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가 지난 2016년 ‘GT R’를 공개할 당시 노골적으로 ‘녹색 괴물’의 이미지를 입히려 애썼던 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메르세데스-AMG는 녹색 지옥이라 불리는 뉘르부르크링 노르드슐라이페 서킷의 최강자를 노린다는 의미에서 ‘그린 헬 매그노’라는 컬러를 입힌 GT R을 공개했고, 메르세데스-AMG GT R은 바로 그해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서 다른 수많은 슈퍼카들을 제치고 1, 2, 3위를 독식하기도 했다.

이 괴물이 서킷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서킷을 구석구석 공격하는 쪽이 아니라 지키는 쪽으로. FIA는 2018 포뮬러 원 시즌동안 메르세데스-AMG GT R을 페이스카로 사용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AMG는 2018 GT R 역대 포뮬러 원 페이스카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지녔음을 강조한다.

메르세데스-AMG 페이스카는 양산형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모터스포츠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트랜스액슬을 적용한 4.0리터 V8 바이터보엔진을 프론트-미드십 레이아웃으로 장착해 이상적인 밸런스를 구현하고, 포뮬러 원을 비롯한 레이스에서 갈고닦은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스 기술을 적용했다.

AMG GT3 레이싱카에서 가져온 엔진은 585마력(430kW)의 최대출력을 내며, AGM GT R의 최고속도는 318km/h에 이른다. 0-100km/h 스프린트 기록은 3.6초이며, 고속에서도 완벽한 제어를 위해 세라믹 브레이크시스템을 장착했다.

에어패널 액티브 에어 컨트롤 시스템과 차체 하부의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 프로필, 리어 에어포일과 에이프런, 더블 디퓨저 기술을 통해 레이싱카 수준의 공기역학적 효율과 구현했다. 여기에 액티브 리어 휠 스티어링과 9웨이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과 코일오버 서스펜션이 가벼운 차체를 탄탄하게 받치며 까다로운 코너와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접지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메르세데스-AMG GT R 페이스카는 레이싱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에 장착된 라이트 바를 제외한다면 마치 레이싱카에 버금가는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심지어 라이트 바를 장착하더라도 공기역학적인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전용의 날개모양 마운트를 개발하고 윈드터널 테스트로 성능을 최적화했다. 페이스카로 포뮬러 원 레이싱카와 속도를 겨룰 것이 아님에도 이런 괴물 같은 성능이 필요할까?

그러나 FIA 포뮬러  원 이사인 찰리 화이팅(Charlie Whiting)은 “그랑프리에서 세이프티 카가 개입해야 할 상황이라면, 포뮬러 원 레이스카를 안전하게 이끌기 위해 페이스카의 성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긴급 상황에서 페이스카가 필요한 장소에 빠르게 도달하기위해서는 높은 주행성능이 필요하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포뮬러 원 레이싱카는 엔진과 타이어, 브레이크에 이르는 모든 부품이 철저히 고속주행에 맞춰 개발된다. 사고발생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 레이스카는 일시적으로 경쟁을 멈추고 페이스카의 뒤를 따라 달리게 된다. 그런데 페이스카가 지나치게 느린 속도로 달린다면, 레이스카의 타이어와 브레이크의 온도가 바뀌면서 제 성능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엔진에 부담을 주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페이스카 역시 레이스카와 보조를 맞춰 달릴 수 있는 ‘슈퍼카’ 급의 성능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이 페이스카 역시 레이스카를 운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드라이버가 탑승한다. 조수석에서는 차량의 위치 추적과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이를 위한 2대의 아이패드가 장착될 뿐 아니라 차량 탑재형 핫스팟을 통해 WLAN 무선네트워크로 연결된다.

한편 메르세데스-AMG는 GT R 페이스카와 함께 응급 치료를 위한 메디컬카를 함께 지원한다. AMG C63 S 이스테이트 메디컬카는 최대 3명의 의료진을 태우고 사고발생지점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490리터 용량의 트렁크 룸에는 심장 제세동기와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응급 장비를 탑재한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드라이버와 FIA 포뮬러 원 대표 의사인 란 로버트 박사가 탑승하며, 뒷좌석에는 서킷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의료요원이 탑승하게 된다. 메디컬카 역시 페이스카와 마찬가지로 510마력의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이 장착되며, AMG 스피드시프트 MCT 9G 트랜스미션과 전자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 다이내믹 엔진 마운트 기술이 적용되어 최고수준의 주행성능을 이끌어낸다.

일종의 ‘앰뷸런스’인 셈이지만 이처럼 강력한 성능이 필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포뮬러 원 레이싱을 위한 구급차량이기 때문이다. 레이스가 시작된 직후 첫 바퀴, 첫 코너에서 가장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한 레이스 초반의 돌발적인 사고발생에 대비해 레이스카가 출발한 직후 첫 바퀴를 돌 때 까지는 최후미에 메디컬카가 뒤따르도록 되어있다. 이때 레이스카의 뒤를 따르면서 한 바퀴 이상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이처럼 강력한 성능이 필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1996년부터 FIA 포뮬러 원의 공식 페이스카를 제공하는 자동차 메이커다. 페이스카와 메디컬카의 성능만 보아도 메르세데스-AMG가 이를 개발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물론 레이스의 안전에 기여하겠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스 중에는 사고와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바로 이때 페이스카가 등장하게 된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위기의 그 순간 페이스카는 서킷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역할이 바뀌게 된다.

이번 주말, 호주 멜버른에서 2018 포뮬러 원 첫 경기가 열리며, 올해는 오는 11월 25일까지 총 21번의 레이스가 열릴 예정이다. 올해는 어느 팀이, 어떤 선수가 포디엄의 정상을 차지할지, 어떤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가게 될지 기대하며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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