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게이트 이후 폭스바겐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내연기관, 특히 디젤 엔진 기술에 강점을 가진 폭스바겐은 뛰어난 연비효율을 앞세워 ‘클린디젤’ 열풍을 주도했지만, 현재 디젤의 인기가 주춤한 것은 폭스바겐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친환경 전기차 브랜드 I.D.를 앞세우면서도 한편으로 여전히 디젤엔진이 앞으로도 중요한 동력원이 될 것이라 말한다. 아니, 올해 초 폭스바겐은 전기차 그 이상으로 디젤엔진을 활용한 파워트레인에 많은 투자를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디젤엔진이 발생시키는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을 잘 정화하고, 열효율을 끌어올린다면 다시 한 번 디젤엔진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리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한편으로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30종 이상의 모델에 전기화 파워트레인을 적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디젤엔진에 대한 투자와 전동화의 확대, 이 두 사실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하이브리드’를 뜻한다.

 

폭스바겐의 심장을 뛰게 할 ‘스타팅 모터’

혁신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폭스바겐은 유럽을 중심으로 48V 전압을 사용하는 배터리와 스타팅 모터 시스템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48V 시스템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보다 더 가볍다. 또 미래의 자동차는 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이와 함께한다.

배터리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이 스타팅 모터다. 스타팅 모터는 엔진의 시동을 거는 역할을 맡는다. 모든 자동차의 엔진에는 반드시 스타팅모터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잠깐 엔진과 전기모터를 장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살펴보자. 메이커와 모델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사용한다. 모터가 엔진이 동력을 전달하는 구동축에 연결되어 힘을 더하거나, 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큰 경우에는 바퀴에 모터가 직접 연결되고 엔진은 발전기의 역할만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모터’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한편 주목할 점은 엔진을 시동하는 스타팅 모터가 ‘엔진과 직접 연결된 모터’라는 점이다. 엔진에 시동을 걸고 나면 역할을 마치고 대기하는 부품이다. 이 스타팅모터가 시동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엔진에 동력을 추가로 더하거나 반대로 발전기의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만큼 자동차의 부품 수가 줄어들고, 저렴한 비용으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최첨단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보다 개발비용이 저렴하다.  전기차가 아닌 기존 내연기관을 탑재한 플랫폼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이와 함께 폭스바겐이 48V의 배터리 시스템을 확대하는 이유 또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 위함이다.

 

작은 혁신이 가져올 큰 변화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기차는 ID 브랜드가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전기차 도입을 서두르면서도 당장 ‘내일’을 위한 친환경 자동차를 위한 심장으로 기존 엔진의 개량을 선택했다. 모든 자동차의 엔진에 장착되는 스타팅 모터의 변화, 아주 적은 노력일 수도 있지만 이를 적용해 앞으로 출시될 수많은 차들이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변화다.

폭스바겐의 48V 스타팅 모터를 활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내년 출시예정인 8세대 골프에 가장 먼저 적용된다. 모터를 장착해 적극적으로 전기를 활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기모터가 작동하는지 아닌지도 잘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엔진에 녹아드는 것이 핵심인 ‘마일드 하이브리드’다.

폭스바겐의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이 가능한 오래 멈추도록’ 돕는다. 차량이 출발할 때 모터의 힘을 사용하고, 자연스럽게 시동을 걸면서 엔진에게 주도권을 넘긴다. 차량이 감속할 때도 엔진 작동을 멈추고, 모터가 발전기로 작동하며 배터리를 충전한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내리막 주행 같은 특정 상황에서 모터를 발전기로 사용한다. 어디까지나 전기모터의 역할은 엔진을 보조하는 것이다.

언뜻 일반 차량을 하이브리드처럼 보이게 만드는 꼼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폭스바겐은 이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100km주행 시 0.3리터의 연료절감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또 엔진에 출력을 더하는 ‘부스터’로 작동할 수도 있다. 순간적으로 최대출력을 높여 경쾌한 운동성능을 제공한다. 큰 무게증가 없이도 이만한 성능향상을 가져온다면 충분히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물론 앞으로 전기차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자리를 차지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폭스바겐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변화, 더 나은 탈것의 등장과 환경의 개선을 위해 이번에는 정말로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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