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머지않은 미래에 등장할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자동차메이커들이 단순히 스스로 움직이는 차를 만드는 것을 넘어, 자율주행차의 등장과 함께 변화하게 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도 미리 고민하고 있다. 미래에는 달라질 사람의 생활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자동차를 연구하고 만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미처 떠올려보지 않은 미래의 모습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메이커의 상상력에 때로는 놀라움과 감탄을 느끼게 된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운전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할까?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하고, 어쩌면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펼쳐놓고 화상 회의에 참석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주공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자율주행차라면 운전자 역시 스티어링 휠을 붙잡고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아직까지는 자율주행차라고 해도 운전자의 ‘감시’가 필요하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는 미래라면 말이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창밖으로 바깥 풍경이 흘러가는 방’에서 머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집과 자동차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르노는 이런 대담한 상상을 했고,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심비오즈(SYMBIOZ) 콘셉트를 선보였다. 심비오즈는 콘셉트카의 이름이지만, 엄밀히 말해 자동차‘만’은 아니다. 콘셉트카가 현실에 등장했을 때 어울리는 집까지 함께 디자인했으니까, 일종의 패키지인 셈이다. 

자동차만을 본다면, 심비오즈 콘셉트는 네 사람이 탈 수 있는 자율주행 전기차다. 뤽 베송 감독의 영화에 나오더라도 어울릴 것 같은 멋진 디자인도 시선을 사로잡지만, 외관보다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 부분은 인테리어다. 

전장 4.7m의 긴 몸체에 양문형 도어를 달았고, 루프를 포함한 사방을 투명한 유리로 감쌌다. 좌석은 탑승자의 몸을 어깨까지 아늑하게 감싸 안는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운전석과 보조석 시트가 180도 회전해 뒤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차량이 달리는 동안 4명의 탑승객이 편안하게 마주 보며 앉아 대화할 수 있다. 

부드럽고 푹신한 느낌의 쿠션 패브릭이 시트를 감쌌고, 바닥도 부드러운 단열소재로 마감했다. 마주보는 시트 가운데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고, 유리창을 통해 사방을 둘러볼 수 있다. 그야말로 캡슐 형태의 작은 거실이라 해도 좋을 정도. 건축가가 디자인한 미래의 집 인테리어를 축소해서 옮겨놓은 듯하다.

단순히 집의 인테리어를 자동차 안에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르노는 심비오즈 콘셉트를 ‘집의 일부’로 디자인했고, 한편으로 콘셉트카에 맞춘 집까지 지었다. 르노가 심비오즈 콘셉트를 위해 디자인한 집은 차량이 집안으로 들어가 주차된 상태에서도 마치 4개의 의자가 놓인 작은 방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집의 2층 바깥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다.

집안의 인테리어 역시 심비오즈 콘셉트카의 인테리어와 색, 질감을 맞췄다. 르노 심비오즈 콘셉트카를 위해 디자인된 집이니 집의 인테리어를 차량에 맞췄다고 해야 옳겠지만, 만약 현실에 등장한다면 차량이 집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콘셉트카 한 대의 등장이라 말할 수 있는 스케일을 넘어섰다. 

다시 차로 돌아가 보자. 르노의 ‘Cycle of Life’ 전략에 따라 이 차는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고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도록 디자인되었다. 평소 자주 듣는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기억했다가 틀어주고 좌석을 자동으로 세팅해주는 것은 기본이며, 평소의 동선을 파악하고 사용자가 최대한 쉽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심비오즈 콘셉트는 뒷바퀴를 굴리는 2개의 전기모터가 장착되며, 최대 670마력의 강력한 출력으로 0-100km/h 가속에 6초 이내를 기록하는 뛰어난 주행성능을 내는 것을 알려졌다. 차량의 바닥에 위치한 배터리는 한 번의 충전으로 최대 500km의 거리를 주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배터리는 차량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과 ‘에너지를 공유’한다. 전력에 여유가 있을 때 집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배터리를 충전하지만, 반대로 전력 사용량 피크 시간대에는 집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고, 충전 중 갑작스럽게 정전이 발생하거나 했을 때 이를 모니터링 해 자동으로 전원을 집에 공급하기도 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심비오즈 콘셉트는 단순히 자동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사용하게 될 사람들의 생활을 상상하고 그려낸다. 물론 많은 이가 짐작하시겠지만, 당장 현실에서 완벽하게 실현되기는 어렵다. 르노는 심비오즈 콘셉트카가 ‘SAE International)가 정의한 자율주행차의 5단계 중 4단계 자율주행기술이 활성화될 수 있을 때’ 실현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르노는 그저 잠깐 사람들을 흥분시킬 콘셉트카만을 만들어내고 끝낼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르노는 심비오즈 콘셉트가 ‘가까운 장래(2023년 이전)’에 실제 생산 차량에서 선보일 기술을 미리 보여주는 차라고 소개했다. 르노는 실제로 운행될 심비오즈 데모 차량을 올해 말에 선보일 계획이다.

참고로 심비오즈 콘셉트의 개발에는 르노 이외에도 많은 기업이 동참했다. 게임 제작사로 더 잘 알려진 Ubisoft가 자율주행 모드의 가상현실 체험을 제공하는 것을 비롯해, Devialet이 사운드 시스템, Sanef는 차량과 도로 네트워크 인프라 간의 통신, IAV는 자율주행 기술, LG는 사람과 기계 간 조화를 이루는 인터페이스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 머지 않은 미래에 르노와 이들 기업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결과물을 직접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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