그 둘만큼 역사가 깊지 않지만 CB1000R 역시 나름의 진중함이 느껴졌고, 소란스럽지 않게 힘을 묵묵히 간직하고 있는 면이 닮았다.

처음의 우려와 달리 어느 무엇을 따라 만들었다는 느낌이 거의 없고, 혼다만의 해석으로 네오 클래식을 표출해냈다고 느꼈다. ‘나 엄청 강해!’라고 드러내고 싶어 안달 난 요란함없이, 그리고 거품없이 진솔한 스포츠 라이딩의 진면모를 느끼고자 한다면 CB1000R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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